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668화 (834/849)

Chapter 668 - #94. 안신애 (9)

“그래서 요즘 숙소가면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그리고 저도 애들이랑 조언해주는 입장이 되니까 재밌더라고요. 얘네들이 왜 제 연애에 참견을 많이 했는지 알 것 같았어요.”

“하하하! 멤버들끼리 되게 재밌게 노는 것 같네.”

“남의 연애를 들으면서 은근히 대리 만족이 되는 느낌이랄까요? 저는 멤버들이 이런 마음으로 제 연애를 지켜보는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재밌어 보이니 다행이다. 다른 멤버들은 서운해 하지 않아? 다시 한 번 더 소개 시켜주는 건 어떨까. 친구가 연애하면 나도 하고 싶어지고 그러지 않겠어?”

또 해준다는 말에 신애가 고민에 빠졌다.

“아니에요. 적어도 지금은 준비가 안 된 것 같아요. 소개를 시켜줘도 아마 저번처럼 제대로 못할 거에요.”

“원래 최대한 자주 만나는 게 연애하는 방법 아닌가?”

“보통 여자들은 하도 남자에게 차여서 그런 식의 방법을 많이 쓰기는 하는데, 우리 애들한테는 안 맞는 방법인 것 같아요. 애들이 눈이 높아서 아무 남자한테 껄떡 대지도 않고 기껏 용기내서 호감 표했다가 거절당하면 익숙하지 않으니까 충격을 많이 받거든요.”

지금은 소개팅으로 받은 상처를 시간으로 회복할 때였다.

“그럼 나중에 지용 형이랑 잘 되면 그쪽이랑 더블데이트 하는 건 어때? 재밌을 것 같은데.”

“헉! 더블데이트! 해보고 싶어요! 재밌을 것 같아요.”

“두 사람, 더블데이트 할 정도의 사이는 된 거지? 지용이 형한테 딱히 물어보진 않아서 상황을 잘 모르겠네. 분위기 상 우리 쪽에서 먼저 제안하는 게 낫겠지?”

“아마 그렇지 않을까요? 더블데이트 하자고 해서 만나면 두 사람 진도 팍팍 나가게 우리가 밀어주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당연하지.”

그 정도는 당연한 센스였다.

멤버의 연애를 상담해주고 도와주는 것에 맛을 들인 건 한 때 당사자였던 신애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재밌는 경험을 연인인 해솔 오빠와 공유하는 것 또한 매우 즐거웠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난 게 있었던 신애가 그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해솔 오빠는 그녀 쪽에서 먼저 스킨십을 해오자 당연하다는 듯 손을 뒤집어서 그 위에 얹어진 손과 자신의 손에 깍지 꼈다.

“멤버가 풋풋하게 연애를 시작하는 걸 옆에서 보고 있으니까 우리 연애가 생각나더라고요. 오빠는 모르겠지만 연애 시작하기 전부터 멤버들이 많이 도와줬어요.”

“네가 얘기해서 잘 알지. 그래서 처제들 경계심 풀려고 엄청 노력했잖아.”

“걔네들도 참 속물이에요. 선물에 홀랑 넘어갔잖아요.”

“단순히 선물 때문에 마음을 푼 건 아닐 거야. 그런 것들이 모두 관심의 일종이고, 너를 위한 성의인 거니까. 내가 네 멤버들을 챙긴다는 건 그만큼 네가 소중하기 때문이었어. 그걸 멤버들도 알고 있으니 마음을 풀어준 걸 테고. 내가 너한테 제대로 못했어봐. 아무리 선물을 보냈어도 지금처럼 날 편하게 생각하진 않았을 걸?”

“…오빠는 참 말을 예쁘게 하시는 것 같아요. 이러니까 내가 홀랑 넘어갔지.”

말을 예쁘게 해주는 오빠가 너무 좋았다.

“이번 일도 오빠 덕을 본 거라고 생각해요. 오빠가 아니었으면 저희가 어떻게 지용 선배님이랑 소개팅을 했겠어요? 멤버들도 그걸로 엄청 고마워하고 있어요.”

“아이돌이 연애를 하려면 멤버들이 얼마나 신경을 써줘야 하는지 잘 알고 있어. 그래서 멤버들한테 고마운 거야.”

해솔 오빠도 아이돌이니 그들의 연애에는 다른 사람들의 배려가 필요하다는 걸 아나보다.

자신의 사정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공감해주는 해솔 오빠가 사랑스러워 신애는 참지 못하고 그의 볼에 뽀뽀를 날렸다.

쪽!

“사랑해요, 오빠.”

이후로는 그녀의 뽀뽀에 찐한 스킨십으로 보답하는 해솔 오빠 덕분에 대화가 끊어질 수밖에 없었다.

“학, 하악. 하악!”

다행인지 불행인지 알 수 없으나 바깥이어서 끝까지 일을 치르지 못한 그녀는 한동안 쉬지 못했던 숨을 헐떡이며 쉬었다.

붉어진 두 뺨을 식히기 위해 부지런히 숨을 헐떡이는데 해솔 오빠가 그녀의 허리를 뭉근하게 쓸었다.

“읏!”

아직 열기가 가시지 않아 작은 터치에도 몸이 예민하게 반응했다.

“오, 오빠. 제 그림 봐주실래요? 오늘 보여드리고 싶어서 가져왔는데.”

이대로는 밑이 잔뜩 젖어서 속옷을 갈아입어야만 할 거다.

그러니 최대한 달뜬 몸이 가라앉을 때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적어도 해솔 오빠가 자신을 잡아먹어 버리고 싶다는 눈빛으로 쳐다 보는 것만이라도 피해야 했다.

그래서 그녀는 주섬주섬 가방에서 아이패드를 꺼내 오빠에게 보여주었다.

“완결 났네?”

“네. 습작이지만 완결 났어요. 엄청 뿌듯해요. 중간중간에 리메이크 하고 싶단 충동도 많이 들었는데 오빠 덕분에 어떻게든 연재해서 여기까지 할 수 있었어요.”

길을 잃고 헤맬 때, 슬럼프에 걸려서 이야기가 진행이 되지 않을 때 등등.

그때마다 해솔 오빠가 조언을 해줘서 습작 작품을 여기까지 이끌어 올 수 있었다.

“이제 다시 자신감 생겼어?”

“음…아직 좀 무서워요. 완결을 내긴 했지만 수정하고 싶은 곳이 없는 건 아니거든요.”

뜬금없이 습작은 왜 완결까지 만들었냐고?

그건 신애에게 좋지 못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해솔 오빠의 도움을 받아 실력을 키운 신애는 웹툰을 그리기 시작했고, 웹툰 사이트를 통해 좋은 반응을 끈 작품을 계약해 연재를 시작하는 성과도 올렸다.

초반에만.

대기 시간이 많기는 하지만, 여자 아이돌은 만만히 보면 안 되는 빡센 직업이다.

그런데 웹툰 연재하는 작가들도 손목 터널증후군을 자주 앓을 만큼 빡센 작업량을 가진 직업이었다.

두 가지를 병행하는 게 쉬울 리 없었다.

결국 문제가 터졌다.

시간에 쫓기면서 내용이 산으로 가기 시작한 것이다.

혹평에 혹평이 쏟아지고, 결국 멘탈이 터진 신애는 허겁지겁 최악의 결말을 낸 채 완결을 내버렸다.

“그래도 그때처럼 평생 연재 안 한다! 그 정도는 아니에요. 일단 완결은 났으니까 이걸로 연재를 시작하면 수정만 해서 올리면 된다는 점에서 마음이 가볍달까요?”

“그럼 그 마음 그대로 가볍게 시작해보자.”

“근데 제 습작 정말 재밌는 거 맞아요? 저는 이걸 쓴 당사자다 보니까 객관적으로 평가가 안 돼서 너무 불안해요.”

“재밌어. 이거 연재 시작하면 금방 계약하자고 연락 들어올 걸?”

“안 그럴 지도 몰라요. 워낙 완결을 엉망으로 내놔서.”

전작이 영향을 미칠 거라며 여전히 신애는 습작 작품을 연재하는 걸 주저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취미로 시작한 그림이지만 어느새 아이돌 활동에 진심인 것만큼 웹툰을 그리는 것도 진심이 된 신애다.

“제가 욕심이 너무 많죠? 그냥 하나를 포기하면 되는데….”

“지금처럼 분량을 많이 만들어두고 시작하면 되는 일이야. 방법이 없는 게 아닌데, 굳이 네 재능 중 하나를 포기할 필요가 있을까? 하기 싫은 것도 아니고 여전히 그림 그리는 거 좋아하잖아.”

좋아하는 걸 포기하지 말라는 해솔 오빠의 위로에 신애는 큰 위로를 받고 있었다.

다시 용기를 내 연재를 해볼까 생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한 번 올려볼게요.”

“잘 생각했어. 분명 잘 될 거야.”

엉망진창으로 완결 나버린 전작품의 아쉬움이 밀려온다.

처음이었기에 서툴렀고, 처음이었기에 휘둘렸다.

아이돌로 활동하면서 욕을 많이 먹어 악플에는 익숙해 괜찮다고 다독였지만, 그녀의 그림과 이야기를 욕하는 사람들의 비난 댓글을 보며 마음이 많이 쓰렸었다.

스스로가 생각해도 그들이 하는 비난이 맞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옛날에 올렸던 작품처럼은 안 되겠죠?”

“당연하지. 이미 완결까지 다 냈잖아. 아쉬운 부분을 수정하면서 올리면 적어도 시간이 촉박해서 힘들어 할 필요가 없잖아. 시간에 쫓겨서 연재하는 거랑, 사람들 반응 보면서 수정 연재하는 건 많이 다르지.”

악플이 정말 아플 땐 그들의 비난에 명분이 있을 때였다.

본인도 악플에 공감하기에 더 깊게 찔려왔었다.

그걸 해솔 오빠가 열심히 달래주고 위로해주며 다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응원을 해줬다.

비난이 필요할 때와 칭찬이 필요할 때는 엄연히 다른 법이 아니겠나.

“휴우….”

“네가 걱정하는 일은 생기지 않을 거야. 사실 별로 수정할 거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거든. 내가 계속 작품 봐줬잖아. 그땐 나도 실수했어. 끝까지 봐줬어야 했는데.”

“그땐 오빠한테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러다가 장렬하게 터져버렸지만.”

“내 도움을 받는 게 꺼려지는 거야?”

“아뇨! 그런 거 아니에요. 오빠한테 든든한 모습을 보이고 싶었던 거에요. 연하들은 좀 그런 게 있거든요. 쓸데없는 부분에서 자존심 챙기려고 드는 거.”

남자가 연상이고, 여자가 연하일 때 종종 여자들은 남자를 오빠라고 부르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게 참 여자들 특유의 미묘한 자존심이다.

“물론 이젠 생각 바꿨어요. 오빠 도움 받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제가 혼자서 해보겠다고 아등바등하는 게 오빠를 위한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았거든요.”

기껏 잘 배워놓고 마지막에 자존심을 부려서 의지하지 못했다.

만약 힘들었을 때 오빠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면 완결이 그렇게까지 비난을 받고 끝나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잔뜩 우울해져 붓을 꺾으려던 것을 애써서 막은 것은 해솔 오빠였다.

해솔 오빠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혼자 했던 건데, 그 일로 오히려 해솔 오빠에게 민폐를 끼쳤으니 본말전도가 아니겠는가?

“이번 작품이 잘 됐으면 좋겠어요. 처음부터 끝가지 오빠랑 같이 상의하면서 만든 거니까요.”

그리고 신애의 이런 바램은 생각보다 더 엄청난 폭풍을 몰고왔다.

본인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강렬하게.

♧ ♧ ♧

“이번 화 언제 올라오지?”

“아아악!! 다음편!! 다음펴언!!!!”

보통 명작의 기준을 무엇으로 보는 게 맞을까?

누구는 좀 더 까다로운 조건을 걸어야 한다고 볼 것이고, 누군가는 그 작품으로 번 돈에 따라 명작의 기준을 거는 게 맞지 않겠냐고 할 것이다.

하지만 세상이 빠르게 변화한 만큼, 홍수처럼 쏟아지는 컨텐츠들에 명작의 기준 허들이 과거보다 훨씬 낮춰진 것은 사실이었다.

“그게 그렇게 재밌어?”

“응.”

명작의 기준에 깊게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어떤 것을 명작의 기준으로 삼아야겠냐고 묻는다면 신애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전혀 관심 없는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그 작품을 들어 본 적 있을 때.

길가던 사람에게 이 작품 아느냐고 물어봤을 때 알고 있다는 대답이 적어도 50%는 넘었을 때 그 작품을 명작이라 말해도 되지 않겠느냐는 거다.

‘근데 그게 내 작품이야.’

해솔 오빠의 조언을 받아 완결을 낸 후 연재를 시작한 습작품.

「인어는 울지 않는다」 라는 제목의 작품이 엄청나게 빵 터져버렸다.

그녀가 상상한 적 없는 수준으로.

‘이게 말이 되나?’

처음에는 마냥 기뻤다.

그런데 쏟아지는 호평에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됐다.

‘또 삐끗하면 어떡하지? 재미없어졌다고 하면?’

불안감이 쏟아진다.

아이돌로 활동하면서 늘상 경험해 왔던 감정이 아니었다면 지금 상황에서 멘탈이 나갔었을 것이다.

하지만 신애는 버텼다.

아이돌로 활동하며 불안해 하는 건 컴백할 때마다 있는 일이라 익숙했으니 말이다.

사이트 쪽에서도 심상치 않은 기세를 느꼈는지 예상보다 빠르게 연락을 줬고 계약을 했다.

특히 이미 완결까지 연재가 된 상태라는 점에서 사이트 쪽은 큰 점수를 주는 듯했다.

적어도 전작품에서 후반에 무너졌던 실수를 두 번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으니 말이다.

"작가님! 이번 화도 정말 재밌습니다. 이 페이스로 계속 나가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번 주도 종합 1위에요."

회사에서도 그녀의 멘탈 보호를 위해 잔뜩 신경을 써줬다.

신애는 술술 풀리는 상황이 기쁘고 행복했다.

그런데 그녀의 작품이 잘 돼도 너무 잘 됐던 게 문제였을까?

"작가님!! 꼭 한 번 식사 하고 싶습니다. 들으시면 정말 좋아하실 소식도 준비했어요!"

담당 편집자가 그녀에게 식사를 하고 싶다며 만남을 요청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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