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75 - #94. 안신애 (16)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것.
그 말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사실 뭘 선택하든 곁에 해솔 오빠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도 갖고 있었고 말이다.
"으음~ 그럼 저 근처 산책하고 싶어요. 어젠 짐 정리하고 밥 먹고 하느라 근처를 제대로 구경 못했거든요. 계곡에 가서 쉬어보고도 싶고요."
"그럼 옷을 좀 든든하게 입고 나가자. 추울 거야."
"네~!"
해솔 오빠의 말을 듣고 든든하게 외투를 챙겨 입은 채로 바깥을 나왔다.
우리가 데이트를 나가겠다고 하니 유희는 알아서 하라며 쿨하게 우리 두 사람을 보내주었다.
자박- 자박- 자박-
파릇파릇한 새싹이 돋는 봄이나 여름에 이곳에 왔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았다.
겨울 공기가 몸 안을 시원하게 훑고 지나가니 절로 상쾌해졌다.
"우리 깍지 껴요."
"얼마든지."
팔짱을 낀 채로 걸었는데, 그보단 손깍지를 껴서 해솔 오빠의 피부와 직접적으로 닿고 싶었다.
해솔 오빠는 사양하지 않고 그녀의 손을 선뜻 잡아주었다.
"하~ 기분 좋다."
"나쁘지 않지?"
"길이 참 예쁘게 나 있어요."
캠핑장으로 오랫동안 운영 되어 온 곳이라서 그런지 산책하기 딱 좋게 길이 나 있었다.
"겨울에 온 것도 좋지만, 여름에 왔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아까 전 느꼈던 것을 말하니 해솔 오빠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여름에도 오지, 뭐."
"정말요?"
"그땐 단 둘이 올까?"
단 둘이만 이곳에?
음습하고 야릇한 상상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둘이 이곳에 왔을 때 과연 여행 다운 여행을 즐길 수 있을까?
'절대 불가능!'
멤버가 곁에 있다는 점 때문에 얼마나 많이 자제를 했던가?
그런데 단 둘이서 이곳에 온다?
그건 그냥 하루종일 섹스나 하자고 말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아뇨, 그보단 가족들이랑 같이 와보고 싶어요."
여행다운 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방파제가 필요했다.
"가족들이랑?"
해솔 오빠는 그녀의 제안이 의외라 생각 됐는지 의문을 느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가족들이랑요."
"불편하지 않겠어?"
"왜 불편해요? 엄청 재밌을 것 같은데. 다 함께 오면 복작복작해서 아마 재밌는 일도 더 많이 생길 거에요. 물론 더블데이트도 안 좋았던 건 아니지만요."
"엄청 의외네."
"저 언니들이랑 엄청 친해졌어요! 이제 만나도 그때처럼 어색해 하지 않을 거에요."
"그럼 집에 놀러오지 그랬어."
"으음, 그건 아직까진 좀 어렵달까요. 친구랑 아무리 친해도 걔네 집에 선뜻 놀러 갈 수 없는 거랑 비슷하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여행을 가면 같이 지내는 게 익숙해질 테니, 집에도 편하게 올 수 있겠네?"
"어쩌면요. 원래 자주 만나고 부대껴야 친해지는 거잖아요. 저는 언니들이랑 지금보다 훨씬 친해지고 싶어요. 아직까지 가족에 확실하게 끼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부족한 게 보이면 노력해야 하는 거잖아요. 제가 재능은 없어도 노력하는 거에는 자신이 있어요."
그의 가족 구성원에 확실하게 들어가고 싶었다.
그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더 깊어지고 있었다.
더군다나 가족들이 그녀를 거북해 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거북해 해도 내 쪽에서 들이대야 하는 입장인 거잖아.'
이렇게 배려 받는 상황에서 노력도 하지 않는다면, 그의 연인이 될 자격이 없는 거였다.
신애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해솔 오빠는 그녀의 포부가 귀여웠는지 뒤통수를 슥슥 쓰다듬어주었다.
"아잇! 손 놓지 말구요. 오늘은 하루종일 오빠 손 잡고 있을 거에요!"
"알았어. 안 놓을게."
"땀이 나도 어림없어요. 이 손은 오늘 내 거에요."
"그래그래."
오빠 한 손을 완전히 차지하는데 성공한 그녀는 그를 데리고 열심히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다녔다.
확실히 오빠가 호언장담 한 것처럼 별장 근처 산책로는 구경할 게 굉장히 많았다.
"너무 예쁜 것 같아요. 우리 사진 찍을까요?"
이런 곳에 왔는데 그냥 산책만 할 순 없었다.
다만 사유지라서 그런지 둘이서 사진을 찍으려면 셀카밖에 답이 없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헤헤헤."
"그렇게 좋아?"
"네!"
"아, 저쪽으로 가면 내가 어제 말했던 장소가 나와. 해돋이 보기 딱 좋은 곳."
"당장 가봐요!"
오르막길이 쭉 이어져서 산책로 치고 살짝 숨이 헐떡였지만 오빠가 말한 장소에 도착 하고 나니 그 정도 수고는 들일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 나타났다.
"우와아~!"
절로 나오는 감탄사.
사진을 찍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숨겨진 명소를 몰랐다는 것에 크게 아쉬워 했을 게 분명했다.
"여기서 해돋이 보면 정말 엄청 예쁠 것 같아요."
평생 잊히지 않을 추억이 되지 않을까?
오빠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그녀의 허리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나도 그래서 여길 좋아해. 저번에는 1월 1일 날 가족들끼리 다 같이 와서 여기서 해돋이를 봤었어."
"제가 거기에 없었다는 게 너무 아쉽네요."
살짝 원망도 든다.
왜 자신을 좀 더 일찍 가족 구성원에 넣어주지 않았는지에 대한.
하지만 그것 또한 그녀를 위한 해솔 오빠의 배려였을 것이다.
여자 아이돌로 활동하는 그녀에게 방해되지 않게 하기 위한 배려.
'작년에는 정말 바쁘게 활동했으니까.'
그렇게 열심히 활동한 덕분에 지금의 자리를 얻어낼 수 있었던 거다.
힘든 만큼 유종의 미를 거둔 년도이기도 했다.
숙소에 있는 장식장의 빈 공간을 채워 준 트로피가 그녀가 작년을 얼마나 열심히 보냈는지를 증명해주고 있었다.
거기다가 바쁜 활동과 슬럼프로 포기하려고 했던 웹툰을 해솔 오빠가 도와준 덕분에 극복할 수 있었던 해이기도 했다.
작년을 열심히 보냈기에 올해부터는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는 거였다.
오빠의 가족들과 만나 친해지는 것도 좋은 일이었겠지만, 그건 작년이 아니면 안 될 정도의 일은 아니었다.
"늦었다고 초조해 하지 않아도 돼. 다들 좋은 사람들이어서 그런 걸로 차별하지 않아."
"그냥 아쉬워서 그래요. 조금이라도 더 빨리 친해졌으면 가족들끼리 좋은 추억을 쌓을 때 저도 끼워져 있었을 테니까요."
"지나간 과거를 아쉬워하기보다는 앞으로 있을 미래를 즐거워하는 건 어떨까? 앞으로 이곳저곳 많이 놀러 다닐 거야. 과거에 네가 없었던 게 아쉽지 않을 정도로."
해솔 오빠의 차분한 위로에 신애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이렇게 어른스러운 사람이 내 남자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철이 없어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자신을 든든하게 꽉 붙잡아서 중심을 잡아주고 있지 않은가?
"그런 거라면...네! 앞으로도 계속 오빠랑 함께 할 거니까요."
"그렇지."
앞으로 이대로만 쭈욱~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있다면.
오빠가 말한 것처럼 아쉬워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 ♧ ♧
"즐거웠어. 좋은 추억 쌓고 가는 것 같아."
"또 놀러 오고 싶어요!"
"언제든 쓰고 싶을 때 말해요."
더블 데이트 여행이 끝났다.
솔직히 둘째 날에는 서로 얼굴 볼 일이 별로 없을 만큼 서로의 상대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보냈던 지라 무늬만 더블 데이트가 됐지만 누구도 아쉬워 하는 사람이 없으니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는가.
아쉬움을 뒤로 하고 별장을 떠나 각자가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너무 먹어서 살 엄청 쪘을 것 같아."
"이제 또 빡세게 다이어트 해야지."
아이돌인 신애와 유희는 벌써부터 다이어트 걱정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여기서 내려주세요."
"여기서?"
"좀 더 데이트 하다가 들어가려고."
"그렇게 붙어 있었는데 거기서 더?"
"흐흥~"
부끄러웠는지 유희가 수줍게 웃는다.
거진 3일을 붙어 있었는데도, 이제 막 불이 타오른 커플인지라 떨어지고 싶지가 않은 모양이었다.
어차피 오늘도 엄연히 휴가 날이니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든 각자가 결정 할 일이었다.
"근데 밖에 나가서도 그렇게 달라붙어 있을 건 아니지? 이제 사람들 시선도 고려해야 돼. 지금 두 사람, 누가 봐도 연애하고 있다는 거 티 나."
서로를 바라보는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 두 사람이다.
두 사람의 거리만 봐도 연인이라는 걸 단 번에 알 수 있는 수준이었다.
신애는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멤버가 사랑을 숨길 줄 모르는 것을 보며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너도 만만치 않거든? 운전하고 있는 것만 아니었어도 손 잡고 있었을 거면서."
그런데 유희는 기껏 걱정해준 신애의 말을 당당하게 받아쳤다.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커플보다 더 사이가 좋았던 신애와 해솔이지 않은가?
이제 다른 사람 시선을 의식해서 떨어지라고 말하는 건 내로남불이었다.
"우리는 여태까지 사귀어도 안 들켰을 정도로 노하우라는 게 있다구. 근데 너는 비밀 연애가 처음이잖아. 조심해야 돼."
"나는 들켜도 상관없는데."
그때, 우지용이 돌발 발언을 해왔다.
들켜도 상관없다는 쿨하기 그지없는 선언!
그에 홀딱 넘어 간 유희가 헤실헤실 풀어진 얼굴로 말했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지용씨."
누가 봐도 두 사람의 관계가 들켰을 때 손해를 보는 건 우지용 쪽이었다.
그런데 선뜻 들켜도 괜찮다고 해주니 유희 입장에서는 기쁠 수밖에 없는 거다.
"풋! 좋을 때긴 하네. 걱정해주는 건 좋은데 알아서 잘 하겠지."
"헤헤, 제가 너무 참견을 했나요?"
"멤버 걱정하는 건 이해하는데, 알아서 잘 할 거야."
해솔 오빠는 두 사람의 모습이 귀여웠는지 풋 하고 웃음을 터트리면서도 신애에게 더 이상 신경 쓰지 말라며 주의를 주었다.
뒤늦게 그녀도 너무 오지랖이 심했다 싶어 자제하기로 결심했다.
'나도 옛날에 저렇게 오빠를 좋아했었나?'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하는 커플을 보고 있으려니 자꾸만 옛날 생각이 난다.
'처음에는 오빠 얼굴 보는 것도 힘들었지. 너무 심장이 뛰어서.'
근데 그건 해솔 오빠의 얼굴이 사기였기 때문이다.
저 얼굴을 보고 기분이 안 좋은 건 불가능한 일이지 않은가?
'근데 여전히 봐도봐도 기분이 좋네.'
지금은 그의 얼굴을 보는 게 익숙해져서 옛날처럼 쳐다도 못 보는 수준은 아니게 됐다.
쟤도 자신 만큼은 아니어도 무려 외모로는 탑 클래스인 우지용의 애인이 되지 않았는가?
멤버가 저렇게 헤롱거리는 것에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신유희와 우지용이 차에서 내렸다.
둘만의 데이트를 즐기기 위해서 말이다.
두 사람이 사라지자 신애는 어쩐지 심란해져서 한숨을 포옥 쉬었다.
"왜? 아직도 걱정 돼?"
"저러다가 스캔들 나면 어떡하지 싶긴 해요. 물가에 애 놓고 온 기분이랄까."
"하여튼 착하다니까."
해솔 오빠가 잠깐 빨간불에 차를 멈춰 세웠을 때, 그녀의 머리에 손을 올려 슥슥 쓰다듬어주었다.
"아무래도 숙소에 가서 제가 노하우를 좀 알려줘야겠어요. 막 하나하나 다 참견하려는 건 아니고, 우리가 주로 사람들 시선 피해서 데이트 했던 장소 만이라도 공유하려고요. 물론 오빠가 괜찮다면요."
"난 상관없어. 근데 운이 나쁘면 들키는 건 어쩔 수 없어. 얼굴이 워낙 잘 알려진 스타들이잖아."
"오빠랑 저랑 사귀는 것도 여태까지 잘 숨겼는데, 우리가 좀 도와주면 쟤도 잘 숨길 수 있지 않을까요?"
자신이 특별한 능력으로 보호 받고 있다는 걸 모르는 신애의 순진한 발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