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79 - #95. 메이 린과 조안나 (3)
자살에 관련 된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혹여 읽으시다가 불편하실 수 있으니 주의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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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상담을 받고, 처방받은 약물의 힘으로 사진전을 무사히 치렀다.
그녀가 먹는 알약 중에는 수면제도 들어가 있어서 술을 마시지 않아도 잠을 잘 수가 있었다.
하지만 상담받았을 때, 왜 약물로는 우울증을 낫게 할 수 없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잠깐 괜찮아지다가 약 효과가 사라지면 다시 최악. 현상 유지 정도인 건가.'
거기다가 약 효과가 몸에 돌고 있을 때, 정신이 맑지 않고 계속해서 몽롱한 기분이 유지가 됐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고, 잠을 자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예민한 감각을 가진 채로 찰나의 순간을 잡아채야 하는 작업인데 말이다.
'요즘 나 완전 최악이네.'
약물을 복용한 상황에선 만족스러운 작업을 할 수가 없었다.
이럴 바에야 그냥 마약을 하는 게 낫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다들 쉬쉬하고 다니지만, 이 바닥에서 마약을 먹고 작업을 하는 경우는 흔하다.
없는 재능을 어떻게든 끌어 쓰고 싶어서 하는 발버둥이다.
그녀가 재능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쌓인 피로감을 약으로나마 해소 할 수 있다면 못 할 게 없는 상태이기는 했다.
'처음으로 약하는 애들 마음을 이해할 것 같달까.'
약물을 복용했을 때의 평온함.
물론 그 몽롱함이 기분 나빴지만, 한 번 맛본 평온함은 쉽게 떨쳐내기 힘든 유혹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는 마약을 하면 지금 그녀가 느끼고 있는 감각보다 훨씬 좋은 무언가를 느낄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이쪽 업계에 지내다 보면 마약을 쉽게 접할 수 있었고, 그들의 약 후기는 듣기 싫어도 귀에 들어왔다.
이 약은 어땠느니, 저 약은 어땠느니 하면서 당당하게 떠들어 대는 것들이 꼭 있었기 때문이다.
'복용을 중단할까? 계속 여기에 손을 댔다가 나오지 못할 것 같은데.'
평소에 그녀는 마약을 하는 사람들을 경멸했다.
가장 큰 원인은 그녀를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욕하던 사람들이 대부분 마약을 즐겨 하던 인물들이라는 점 때문이다.
마약을 하는 것들에 대한 증오심이 마약 자체도 격렬하게 거부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 것이다.
개인적으로 그녀는 인생에 도움이 1도 되지 않은 그들이 유일하게 약간의 도움을 준 게 있다면 바로 그 부분일 거라 생각했다.
당장의 힘이 부족해 그들에게 모욕을 당했을지라도, 저것들보단 나은 인생을 살 수 있을 거란 확신을 갖곤 했으니 말이다.
'내가 이 정도로 몰려 있었던 건가? 이럴 바에야 마약을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면.'
그랬던 그녀가 처음으로 마약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게 됐다.
약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조금씩 이해가 되고 있다는 게 위험한 거다.
약의 편리함에 마음이 흔들린다.
처방 받은 약을 모두 복용하고 나서도 나아진 게 없어 다시 한 번 재 처방을 받고 돌아 온 날.
사건이 터졌다.
유명 평론가가 메이 린의 사진전이 최악이었다며 혹평한 글이었다.
하필 그날은 딱 하루 만이라도 약을 복용하지 않고 버텨보겠다는 쓸데없는 의욕을 불태운 날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유명 평론가가 자신의 사진전을 욕했다는 사실을 연락 받았고...
본인 스스로도 찔리는 점이 있었기에 평론가의 혹평을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거기다가 평론가의 글에 동의하는 사람들의 악플까지 보자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졌다.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이 몰려온다.
'버틸 수가 없어.'
죽고 싶다는 충동.
상담을 받으면서 주의 할 필요가 있다는 경고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충동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이 순간만 극복한다면 그녀는 우울증을 혼자서 해결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불가능했다.
그동안 그녀가 추락하길 기다려왔던 사람들의 악의는 가뜩이나 연약해져 있던 정신을 산산조각 내며 찢어버렸다.
"죽을까?"
스스로 생각하기에 만족할 수 없었던 사진전이다.
만약 자신의 사진에 확신이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흔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자신의 사진전을 욕한 평론가를 비웃고, 그의 형편없는 안목을 조목조목 따져서 무너트릴 생각에 분노하고 있었을 거다.
하지만 찢겨진 자존심이 회복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메이 린은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혹여나 미래의 자신이 잘못 된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준비해둔 행동을 했다.
어디에 있든, 그녀를 위해 당장이고 달려와 줄 수 있는 사람.
"나 좀 살려줘."
조안나에게 연락을 넣는 것이었다.
♧ ♧ ♧
최대한 버티고 버틴 게 분명한 친구가 결국 도움을 요청해왔다.
전화 통화로 살려 달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친구와 만났을 때, 술을 마시며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이긴 했지만 이 정도까지 극한에 몰렸을 거라곤 생각해보지 못했었다.
메이 린에게 좀 더 관심을 줬어야 했다는 죄책감을 느낀 조안나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당장 메이 린이 있는 곳까지 갈 수는 없어.'
평소에 생활하는 도시가 달랐기에 바로 출발을 한다고 해도 좋지 못한 일이 벌어지면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녀는 일단 경찰에 신고를 해서 메이 린의 집주소를 말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친구가 살려 달라고 전화를 했다고 하니 경찰 쪽에서도 당장 움직이겠다는 대답을 들려주었다.
메이 린의 신변을 경찰에 맡긴 그녀는 곧장 그녀를 향해 달려가기보다는 애인인 진해솔에게 연락을 했다.
"도와줘!"
지금 당장 메이 린에게 달려간다면 위안이 될 수 있긴 하겠지만, 결국 곁에 있을 때 뿐이라는 걸 알았기에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무슨 일이에요?!"
도움 요청에 해솔이 곧장 그녀의 곁으로 날아왔다.
남자 친구의 특별한 능력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는 이렇게 불쑥불쑥 튀어나왔을 때 적응이 되지 않았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비현실적인 능력에 적응이 되자 그가 가진 능력의 편리함에 젖어 들어갔다.
"큰일 났어! 네 도움이 필요해."
"뭘 해주면 되는데요? 진정하고 말해봐요."
어떤 일이든 해결해주겠다는 듯.
그녀의 간절한 도움 요청을 해솔이 간단하게 받아들였다.
솔직히 자신이 할 말은 아니라는 걸 안다.
하지만 그녀는 힘들어 하는 친구를 위해 애인에게 다른 여자를 안아 달라는 부탁을 해야만 했다.
"메이가 아파."
"메이씨가 왜요? 큰 병이래요?"
큰 병이라고 해도 그녀의 애인은 고쳐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니까.
"방금 전에 나한테 살려 달라고 전화가 왔었어."
"경찰에 연락은요?"
"이미 했어. 근데 내가 당장 걔한테 갈 수가 없잖아."
"어디에 있는지 말해주세요. 거기로 데려다 줄게요."
"응. 고마워."
급한 와중에도 조안나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다짜고짜 그에게 메이 린과 섹스를 달라고 하는 건 두 사람 모두에게 좋지 못한 일이 될 거라 생각했다.
'혼자서 극복해보겠다고 했던 애잖아. 나중에 알게 되면 자존심 상해서 떠나려고 할 거야.'
그러니 두 사람이 섹스를 하게 하려면 그녀의 부탁이 아니라 스스로가 결정을 내렸을 때 해야만 했다.
그녀의 애인이 얼마나 다정한 남자인지 알고 있기에 실망시키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해솔은 자신의 말을 지켰다.
메이 린이 어디에 있는지 말하자마자 그 도시로 그녀를 데리고 이동해준 것이다.
도시와 도시의 이동이 오래 걸린 거지, 같은 도시 내에 있다면 이동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전화해볼게."
경찰이 부디 빨리 친구를 구해줬었기를 바라며, 메이에게 계속해서 전화를 걸었다.
한 번은 끝내 통화 연결이 되지 못하고 끊겼지만 다시 전화를 걸었을 때는 다행스럽게도 연결이 됐다.
다만 애석하게도.
"메이!"
-경찰입니다. 메이씨는 병원으로 이송 중입니다. 혹시 신고자분이신가요?
"세상에..! 병원이요?! 메이는요? 괜찮은가요?"
전화를 받은 사람은 메이가 아니라 경찰이었다.
빠르게 발견을 해서 큰 문제가 없었다는 경찰의 연락을 받은 그녀는 해솔과 함께 병원으로 이동했다.
택시를 타고 병원에 도착했는데, 메이는 때마침 응급실에서 처치를 받고 있었다.
단숨에 달려간 조안나가 메이 린의 보호자를 자처했다.
신고한 사람으로 경찰과 몇 마디 대화도 나누고, 어떤 관계인지 성실히 대답했으며, 평소 메이 린이 우울증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사실도 밝혔다.
그 과정에서 해솔이 메이 린의 개인 정보를 접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말이다.
"우울증을 앓았다고?"
메이 린이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는 사이, 해솔이 그녀에게 질문을 해왔다.
이미 전반적인 상황을 다 알고 있는데 숨기는 건 웃긴 일이지 않은가?
조안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친구의 상태를 털어놓았다.
"우울증 진단을 받고 약물로 조절 중이었어. 곧 사진전이 열려서 그거 때문에 신경을 많이 썼거든. 우울증 치료에 휴식이 필요하다는 건 알았지만, 일을 쉴 수가 없는 상황이었어."
"......"
해솔은 전 연인을 이런 식으로 다시 만났다는 게 영 껄끄러운지 씁쓸한 표정이었다.
그의 표정을 보며 일단 상황이 썩 나쁘지 않다 여긴 조안나가 계속해서 말했다.
"좀 더 신경을 써줬어야 했는데. 워낙 잘 버티는 친구다 보니까 실수한 것 같아. 다른 사람도 아니고 메이가 이런 일을 저지르다니..."
경찰이 전해준, 진짜 모질게 목숨을 끊으려고 한 건 아닌 것으로 보인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조안나는 참담한 마음을 가라앉히기 힘들었다.
혼자서 견뎌낼 수 있다는 친구를 믿어서는 안 됐다.
관심을 거부해도 억지로 한 마디 더 붙여봤어야 했던 거다.
"근데 난 앞으로가 더 걱정이야. 병원에 와서도 제대로 된 치료는 못 받고 있잖아. 일어나도 변하는 건 없을 거고."
이번에는 운 좋게 구할 수 있었지만 다음에는 운이 안 따라주면 어떡하지 싶었다.
자신에게 우울증을 낫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메이를 건강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이 아니었다.
그 방법을 알고, 실행 할 수 있는 사람은 따로 있다.
"..해솔아. 무리한 부탁일지도 모르지만, 네가 메이를 좀 도와주면 안 돼?"
"아이템으로 고쳐 달라는 거에요?"
"아니, 그렇게까지 부탁하려는 게 아니야. 나는 네가 메이 곁에 있어줬으면 좋겠어."
적어도 안정이 될 때까지만이라도.
그가 곁에 있는 것으로 메이의 우울증이 크게 호전이 될 것이다.
그걸 조안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자신도 경험해 본 적 있는 일이기 때문에 더욱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