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680화 (836/849)

Chapter 680 - #95. 메이 린과 조안나 (4)

조안나의 부탁을 들은 해솔은 고민하는 눈치였다.

곁에 있어주는 것으로 메이의 우울증을 낫게 할 수 있는 건지 확신이 없을 뿐더러, 본인이 그걸 바라는지도 아직 모르는 상황이었다.

조안나도 이를 알고 있었기에 해솔에게 말했다.

"메이가 바란다고 하면 그땐 해줄 수 있을까?"

"그런 거라면...할 수 있죠. 솔직히 이 일로 저도 많이 놀랐거든요. 메이씨가 그런 일을 할 거라곤 상상도 못했어서."

조안나나 메이 린이나 모두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이 우울증으로 잘못 된 선택을 한다?

도대체 그동안 메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질 수 밖에 없었다.

"어쩌다가 메이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 알아둘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확실히 이번 일은 너무 이상해. 내가 알던 메이가 아닌 것 같았어."

해솔이의 의문 제기에 동의한 조안나가 핸드폰을 꺼내 인터넷부터 살폈다.

조안나나 메이 린이나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인플루언서이기 때문에 근황을 알아보기 위해 인터넷을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조안나가 바라는 정보는 얼마 되지 않아 확인을 할 수 있었다.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메이 린을 향한 날선 비난과 비판이 인터넷에 가득했기 때문이다.

"우선 메이를 데리고 집에 데려가야 할 것 같아."

"아직 깨어나지도 않았는데요?"

"메이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사실이 기사로 나면 안 돼. 일단 메이가 남들한테 정체를 들키지 않게 도와줄 수 있을까?"

"무슨 일이 있는 거에요?"

"나도 얼핏 봐서 잘 모르겠는데, 대충 설명을 하자면 평론가가 이번에 메이 사진전을 혹평한 것 같아. 평소에는 이런 말 귀담아 듣지 않는데, 이번에 우울증이 온 것 때문에 버티지 못한 것 같아."

그리고 메이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에 이 비평가의 글이 큰 영향을 미쳤을 확률이 높았다.

조안나는 눈빛으로 사람 한 명을 죽일 수 있으면 죽일 것처럼 핸드폰을 노려봤다.

그녀의 핸드폰에는 무책임하게 글을 싸질러 놓고 웃고 있는 비평가의 얼굴 사진이 떠 있었다.

"무슨 개소리를 적어 놨기에 애가 저 지경이 됐는지 읽어봐야겠어."

"그런 글, 읽어봤자 눈만 버릴 거에요."

"메이를 이렇게 만든 년이잖아. 어떻게 복수할지 알려면 어떤 짓을 했는지 알아야지. 반드시 후회하게 할 거야."

"...그럼 전 메이씨가 괜찮은지 보러 갈게요."

"고마워."

메이를 믿고 맡긴 채, 조안나는 대외적인 부분을 맡아 수습을 하기 시작했다.

다행인 것은 병원에 있는 사람 중 누구도 메이 린의 정체를 알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그녀의 정체를 알았다면 누군가 퍼트렸을 것이고, 이미 병원은 기자들로 북적일 것이다.

적어도 병원에 나설 때까지, 아니 최선은 그녀의 비극적인 소식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게 해야만 했다.

조안나가 메이를 위해 이곳저곳에 전화를 돌리기 시작한 사이.

진해솔은 메이 린이 잠들어 있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몇 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잠든 얼굴에 깃들어 있는 숨길 수 없는 피로가 그의 마음을 애잔하게 만들고 있었다.

헤어진 마당에 함부로 그녀의 몸에 손을 대는 건 어불성설.

해솔은 차마 메이 린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잘 살아야 하는 거 아닌가?"

우리가 헤어진 이유가 무엇이었나?

당시 세 사람 모두 합의 하에 헤어지긴 했지만, 완전히 끝을 말한 건 아니었다.

감정만 생각하면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헤어짐이다.

하지만 그들에겐 해야만 하는 일이 있었다.

진해솔은 멤버들과 함께 더 큰 세계를 향해 나아가야 했고.

조안나는 슬럼프를 극복해 성장한 실력으로 자신의 회사를 창업하고자 했었다.

또한 메이 린은 동양인만 촬영을 할 수 있다는 오명에서 벗어나서 제대로 실력을 인정 받아야 했다.

"바라던 명성을 얻었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지켜보고 있었으니까. 근데 이런 모습으로 나타나는 건 곤란하죠. 좀 더 멋지고, 근사한 모습으로 나타나려던 거 아니었어요?"

"으음..."

해솔의 중얼거림이 그녀의 정신을 깨웠던 걸까?

푹 잠든 줄 알았던 메이 린이 깨어나려는 신호를 보내왔다.

그리고 마침내.

메이 린의 눈꺼풀이 열렸다.

"하아~"

아직 해솔을 발견하지 못한 그녀가 눈을 한 번 떴다가 질끈 감았다.

해솔은 그녀가 진정 할 수 있게 기다렸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괜찮아요?"

"..아?"

그의 목소리를 들은 메이 린이 눈을 다시 떴다.

"!!!"

이리저리 흔들리는 눈동자가 한 곳에 박힌다.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은 당연하지만 진해솔이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뚫어져라 그를 바라보던 메이 린이 말했다.

"당신이 왜 여기에...?"

"놀랍죠? 저도 제가 여기에 있는 게 놀라워요. 이런 일로 병원에 오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맙소사,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점점 정신이 돌아왔는지, 이곳에 온 이유가 생각나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차마 해솔과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겠는지 등을 돌려버렸다.

현실을 외면하고 싶었던 필사적인 움직임이었다.

"몸은 괜찮다고 하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그리고 그렇게 막 움직이면 안 됩니다. 링거 맞고 있잖아요."

해솔이 링거를 맞고 있는 팔을 움직이지 못하게 손목을 잡았다.

하지만 메이 린은 그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내가 미친년이지. 믿을 수가 없어. 하, 완전 흑역사야. 잊고 싶어."

"흑역사로 덮을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에요. 몸에 후유증이 안 남은 거 운이 좋았던 거에요. 일찍 발견해서 큰 위험이 없었답니다. 근데 언제까지 등 돌리고 있을 거에요? 나 안 쳐다봐요?"

"얼굴 보고 싶지 않아. 아니, 못 보겠어."

"부끄러워요?"

"...창피해."

"그럼 마음 가라앉히고 있어요. 목 많이 마른 것 같은데 물 좀 떠올게요."

해솔은 그녀를 배려하기 위해 잠시 자리를 피해주었다.

혼자 남은 메이 린은 자괴감에 마른 세수를 했다.

그리고 중얼중얼 자신을 향한 욕설을 뱉어냈다.

"속으로 병신병신 하니까 진짜 병신이라도 된 거야? 고작 그런 일로 이런 짓을 한다고?"

그런 결정을 내린 게 본인인데, 과거의 자신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디서 힘이 난 건지...

그녀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서 핸드폰을 찾았다.

마침 근처에 그녀의 소지품이 모여 있었다.

핸드폰을 쥔 그녀는 침대에 걸터앉아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든 원인인 문제의 글을 천천히 읽어나갔다.

"이게 이런 내용이었나?"

정신이 극단적으로 몰려 있을 때는 이것보다 훨씬 심하게 다가왔었다.

글자 하나하나가 심장에 박혀와서, 그녀가 인생을 갈아서 차지한 왕좌가 무너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신이 들었을 때 다시 확인을 해보니 비평가의 글은 예전의 그녀였다면 비웃고 지나갔을 수준이었다.

정곡을 쑤셔 대던 비평가의 글은 엉뚱한 부분을 헤매고 있으며, 비판을 위한 비판글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고작 이런 걸로...'

마지막에 조안나에게 전화를 해서 다행이었다.

고작 이런 년이 싸지른 글 때문에 소중한 목숨을 잃을 뻔하지 않았는가?

"지금 뭐하는 거에요?"

"아."

그때, 물을 떠온 해솔이 커튼을 걷어내고 물었다.

그녀가 뭘 보고 있는 건지 걱정하는 눈치였다.

실제로 그가 걱정 할 것을 보고 있었기에 재빠르게 화면을 닫아버렸다.

"시간 본 거야. 얼마나 지났는지."

"물 마셔요."

찬 물을 가져왔을 줄 알았는데, 어떻게 가져왔는지 적당한 온도의 따듯한 물이었다.

"천천히 마셔요. 물도 급하게 먹으면 체해요."

세심한 아니, 극진한 보살핌이었다.

고작 물 마시는 것으로도 이렇게까지 걱정을 받으니 말이다.

"너무 그러지마. 당신이 그럴수록 난 더 창피하다고."

"창피한 줄 알면 그러지 말았어야죠. 실수할 게 있고, 해선 안 되는 짓이 있는 건데."

"...들어서 알겠지만 내 상태가 좀 안 좋았어."

"지금도 상태 안 좋아요. 잠깐 괜찮을지 몰라도 언제 또 도질 수 있다던데요?"

그랬다.

조안나의 도움으로 위험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지금은 멀쩡해도 집에 돌아가면 다시 우울증이 도져서 땅을 파고 들 수가 있는 것이다.

"약을 안 먹어서 그랬어."

"치료 받고 있었어요?"

"거기까진 못 들었던 모양이네. 상담 받고 약 처방 받았어."

"약을 깜빡한 거에요? 일하다가?"

"...응."

괜히 호기를 부리고자 약을 먹지 않았다고 하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이미지를 지키고자 거짓말을 했다.

"아무래도 곁에서 챙겨주는 사람이 필요할 것 같네요."

"응? 아니, 난 다른 사람이 곁에 있으면 불편해서 싫어."

"그럼 또 혼자서 약 먹으면서 버티겠다고요?"

"사진전 끝났으니까 급한 일은 없어. 휴식 취할 거야."

"휴식으로 뭘 할 건데요?"

"......"

휴식으로 뭘 할 거냐고?

막상 그런 질문을 들으니까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해본 적이 있어야 생각 나는 게 있을 텐데, 휴식이라고 해봤자 조안나와 술 마시는 게 전부인 그녀였다.

"어...여행..?"

그나마 생각나는 걸 무작정 말하니 어림도 없다는 듯 해솔이 피식 웃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에요? 여행을 가면 또 열심히 사진을 찍고 다니겠죠. 그게 일하는 거지, 어떻게 쉬는 거에요?"

"카메라를 어떻게 두고 다녀?"

카메라의 매력에 빠진 이후, 그걸 손에서 놓은 적이 없었다.

그러니 휴식을 취할 때도 마찬가지인 거다.

"그럼 여행을 가서 스트레스 해소하고 올 자신은 있어요? 사람들이 싫다고 했으니 혼자 갈 생각일 텐데, 그렇게 해서 우울증이 나을 까요?"

"내가 알아서 해!"

자꾸 우울증을 극복하지 못할 거라는 식으로 말을 하니 화가 났다.

자신을 무시하는 행동은 그라고 해도 가만히 내버려둘 수 없었다.

"아뇨. 혼자서 하지 마세요."

"뭐?"

"제가 옆에 있을 테니까, 혼자 있지 말라고요."

"!!!"

옆에 있겠다고?

왜 자꾸 살살 신경을 긁나 했더니, 이런 걸 계획하고 있을 줄이야.

진해솔이 그녀의 표정을 유심히 살피고 있는 게 느껴졌다.

'왜 몰랐지? 얜 처음부터 날 걱정하고 있는 거였는데.'

지금은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도 그녀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던 거다.

자신을 걱정해주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의도를 눈치채지 못한 채 까칠하게 반응을 할 정도로 말이다.

"넌...바쁘잖아. 민폐 끼칠 생각 없어."

"그게 왜 민폐에요? 언제까지 저랑 내외하려는 건데요? 이제 슬슬 옛날 약속 지킬 때도 되지 않았어요?"

"그게 어떻게 약속이야? 그냥 겉치레 한 거지. 나중에 다시 만나서 사랑을 이어가자고? 헤어질 때 흔히 하는 어설픈 위로일 뿐이야."

"정말 그렇게 생각했어요?"

진해솔이 진심이냐는 듯 되묻는다.

당연히 거짓말이다.

그를 다시 만날 생각을 갖고 있었기에 다른 인연을 만들지 않았다.

조안나에게서 다시 해솔과 만나기 시작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도, 언젠가 자신도 그와 재회할 거라 생각하며 들뜬 상상을 했었다.

하지만 그 상상 속 어느 순간에도 이렇게 형편없는 꼴을 보여주는 재회는 없었다.

"당연하지. 도대체 여긴 왜 온 거야? 무슨 좋은 꼴을 보겠다고."

오지 말았어야 했다.

그를 병원으로 불러 온 조안나가 원망스러웠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