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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681화 (673/849)

Chapter 681 - #95. 메이 린과 조안나 (5)

끈질기게 발목을 붙잡는 늪에서 벗어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무엇일까?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

비록 그 사람도 늪에 빠질 수 있는 위험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그래야 늪을 빠져나갈 수 있는 거다.

바깥에서 당겨주는 힘이 아래로, 아래로 빨려 들어가는 몸을 빼내 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메이 린은 주변 사람에게 도와 달라는 말을 하는 대신 뾰족하게 사라지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에겐 매우 다행스럽게도 진해솔은 거짓말을 진심으로 듣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좋은 꼴 보러 온 게 아니라 아파하는 당신 곁에 있어주려고 온 겁니다."

"뭐?"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고, 도움이 필요하면 도와 달라고 하면 되는 거잖아요."

"....!!"

"왜 혼자 끙끙 앓고 있어요? 미련하게. 꺼지라고 할 거면, 멀쩡하기라도 했어야죠."

혼자서 아등바등했다는 걸 다 들켜버렸다.

창피함과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냥 그때 죽어버렸으면 이런 꼴은 안 당해도 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짝!

흠칫!

그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눈치 챈 사람처럼, 진해솔이 자신의 두 손바닥을 마주 부딪쳐 큰 박수 소리를 만들어냈다.

그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 그녀가 고개를 들었고, 어느새 가까이 다가 온 진해솔이 자신을 내려다 보고 있는 눈빛과 마주쳤다.

"정신 차려요. 정말 큰일 날 사람이잖아? 아무래도 안 되겠네요. 본인이 자초한 일이니까 불쾌해도 참아요."

"뭘?"

"앞으로 당신이 다 낫고 멀쩡해진 모습을 볼 때까지 곁에서 떨어지지 않을 거에요."

진해솔의 말이 뒤통수를 가격해온다.

'내 곁에서 떨어지지 않을 거라고?'

그는 이런 말을 들으면 자신이 불쾌해 할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어림도 없지.

여자를 몰라도 너무 모르지 않은가?

"시, 싫어. 누구 마음대로?"

"내 마음대로에요. 혼자 있어도 죽지 않을 정도로 정신이 건강해질 때까진."

사실 전혀 기분 나쁘지 않다.

오히려 기뻤다.

그가 형편없는 자신을 보고도 싫어하지 않고 오히려 걱정하며 챙겨주려 하는 상황이니 말이다.

물론 걱정도 된다.

'이러다가 나한테 완전 실망해서 가버리면 어쩌지?'

그녀가 하는 못된 행동에 정이 떨어져서 가겠다고 해버릴까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거부하는 척 하는 것은...

그의 보살핌을 받으며 좋아하는 걸 티 내는 것만큼 꼴 사나운 짓은 없다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진짜 머저리.'

자신이 싫다고 해도 그가 자신을 놓지 않아주길 바란다.

"너 바쁘잖아. 어떻게 내 옆에 계속 있을 건데? 말도 안 되는 소릴 하면서 당당하게 굴지 마."

"전 한다고 하면 하는 사람입니다. 못 할 거 없어요."

"거짓말쟁이...떠날 거면서."

"제가 거짓말쟁이인지 아닌지는 직접 확인해봐요.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증명 될 테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믿고 싶어 진다.

그가 곁에 있어준다면 우울증 따위로 고생 할 일도 없을 것이다.

자신이 앓고 있는 병도 금방 극복할 수 있을 터.

여태까지 살면서 약한 소리 한 번을 내본 적 없는 그녀였기에 이런 식으로 굴 수밖에 없는 자신을 이해해줬으면 좋겠다는 머저리 같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진해솔은 그녀의 형편없는 마음을 알아줬다.

정말 자신이 했던 말을, 지켜내기 시작한 것이다.

♧ ♧ ♧

그가 너스레를 떨며 그녀의 삶 속으로 풍덩 빠져드는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이게 다 뭐야?"

"앞으로 여기서 생활할 거니까요. 필요한 물건들을 옮겨왔어요."

그녀를 퇴원 시키고, 집까지 따라 온 그는 당당하게 보금자리를 침범해왔다.

조안나도 어처구니없었다.

자신의 애인이 친구의 보금자리에 들어와 동거를 하겠다는데 선뜻 허락을 한 것이다.

'아니, 그건 허락이 아니라 부추김이지.'

그가 자신과 동거를 하는 것에 적극적으로 찬성을 했다.

그리곤 뭐 필요한 게 없냐며 쓸데없이 세심한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

'하긴, 걔는 원래 그런 애니까.'

예전에도 진해솔을 소개시켜 준 건 조안나이지 않았는가?

이제와 친구에게 질투를 하는 건 말이 되지 않는 일이긴 했다.

'아무리 그래도 동거는...'

응급실에 다녀 온 이후, 그녀는 자신의 상태를 간과해 약을 먹지 않는 무모한 짓을 하지 않기로 했다.

꼬박꼬박 시간에 맞춰 약을 챙겨 먹었고, 당분간 휴식을 취하겠다며 스케줄을 정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진해솔은 그녀가 일을 하는데 필요한 내조를 하기 시작했다.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는가 싶을 정도의 내조를 말이다.

그가 집에서 하는 일은 굉장했다.

일단 아침에 그녀보다 일찍 깨어나 깨워준다.

"일어나세요."

"으음."

"일어나요~ 벌써 9시에요."

"...일어났어."

귓가를 간질 거리는 옥구슬 같은 목소리에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큰 자극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가.

"또 이렇게 잔뜩 차린 거야?"

"아침은 먹는 게 건강에 좋아요. 그리고 약도 먹어야 하잖아요."

"이것도 네가 직접 만든 거지?"

"당연하죠. 오늘은 계속 부담스럽다고 해서 평소보다 훨씬 더 가볍게 만들었어요."

철저하게 그녀의 성향을 파악해서 만들어낸 상차림이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커피, 그녀가 좋아하는 무겁지 않은 가벼운 샌드위치와 스프가 상에 올라와 있었으니 말이다.

거기다가 맞은편에는 그의 몫으로 보이는 음식들이 차려 있었다.

그는 이 집에 들어왔을 때부터 그녀가 혼자 밥을 먹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항상 곁에는 그가 있었으며,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주고 있었다.

'약을 먹을 필요가 있을까..?'

이미 약물보다 더 정신 건강에 좋은 것이 곁에 있는데.

하지만 한 번 안일한 행동으로 큰일 날 뻔했던 적이 있었던 그녀는 방심하지 않기로 했다.

얌전히 해솔이 차려주는 아침 밥을 먹고 약을 삼켜냈다.

"좋아요. 잘했어요."

그렇게 약을 먹고나면 진해솔은 그것으로 끝내지 않고 그녀를 잘했다며 칭찬해줬다.

마치 아이에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매번 말하는 거지만 그런 아이한테 할 법한 칭찬, 어색하다고."

"그래도 기분 좋지 않아요?"

그래서 더 어처구니가 없는 거다.

왜 이런 취급을 받으면서 기분이 좋단 말인가?

대답하지 않고 회피를 하니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자신을 바라본 진해솔이 설거지를 시작했다.

솨아아아-

그가 설거지를 할 때, 그녀는 욕실로 들어가 몸을 씻는다.

욕실에는 미리 그녀가 갈아 입을 새 옷이 마련 되어 있었다.

세심한 배려는 이런 사소한 부분도 놓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거 괜찮은 거 맞아?'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불쑥 그녀의 삶에 달라붙었는데, 불편함이 전혀 없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평생 살아 온 생활 습관이 다른데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내 마음을 들여다 보는 것 같은데.'

그녀가 무엇을 불편해 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이 필요한지까지.

영화 속에서 나올 법한 집요정 한 마리를 분양한 것 같았다.

물론 집안일만 열심히 하는 것에 족했던 집요정과는 차원이 다른 유능함을 갖추고 있다는 차이점을 갖고 있었다.

씻고 나와보면 다소 헝클어져 있던 그녀의 방이 깔끔하게 청소가 되어 있는다.

창문을 열어 놨는지 아침의 싱그러운 공기가 방을 돌아다니고 있다.

다만 싱그러운 공기는 조금만 지나도 따듯한 온기를 담은 공기로 바뀌어버린다.

씻고 나온 그녀가 혹여나 추위에 떨까 걱정 된다는 듯이 말이다.

'정말 편하네.'

굳이 그녀가 신경 쓰지 않아도 모든 일이 척척 해결 되어 진다.

처음에는 스스로 하려고 하다가 이미 일이 끝나 있어 어색해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게 하루이틀이 아니다 보니 슬슬 이런 모습도 익숙해져 갔다.

"위험한 것 같은데..."

정말 위험하다.

그녀의 인생에 이토록 깊게 들어 온 사람이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사라진다고 생각해봐라.

든자리는 몰라도 난자리는 티가 많이 나는 법이지 않은가?

그가 사라진 빈 공간을 그 무엇으로도 채워 넣지 못할 게 분명했다.

찰칵-

그래서...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카메라를 들어 올렸다.

자신이 손을 대지 않아도 깨끗해진 정갈한 방을 렌즈에 담아 꾸욱 버튼을 누른다.

'사진은 영원해지니까.'

그의 빈 자리를 메우지 못해 눈물이 나올 때면, 이 사진을 볼 것이다.

흔적을 찾아 헤매이지 않아도 사진이 있다면 얼마든지 그 때를 떠올리고 머릿속에 되새길 수 있었다.

"또 사진 찍어요?"

찰칵 찰칵 하는 셔터음 소리가 그의 호기심을 자극했는지 그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응."

"별 거 없는 방인데도요?"

"나한테는 별 거인데?"

"흠...?"

진해솔은 집안 곳곳을 찍는 그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어 보였다.

하긴, 그가 어떻게 알겠는가.

그녀의 마음을 읽는 것 같았다고 해서 진짜 마음을 읽는 것은 아닐 것을.

그가 만들어낸 흔적들이 그녀에겐 사진으로 남기고 싶을 순간임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거 찍는 것보다 더 좋은 걸 찍는 게 낫지 않을까요?"

"좋은 거?"

"가령 스케줄 없는 오늘, 저랑 놀러 나가는 거죠. 그냥 평범하게 손 잡고 공원 데이트 하는 건 어떨까요? 공원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리고 거기서 사진을 찍는 거에요.

평범한 집 풍경을 찍는 것보다 훨씬 값어치 있는 사진일 거에요.

귓가에 입술을 가까이 가져다 대고 속삭이는 진해솔의 말이 악마의 유혹처럼 느껴진다.

그녀는 질끈 두 눈을 감았다.

'알아차렸구나. 내가 더 이상 거절하지 못할 거라는 걸.'

그동안 해솔은 그녀의 삶에 불편을 주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 해 눈치를 봤다.

동거를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 사이에서 야릇한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는 점이 바로 그 증거였다.

-괜찮아. 날 받아들여도 문제 될 일은 없을 거야.

그렇게 안심을 시킨 후 경계심이 풀렸다 싶었을 때 훅 들어오는 거다.

'너 이제 나 없으면 못 살잖아. 다 알고 있어.' 라면서.

실제로 그녀는 이렇게 불쑥 접근해 오는 진해솔의 유혹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이럴 까봐 최대한 들키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분하지만 그의 수작질은 그녀의 취약한 부분을 확실하게 꿰뚫었다.

기세등등한 남자를 보며 아니라고, 거절할 거라고 말할 수가 없다.

명백한 유혹임을 알면서도 그녀는 이미 거부할 의욕을 잃은 상태인 것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갖고 놀라고 해. 다 포기할래.'

이 남자는 그녀의 모든 것을 손아귀에 쥐고 흔들고 있었다.

아찔하다.

그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다는 점에서 더더욱 최악이었다.

"그래서 지금 나가자고?"

"오늘 휴식이잖아요.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거에요?"

"...아니. 맞아. 딱히 다른 일정은 없어."

"그럼 저랑 시간 보내줄 수 있어요?"

아마 그의 부탁이라면 없는 시간도 내어줄 수 있을 만큼 홀려버린 상황이었다.

그녀는 속마음을 애써 꾹꾹 억누르며 말했다.

"하루쯤이라면."

하루가 아니라 365일을 넘어 평생 그와 함께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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