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92 - #95. 메이 린과 조안나 (16)
촤아아악-!
흰색 연기가 클럽의 분위기를 화끈하게 띄우고 있었다.
워후우!!!!!!!
쿵! 쿵!!쿵쿵! 쿵쿵!! 쿵!
리믹스 된 음악이 쩌렁쩌렁하게 클럽 안을 채우고, 사람들은 음악에 맞춰 너나 할 것 없이 몸을 흔들었다.
직원들은 이제 막 클럽에 들어 온 사람들에게 술을 권유하고 다녔다.
"마셔마셔! 마시면서 즐기는 거야!"
"어우, 이거 너무 쎈데."
"괜찮아! 재밌다고! 더 마셔! 다 잊고 즐기는 거야!"
그 술을 받아서 마시고, 또 마시다 보면 어느새 클럽에 완전히 녹아 들 준비가 끝난다.
부끄러움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는 건 흥이었다.
"괜찮겠어? 처음부터 너무 달리는데."
클럽에서까지 마스크를 쓰고 있을 수는 없는 법이었기에 해솔은 어느새 얼굴을 다 드러내고 있었다.
입장부터 직원들이 술을 자꾸 줘서 취기가 살짝 오른 메이는 해솔의 손을 꽉 잡았다.
그를 놓쳤다간 기회를 보던 다른 년이 그를 채갈 것이다.
서둘러 자리를 잡고 앉은 그녀는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직원이 되게 술을 많이 권하네요."
"여기서 쭈뼛대고 있으면 재미없으니까. 일단 취하게 만들어서 놀게 만들려는 거야."
한 두 명이 쭈뼛거리고 있는 건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런 사람들이 많아 지다 보면 분위기가 처질 수 있었다.
그걸 막기 위해 직원들은 클럽에 막 들어 온 사람들을 위주로 술을 먹이는 거다.
술에 취하면 클럽 분위기에 빠르게 녹아들 수 있으니 말이다.
"분위기는 나쁘지 않네. 조안나가 딱 좋아 할 느낌이야."
이미 다들 한창 즐기고 있는 상태다.
스테이지에서 현란하게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함께 무아지경으로 춤을 추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거다.
특히 오늘 클럽에서 무슨 이벤트라도 하는 건지, 유난히 남자들이 자주 보였다.
'괜찮은데?'
그녀의 시선이 저도 모르게 남자들을 향했다는 걸 눈치 챈 걸까?
갑자기 불쑥 진해솔이 얼굴을 들이밀며 물었다.
"지금 누구 보는 거에요?"
"...크흠, 그냥 둘러 본 거야. 위험한 사람이 있나 싶어서."
"거짓말인 거 아는데 모르는 척 해줄게요. 다음부터는 어림도 없어요."
그의 노골적인 질투심에 메이가 자꾸만 헛기침을 했다.
사실 질투는 그가 아니라 그녀가 해야 하는 게 맞다.
지금 이 클럽에는 남자를 잡아 먹기 위해 온 여자들로 꽉 차 있는 상태다.
승냥이들로부터 진해솔을 지켜야 하는, 그녀의 짐이 만만치가 않은 상황이었다.
"술부터 마시고 들어가요."
"근데 정말 괜찮겠어? 사람들이 알아 볼 거야."
"괜찮아요. 원래 동양인 얼굴은 잘 못 알아 보잖아요. 즐기러 왔는데 그런 거 신경 쓰느라 제대로 못 즐기는 것도 별로에요. 들키면 들키라죠. 제가 나쁜 짓 하는 것도 아닌데."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해솔은 정말 진심으로 춤을 추러 클럽에 온 게 맞다.
섹스가 목적이었다면 당장 그녀를 데리고 호텔로 가도 할 수 있는 일이지 않은가?
해솔이 괜찮다는데 계속 걱정하는 것도 아니다 싶어 메이는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이렇게 안경을 끼면 더 못 알아볼 거에요."
해솔이 보란 듯이 안경을 꼈다.
그는 귀엽게도 안경이 자신을 무적으로 만들어 줄 거라는 알 수 없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동양인이어서 못 알아 보는 게 맞을 텐데...'
무대 화장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안경까지 쓴 동양인을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알아본다?
그의 팬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도 안경 하나를 믿고 기세 등등 하는 모습이 귀여웠기에 놔두기로 했다.
"다른 여자들이 접근하는 건 내가 다 막아 줄 게. 넌 편하게 춤 춰."
클럽에 온 남자라는 점에서 여자들의 스킨십은 대범해진다.
클럽이라는 장소 자체가 은연 중 그렇고 그런 의도를 갖춘 곳이지 않은가?
남자와 여자가 가볍게 만나고 헤어지는 쓸데없이 쿨한 그런 거.
그래서 이곳에 온 여자들은 당연히 그래도 되는 것 마냥 쉽게 남자에게 접근을 하고, 터치를 해댄다.
문제는 대다수의 남자들이 그걸 썩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다.
'클럽에 온다는 것 자체가 그걸 의도해서 온 게 맞으니까.'
여자보다 못할지 몰라도 남자에게도 성욕은 존재한다.
여자와 사귀는 게 귀찮은데 성욕을 풀고 싶다면 클럽은 꽤 좋은 선택지가 될 것이다.
'다만 해솔이는 예외지. 그걸 쟤네들은 모른다는 게 심각한 문제인 거고.'
그러니 그녀에겐 클럽에서 놀는 진해솔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조안나와 함께 왔다면 그를 지키는 게 쉬웠겠지만, 본의 아니게 둘이서 오게 됐으니 그녀가 더 조심해야 했다.
다른 여자에게 내 것을 빼앗기지 않도록 말이다.
"메이씨! 왜 이렇게 못 즐겨요? 오늘 놀러 온 거잖아요. 신나게 놀아야죠!"
약을 끊어서 드디어 술을 마실 수 있게 됐다.
그를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도 갖고 있지만, 그녀도 클럽 분위기를 즐기고 싶은 마음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내 걱정 하지 말고 놀아. 나도 즐기고 있는 중이니까."
진해솔이 그녀의 말에 씨익 웃더니 말했다.
"다른 여자한테 넘어갈 생각 없으니까 그런 거 신경 안 쓰고 놀아요."
"....!!"
그녀가 티를 내지 않았는데도 해솔은 이미 그녀의 속을 다 들여다 보고 있었다.
"한 잔?"
"어휴, 능구렁이 같기는. 그래, 짠!"
본인이 그렇다는데 뭐 어쩌겠나.
해솔의 짠에 맞춰 다시 한 번 술을 마셨다.
직업이 아이돌이니 지긋지긋할 정도로 춤을 췄을 텐데, 여전히 춤이 좋은가 보다.
술이 한 잔 한 잔씩 들어가자 진해솔의 몸은 점점 클럽에서 나오는 음악에 맞춰 흔들리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당장 스테이지로 나가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나갈까?"
그녀가 흥이 날 때까지 기다릴 생각인 것 같은데, 춤 추고 싶다는 티를 팍팍 내고 있는 사람을 붙잡아 두는 것도 곤욕이다.
그녀가 먼저 스테이지로 나가자고 제안을 하니, 해솔이 냉큼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요! 여기 DJ가 실력이 좋은 것 같아요. 사실 아까 전부터 몸이 근질거렸거든요."
해솔은 정체를 숨길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스테이지에 들어가 물 만난 물고기처럼 날뛰었다.
"쟤 춤 추는 애 같지?"
"엄청 잘 추네! 와우! 미쳤어!"
그의 독보적인 실력은 금세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어느새 춤을 추던 사람들은 그를 가운데 두고 둥그렇게 둘러 싼 상태가 됐다.
와아아!!!
미쳤잖아!
이렇게 잘 추는 남자는 처음 봐!
오늘 너랑 섹스하고 싶어! 꺄악!!
진해솔이 보여주는 춤에 환호하고, 야릇한 제안을 서슴없이 하는 여자도 나왔다.
사람들은 어설프게 그의 춤을 따라 추기도 하고, 부러움에 감탄을 뱉으면서 엄지를 치켜 들기도 했다.
'누가 아이돌 아니랄까 봐. 근데 섹스하고 싶다고 했던 년은 누구지?'
그는 어딜 가든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얼굴을 아무리 가려봤자 뭐하겠는가?
그의 주변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데 말이다.
어디를 가든, 정체가 밝혀지지 않는다 해도 사람들 사이에서 선망의 시선을 받으며 사는 게 잘 어울리는 남자였다.
'다가오면 죽인다!'
메이가 한 발짝 뒤에서 해솔이 춤 추는 걸 구경하면서 주변을 경계했다.
무아지경으로 춤을 추던 해솔은 곡이 끝나자 작게 숨을 헐떡이며 메이를 찾았다.
"자기, 어디서 왔어? 춤 너무 멋지다!"
"나랑 놀지 않을래? 내가 술 사줄게!"
"어디서 춤 배운 거야?"
"혼자 왔어? 아니, 애인 있어도 상관없어. 지금 나가지 않을래? 내가 뿅 가게 해줄게."
하지만 뒤에 있는 그녀를 미처 찾기도 전에, 진해솔의 주변으로 여자들이 달라 붙었다.
메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달라 붙는 여자들 사이에서 진해솔의 손목을 턱! 잡아 끌어당겼다.
"다 꺼져! 얜 내 거야."
"아하하! 메이, 어디 갔었어요? 놓친 줄 알고 깜짝 놀랐네."
해솔이 그녀의 말에 화를 내지 않고 웃으며 아는 척을 하자 달려 들었던 여자들이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아마 그들의 머릿속에 해솔은 이미 홀딱 벗겨져 침대 위에 눕혀졌을 것이다.
그녀들은 만만치 않은 느낌을 주는 메이를 가늠해보다 안 될 것 같았는지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임자 있다는 데도 저러네. 잠깐이라도 혼자 두면 안 되겠어.'
화장실에 간다고 해도 절대 혼자 보내면 안 될 거다.
그렇게 사라지고 나면 절대 돌아오지 못할 테니까.
한편, 여자들의 기싸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해솔은 천진난만하게 메이에게 말했다.
"같이 추자고 했는데, 뒤에 있으면 어떡해요?"
"그런 춤에 어떻게 같이 맞춰 주니? 내가 그렇게 춤을 잘 췄으면 카메라 들고 다니지도 않았겠지."
"다음엔 같이 춰요! 완전 재밌어요."
"지켜 보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어."
"안 돼요. 같이 해야 즐거운 거죠."
해솔이 그녀의 손을 잡아 끌었다.
거절을 당했어도 아쉬움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진해솔을 보고 있던 여자들이 아쉬움에 탄성을 흘렸다.
"아이씨, 그림의 떡일 줄이야."
"너무한 거 아니야? 혼자 독차지 할 필요까진 없잖아."
"저 여자 어떻게 처리 못 하나?"
물론 임자가 있다고 해서 포기하는 사람만 있는 건 아니었다.
일행을 떨어트리고 남자를 낚아 채려고 드는 여자도 있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 다 너만 봐. 알아?"
진해솔이 추는 춤에 리듬을 맞춰 몸을 살짝살짝 가볍게 흔들던 메이는 주변에서 느껴지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잘 알고 있었다.
저것들이 어디서 이런 남자를 만나 볼 수 있겠는가?
더러운 수작질로부터 진해솔을 지키기 위해, 그녀는 춤을 추면서도 주변 살피기를 소홀이 하지 않았다.
"제 춤이 쩔긴 했죠."
"...걱정이다. 너무 반짝거리잖아."
"제가요?"
"어. 그냥 가만히 두기만 해도 반짝거려서 도둑년들을 끌어 모아. 지금도 널 훔쳐가고 싶어서 안달을 내는 여자들이 주변에 깔려 있거든."
"어...저 위험한 상황이에요?"
"아직 그 정도는 아닌데, 언제까지 저것들이 참을지는 모르겠네."
다른 남자가 없는 것도 아닌데.
어느새 클럽 분위기는 진해솔을 중심으로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럼 지금이라도 나갈까요?"
"아직 다 못 즐겼잖아. 나도 너랑 같이 춤 추고 싶어."
일단 이 정도 경고면 몸을 좀 사릴 거라 생각한 그녀가 나가려고 드는 해솔을 말렸다.
그녀와 함께 춤을 추고 싶은 건 해솔도 마찬가지였는지 시무룩해졌던 표정이 밝아진다.
"그럼 우리 쫌만 더 추고 나가요. 이대로 나가기엔 너무 못 즐겼잖아요."
"그래. 그러자."
이번 곡은 dj가 흥분에 차 있는 클럽 분위기를 가라 앉히려는 것인지 재즈와 힙합을 섞은 곡을 틀었다.
해솔은 그 곡이 마음에 쏙 들었는지 술을 한 모금 마시더니 그녀와 함께 스테이지로 돌아왔다.
이미 그의 춤을 봤기에 여러 사람들이 두 사람을 주목했다.
남들에게 주목을 받는 입장이 되어 본 적 없었던 메이는 해솔이 뭐든 해주길 바라며 그를 바라봤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난 너처럼 춤 못 춰!'
'나만 따라와요. 내가 다 해줄게요.'
그가 싱긋 눈웃음을 친다.
여자라면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는 매력적인 웃음이었고, 그를 이미 사랑하고 있는 사람에게도 치명적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