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97 - #96. 진해솔 (1)
30대 회사 생활에 찌들어 살던 그가 20살 짜리 남자로 변했을 때.
거기다 뜬금없이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이걸 어떻게 적응할지 막막했었다.
그런데 어느새 아이돌의 아이돌이라는 수식어를 얻었을 정도로 크게 성공했고, 그걸로도 부족해서 나름 대가족을 이루는데 성공했다.
'새삼스러운 말이지만, 나 엄청 성공했네.'
솔직히...과분한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과연 이런 복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또 그럴 만한 행동을 했는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내가 이런 복 받은 삶을 누릴 수 있었던 건 그날 그 녀석의 눈에 띄었다는 점 뿐이다.
그 전까지 특출나게 착하게 살아 온 것도 아니었고, 대단한 업적을 쌓은 것도 아니었다.
"너는 왜 날 선택한 거야? 다른 사람도 많았잖아."
언제였더라?
포니에게 물어봤던 적이 있다.
왜 하필 나를 거래 대상으로 삼았는지.
항상 삐딱하게 나오는 녀석이 내 질문에 순순히 대답을 해준 건 아니었다.
제대로 대답을 안 해주고 피하고 딴 얘기를 하거나 말 안 해줄 거라고 입을 꾹 다물어버리거나 그랬던 것이다.
그래도 내가 꾸준히 녀석에게 대답을 바라니, 결국 어쩔 수 없이 내게 이유를 알려주더라.
[뭐, 이 정도로 진행 됐으니 말해줘도 되겠지. 많은 사람들 중에 널 선택한 게 아니야. 정확히 너만 가능했던 거야.]
"나만 가능했다고?"
[응. 이 세계를 회복 시킬 가능성이 높은 놈. 그걸 꽤 비싼 값을 주고 알아냈어. 전 우주를 대상으로 두고 조사한 건데 고작 제대로 발전도 안 된 차원의 인간이 선택 될 줄은 상상도 못했지.]
이건 그러니까 로또에 당첨 되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었다고 한다.
"뭐야, 그럼 내가 계약에 순순히 응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는 거냐?"
[안 되는 게 어딨어? 될 때까지 하는 거지.]
"와~ 그럼 내가 그때 술만 안 취했어도 더 뜯어먹을 수 있었던 거네?"
[...]
내가 알기로 계약 조건이 '아이돌이 되는 것' 인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그때 무조건 아이돌 하기 싫다고 하니까 안 된다고 협박까지 했었지.'
진짜 저놈한테 호구 당한 게 맞았던 거구나 싶어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던지.
"넌 진짜 개자식이야."
[흠흠. 그러게 누가 술 먹으래?]
"일부러 보고 있다가 술 마셨을 때를 노려서 접근한 거면서!"
포니를 볼 때마다 울화통이 터지는 건 본능도 알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내가 저 새끼한테 사기를 당했다는 걸 말이다.
아무튼...
왜 나여야만 했는지는 '선택을 받아서' 라는 걸로 납득을 하긴 했는데, 내 지금의 행동들이 정말 세계에 도움이 되는 건지도 의문이었다.
"나는 그냥 좋아하는 사람 만나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 뿐인데..."
내 존재가 과연 이 세계에 미친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 일까?
여전히 뉴스를 확인해보면 남자가 부족해서 큰일이며, 출산율이 매 해 최저를 기록하고 있었다.
내가 이곳에서 살아가기 시작한 지 벌써 몇 년인가?
10년이 넘는 세월인데도 세계의 변화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포니에게 도대체 내가 뭘 해냈는지 물어봤다.
[그건 네 자식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면 자연스럽게 알겠지.]
"야. 지금 애들이 다 클 때까지 기다리라고?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잖아. 그리고 내 자식들이 크면 변하는 게 맞긴 해?"
[음...아마 시간이 좀 더 걸리긴 하겠지. 우리한테 시간은 인간들이 느끼는 시간이랑 다르니까.]
그들에게 1~2년은 우습다.
적어도 시간 단위가 10 단위로 가야 시간이 좀 흐르긴 했네 라고 말한다.
"결국 변화는 내가 죽고 나서라는 말이네. 확인을 못 하는 거잖아."
[왜 확인을 못해? 네가 고작 그 정도밖에 못 살 리가 없잖아]
"인간이 많이 살아봤자 100살이잖아."
[상점에 보면 수명 늘려주는 약 파니까 그거 사 먹어.]
"싫어. 나 혼자 살아서 뭐해? 다 같이 살면 몰라도."
[우리가 고작 널 그 정도만 쓰려고 고생해서 데려온 줄 알아?]
"그렇게 날 더 부려 먹고 싶으면 너희 쪽에서 알아서 챙겨주든가. 일을 시키려면 회사 쪽에서 더 열심히 하게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는 거잖아."
내 말이 일 리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포니가 입을 다문다.
"네가 생각해도 내 말이 맞는 것 같지?"
[우리가 네 수명을 얼마나 늘려줘야 하는데.]
"어디서 말 장난을 하냐? 내 수명 뿐만 아니라 내 여자들도 해줘야지. 그리고 그건 너희가 알아서 정할 일이지. 나한테 쓴 만큼 뽕 뽑겠다며. 그럼 그만큼 늘려주면 되겠네."
내가 수명을 늘릴 생각이 없는 이유는 가족들 때문이다.
그들이 모두 죽고 이 세상에 나 혼자 남겨졌을 때, 나는 계속 살아가겠다는 마음을 먹지 못할 것이다.
물론 자식들이 남아 있으니 어떻게든 살아가긴 하겠지.
근데 그렇게까지 해서 억지로 수명을 늘려 살고 싶지 않았다.
[넌 여자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고작 그 몇 명에 집착할 생각이야? 같이 살던 여자가 죽으면 새 여자를 만나면 되는 거지!]
"와~ 네가 쓰레기라고 나까지 쓰레기 취급하지 마라. 난 싫으니까."
[그럼 만약 네 여자들 수명을 다 보장해준다고 쳐봐. 앞으로도 넌 계속 새 여자를 만들 텐데, 그 여자들 수명까지 우리가 책임을 지라는 거냐?]
얘가 웬일로 이렇게 똑똑한 말을??
확실히 나도 여기서 더 여자를 만들지 않을 거란 장담을 할 수 없었기에 그 부분에 대한 것은 확실히 정리를 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그럼 지금 있는 가족들만 포함해주는 걸로 해."
[네 자식들도 안 돼.]
"어차피 크면 독립해서 살 텐데, 걔네들까지 신경 써줄 수는 없지. 그 부분 인정해."
자식이 목숨보다 소중한 것은 맞지만, 다 성장한 아이들의 수명까지 챙겨주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걔네들도 자신의 가정을 만들어 살아갈 테지 않은가?
아무리 부모라 해도 수명 문제까지 끼어들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의외로 순순히 양보하네? 더 뽑아 먹으려고 들 줄 알았는데.]
"나도 양심이라는 게 있는데 설마 그럴까. 내 곁에 있는 가족들만 챙겨주면 돼."
[좋아, 대신 병에 걸려서 죽는 거나 사고로 죽는 것까지는 우리도 어쩔 수 없어. 그 부분은 네가 알아서 관리해야 해.]
"좋아."
내가 병에 걸린 걸 방치 할 리 없지 않은가?
문제는 노화였다.
수명의 중요성이 크게 와 닿지 않은 현재.
그때쯤이 되면 지금의 아이돌 신분을 벗고 평범한 일반인이 되어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건 그거대로 재밌겠는 걸?'
그나저나.
얘네는 날 얼마나 부려 먹을 생각인지 모르겠다.
설마 1000살, 2000살까지 부려 먹을 생각은 아니겠지?
10년도 까마득한 나한테는 상상도 되지 않는 숫자다.
어쩐지 불길함이 느껴져 말을 해두기로 했다.
"일단 최대 500년으로 하자. 그 이상은...그때 가서 생각해볼게."
[그 정도까지 살 자신이 있어?]
"몰라, 살아봐야 알겠지."
포니는 순순히 자신과의 거래를 받아들였다.
예전이었으면 윗선에 물어보고 오겠다고 했을 텐데...
쟤도 시간이 지나서 이 정도는 알아서 결정할 짬이 생겼나 보다.
[요새 새로운 여자 만나는 게 영 뜸하던데, 여자 소개 받고 싶으면 얼마든지 말해. 좋은 여자로 소개 시켜 줄 테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포니가 선심 쓴다는 듯 여자를 소개 시켜 주겠다는 말을 했다.
"너한테 여자를? 설마 또 란나씨 같은 경우야?"
란나씨의 아들이 세상을 멸망 시킬 씨앗이었다는 것.
그리고 나와 만나서 그 씨앗의 운명을 제거해냈다는 점에서 이세계의 멸망을 적어도 한 번은 막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운명을 막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지금은 많이 괜찮아졌지만 란나와 헤어질 뻔했던 위기가 분명 있었고, 그걸 이겨내는 게 결코 쉽지 않았다.
'여기서 또 란나씨 같은 경우의 여자를 만나는 건...'
글쎄.
그녀와 만난 걸 후회하지는 않지만 똑같은 일을 경험하라고 하면 사양하고 싶다.
나 같은 경우는 새 여자를 못 만나는 게 아니라 안 만나는 거지 않은가?
"진심으로 사양한다."
[보수가 꽤 달달 할 텐데도?]
"그래도 싫어."
[생각이 달라지면 언제든 얘기해. 가령 코인이 급해진다든가 그런 거 말이야. 난이도도 그 여자처럼 높지 않아.]
먹히지도 않을 날파리의 유혹을 냉정하게 쳐낸다.
"응~ 급하게 코인 쓸 곳 없어."
아쉬워 하는 포니를 돌려보내고.
나는 수명에 관련한 걸 가족들에게 공유해야 할지, 아니면 시간이 지나 필요해졌을 때 말하는 게 나을지 고민했다.
'미리 말하나 뒤에 말하나 달라지는 건 없지 않나?'
더 오래, 노화 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고 하는데 싫어 할 리가 없지 않은가.
특히 내 여자들 중에 나이 대가 좀 높은 여자가 있는데, 그들이 안다면 분명 좋아할 거라 생각했다.
마침 곧 가족들끼리 모두 집에 모이는 날이 있었다.
그때 가족들에게 말해서 반응을 볼 생각에 벌써부터 설렜다.
♧ ♧ ♧
"누나는 몇 살까지 살 것 같아?"
"야. 분위기 침울해지게 갑자기 나이 얘기는 왜 해?"
오랜만에 가족들이 모두 모였다.
해외에 사는 란나씨나 메이 린, 조안나 같은 경우는 집에 올 수 없었지만, 그 외에는 약속을 펑크 내지 않고 집에 모였다.
"와~ 이렇게 모아두니까 새삼 엄청 많네."
복순 누나의 말에 절로 흐뭇한 미소가 나왔다.
"집이 북적거리니까 좋지 않아요?"
꺄르륵!!
갸아아악!!
끄아아아앙!!
이젠 제법 컸다고 그냥 내버려둬도 자기들끼리 잘 노는 애들이 집안을 우다다다 달리면서 놀았다.
집안 곳곳이 그들에겐 최고의 놀이터가 되고 있었다.
"누가 우는 것 같은데?"
"괜찮아. 내버려 둬. 애들끼리 싸우고 울고 그러면서 자라는 거지. 원래 형제자매는 다 싸우면서 크는 거야."
가족 중에서 극성 엄마는 없는 지라 애들끼리 투닥거리는 것에 전전 긍긍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1차로 애들이 집을 정신없게 만들고, 2차로는 오랜만에 모여서 입 터진 여자들끼리의 대화가 귀를 따갑게 만들었다.
"너 왜 스타일이 많이 변했다. 외국물 먹어서 그런가?"
"아무래도 지내는 곳이 다르니까 스타일이 달라질 수밖에 없긴 하더라고."
특히 가족들에게 화제가 된 것은 아현이었다.
해외에서 유학 중인 아현은 평소에 해오던 스타일에서 많이 변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일단 입고 있는 옷 스타일이 대범해졌다.
"볼륨감이 의외로 알차다?"
"흠흠흠."
아연은 가슴골이 드러나는 나시티를 입었고, 귀에는 꽤 화려한 장식의 귀걸이가, 반지도 꽤 멋을 부린 검은색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한 마디로 유학을 하며 아현은 한껏 멋을 부리는 방법을 익히게 된 것이다.
"얌전하고 순진했던 토끼가 어쩌다가 불량 토끼가 된 거야?"
"좀 꾸몄다고 불량해진 거에요?"
"그럼 섹시해졌다고 해줄까?"
"정말 섹시해졌어요?!"
아현이 복순 누나의 말에 또 금방 홀딱 넘어가서 눈을 초롱초롱하게 떴다.
그 모습이 여전히 순진하고 귀엽기 짝이 없어 나와 복순 누나가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풋!"
"크흠..흠..!"
"뭐야앙~ 두 사람! 나 비웃은 거지?"
"아니야. 왜 널 비웃어? 섹시 토끼 하고 싶으면 해. 얼마든지 시켜줄게."
해솔의 말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아현이의 입술이 붕어처럼 삐죽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