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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699화 (838/849)

Chapter 699 - #96. 진해솔 (3)

지금은 분신체의 시간을 메이 린에게 온전히 쏟아 붓고 있지만, 그녀가 회복해서 더 이상 곁에 있어 줄 필요가 없어진다면 분신체를 좀 더 다양한 곳에 사용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땐 해외에 있는 집에다가 분신체를 두고 란나와 메이 린 그리고 조안나와 아현을 만나는데 쓸 생각이었다.

아무래도 란나는 내 아이를 낳은 상태였기 때문에 곁에서 세심하게 살펴줄 필요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아직까지 내 정체에 대해 아는 바가 없는 유일한 사람인지라 더 마음이 쓰이기도 했다.

아무튼...분신체의 사용처를 그렇게 쓴다 치면, 본체는 한결 가벼워진 상태로 생활을 할 수가 있어진다.

'1:1 데이트, 마음만 먹으면 불가능한 게 아니거든.'

솔직히 나도 사람인지라 '가족'이 된 그들과 시간을 따로 내서 데이트 하는 걸 자주 하진 못했다.

귀찮은 것도 귀찮은 거지만, 그동안은 딱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어쩌다가 단 둘이 시간을 보낸다?

만나자마자 침대로 골인한다.

정신 없이 섹스 하다 보면?

날이 꼴딱 세는 거다.

그나마 같이 밖에 나가 놀 때는 없냐고?

항상 옆구리에 금붕어 똥처럼 애들을 달고 가야 한다.

대부분 함께 밖으로 나가는 이유가 애들이 밖에서 놀자고 해서, 혹은 밖에서 밥 먹이러 가기 위해서가 이유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걸 데이트로 쳤던 것 같네. 이제 보니 나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거고.'

미안하다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불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분신체가 내 부담을 덜어줄 테니, 더 자주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것이다.

"가족 회의 시기는 그럼 그렇게 결정하고, 하나 더 말해줄 게 있어."

"말해."

"가장 노릇 제대로 하는데?"

한 가정을 이끌어 나가는 사람을 뜻하는 '가장'.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쩌다가 수명 얘기가 나왔거든."

"수명? 목숨 얘기하는 거야?"

"응. 아마 신애는 바로 이해하기 힘들 거야. 아직 내 능력에 대해 자세히 모르니까. 나중에 따로 더 설명해줄 테니까 지금은 그러려니 하고 들어줘."

"네, 오빠."

가족에 합류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애는 아직 내 능력에 대한 지식이 많이 부족했다.

그냥 어떻게든 납득을 해보려고 애쓰기에 내가 초능력을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라고 했다.

그걸로 어떻게든 납득을 해놓은 상황이긴 한데...

'직접 두 눈으로 경험해보기 전까진 실감하기 어렵지.'

이쪽 세계에서 내 능력을 이해 시키는 건 직접 경험해보는 게 최고였다.

아직 신애에겐 시간이 필요했다.

아마 오늘 수명이니 뭐니 해도 ??? 이란 생각밖에 안 들 터.

그녀에게 양해를 구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얘기를 시작했다.

"그쪽에서 수명 얘기를 하더라고. 보통 100년이 수명이잖아. 근데 난 그것보다 훨씬 더 오래 살아야 할 것 같아."

"그...널 여기에 보낸 이유 때문에?"

자세히는 얘기해주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 배경은 설명해준 상태였다.

"응. 그거 때문에."

"100년 동안 해도 부족하대?"

"그렇다고 하네."

"그럼 얼마나 늘어나는데?"

"글쎄, 정확히 얼마나 부려 먹을 생각인진 모르겠는데, 적어도 백단위이지 않을까 싶어."

"!!!"

백단위.

적어도 한 번 수명을 늘린다면 200년 동안 살아야 한다는 뜻이 된다.

가족들의 표정이 복잡해진다.

누가 안 그럴 수 있겠는가?

남편이 자신이 죽어도 더 오랫동안 살아가야 한다는데.

"수명이 늘어난다는 게 노화하지 않는다는 뜻인 거지?"

"그렇지."

"늙지 않는다라..."

"그렇게 오래 살면 사람들한테 어떻게 설명하려고? 이상하게 생각 할 거 아냐."

"최대한 동안이라고 우기다가, 도저히 그럴 수 없는 나이가 되면 조용히 신변 정리하고 얼굴을 바꿔야겠지."

"아! 그런 방법이 있구나."

"응. 그때쯤엔 애들도 다 컸을 테니까, 지내는 곳을 바꿔도 괜찮지 않겠어?"

해솔의 말에 가족들 모두 긍정했다.

"근데 그 얼굴을 다른 얼굴로 바꾼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아까운데?"

내가 이 얼굴로 먹고 사는데 아쉽지 않을 리가.

"근데 이건 누나들도 다 해야 돼."

"응??"

"왜 수명을 나 혼자만 늘릴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당연히 다 같이 살아야지. 나 혼자만 내버려두면 무슨 재미로 살아, 내가."

좀 더 깊은 얘기를 나누기 전, 수명이 늘어나는 게 나 혼자만 해당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우리도??"

"우리까지??"

아니나 다를까 가족들이 상상도 못해본 말이라는 듯 깜짝 놀란다.

"당연하지. 누나들 없으면 나도 살기 싫어. 내가 왜 그렇게까지 해서 살아야 하는데? 절대 싫어."

해솔의 말에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리는 가족들.

그래도 내심 기뻤는지 그의 허벅지 위에 손이 턱하니 올라왔다.

그 손의 주인공은 주아 누나였다.

"기특하네~ 우리 없으면 못 산다는 말을 하고."

"내가 빡빡 우겼어. 지금 가족들 죽으면 나도 우울증 걸려서 죽어버릴 거라고. 그랬더니 가족들 수명까지 책임져주겠다고 하더라고."

그걸로 이 세계는 아직 내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와~ 우리 남편 능력 있네."

"그럼 우리 다 200년 넘게 살 수 있는 거야?"

"응."

"기분이 좀 묘하네."

"200년...너무 길지 않나?"

"200년이면 완전 꼬부랑 할머니잖아."

"에이, 설마 할머니로 200년을 살라고 하겠어? 젊은 몸으로 살아야지."

"잠깐, 그럼 애들은?"

그때, 복순 누나가 나한테 꽤 예리한 질문을 던졌다.

"어?"

"애들은. 애들도 그렇게 오래 살 수 있어?"

"아니, 우리 애들은 빼야지."

"왜?"

"애들은 애들 삶이 있잖아. 애초에 난 애들이 어느 정도 크면 건강하게 크는 거 외에는 아이템 사용은 안 할 생각이어. 애들까지 수명을 무작정 늘려 놓으면 어디까지 선을 그어야 할지 알 수가 없잖아."

너무 많은 사람의 수명을 건드는 걸 그쪽에서 좋아 할 리 없었다.

애들 수명이 200년이 되면, 그 아이가 외롭지 않도록 며느리들도 수명을 늘려줘야 할 것이다.

그럼 또 그 며느리와 자식들이 자기 손주 손녀들의 수명도 늘려주길 바라지 않겠는가?

"애초에 그럴 수 있는 코인도 없어. 그쪽에서 받아줄 수 없다고 했고."

그러니 지금 내 여자들만 수명의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걸로 딜을 건 것이었다.

"...애들이 나중에 자기도 오래 살게 해 달라고 하면?"

"그래도 수명 자체를 늘리는 건 안 해줄 것 같아. 병에 걸리면 그걸 치료해줄 수는 있어도."

그게 내가 정한 선이었다.

이런 내 단호한 대답이 아이를 키우고 있는 주아 누나, 복순 누나, 연주 누님, 정화씨가 나한테 서운한 감정을 느낀다 해도 어쩔 수 없었다.

"네가 확실하게 기준을 정해 놓은 것 같아서 마음이 놓이네."

그때, 묘한 분위기 속에서 연주 누님이 입을 열었다.

"제 결정이 서운하진 않으세요?"

"전혀 서운하지 않아. 평생 병에 아프지 않을 수 있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축복 받은 거야. 거기서 더 욕심을 내는 건 염치가 없는 거다."

찔리는 게 있는지 복순 누나가 슬쩍 고개를 돌린다.

"나는 네 덕분에 얼마나 많은 편의를 누리고 살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어. 그 이상을 바라는 게 염치 없는 일이라는 것도 알고."

가족들은 꽤 많은 부분에서 내가 제공하는 아이템의 편의를 누리고 있었다.

그게 너무 익숙해지다 보니 새삼스럽게 감사 인사를 하지 않는 것 뿐이다.

"네가 준 것들을 복용하다 보면 단순히 말로 회춘하는 게 아니라 진짜 노화가 멈추고 몸이 젊어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어. 아마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을 가질 수 있다면 한 나라 대통령이라고 해도 무릎을 꿇고 부탁 할 거야."

젊음을 되돌려주는 능력.

무릎을 꿇지 않을 노인네들이 어디 있겠는가?

한 살이라도 더 살고 싶고, 병든 몸을 되돌리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가득할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불공평하면서도 공평해서 한 인간에게 주어진 수명은 정해져 있었다.

천 만금을 줘도 단 1분의 수명조차 늘리지 못하는 것이다.

"병치레 없이 사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 널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지병을 달고 살았다. 근데 지금은 아픈 곳을 찾기가 힘들 만큼 건강하지."

"맞아, 나이가 들면 들수록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 건지 뼈 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어."

연주 누님의 말에 정화씨가 맞장구를 쳤다.

30대만 들어서도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느끼게 된다.

그래서 그때부터 영양제의 도움을 받아 몸을 관리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니 네가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그 정도면 차고 넘치는 게 맞아. 뭔가 더 해주고 싶다고? 절대 그러지 마. 괜히 애들 인생만 망가지는 거다."

"나도 해솔이 네 행동이 맞다고 생각해."

정화씨가 다시 한 번 연주 누님의 말에 힘을 실어주었다.

우리 가족들 중에 연장자들이 모두 내 의견에 동의를 해주다 보니 다른 가족들도 불만을 표출하기가 어려워질 것이다.

복순 누나도 두 사람의 말에 설득을 당한 듯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제 편 들어주셔서."

"너라고 애들이 소중하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니잖아."

"소중하죠."

그쪽이 바라는 대로 수명을 늘린다면, 나는 무조건 아이를 먼저 보내는 경험을 해야 할 것이다.

그걸 모르지 않은 상태로 결정을 내린 거였다.

"거봐. 해솔이가 아이들한테 얼마나 잘 하는데. 그런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겠니? 그러니 이 문제로 해솔이를 괴롭히는 사람은 없었으면 좋겠어. 거기다 아직 아이들이 부탁 하지도 않로괴롭게 할 것까진 없잖니."

정화씨의 말에 가족들 모두 숙연해졌다.

감정이 가라앉은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미래에 아이들이 지금과 같은 부탁을 해온다면, 나는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아이의 숨이 꼴깍꼴깍 넘어가는데도 수명이 다 해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일 땐 외면해야 하는 거다.

'못 버티지. 그걸 어떻게 참아.'

차라리 안 보면 몰라도...

눈 앞에서 그런 꼴을 보진 못할 것 같다.

역시 어느 정도 아이들이 자라면 독립을 시켜 생활하는 공간에 거리를 두는 게 맞을 것 같다.

너무 먼 미래를 계속 생각하려니 점점 기분이 가라앉는 것 같아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아무튼 다들 괜찮은 거지?"

"솔직히 지금은 물어봐도 괜찮은지 안 괜찮은지 모르겠어."

"맞아, 아직 현실적으로 와 닿지가 않아."

"나는 100년도 지긋지긋하게 살았다 싶을 것 같은데."

"100년이 아니라 200년을 살라고 하니까 당황스럽긴 하지."

"약간 만화 얘기 하는 것 같지 않아?"

"푸훗, 맞아. 그런 느낌 좀 있어."

사실 200년이 아니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걸 말하면 더 혼란스러워 할 것 같아서 200년으로 줄인 건데, 그러길 잘했다 싶다.

원래 처음이 어렵지 한 번 수명을 늘려보면 다음은 더 쉽게 마음을 먹을 것이다.

"그나저나 신애는 하나도 못 알아들었지?"

"저요? 어...네. 하나도 못 알아 들었어요."

"해솔이 네가 책임지고 알려줘. 서운하겠다."

정화씨가 세심하게 가만히 눈알만 굴리고 있는 신애까지 야무지게 챙겼다.

"네. 그래야죠."

뭔가 심상치 않은 말을 들은 것 같은데, 정작 무슨 의미인지 하나도 이해가 안 되는 신애는 미간을 찌푸리며 입술을 붕어처럼 삐죽 내밀었다.

자기만 혼자서 겉돌고 있는 게 기분 좋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달래주고 대화의 화제가 자연스럽게 바뀌면서 다른 방으로 신애만 따로 불러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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