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700 - #96. 진해솔 (4)
"오늘 하루 종일 정신없지? 불편한 곳은 없고?"
신애가 가족들과 처음 만나는 자리는 아니었지만, 이렇게 전부 모이는 걸 보는 건 처음이었다.
처음 만나는 인원도 있는 지라 마냥 편한 자리는 아니었을 거다.
그런데 거기에 더해서 자긴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하고 있으니 소외감이 들었을 게 분명한 상황.
나는 대화를 나누기 전, 신애의 마음부터 다독여주었다.
"아뇨, 다들 잘 해주셔서 불편하지 않아요."
말은 저렇게 해도 많이 당황스럽긴 했을 거다.
단톡방에서 보기 힘든 사람들, 그러니까 예를 들어 연주 누님과는 놀라서 눈도 못 마주치더라.
"다들 개성이 강해서 적응하기 쉽지는 않을 거야."
"정말 괜찮아요. 아현 언니랑은 엄청 많이 친해졌고, 정화 언니도 엄청 잘 챙겨주세요."
정화씨는 나도 챙겨주는 걸 봤는데, 아예 쌍둥이 챙기듯이 그녀를 챙기더라.
우리 집에 정화씨가 없었으면 지금처럼 화목한 분위기는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널 따로 부른 건 방금 대화 내용을 따로 설명해주려고 그런 거야."
"네에..."
"무슨 말인지 대충은 알아 들었어?"
"듣기는 했는데 솔직히 하나도 모르겠어요."
"저번에 내가 한 번 얘기했던 적이 있을 거야. 너한테 선물해줬던 물건들 말이야."
"네. 기억나요."
아마 물건들을 쓰면서 점점 내 능력에 대해 알아갔을 것이다.
내가 준 물건들이 보여주는 효과가 다른 일반적인 물건들에 비해 압도적인 차이를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오빠 초능력으로 가져 온 물건들이라고 했었잖아요."
"응, 맞아. 방금 했던 얘기도 그거에 관련 된 이야기였어."
"네에."
거기까지는 이해를 하고 있었는지 얌전하게 대답을 한다.
"그리고 오늘 했던 얘기는, 아직 네가 받아들이기에 어려울 만한 얘기일 거야.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거부감이 들 수도 있고."
오늘 가족들도 티를 내진 않았지만 거부감을 보인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아직 내 능력에 익숙하지 않은 신애가 얘기를 듣고 바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긴 어려울 것이다.
수명에 관련 된 자세한 얘기는 신애에게 아직 들려주기 이른 일이었다.
"오빠, 저 웹툰 작가에요. 현실에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라고요. 판타지 웹툰은 또 얼마나 많이 봤게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말씀해주세요. 제가 생각보다 멘탈이 튼튼해요."
자꾸만 설명 대신 머뭇거리고만 있으니 신애가 답답했는지 재촉을 해왔다.
확실히 웹툰을 통해 다양한 비현실적 이야기를 접해왔으니 이해하는 것 자체는 빠를 수 있겠구나 싶었다.
"제가 얘기를 들으면서 어렴풋이 이해한 게 있는데, 그...수명 얘기를 하시는 것 같았거든요. 오빠가 200살까지 살 건데, 언니들도 그렇게 만들 거라고요."
"정확히 들었네. 맞아. 그리고 그 사람들 뿐만 아니라 너도 거기에 포함 되어 있어."
신애는 자신도 포함이라는 소리에 살짝 놀라면서도 이미 눈치를 채고 있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네에..."
"수명이 늘어나는 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너무 무겁게 생각하진 말고 편하게 생각해봐."
"음...뭔가 제대로 된 답변을 드리고 싶은데...아직 잘 모르겠어요."
"그럴 수 있지. 다른 가족들도 마찬가지였어. 지금 당장은 선택 못하겠다고 말이야."
"아...헤헤. 다행이에요. 저도 그렇거든요. 지금 살아온 것보다 몇 배는 더 살아야 한다는 건데..."
그때까지 살면서 뭘 하고 살지도 고민이 되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 부분은 개인적으로 계획을 해둔 게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 계획을 모두 말해주면 가족들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느낌이 될 것 같아서 입을 다물고 있는 중이었다.
"근데 오빠가 그렇게 살겠다고 하시면 따라 가고 싶기는 해요. 저 혼자 떨어지는 건 정말 싫거든요."
"좋네. 당장 너한테 살래 말래 하는 게 아니니까 딱 그 정도만 생각해두고 있으면 될 것 같아. 수명에 대한 선택권은 본인한테 있는 거니까.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말고 가볍게 말이야."
이런 문제는 나이가 좀 든 사람들이어야 진지한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수명 문제를 선택하기까지, 아직 신애에게는 몇 십 년의 세월이 더 필요했다.
"나중에 선택해야 할 순간이 온다면, 아마 지금보단 훨씬 선택하기 쉬워졌을 때일 거고."
나이가 들어보면 알게 될 거다.
200년이라는 세월이 너무 크게 보여서 머뭇거리게 되는 거지, 생각보다 시간은 꽤 빠르게 흘러가 버린다.
붙잡고 싶어도 붙잡을 수 없는 물결이지 않은가?
그러니 아마 나이가 들면 대부분 이 문제에 있어서 긍정적인 대답을 내놓을 것이다.
괜히 진시황이 더 살고 싶다고 그 난리를 핀 게 아니 듯 말이다.
"근데 진짜 200살 넘게 살고 싶으면 그렇게 살 수 있는 거에요?"
아직 우리 가족에 적응하지 못한 상태인지라, 신애도 당장 선택 할 필요없다는 말에 안도하고 있었다.
"응."
"되게 심각하게 얘기하셔서 엄청 열심히 듣긴 했거든요. 근데 솔직히 만화 얘기 같았어요. 막 꼬부랑 할머니 모습으로 사는 건 아니죠?"
"당연하지. 아마 신애는 지금보다 조금 더 성숙해진 몸 상태에서 고정 되지 않을까?"
"우와~ 그게 진짜 되는 거구나. 이건 초능력으로 설명이 안 되는 건데...혹시 오빠, 신...인 건 아니죠? 막 유희한다고 내려와서 평범한 척 사는 뭐 그런 거요."
노화도 막고, 수명도 늘려주고.
남들은 쓰지 못하는, 엄청나게 효과가 좋은 물건들을 어디서 불쑥불쑥 가져 오고.
신애가 신이라고 오해를 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들이긴 했다.
하지만 나는 신이 아니다.
정말 신이었으면 후회 할 일을 만들지 않았겠지.
"설마. 내가 신이었으면 이렇게 안 살지."
"???"
신이었으면 사기 계약을 한 포니한테 으름장을 놓았을 것이고, 란나씨가 유산했던 내 아이를 다시 되살렸을 것이다.
란나씨가 느낀 고통에 비하면 한참 부족하겠지만, 아이의 아버지였던 나도 적잖이 아이의 부재를 슬퍼했었다.
'지금은 아이를 낳고 많이 회복 돼서 다행이지.'
아이도 아이지만, 그 아이를 유산한 란나씨가 회복 되기까지는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실 지금도 다 회복했다고는 못한다.
아기를 낳고 정신이 없어서 다소 예전보다 상처를 자주 들여보지 못할 뿐인 거지.
'어떻게 그 상처가 나을 수 있겠어.'
아마 삶에 여유가 생길 때마다 불쑥불쑥 잃어버린 아이에 대한 흔적이 튀어나올 것이다.
잠깐 삼천포로 생각이 튀었는데, 신애가 자기 목소리로 내 정신을 되돌려놨다.
"오빠가 뭐 어때서 그런 말을 해요? 인기 많지, 돈 많지, 잘 생겼지!"
"하하, 그러게. 남들 보기에 부족한 게 없어 보이긴 하지."
남들 보기에 부럽기 그지없는 인생을 사는 사람도, 나름의 고민은 있을 수밖에 없다.
"근데 내 인생에서 후회 되는 일이 아예 없는 건 아니거든. 만약 내가 신이었으면 후회 되는 순간을 지우려고 했을 거야."
근데 그럴 수가 없으니까...?
아니.
'정말 불가능한가?'
불가능?
상점에서 아이템을 구경하면서 생각했던 게 있다.
코인만 많으면 정말 신처럼 살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
자본주의 사회라는 미국?
차원 상점이 더하다.
적어도 미국은 정치가 경제에 영향을 미치지만, 차원 상점에서는 오로지 코인이 정답이고, 코인이 진리였다.
코인만 있다면 누리고 싶은 모든 것을 누릴 수가 있고, 자신이 무슨 짓을 해도 코인으로 책임을 질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그것도 되돌릴 수 있지 않나?"
차원 상점의 유일한 단점은 상품이 워낙 많다는 거다.
너무 많아서 내가 관심을 갖고 검색어에 추가를 해놓지 않으면 그 외의 상품을 접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수시로 상점을 둘러보며 나중에 필요할 것 같아 보이는 걸 표시해둬야 했다.
"네??"
"어? 아니, 잠깐 다른 생각 좀 했어. 미안."
"아니에요. 중요한 생각 하신 것 같았어요."
"응. 덕분에 깨달은 게 생겨서. 고마워. 네가 힌트를 줘서 생각할 수 있었던 거야."
"뭔지는 모르지만, 오빠 표정이 좋아져서 다행이에요."
신애가 아니었다면 계속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 사실이기에 해솔은 고마움에 그녀의 볼에 쪽 하고 뽀뽀를 해줬다.
쪽!
"앗!"
"별 건 아닌데, 감사의 표시랄까?"
"사, 사람들도 많은데...헤헤."
고작 뽀뽀임에도 불구하고 신애가 수줍어하며 기뻐한다.
가족이 전부 다 있는 이곳에서 섹스를 하는 건 아무리 나라도 불가능해서, 나중에 찐하게 안아주는 걸 기억해두기로 했다.
"오빠, 말씀 다 하신 거죠?"
"응."
"그럼 저 나가볼게요!"
"나랑 좀 더 있지 않고?"
"언니들이랑 있어야죠. 헤헤."
이런 날 오빠를 너무 독차지 하고 있으면 미움 받는다며, 신애가 먼저 방을 나갔다.
혼자 남은 나는 잘 됐다 싶어 상점을 열었다.
그리고 과거로 돌아가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아이템이 있는지 확인해봤다.
그런데...
"왜 없지?"
시간을 되돌리는 아이템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나마 마지노선이 60초 정도인 듯 그 이상으로 과거를 돌릴 수 있는 작품이 없었다.
검색을 통해 좀 더 구체적으로 조건을 달아봤다.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을 정할 수 있는 상품으로.
그러자 놀랍게도.
[검색 금지어에 해당 됩니다.]
"이런 게 있었어?"
상점을 꽤 오랫동안 이용했음에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검색 결과가 나왔다.
아무래도 과거로 돌아간다는 것 자체가 금지 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럼 안 되는 건가?'
겨우 아이를 되살릴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이 생겼는데..
그 희망이 실시간으로 산산조각 나면서 몸에 힘이 쭉 빠져 나갔다.
가벼운 접촉 사고가 나기 전으로 돌아가 란나씨를 구하고, 또 아이를 보호 할 수 있는 각종 아이템을 둘러준 후 미래로 돌아온다면...미래가 어떻게 바뀔까?
란나씨와 헤어지려 했던 과거가 사라질 테고,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행복한 결혼 생활을 누리고 있을 지도 몰랐다.
상처가 사라진 자리에는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꽉 차올랐겠지.
'왜 다른 건 다 되는데 과거로 돌아가는 것만 안 되는 거야?'
믿었던 상점이 배신을 하자 포니를 당장 불러야 하나 고민이 됐다.
일단 가족들이 많으니 이곳에서 포니를 부르는 건 좋지 않을 것 같았다.
적어도 가족들에게 아이템 이상의 비현실을 목격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이쪽에 관심을 뒀다가 무슨 일로 이용 당할 지 모르니까.'
때문에 나는 바깥에서 나를 찾는 소리를 들을 때까지 아쉬움에 계속 상점을 뒤적거렸다.
검색하지 못하는 거지, 그런 상품을 어딘가에선 팔고 있을 수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내가 계속 혼자 있는 걸 두고 볼 가족들이 아니었기에 모임이 끝날 때까지 상점을 킬 시간이 나지 않았다.
가족 모임은 아이들이 모두 방에서 잠이 들었을 때도 계속 되었다.
그땐 다들 적당히 술을 한 잔씩 걸친 상태여서 오히려 텐션이 더 높아졌다.
각자 마시고 싶을 때까지 마시고 알아서 방에 들어가 잠이 들었고, 나와 연주 누님은 끝까지 살아남아 대작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