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702화 (692/849)

Chapter 702 - #96. 진해솔 (6)

연주 누님과 둘 만의 술자리는 생각 이상으로 내게 유용했다.

전혀 몰랐던 내 행동의 잘못 됨도 깨달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가족들이 나와 함께 더 많은 삶을 살아가는데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을 거라는 확신도 얻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뭐해?"

숙취를 호소하며 일어난 가족들이 콩나물 국밥을 통해 체력을 회복하는 사이.

나는 어젯밤 술자리에서 있었던 일을 다시 떠올리며 앞으로의 일을 정리했다.

'포니랑 거래하기 전에 상점을 최대한 뒤져보자고.'

사실 물건이 있어도 그걸 구매할 만큼의 코인은 없는 수준이었다.

분신술을 배우는데 대량의 코인을 지불해야 했고, 그 코인이 회복 되기엔 아직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미션이나 섹스로 코인을 버는 것 외에 더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예전부터 코인을 벌기 위한 방법이 좀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하지만 코인을 최대한 아껴 쓰고, 꾸준히 미션을 해옴과 동시에 매일매일 섹스를 빠트리지 않고 하면서 아쉬움을 달래곤 했다.

포니에게 거래를 요청하면 그놈은 내게서 큼지막하게 살점을 뜯어가는 녀석이지 않은가?

될 수 있으면 아쉬운 소리 하지 않을 필요가 있었다.

'코인 노예가 될 순 없으니까.'

코인이 아쉬워지니 계속 쳐다보게 되는 건 미션창 뿐이었다.

평소에 코인은 나와 가족들의 편의를 위해 벌어 온 것이기에 아무리 많은 코인을 주는 미션이어도 다른 이성을 만나는 미션은 지양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분명한 목표가 생긴 상태였다.

과거로 돌아가서 그날의 사고를 막는 것.

그러기 위해 코인을 벌어야 하다 보니 평소라면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미션들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미션창이 내 마음을 읽은 걸까? 아니면 평소에는 무시하고 있던 건데, 마음이 흔들려서 자꾸 눈에 띄는 걸까.'

오늘 미션창을 확인하니 유난히 어떤 여성을 대상으로 한 원나잇 미션이 많았다.

다른 차원으로 가서 여자를 임신 시키라는 미션은 도대체 왜 있는 건지 이해 할 수 없었는데...

'지금 난 분신술을 갖고 있잖아. 얼마든지 여기에 두고, 미션을 하러 갈 시간이 생긴다고.'

역시 큰 돈 주고 분신술을 구매한 건 잘한 선택인 것 같다.

분신술을 구매해서 한 개체를 사용하고 있긴 하지만, 얼마든지 소정의 추가금을 내면 한 개체를 더 사용할 수 있었다.

운용하는 개체수가 많아지면 그만큼 지불해야 하는 코인 수가 많아지는데, 한 개체를 더 늘리는 것 정도는 큰 부담이 없는 가격이었다.

그렇기에 미션창을 보면서 자꾸만 유혹을 느끼게 되는 거다.

'하지 않을 이유, 있을까?'

일단 만나야 하는 사람이 다른 차원에 있다는 점에서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이 조금은 덜어진다.

적어도 그녀들은 내가 다른 차원에서 여자들을 만나고 다닌다는 사실을 절대 모를 것이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분신체로 섹스를 했을 때, 여자들을 임신 시킬 수 없다는 점 때문에 본체로 직접 차원을 넘어가야 한다는 점이었는데...

'위험 할 수도 있으려나?'

저쪽 차원은 내가 살고 있는 차원과 달리 이능력을 사용하는 세계였다.

나도 이쪽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진 않지만, 유모님을 통해 들은 몇 가지 사실에 의하면 이능력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쓰지도 못하는 차원은 극히 드물다고 한다.

이 세계가 좀 더 오랫동안 살아가며 나이를 먹게 되면, 자연적으로 '마나'라는 게 생기게 되는데 그때가 되면 생명체들이 판타지에서나 나올 법한 이능력을 쓸 수 있게 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내가 살던, 지금 살고 있는 이 별들이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애들이라는 뜻이지.'

지구의 나이를 추정해봤을 때 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46억 년 전에 태어났을 거라고 한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세계도 50억 년을 넘지 않았다고 추정 되는데, 마나라는 신비한 물질이 생겨나려면 이보다도 훨씬 더 오랫동안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차원을 이동하게 되는 곳은 50억 년을 뛰어 넘는 역사를 가진 행성이었다.

'그런 곳에 왜 내가 씨를 뿌려야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지만...'

어찌됐든 이 많은 코인을 미션으로 괜히 걸었을 리 없으니 그만한 값어치를 하는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도 무작정 넘어가기 전에 포니를 불러서 주의 사항이라도 듣고 가야겠다.'

가족 모임의 여운이 꽤 남아서 일이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 대부분이 떠나지 않고 집에서 휴식을 취했다.

해솔은 어제부터 참았던 걸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 밖에 나갈 준비를 했다.

"어디 가려고?"

당연하지만 그가 딱히 다른 스케줄이 없다는 걸 알고 있는 가족들이 행선지를 물어왔다.

"그쪽이랑 일이 좀 있어서."

"아...그래? 알았어. 오래 걸려?"

그쪽이 어디를 뜻하는 건지 모르지 않은 가족이 다소 어색한 목소리로 물었다.

"늦을 수도 있고, 금방 올 수도 있고. 잘 모르겠네."

"알았어. 그럼 늦을 것 같으면 문자 해줘."

"그럴게."

가족들의 배웅을 받으며 해솔은 주변의 방해를 받지 않을 수 있는 근처 별장으로 몸을 이동 시켰다.

특정한 요일에 청소를 하러 오는 사람 외에 별장은 아무도 방문하지 않는 빈공간이었다.

"포니."

해솔이 포니의 이름을 부르고 몇 분 후.

포니가 슬그머니 허공에서 나타났다.

[무슨 일이냐.]

심드렁하게 나타난 포니에게 할 말이 많았던 해솔은 곧장 본론에 들어갔다.

"코인 때문에 미션을 좀 깨보려고 하는데 말이야."

[코인 때문에 미션을? 무슨 미션.]

"다른 차원으로 가서 특정 여성이랑 섹스하는 거."

[네가?]

"그래. 내가."

[무슨 바람이 들었기에?? 절대 안 한다면서.]

"사정이 생겼거든."

과거로 돌아가서 내 아이를 되살리는 것.

부모가 돼서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못 할 수는 없었다.

"아! 그리고 나 상점을 쓰다가 금지 된 검색어라는 걸 봤거든. 이거 뭐냐?"

[네가 그걸 봤다고? 도대체 뭘 검색했는데?]

포니가 갑자기 내 얼굴 앞으로 달려들었다.

본능적으로 얼굴 가까이에 온 날파리는 쳐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지라 휙 하고 손등으로 포니를 쳐내버렸다.

[꽥!]

"어이구, 쏘리. 나도 모르게 그만."

[으윽! 이게 뭐하는 짓이야!!]

"다쳤냐?"

[내가 고작 네놈한테 당할 줄 알아? 끄떡도 없다고!]

"칫."

[(ʘ言ʘ╬) 너 방금 칫이라고 했냐?]

말풍선에 한가득 험악한 이모티콘을 띄워봤자 전혀 무섭지가 않다.

녀석의 협박을 대수롭지 않게 무시하고 넘겨버리고 다시 본론을 꺼냈다.

"내가 검색한 거 말이야. 검색어가 과거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는 거였어."

[과거? 풋! 그딴 걸 왜 검색한 거야? 애초에 네가 과거로 돌아갈 이유가 뭔데?]

"왜 없냐? 나는 뭐 후회 없이 산 줄 알아?"

[택도 없는 소리 하지 마. 애초에 시간선을 엉망으로 만드는 아이템은 상점에 올라갈 수도 없어.]

"역시, 그래서 검색이 안 됐던 거구나."

역시나 과거로 돌아가는 아이템은 상점에 올라 갈 수 없는 아이템.

하지만 나는 상점에 올라오지 않았다고 해서 아예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아이템일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럼 네가 구해다줘."

[뭔 개소리야. 내가 왜?]

"너 나랑 거래할 게 꽤 있지 않아?"

내가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서 미션을 할 만큼 코인이 급했던 적이 있는가?

"이거 쉽게 오는 기회 아니다."

[...도대체 과거로 가서 뭘 바꾸려고 그러는 건데?]

포니도 내 제안이 슬슬 솔깃해지는지 슬쩍 협상의 가능성을 열어두기 시작했다.

역시 내가 짐작했던 바대로, 상점에 올라 올 수 없는 아이템일 뿐이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닌 것이다.

"안 알려줄 건데."

[그럼 나도 협조 못하지!]

"그거, 말하면 협조 해준다는 뜻?"

[일단 말해주면 생각을 해보겠다는 거지.]

포니는 어떻게든 나한테 페이스를 넘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코인을 더 벌고 싶어 하는 것 자체는 굉장히 좋아하는 눈치였다.

"단순히 생각만 하겠다는 말에 내 약점을 너한테 먼저 말하라고?"

[그게 왜 약점이야?]

"내가 바라는 걸 알면 넌 그걸 이용해서 뜯어먹으려고 들 거잖아. 내가 원하는 걸 들어주겠다면서 잔뜩 무리한 걸 시키겠지."

그래서 순순히 내가 바라는 게 뭔지 말해주기 싫은 거다.

우리 둘 다 만나서 대화를 나눈 게 하루 이틀이 아니다 보니 서로가 어떻게 나올지 뻔히 다 보였다.

"네가 도와주지 않으면 나도 따로 방법이 있어. 그땐 네가 끼어들 자리가 없을 테니 수습하기 어렵지 않을까?"

내가 잘못 되면 포니도 아주 곤란해질 거다.

포니는 나를 보호 할 의무가 있었고, 나는 녀석을 곤란하게 만들 방법을 아주 많이 알고 있었다.

지금 내게 협조를 해주지 않으면 결국 곤란해지는 건 본인이라는 걸 알고 있으라는 의미였다.

내 협박이 꽤 잘 먹혔는지 포니가 포기한 듯 말풍선을 띄웠다.

[좋아. 최선을 다 해 협조해주기로 약속하지. 그러니 어서 말해. 무슨 사고를 치려고 이러는 거야?]

사실 전혀 짐작도 못하는 포니를 보면 속에서 울화가 드글드글 끓어 오른다.

그 일을 정말 별 거 아닌 취급을 하고 있다는 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는 이가 갈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 하며 말했다.

"내 잃어버린 아이."

[뭐?]

"잃어버린 아이를 되찾을 거야."

[설마 걔? 유산 된 그 아이를?]

"그래."

[그게 언제적 일인데, 아직도 생각하고 있는 거야?]

"...넌 부모가 아니니까 이해 할 수 없는 거야.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 절대 못 잊지."

세상에 자식을 버리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물론 뉘 집 개새끼는 그럴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내 아이를 쉽게 잊고 버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멍청하기는...! 넌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새 아이를 가질 수 있잖아. 걔를 살리는 데 쓸 코인으로...]

"닥쳐라. 네 날개 싹 다 뽑아서 전시하기 전에."

으드득-

이를 안 갈려고 노력해도 저 새끼가 하는 소릴 보고 있으면 참을 수가 없어진다.

"새 아이를 가진다고 잃어버린 아이가 돌아오는 게 아니잖아. 내가 되찾고 싶은 건 그 아이야."

다른 아이를 갖고 싶은 게 아니다.

그 아이를 되돌리고 싶은 거다.

내 단호한 태도에 난감해진 포니는 난색을 표했다.

[깔끔하게 정리 된 부분을 굳이 건드려서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 있겠어?]

"있지. 아주 많지. 없을 리가."

긁어 부스럼이 된다 해도 그 아이를 되찾고 싶다는 게 내 솔직한 마음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