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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703화 (693/849)

Chapter 703 - #96. 진해솔 (7)

"그래서 나한테 할 말 없어? 이유를 알려주면 최선을 다 해 협조해주겠다고 했잖아."

[Σ(‘◉⌓◉’)]

"빨리 협조 하시지?"

점점 삐딱해져 가는 태도에 포니가 땀을 뻘뻘 흘리는 말풍선 이모티콘을 띄운다.

[(゚ロ、゚;;;) 으음...그건 음....]

"이대로 아무 말 없이 튀면 진짜 너 각오 단단히 하는 게 좋을 거야. 나 한다면 하는 사람인 거 알지?"

저 새끼가 정말 튄다면...

앞으로 최선을 다 해 저 새끼를 엿 먹이고자 노력하리라.

내 기세에 진심을 느꼈는지 포니는 더 이상 땀 흘리는 말풍선을 띄우지 않고 진지하게 고민을 해보기 시작했다.

드디어 제대로 된 '협조'의 약속을 지킨 것이다.

[죽은 애를, 그것도 제대로 몸이 만들어지지도 않은 채로 죽은 애를 되살리는 방법은 없어. 네 말대로 정말 과거로 돌아가서 그 사고를 막지 않는 이상은 말이야.]

차라리 애가 태어났다가 죽었다면 방법이 좀 더 쉬워졌을 거라고 말한다.

세상에 태어나 제대로 숨 한 번 쉬어보지도 못하고 죽은 아이라는 것이 새삼 나를 아프게 만들었다.

[자세한 얘기는 해줄 수 없지만, 제대로 된 영혼이 만들어지려면 일단 태어나긴 해야 하거든. 근데 걔는 태어나기도 전에 그렇게 되어버려서...영혼이 만들어지지도 않았어.]

"영혼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아예 존재 자체가 사라진 거지. 남은 흔적들은 아마 다른 존재가 만들어졌을 때 재료로 사용 됐을 거야.]

얼핏 듣기만 해도 끔찍한 얘기였다.

내 아이의 모든 것들이 뜯겨져 재료가 됐다지 않은가.

태어나지도 못한 채 죽어버린 아이에게 너무 잔혹한 결과였다.

"시발."

욕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차라리 몰랐다면 모를까.

이걸 알고도 가만히 내버려둘 순 없었다.

[대충 상황을 알겠어? 네 아이는 이미 다른 존재가 돼서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뜻이야. 과거를 바꾸는 게 왜 금지 될 수밖에 없는지, 한 번 과거를 바꾸면 미래가 얼마나 많이 바뀌게 되는지 이해했냐고.]

"상관없어. 살릴 거야."

이기적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세상은 태어나지도 못한 내 아이에게 끔찍한 짓을 했다.

포니는 여전히 뜻을 바꾸지 않는 나를 계속해서 설득하려고 했다.

[네 아이가 부활하면 그 아이를 재료로 태어난 다른 영혼들한테 장애가 생길 거야. 그 아이가 재료로 쓰였던 부분만큼.]

단순히 한 아이를 살리는 것으로 끝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거다.

"영화에 자주 나오지. 과거를 바꾸고 돌아오니 미래가 더 엉망이 되어 있었다느니 뭐니 하는 거."

차라리 과거를 안 바꾸는 게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거다.

근데.

"그래서 뭐 어쩌라고."

장애가 생긴다?

태어나지도 못하고 죽어버린 내 아이는 그럼 안 불쌍하고?

적어도 그 애들은 장애를 가질지언정, 태어나서 살아갈 수는 있지 않은가?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고, 남의 자식보다 자기 자식이 더 귀할 수밖에 없는 거다.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이고, 나도 마찬가지야."

[흐음...그래...그렇단 말이지. 알았어. 그럼 각오 단단히 하고 있으라고. 우리 쪽에서도 쉽게 내어줄 수 없는 보상인 만큼, 네가 해내야 할 것도 많을 거야.]

"얼마든지. 선만 넘지 마. 될 수 있으면 얌전히 협조해줄 테니까."

[아까 얼핏 말했지만, 과거가 변하면서 미래에 영향을 미칠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거든? 그걸 다~ 우리가 수습을 해줘야 하는데, 공짜로 해줄 수는 없는 거잖아?]

포니가 자꾸만 겁을 주는 게 또 호구 잡겠다는 소리처럼 들렸다.

나는 날카롭게 눈을 벼리고 말했다.

"그것만 알아둬. 내가 봤을 때 선을 넘었다 싶으면 다른 방법을 찾아 볼 거야."

[뭣?! 그러다가 신고 당하면 어쩌려고! 금지 된 아이템을 사용했다가 신고 당하면 잡혀가!]

"그건 내가 필요한 너희가 알아서 수습해줘야지?"

이젠 나도 제법 아는 게 많다 이거야.

이 세계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이 나밖에 없다는데 내가 잡혀가는 꼴을 어떻게 보겠는가?

[함부로 위험한 놈들이랑 거래하면 큰일 나! 그놈들은 나보다 더 독한 놈들이라고.]

"그럼 네가 알아서 잘 조건을 짜와. 너무 과하게 조건을 걸면 뒤엎어 버릴 거라는 거 확실하게 기억해두고."

이런 말을 하지 않으면 그동안 쌓아뒀던 각종 미션들을 잔뜩 가져와 시키려고 들었을 것이다.

강하게 경고를 해뒀으니 적당히 해 먹으려고 하겠지.

'아빠가 다시 되살려줄게.'

이름조차도 제대로 짓지 못한 채 떠나보냈던 내 아기.

잃어버렸던 아이를 되돌려 준다면 란나씨도 분명 기뻐할 것이다.

과거가 바뀌는 것이니 잃어버렸다는 사실조차도 잊게 될 것이고, 그녀가 받았던 상처도 흔적 없이 사라질 터.

'진작 떠올렸어야 했는데...'

이제야 방법이 있다는 걸 떠올린 게 아쉬웠다.

좀 더 일찍 알았다면...지금보다 훨씬 행복한 기억들로 가득했을 테니까.

내가 요청한 조건을 꼼꼼하게 확인하고 사라진 포니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들여서야 다시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 ♧ ♧

"왜 이렇게 늦게 왔어?"

[너 때문에 얼마나 바빴는데! 이 정도면 빨리 온 거야.]

내가 건 조건이 확실히 어려운 거긴 한가보다.

"그래서, 결과는?"

[내가 얼마나 노력을 해서 이걸 얻어왔는지 알면 감사 인사를 백 번 해도 부족할 거야.]

포니는 쉽게 자기가 가져 온 결과물을 알려주지 않았다.

생색 내기를 워낙 좋아하는 녀석이라서 이 정도에서 살짝 우쭈쭈를 해줘야 할 듯 싶었다.

"그렇게 조건을 잘 따왔다 이거지? 나 기대한다?"

[٩(๑`^´๑)۶ 고작 반응이 그게 전부야?! 좀 더 나한테 감사하라고!!]

"조건을 어떻게 따왔는지 알아야 고마워하든 말든 하지. 알려주지도 않고 감사 인사부터 하라는데 마음에서 우러나올 리가 없잖아."

내 말에 반박은 못하겠는지 녀석이 괜스레 내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하여튼 조금도 귀여운 구석이 없다니까.]

"너한테 귀여움 받고 싶은 생각이 눈곱 만큼도 없거든. 빨리 내놔. 뭐 얼마나 하면 과거로 돌려 보내줄 건데?"

[일단 우리 쪽에서 최대한 미래에 영향을 안 주는 방법을 궁리해봤어. 그래서 나온 조건은 네가 직접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다는 거야.]

"그럼 누가 내 아이를 구해주는데?"

포니의 말은 시작부터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내가!]

"네가?"

[그래. 교통사고만 막으면 되는 거잖아. 그 정도는 내가 돌아가도 충분히 바꿀 수 있는 일이야. 네가 돌아가서 과거를 마구 바꿔 버리는 것보단 훨씬 영향력이 적기도 하고.]

과거에 존재했던 사람이 직접 움직여서 과거를 바꾸는 것보단, 아예 그곳에 존재하지 않았던 이가 움직이는 게 미래에 영향을 덜 미치는 일이라고 한다.

"...영 못 미더운데. 만약 네가 했다가 더 엉망진창 되면 어떡해?"

[야! 날 믿어! 내가 고작 사고 하나 막는 걸 못 할 줄 알아?]

"내가 걱정하는 건 교통사고 하나로 끝날 일인지야. 교통사고를 막아도 다른 사고가 일어나서 아이가 또 죽으면? 넌 교통사고 막았으니 됐다는 식으로 나올 거잖아."

[그럼 여기서 뭘 더 바라는데?]

"아이를 지켜줄 수 있는 아이템. 그걸 란나씨한테 전해줬으면 해."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날 수 있도록 하는 상품들은 상점에 널려 있다.

그러니 그걸 이용해서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지켜줄 필요가 있었다.

[휴우~ 알았어. 그럼 그것까지 확실하게 처리해줄게. 이제 됐지? 대신 아이템은 네가 직접 나한테 줘야 해.]

"그게 가능해?"

[멍충아. 과거로 돌아가서 내 사비로 아이템을 구매해서 주고, 너는 미래에서 나한테 그 값을 지불하라는 거잖아.]

"아!"

얘가 좀 짬(?)이 생기더니 똑똑해졌다.

"그 정도야 당연히 가능하지. 아니, 좋은데?"

[에휴, 내가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걸 위에서도 알아줘야 하는데...]

내가 돌아가는 게 아니라는 점은 정말 마음에 안 들었지만, 그걸로 내가 해야 하는 미션의 부담이 줄어드는 거라면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보상 부분은 일단 얘기 했으니 다음으로는 네가 해야 할 일들이야.]

"뭐야, 한 두 개가 아니잖아. 설마 나보고 이걸 다 하라고?"

[보상을 생각해봐. 과거를 바꾸는 건 엄연히 불법이야! 들켰을 때 우리도 책임을 져야 하는 거라고.]

그걸 감안해서 제안하는 조건들이다.

그러니 이 정도도 많은 게 아니라는 거다.

일단 하나씩 살펴보기로 했다.

내가 읽어나가는 것을 초조하게 바라보던 포니가 굳이 바라지도 않았던 설명을 더 해줬다.

[이걸 싹 다 하라는 소리는 아니야. 여기서 네가 고르는 거야.]

"여기서 아무거나 고르면 된다는 거야?"

[아니! 의뢰당 값어치가 옆에 적혀 있잖아. 그 값어치만큼 하는 거지.]

"내가 갚아야 할 코인 값이 대충 148만...코인이라..."

[조, 좀 많나? 근데 이거 정말 내가 열심히 해서 깎은 거야! 내가 깎기 전에는 200만 코인은 훌쩍 넘었다고! 네가 쬐깐한 코인으로 아등바등하고 살아서 그렇지, 사실 몇 백만 정도는 우리 입장에서 정말 별 게 아니거든. 우리 상사님은 월급으로 40만 코인을 받아가신다고!! 젠장, 부러워.]

40만 코인을 월급으로 받아 간다고?

그건 좀 부러운데.

"과장이 좀 심한 거 아니야? 넌 100 코인도 벌벌 떨었잖아."

[큭..!]

예전에 내가 포니한테 코인을 빌렸었을 때가 있는데, 정확한 액수는 기억나지 않지만 굉장히 적은 코인으로 벌벌 떨었던 걸 기억한다.

[여기가 빈익빈 부익부가 좀 심해. 많이 버는 사람은 엄청 많이 벌고, 못 버는 사람은 아등바등하면서 살아가는 거지.]

"여기나 거기나 다 똑같구나?"

[아무튼 내가 하려던 말은 이게 아니고, 148만은 정말 네가 가져가는 이득에 비하면 별 거 아니라는 거야. 그리고 미션도 큼직큼직한 걸로 준비해왔어! 물론 그만큼 난이도가 높긴 하겠지만.]

148만 코인이 내 입장에선 까마득한 게 맞기는 하다.

[여기가 이능력이 없는 세계라서 그나마 148만에서 그친 거야. 여기가 마나가 있는 곳이었으면 1000만 코인을 받아도 안 해줬을 거라고.]

포니의 말을 들으며 나는 계산에 들어갔다.

내가 직접 뒷 구멍으로 아이템을 구해서 과거를 바꾸는 것과 포니에게 협조해서 148만 코인 몫의 의뢰를 해결하는 것.

전자는 불법을 저지르는 것이기 때문에 걸리면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거다.

[그리고!!]

내가 뭔가 고심하는 눈치를 보여서 그런가?

포니가 허겁지겁 말을 이었다.

[네가 이 의뢰를 받아서 해결하면 과거가 바뀌면서 생길 미래의 후유증까지 우리 쪽에서 모두 해결해주기로 했어.]

"...내 아이가 태어났을 때, 다른 애들이 장애를 갖게 된다는 그거 말하는 거야?"

[맞아! 걔네들도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잖아. 죄책감도 안 느껴? 진심으로 네 자식만 멀쩡하면 다라고 생각하는 거야?]

나라고 그게 좋을 리 없다.

내 아이를 양분으로 태어났을 거라는 점에서 화가 났지만, 그 아이들의 현재 나이를 떠올려보면 싫어하는 것도 죄책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많아도 10살을 넘지 않았을 거잖아.'

그 아이들이 잘못 되기를 바라는 못된 마음을 갖고 있는 게 아니다.

내 아이가 그 아이들보다 소중하기에, 그들의 희생을 질끈 눈 감고 무시하려는 거다.

그러니 아이들을 책임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괜히 계속 죄책감을 갖는 것보단 그게 훨씬 깔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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