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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704화 (694/849)

Chapter 704 - #96. 진해솔 (8)

이번에 포니가 준비를 제대로 했다.

이건 안 받을 수 없는 조건이지 않은가?

'이번 건 인정을 해줘야겠는 걸.'

적절하게 내 양심을 찔러오면서 대가가 싸다는 걸 어필하고, 또 의뢰 내용을 고를 수 있다는 점으로 사람을 혹하게 만든다.

"이번에 준비를 잘 해왔네?"

[음하하! 솔깃하지? 거절 못하겠지?]

"내 양심을 푹푹 찌르면서 그렇게 제안을 하는데 어떻게 안 받아?"

나는 포니가 준 의뢰 목록을 유심히 살폈다.

일단 의뢰가 최소 10만 단위로 시작했다.

148만이라는 마이너스 코인을 해결하려 했을 때 최대 15번의 의뢰를 성사 시키면 되는 거다.

참고로 10만 코인의 경우에는 불특정의 여자들 열 명과 원나잇을 하는 거였다.

다만 원나잇을 할 때, 100% 임신을 하도록 하는 약을 복용해야 한다는 조건이 걸려 있었다.

즉, 이 의뢰를 하겠다고 했을 시 10명의 아이를 원나잇 한 여자들이 갖게 되는 것이다.

'진짜 개 쓰레긴데?'

나를 얼마나 쓰레기로 만들고 싶은 거야?

이 의뢰는 가장 만만하면서도 절대 하고 싶지 않은 의뢰였다.

단위를 조금 더 올려본다면, 30만 코인에 특정 인물을 유혹해서 임신을 시키는 것이 미션 조건으로 걸려 있다.

란나씨의 경우를 알고 있었기에 저 여자의 아이가 특별한 운명을 가졌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단위를 좀 더 올린다면 난이도가 확 올라간다.

내가 해볼까 고민했던 다른 차원으로 이동해 여자를 만나는 의뢰 내용이 나와 있었던 것이다.

"내가 이런 의뢰를 보면서 항상 궁금했던 게 있거든? 다른 차원에서 내 씨는 왜 필요한 거야?"

[은근히 이곳과 같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경우가 많아.]

"벌써 애를 몇 명이나 낳았는데도 아직 부족해서 더 낳으라고 이런 미션을 주는데, 거기가서 임신을 시킨들 효과가 있어?"

[마나가 풍부한 곳이라고 했잖아. 여기서 임신을 시키는 거랑, 그쪽 사람을 임신시키는 거랑 많이 다르지. 애초에 수명부터가 다른 걸.]

"아하."

수명이 다르다라.

마나가 그렇게 사람 가치를 많이 바꾸는 건가?

[마나를 느끼지 못하는 것들은 이해 못할 거야. 우리가 괜히 하등 생물이랑 말 안 섞는 게 아니라니깐?]

"하등...생물..?"

이 새끼, 날 하등 생물로 보고 있었던 거야?

내 눈초리가 험악해지자 포니가 황급히 변명했다.

[너, 너 설마 오해하는 거 아니지? 너는 그런 하등한 생명체가 아니라고! 내가 얼마나 공을 들여서 만든 몸인데. 네 몸은 마나를 다룰 줄 아는 몸이라고!]

"내가?"

[그래! 그러니까 너는 하등 생물이 아닌 거지. 그리고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않아?]

"....."

[뭘 할지 선택해야지! 나도 바쁜 사람이라구.]

좀 찝찝하긴 하지만, 포니의 말이 설득력이 있긴 했다.

지금 중요한 건 내가 어떤 미션을 할지 결정하는 거였으니까.

"네가 추천하는 의뢰는 뭐야?"

[당연히 이거지.]

한 번에 100만 코인을 갚을 수 있는 미션.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냥 하지 말라는 미션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건 말이 안 되잖아. 이걸 해내려면 시간이 얼마나 오래 걸리겠냐? 거기다가 내가 그 세계로 가서 왕이 되는 것 자체가 말이 되냐?"

미션 내용은 이렇다.

절대군주제가 존재하는 세계로 가서 그곳의 왕이 되어 하렘을 차리는 것.

그리고 그곳에서 후궁을 3천 명 만들라는 게 미션의 내용이었다.

얼핏 봐도 1~2년 걸리는 게 아닌, 적어도 몇 십 년은 갈아 넣어야 해결 가능해 보이는 미션이었다.

[이 미션을 받아들이면 왕의 아들이 되어 있을 거야. 왕은 병 들어서 곧 세상을 떠나기 직전이라 별로 힘들이지 않고 왕이 될 수 있어.]

"...내가 왕 아들이 된다고? 그럼 그 사람 진짜 아들은?"

[그 왕은 후계자가 없어. 그래서 나라가 혼란해지기 일보 직전이지. 그 왕이 죽으면 왕국은 내전으로 갈기갈기 찢겨질 거야. 그러니 네가 미션을 받아들이면 그쪽에선 감사하다고 고개를 조아려야 하는 거야. 넌 거기서 나라를 다스리는 척 하면서 후궁을 3천 명 만들기만 하면 되는 거고.]

"단순히 여자들만 3천 명 모아서 후궁으로 만들면 어쩌려고?"

[에이~ 적어도 한 번은 자야지! 그래야 카운트 돼.]

막상 포니의 얘기를 듣다 보니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닌 듯 했다.

후계자가 없어서 왕국의 앞날이 어두운데, 내가 가면 도움이 되는 입장이라지 않은가?

100만 코인을 한 번에 해결 할 수 있다면 괜히 여러 미션을 해결하고 다니는 것보단 훨씬 나을 것 같았다.

"내가 이걸 한다고 쳐보자. 그럼 내가 저쪽으로 이동해야 하는 건데, 가는 건 어떻게 해?"

[너희 집에서 일하는 그 사람, 알잖아. 비슷한 절차를 밟아서 허가가 받아서 들어가는 거야.]

"...저기서 죽거나 다치면?"

[그건 네가 감안해야 해야지.]

"내가 저기 가서 죽으면 네가 곤란하지 않아?"

포니가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정말 괜찮다고? 하는 시선으로 빤히 보니 녀석이 말풍선을 띄웠다.

[정말 안 구해줄 거야.]

"뭐...알았어."

이렇게까지 선을 긋는 걸 보면 못 구해준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왕, 그게 쉽게 될 수 있는 게 맞긴 한가?'

내가 너무 순순히 그러겠다고 해서 일까?

포니가 역으로 당황했다.

[뭐야? 그게 끝이야?]

"응. 끝인데?"

아무래도 내가 구해 달라고 부탁을 하길 바랐던 모양이다.

그걸 빌미로 내게서 뭔가를 더 받아내려 했겠지.

가령 이 미션은 꼭 깨달라든가 하는 거 말이다.

[너 그러다가 큰일 난다? 아무리 왕의 아들이어도 왕위에 오르는 게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거든?]

"그럼 이 미션 하지 마?"

[그런 건 아냐!]

"뭐 어쩌라는 건데. 알았다니까? 나 알아서 살아남을게."

[하...]

포니는 뻔뻔하게 대답하는 날 보며 깊게 한숨을 쉬었다.

자기 뜻대로 안 되니까 속이 끓긴 할 거다.

"넌 아직 나한테 안 돼. 그러니까 빨리 마음 바뀌기 전에 말해. 준비해 온 거 뭐야."

[나쁜 놈....악마보다 더 악마 같은 놈...!]

"내 욕을 한다는 건 거래 할 생각이 없다는 뜻?"

[30만 코인으로 좋은 패키지를 대여해줄게.]

"좋은 패키지? 뭐 어떤 게 있는데 그렇게 비싼 건데? 설명해줘."

[이게 그러니까...]

포니가 상인이 된 것 마냥 상품을 홍보하기 시작했다.

얘가 나한테 코인을 주고 판매 하려던 것은 내가 그 차원에서 위험한 일을 당해 목숨을 잃어도 괜찮을 수 있도록 해주는 아이템이었다.

고작 30만 코인으로는 구매가 불가능하고, 일정 기간 대여를 하는 값으로 30만 코인을 지불해야 하는 거였다.

"이야...대여인데 30만 코인?? 너무 한 거 아니야?"

[너 그 차원에서 죽으면 객사야 객사. 거기가 얼마나 험한 곳인데! 저주를 당할 수도 있고, 암살자가 밤에 찾아와서 네 목을 따버릴 지도 몰라!]

"그렇게 겁을 주면 내가 그 미션을 하겠다고 말하겠냐?"

[끄응...]

이게 아닌데...하는 표정이다.

"솔직히 말하면, 네가 말한 것들 중에 몇 가지는 나한테 이미 있는 것들이라 별로야."

30만 코인이 뉘집 이름인가?

내가 지금 지고 있는 빚만 해도 148만이다.

거기에 30만이 더해지면 178만.

3천 명의 후궁을 만들라는 미션이 100만 코인을 주는데, 거기에 80만 코인의 미션을 더 해결하려면 시간을 얼마나 더 들여야 할지 까마득했다.

'시간 문제는 분신체가 있어서 그나마 사정이 낫긴 한데...'

넘어갈 때 분신체가 아닌 본체로 넘어가서 미션을 해결해야 했기에 내 몸에 대한 위험성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이게 싸고 알찬 구성으로 채워 놓은 건데!]

"알차기는 개뿔. 몇 가지 필요 없는 건 빼자."

그렇게 나는 포니가 가져 온 구성품을 훅훅 까내기 시작했다.

[이것도 빼자고? 네가 오래 걸려서 이런 미션을 어떻게 하냐고 했었잖아!]

"사실 상점에서 구매해 놓은 아이템이 있거든. 그래서 시간은 괜찮아."

분신체 덕분에 가족들이 내 부재를 느끼는 일은 없을 것이다.

분신체를 보내 놓으면 이쪽 일도 신경 쓸 수 있고, 저쪽 일도 함께 처리 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상황이 되는 것이다.

'후궁 3천 명이 애 이름도 아닐 것이고, 쟤가 말했던 것처럼 대충 왕 노릇하다가 오라는 건 말이 안 돼. 별 것도 아닌 놈이 꼴에 왕이라고 후궁을 잔뜩 데려와서 하렘을 만들겠다고 하면 잘도 그러라고 하겠다.'

포니가 말했던 것처럼 암살자가 와서 자고 있는 내 목을 따버릴 게 분명하다.

그러니 그만한 후궁을 얻어내려면 어느 정도 왕권이 뒷받침 되어야 하는 것이다.

'오늘 내일 하는 후계자 없는 왕이면 귀족들이 잔뜩 득세하고 있을 거야.'

역사를 보면 모를 수가 없는 일들이다.

그러니 100만 코인을 주는 미션을 절대 쉽게 봐선 안 됐다.

포니를 닦달하는 것도 미션이 쉽지 않을 걸 알기에 하는 행동이었다.

"내가 보기에 네가 가져 온 것들에서 그나마 쓸만한 건 이 정도야. 이것만 기한 넉넉하게 대여할게."

[ಠ‸ಠ 고작 이걸로 그 미션을 깨겠다고?]

그렇게 허리를 조인 결과.

대여로 들어가는 추가 코인 금액은 -19만 코인.

11만 코인을 줄이니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100만 코인 미션을 달성해도 67만 코인이 더 남았다는 게 부담스럽긴 하지만, 그 정도는 책임 질 능력이 충분하다고 봤다.

"그럼 대가는 언제 해줄 거야?"

내 아이가 하루라도 더 빨리 내 곁으로 돌아오기를.

[이 미션, 하겠다고 약속한 거다?]

"그래. 약속해."

[좋아, 그럼 기다려.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많은 게 바뀌어 있을 거야.]

포니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하룻밤 지나면 내 곁으로 잃었던 아이가 돌아오는 거다.

심장이 쿵쾅쿵쾅 거칠 게 뛰었다.

얼마 만에 느끼는 긴장과 설렘인지 모르겠다.

포니를 돌려보내고, 나는 곧장 분신체를 이곳으로 옮기고 본체와 바꿨다.

란나씨의 집으로 가서 아무렇지 않은 척 남은 시간을 보냈고, 다음 날을 맞이하기 위해 그녀와 한 침대에 누웠다.

"오늘 좀 이상한 거 알아요?"

"...내가 그랬나요?"

"시치미를 뚝 떼고...갑자기 연락도 없이 찾아 온 것 부터가 이상하잖아."

본체와 교환하기 전까지 분신체는 메이씨의 곁에 있는 상태였다.

우울증이 많이 낫긴 했지만, 또 같은 증상이 재발 되지 않도록 신경을 기울이고 있는 중이었다.

"유모님이랑은 좀 친해졌어요?"

"엄청 좋아요. 아이를 너무 잘 봐주니까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더라고요. 많이 의지하는 중이에요."

어느새 잘록해진 란나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엉큼한 손이 점점 그녀의 가슴 쪽으로 움직였지만, 내일을 위해 빨리 잠을 자야해서 꾹 눌러 참았다.

"...오늘 정말 무슨 일 있어서 온 거 아니죠?"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고 주무시죠. 여보님?"

내일은 정말 행복한 날이 될 것이다.

비록 나 혼자만 기억하는 일이겠지만, 내가 행복할 것임은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어서 빨리 내일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덩치 큰 몸을 웅크려 그녀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아기를 키워서 그런지 그녀에게서 아기 분내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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