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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706화 (696/849)

Chapter 706 - #96. 진해솔 (10)

"우주...네."

[정거장이야. 이곳을 거쳐서 다양한 차원으로 이동이 가능하지.]

머리 위에 우주와 오로라가 펼쳐져 있었다.

이런 압도적인 자연 현상 아래에서 인간은 한낱 날벌레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생명체들이 만들어낸 압도적인 인류 재산들도 두 눈에 들어왔다.

"와..."

[다른 것들이랑 대화 나누지 마. 그러다가 납치 될 수 있으니까. 내 옆에 딱 붙어 있으라구. 너는 저놈들한테 지금 황금고블린이야.]

"내가 왜 황금 고블린이야?"

[쓸데없는 궁금증. 빨리 따라와. 입국 하러 가야 돼.]

포니가 계속 서두르니까 나도 덩달아 마음이 급해져서 녀석을 따라 이동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초록색의 불빛을 따라 이동했다.

마치 처음 도시에 들어와 구경을 하고 있는 사람처럼 주변에 시선을 빼앗겼다.

'발전 단계가 차원이 다르네.'

영화 속에서나 볼 법한 풍경이었다.

마나라는 신비한 힘을 다룰 줄 아는 사람들은 허공에 건물을 띄워놓은 곳을 돌아다니거나, 파지직 거리는 위험한 소리를 내는 에너지 구슬을 위에 띄우고 그 아래에 있는 건물 안에서 태연하게 생활을 하고 있기도 했다.

"저건 위험해 보이는데 안 터지는 거야?"

[터져.]

"!!"

[근데 터져도 주변에 보호 마법이 걸려 있어서 폭발이 다른 곳에 미치진 않아. 그리고 이쪽으로 와. 도착했어.]

신기하지 않은 곳을 찾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 싶은 공간들이었다.

좀 더 자세히 구경하고 싶었는데, 포니는 내게 그럴 시간을 줄 생각이 없는 듯 했다.

[------]

[--------ㅡ-]

이번에도 포니는 어떤 이와 대화를 나누며 서류를 몇 가지 제출을 했다.

서류를 받은 이가 서류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동을 허락한다는 의미의 끄덕임이었다.

[좋아, 허가 났어. 저쪽 긴 통로 보이지? 저기로 쭉 걸어가면 돼.]

"저기로 쭉? 나 혼자 가는 거야?"

[내가 저길 가서 뭐한다고. 당연히 너 혼자 가는 거지. 나 데려가고 싶으면 코인을 내든가.]

"됐어. 나 혼자 가."

낯선 환경이라 쫄아서 그런 거지, 포니를 곁에 둬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저 통로를 따라 걸어가면 바로 차원을 이동하게 되는 거라는 말을 듣고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텅! 텅! 텅! 텅!

"뭐 이렇게 길어..."

그동안 마음을 단단히 먹고 각오하긴 했지만, 실제로 그 상황이 닥치니 살짝 무섭긴 하더라.

특히 고요한 통로를 걸어가면서 유난히 큰 발걸음 소리가 귓가를 음산하게 울리고 있었다.

주변은 걸어가면 갈수록 어두워지고 있었고 언젠가부터는 빨간색 불빛에 의지해 걸어가야 했다.

"계속 가야 하는 거...맞겠지?"

이 통로가 꽤 오랫동안 걸어야 할 만큼 길다는 걸 미리 전해 들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기도 하다.

그래도 다행인 건 슬슬 인내심의 한계가 왔을 무렵, 갑자기 시야가 확! 바뀌었다는 거다.

"오."

미션을 해내기 쉬운 장소로 보내주냐고 물어서 당연히 그렇게 해주는 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기에 고개를 끄덕였었다.

그런데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가까운 장소에 날 떨궈놨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가깝다 못해 아예 그 안에다가 넣어 놨을 줄 누가 알았겠어.'

다행히 이동하는 걸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게 인적이 없는 곳으로 옮겨주긴 한 것 같았다.

다만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분주한 다량의 인기척들을 확인 할 수가 있었다.

내가 이곳이 왕궁이라는 걸 확신한 이유도 그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전하께선 언제 입장하신다고 하셔?"

"20분 후에."

"알았어."

아마도 내가 서 있는 곳은 왕궁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일하는 곳이 아닐까 싶다.

'언어 패치도 잘 됐네. 옷도 바꿔졌고.'

포니가 따로 추천을 해줬던 패키지 구성품 중에는 이곳에서 위화감을 느끼지 않을 복장과 언어 패치가 담겨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내 얼굴도 기존의 얼굴이 아닌 서양인의 얼굴로 바뀌어 있었다.

이 얼굴은 왕이 젊었을 적 외형을 많이 따라간 상태였다.

3천 명의 후궁을 문제 없이 꼬시기 위해 과거 왕의 외형을 따르는 대신 외형은 미남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얼굴을 만져 놓았다.

'그래도 여전히 원래 얼굴보다는 못하지만.'

당분간은 이 얼굴에 적응을 해야 한다.

상황 파악을 마친 나는 최대한 사람들을 피해서 목표물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연회가 있나 보네.'

왕궁에서 거하게 연회를 베풀고 있는 것 같았다.

20분 후에 왕이 그곳에 나타나 사람들에게 연설을 할 것이다.

그리고 귀족들은 왕이 열어 준 연회를 즐기겠지.

내가 계획한 것은 바로 그때다.

'연기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되는 거잖아.'

어려울 것 없다.

어렵다고 생각하면 어려워지는 거고, 쉽다 생각하면 쉬워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연기하는 건...

'내 직업이니까.'

왕자 역할이라면 주인공으로 꽤나 매력적인 캐릭터 아니겠는가?

연기 능력치는 남들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했기에 현실감 넘치는 연기력을 뽐내는 것도 두렵지 않았다.

♧ ♧ ♧

바하튼 왕국의 귀족들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연회를 즐기면서도 삼삼 오오 모여 한 가지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분은 나이가 너무 어립니다!"

"어리니 좋은 거지요. 여성을 매우 좋아하셔서 침대에 혼자 오를 때가 적다고 하더랍니다."

"여자를 좋아하는 것과 건강한 아이를 낳는 건 엄연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분 사생아들이 어떤 꼴을 하고 있는지 모르시는 겁니까?"

그들이 요즘 가장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주제는 단연코 현 왕국의 후계자를 누구로 삼느냐였다.

왕비만 두 명에 후계를 위해 후궁을 열 명이나 들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왕의 후계자들은 모두 시름 시름 앓다가 그 나이 10살을 넘기지 못하고 비명횡사를 했다.

그뿐인가?

방계 왕족들도 대부분 멀쩡한 자식을 낳은 게 드물었다.

그나마 왕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막내 왕자.

애석하게도 막내 왕자는 작년에 비극적인 승마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짐은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을 듯 하다. 몸이 좋지 않으니 다음 후계는 그대들이 상의하여 결정하도록 하시게.]

왕은 이제 너무 나이가 들어 여자를 임신 시키지 못하는 몸 상태가 되었고, 왕국은 발 등에 불이 떨어진 것 마냥 다음 대 후계자를 누구로 삼을지 전전긍긍하는 상황이었다.

거기다가 너무 많은 자식을 떠나보낸 탓에 후계에 대한 문제를 더 이상 신경 쓰고 싶어 하지 않았다.

"오드만 공이 낮지 않겠습니까?"

"그분은 나이가 너무 많지 않습니까? 저번에 뵈었을 때, 머리가 희게 새셨더이다."

"아니, 벌써 그리 되셨단 말입니까?"

"그분은 자식도 많지 않으니, 기왕 이렇게 된 거 자식이 가장 많은 분을 추대하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삶에 대한 의욕을 잃고, 기력도 잃은 왕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귀족들에게 넘겨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짓을 했다.

이건 왕이 자신의 권력을 귀족에게 이양한 것이나 다름없는 파격적인 사건이었다.

덕분에 말들이 많긴 했지만, 귀족들은 왕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살 날 얼마 남지 않은 늙은이라 모든 게 다 귀찮아 진 거지.'

이때다 싶은 귀족들이 저마다의 이유를 들며 방계 왕족들을 후계로 삼기 위해 열심히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연회장에서 벌어지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었다.

다음 후계자를 누구로 삼을 것인가.

하지만 그들의 노력이 무의미하게 허물어질 사건이 벌어졌다.

왕이 뒤늦게 연회장에 나타나 적당히 덕담을 담은 연설을 하고 자리를 지키고 있던 중.

차마 그 얼굴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존재가 연회장 중앙의 길을 태연하게 걸어갔다.

"그러니까 하쉘 공을...삼..아야...한다고..."

웅성웅성-

열변을 토하던 귀족들도, 중앙을 걸어가는 젊은 남자를 향해 시선을 떼지 못했다.

현왕을 오랫동안 모셔왔던 그들은 중앙을 걸어가는 남자가 누굴 닮았는지 모르지 않았다.

"그야말로 왕께서 다시 젊어졌다 봐도 될 정도이지 않은가?"

어떤 귀족의 중얼거림이 정적이 흐르는 연회장을 꽤 크게 울렸다.

꿀꺽-

귀족들의 시선이 한 쪽으로 향하자 연회에 관심이 없던 왕의 시선도 자연스레 귀족들을 따라갔다.

그리고 마침내, 무료함과 지루함에 시들해져 있던 왕의 눈동자가 한 젊은 남자에게 꽂혔다.

"!!!!!"

왕의 눈동자가 젊은 남자의 외형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경악이 서린다.

본인의 젊은 모습을 빼닮은 젊은 청년이 갑자기 나타났으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저, 저, 저 자! 저 자를 내 앞에 데려와라!"

왕은 체통도 잊고 서둘러 궁인에게 젊은 남자를 가까이 데려오라고 명령했다.

귀족들에게 황당한 권한을 넘겼다 해도, 눈앞에 희망이 나타났는데 무심하게 행동 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왕의 젊었을 때 모습을 무서울 정도로 닮은 남자의 등장에 대부분의 귀족들이 당황을 했지만, 서둘러 감정을 가라앉히고 냉정하게 현실을 본 귀족들도 있었다.

"저 자가 어떻게 연회장에 들어왔는지 조사해오도록 해."

"예!"

"저 자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어디서 태어났고,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전부를 조사해와라."

"예!"

귀족들이 자기 부하에게 분주히 명령을 내리는 사이.

젊은 남자는 왕의 부름을 받아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부복했다.

"좀 더, 좀 더 가까이 오라."

왕은 남자가 꽤 가까이에서 부복을 했음에도 만족하지 않고 그를 좀 더 가까이에 불러 들였다.

"예, 전하."

"그래, 고개를 들어보거라."

"예."

순순히 젊은 남자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왕은 젊은 남자의 턱에 손을 가져다 대고 이쪽 저쪽 돌려보면서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잘 생겼구나. 거기다, 이 얼굴...젊었을 적 내가 나타난 줄 알았다. 너는...너는 어느 쪽 방계 아이더냐?"

"송구합니다. 저는 왕족이 아닌, 평민으로 살아 온 무지렁이입니다."

쾅!

왕이 젊은 남자의 말에 분노하며 주먹으로 의자 손받이를 내려쳤다.

"그럴 리가! 너는 분명 왕족이다. 네 머리카락, 네 눈동자, 그리고 생김새 모두! 굳이 확인해볼 필요도 없이 왕족임이 드러나고 있는데 누가 감히 널 평민으로 대한단 말이냐?"

왕이 젊은 청년이 왕족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귀족들의 눈동자가 분주하게 돌아갔다.

젊은 청년의 씨를 과연 누가 뿌렸는가.

그것이 귀족들에겐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사실 그 문제를 중요시 여기는 건 왕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방계 왕족 출신이 자신을 이토록 닮은 아이를 낳았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거기다 왕은 이미 이 청년이 자신의 씨를 타고 났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수 많은 자식을 잃어 본 왕에게 새롭게 나타난 희망은 너무도 간절하고 소중했다.

아니어도 맞다고 우기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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