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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707화 (697/849)

Chapter 707 - #96. 진해솔 (11)

"왕궁 마법사를 데려와라. 이 아이가 어디에서 이어진 씨인지 확인해봐야겠다."

"전하! 이 자리에서 바로 말이십니까?"

"전하, 저 자가 어떤 경로로 연회장에 침입했는지 확인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전하의 총명한 현기를 흐트리려는 흑마법사의 수작일 수 있습니다!"

"전하, 저 자를 감옥에 가두고 좀 더 검증 절차를 걸치심이 옳다 생각하옵니다!"

젊은 청년의 등장에 놀라 정신을 차린 귀족들은 왕의 뜻을 꺾기 위해 애를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삶에 아무런 흥미도 없었던 늙은 왕의 앞에 나타난 희망은 고작 귀족들의 몇 마디로 포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다 필요 없다! 흑마법사가 수작을 부린 거라 해도 상관 없다. 왕궁 마법사가 못 알아차릴 만한 흑마법은 없지 않은가? 어찌 됐든 마법사를 데리고 와서 확인을 하긴 해야 하는 일이다! 뭣들 하는 거냐! 어서 마법사를 부르지 않고!"

"예, 예~! 전하."

궁인들이 서둘러 왕의 부름을 전하기 위해 움직인다.

젊은 청년은 그런 소란에도 무덤덤한 표정으로 왕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름이 무엇이냐?"

왕의 관심도 금세 젊은 청년에게 향했다.

이름을 묻는 왕에게 청년은 말했다.

"무지렁이입니다. 살아오며 불렸던 이름에 어떤 의미가 있겠습니까? 전하께서 제 뿌리를 찾아주신다면, 그때 새 이름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그래. 맞는 말이다. 진짜 네가 아닌 인생을 살고 있었으니 모두 쓸모가 없는 시간들이지. 너도 뭔가 알고 있으니 내 앞에 나타난 것이겠지. 그렇지?"

"막내 왕자님께서 전하의 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

왕의 앞에서 막내 왕자의 얘기를 꺼내는 건 대단한 배짱이 있지 않고 서야 불가능한 일이었다.

왕이 막내 왕자를 잃었을 때 느낀 좌절감과 분노는 귀족들도 두려움에 애써 쉬쉬하며 고개를 돌려 외면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젊은 청년은 왕에게 쉽게 언급해선 안 되는 부분을 거침없이 언급했다.

거기다 왕도 젊은 청년의 패기를 웃으며 받아주고 있다는 점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왕자님께서 전하의 곁을 지키셨을 땐 굳이 제가 전하의 앞에 나타날 이유가 없었습니다. 또한 전하께서 막내 왕자님을 잃은 슬픔에 잠기지 않았다면, 이곳에 나타나지 않았을 겁니다."

지금 젊은 청년은 자신이 당신 앞에 나선 것이 권력을 잡고자 가 아님을 라는 걸 말하고 있었다.

귀족들은 어림도 없는 소리라며 속으로 코웃음을 쳤지만, 사실 이게 진실일 확률이 높다는 걸 알고는 있었다.

누가 봐도 왕의 핏줄임이 드러나는 외모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인이 넘는 나이가 되도록 왕의 앞에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리석은 생각이다! 네가 진작 나타났다면 그런 것에 상관하지 않고 너를 아주 귀애 했을 것이다."

왕은 진심으로 이 청년이 자신의 씨를 받아 태어난 아이이기를 바랐다.

그렇기만 하다면 지난 시간 동안 해주지 못했던 것들을 보상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물려줄 생각이었다.

귀족들의 반발?

그건 젊은 청년이 자신의 핏줄이라는 것이 확인 된다면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다.

'몸에 장애나 병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그건 왕의 핏줄로써 대단한 값어치를 갖고 있는 일이었다.

젊은 청년이 갖고 있는 멀쩡한 몸을 찾아 수년 간 많은 왕족들이 자식을 낳아왔다.

어느 순간부턴 저주에 걸린 것 마냥 왕족의 핏줄에선 멀쩡한 이가 나오질 않았으니 말이다.

'드디어 찾았구나. 드디어!'

죽기 직전에 찾은 희망!

왕은 마법사가 어서 도착하기를 바라며 엉덩이를 가만히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마침내.

"워민 왕궁 대마법사께서 도착하셨사옵니다."

"어서! 어서 와서 들어오라."

"신 워민, 전하의 부름을 받고 왔나이다."

"그래, 워민 대마법사, 어서 오게. 어서 와서 이 아이를 확인해주게."

"과연, 전하께서 저를 급하게 부르신 이유가 있으셨군요."

워민 대마법사가 놀라울치 만큼 현왕의 젊었을 때와 닮은 남자를 보며 감탄을 내뱉었다.

왕족의 얼굴을 보며 이런 불경한 태도를 취하는 건 좋지 않지만,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얼핏 봐도 아주 건강하신 분 같으십니다."

"그래! 그러니 어서 이 아이가 누구의 씨인지 확인해야 하는 거네."

다음 대 왕이 지금 이 자리에서 결정이 될 수도 있었다.

귀족들은 간절함을 담아 워민 대마법사를 응시했다.

'제발, 아니어야 한다!'

'정말 왕의 씨인가? 정말이라면...'

'하늘이 왕의 핏줄을 져버리지 않았다는 건가?'

워민 대마법사가 젊은 청년에게 다가간 후 신비한 마법 지팡이를 들어 올려 작은 목소리로 알 수 없는 말을 읊조렸다.

읊조리는 말이 마침표를 찍었을 때, 지팡이에서 새하얀 빛이 내뿜어지며 젊은 청년의 몸을 휘감았다.

그리고 이내 하얀 빛이 황금색으로 바뀌더니 주변을 강하게 흩뿌리다가 왕을 향해 이어졌다.

"오오오!!!"

"맙소사!"

"정말 왕의 핏줄이었어!"

"신께서 이 나라를 져버리지 않으셨구나!"

안도하는 귀족들도 있고, 얼핏 얼굴이 굳어진 귀족들도 있었다.

원래 줬다가 뺏는 게 가장 치사한 법이 아니겠나?

귀족들은 왕이 줬던 권한을 다시 가져가는 것에서 본인의 것을 강도 당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허나 왕은 귀족들이 어떤 기분을 느끼고 있는지 고려하지 않았다.

눈 앞에 나타난 존재에 정신이 팔려 있었기 때문이다.

"워민 대마법사, 정말 그 결과가 맞는 겁니까? 흑마법사의 수작일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여러 차례 검증 절차를 걸쳐서 확실하게 검증을 해야 합니다!"

"지금도 이곳저곳에서 자신이 왕의 핏줄이라며 나서는 자들이 있습니다. 흑마법사라면 그들 중에 한 명을 이용해 수작을 거는 걸지도 모릅니다."

"맞습니다. 저 자가 진짜 멀쩡한 몸인지도 확인해봐야 합니다, 전하!"

왕이 기뻐하면 기뻐할수록 귀족들은 발을 동동 구르면서 안절부절 하고 있었다.

왕이 기쁨에 절제를 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신하인 그들이 왕에게 간언을 드려야 하는 게 맞다.

"전하, 좀 더 검증 절차를 거치시옵소서!"

"거치시옵소서!"

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있는 줄도 몰랐던 자식과의 재회를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었는데, 귀족들이 옆에서 초를 쳐대니 화가 안 날 수가 없는 것이다.

"검증 절차라니. 도대체 무슨 검증 절차가 필요하다는 겐가!!"

"어디 출신인지,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함께 생활하고 지낸 이들은 어떤 이인지, 모체는 누구인지! 많은 것들을 알아봐야 합니다. 전하의 핏줄이라 해도...!"

"아니! 이 아이의 조사를 금지하겠다."

왕의 급작스러운 말에 귀족들이 경악한다.

"이 아이를 현혹한 이가 있었다 해도 상관 없다. 내가 직접 이 아이를 처음부터 다시 키우고 교육 할 거다. 과거에 좋지 못한 짓을 했다 해도 상관없다. 짐의 피가 이어졌으니 그것으로 된 것이지 않은가?"

왕의 말은 저 젊은 청년이 죄를 지었다 해도 왕의 핏줄이라는 점으로 모든 죄를 사하겠다는 뜻이었다.

귀족들도 자신의 신분으로 죄를 사하는데, 그들보다 더 귀한 핏줄로 치는 왕족이 법으로 심판을 받을 리가 없었다.

대게 왕족이 받는 죄는 귀족과 결탁하여 왕권에 도전 했을 때다.

그 외에는 살인을 해도 처벌을 받는 왕족은 없었다.

그러니 젊은 청년이 바깥에서 사기꾼이었든, 도적이었든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 것이다.

'왕이 비호를 하겠다고 직접 말했다. 더 이상 저 놈 과거로 문제를 삼을 순 없겠구나.'

아무리 지금은 이빨 빠진 호랑이지만, 그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곤란해지는 건 귀족들이었다.

지금은 모두 귀찮다며 방치하고 있지만, 과거 젊었을 적 현왕은 귀족들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며 나라를 다스렸던 왕이다.

꺼져 가는 불꽃이 마지막 남은 자식을 지키기 위해 활활 타오른다면...

'야금야금 빼앗았던 권력을 전부 빼앗기게 될 지도 모른다.'

다음 왕이 선다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귀족들의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 생각했던 그들에겐 청천벽력과도 같은 상황이었다.

"더 이상 반론을 받지 않겠다! 다른 왕족도 아니고, 내 아이라는 게 확실해졌으니 내 고민하여 새로운 이름을 내릴 것이다."

왕은 젊은 청년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젊은 청년은 기꺼이 왕의 손을 마주 잡았다.

귀족들은 그 모습을 닭 쫓던 개 지붕 쳐다 보는 것처럼 허망하게 바라봤다.

♧ ♧ ♧

"와...대접이 장난 아니네."

무지렁이에서 왕자가 되는 신분 상승.

솔직히 신분이 없는 곳에서 살면서 대접을 못 받고 살지 않은 지라 신분 상승을 했다고 해서 드라마틱 한 변화를 맞이하게 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내 예상이 기분 좋게 빗나갔다.

왕자라는 지위는 수많은 궁인들의 시중을 받는 신분이 된다는 의미였다.

내가 아무리 스타로 대접을 받고 있다 한들, 궁인들이 내 시중을 들어주는 것에 비하면 별 게 아니었던 것이다.

'옷도...확실히 내가 평소에 입는 것보다 훨씬 좋은 것 같아.'

솔직히 아이돌로 활동하면서 무대 의복이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옷들은 아니었다.

오로지 미형을 위해 제작 된 의상인지라 다소의 불편함을 감수 해야 할 때가 많았다.

그런데 지금 이곳에서 제공 받은 옷은 피부에 닿는 안감들이 보들거리고 아무것도 입지 않은 것 마냥 편안하기까지 했다.

그 뿐만 아니라 씻는 것도, 옷을 입는 것도 궁인들이 예의를 다 하며 시중을 들었다.

머리를 빗고, 말리고 온갖 비단으로 꾸며지고, 장신구들이 걸쳐지는 모든 행동에서 내가 직접 한 일이 없었다.

'그래도 금방 적응은 했어.'

이렇게 열심히 꾸며지고 나자 궁인들은 나를 왕이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아마 나에게 듣고 싶은 말이 많을 것이다.

'설정은 다 외워뒀으니 그대로 말하면 되고...'

왕은 얼마 후에 죽을 운명이었으니 그리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다.

지금부터 내가 신경 써야 하는 것은 귀족들.

저들을 어떻게든 꼬셔서 지지 기반을 만들어 서로를 견제하도록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나는 이미 이곳에 들어 오기 전, 어떻게 행동할지 모두 생각을 해둔 상태였다.

'내가 나라를 다스리려고 여기에 온 게 아니잖아.'

일명 '꼭두각시 왕'.

나는 내 계획에 알맞은 귀족을 찾아내야 했다.

왕족에 대한 적당한 예의를 갖추고 있으며, 주변 귀족들로부터 나를 보호해주는 대가로 권력을 누릴 귀족을 알아내야 했다.

'그리고 3천 명의 후궁을 들이는데 협조를 해줄 귀족이어야 하지.'

포니가 가져다 준 서류에는 이 세계의 역사와 배경을 적어 놓긴 했지만, 귀족 가문 하나하나 모두를 상세하게 적어 놓지는 않았다.

때문에 왕과 대화를 나누면서 귀족에 대해 물어볼 생각이었다.

왕이 기거하는 궁이라는 게 느껴지는 웅장하고 거대한 계단과 문을 지나갔다.

붉은색 융단을 따라 걸어간 끝에 마침내, 나를 이곳에 부른 왕이 왕좌에 앉아 있었다.

"이리 꾸며 놓으니 참으로 잘 생겼구나. 짐의 젊었을 적 모습을 빼다 박았어."

왕은 화려하게 치장 된 내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감상평을 말했다.

'빼다 박았다기엔, 내가 손을 댄 곳이 적지 않은데...'

뭐 어느 정도 추억 보정을 받았겠거니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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