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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710화 (700/849)

Chapter 710 - #96. 진해솔 (14)

"정말 감사합니다. 왕자님."

내가 자신을 방 안에 들이자 후궁은 굉장히 안도하며 감사 인사를 아끼지 않았다.

22살임에도 죽을 날을 받아 놓은 왕의 후궁이 된 여자.

도대체 무슨 사연을 갖고 있기에 이런 삶을 살고 있는 건지 궁금했다.

그녀와 밤을 보내는 건 보내는 거고, 적어도 사정은 들어봐야 하는 것 아니겠나?

"정말 전하께서 저와 밤을 보내라고 하고 보내신 게 맞습니까?"

혹여 이 귀족들이 날 내쫓기 위해 후궁과 거래를 해서 내 처소에 들여 보낸 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아무리 내가 소중한 아들이라 해도 자신의 여자를 건드리는 건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

왕의 것은 절대 누구도 탐내서는 안 된다.

그건 왕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고, 역모였으니까.

"예, 정말입니다."

"솔직히 믿기 힘든 일이긴 합니다. 전하께서 제게 많은 걸 베풀어주긴 하시지만, 후궁은 다른 문제가 아닙니까?"

"왕자님껜 면목이 없습니다. 거절 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차마 그럴 수 없어 이기심을 부렸습니다."

후궁은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지금 이 상황이 정상적인 것은 아님을 아는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제가 끝까지 거부했다면, 왕자님께서도 곤란해지지 않으셨겠지요. 소첩이 큰 죄를 지었습니다."

"너무 자책하진 마세요. 전하께서 하고자 하시니 그걸 거부할 수 없었을 뿐일 텐데."

왕이 왕자의 방으로 가라고 하는데, 22살의 어린 후궁이 어떻게 그걸 거부할 수 있겠는가?

자신의 이기심으로 선택한 일이라 말하지만 왕이 그런 제안을 하지 않았더라면 절대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부족함이 많은 몸입니다. 부디 왕자님께서 마음껏 사용해주십시오."

후궁이 납작 엎드려 왕자의 앞에 자신의 몸을 내어놓았다.

신분이라는 게 도대체 뭐기에 사람이 자기 몸을 포기한단 말인가?

익숙해지고 싶지도, 익숙해지지도 않는 나라의 문화를 어떻게 참고 살아야 할지 벌써부터 걱정이 됐다.

'지금은 어떻게든 참아보겠지만...'

마음 같아서는 귀족이나 왕족들에게 지는 뭐 얼마나 잘 났다고 따지고 싶다.

하지만 그들이 못 마땅하다 해서 이 세계에 민주주의를 대뜸 가져 올 순 없지 않은가?

말도 안 되는 소리고, 책임지지 못할 무책임한 쓰레기 짓이다.

애초에 나는 이곳을 그렇게까지 변화 시킬 만큼 사랑하지도 않는다.

잠깐 이곳을 들렸다 가는 정도의 나그네이니, 딱 그 정도만 하고 갈 생각이었다.

'그랬던 건데...'

고작 22살, 그러니까 우리 가족의 막내인 신애보다 더 어린 나이의 여자가 내 앞에 엎드려 자신을 취해달라고 빌고 있었다.

스물 두 살이다.

고작 스물 두 살.

'찝찝해.'

물론 앞으로 내가 취할 삼천 명의 후궁 중에는 이 여자보다 훨씬 기구한 인생을 살았던 여자가 있을 수 있다.

그런 여자들을 일일이 챙긴다면, 내 진짜 가족들은 어떻게 챙기란 말인가?

그래서 생각했다.

절대 이곳 사람들에게 정을 주지 말자고.

내 가족을 위해 개새끼가 되자고.

피해자가 생긴다 해도 절대 돌아보지 않기로 했다.

'결국 그런 것도 전부 자기 합리화였네. 정작 앞에 두고 외면할 수도 없으면서.'

각오했던 대로 질끈 눈을 감고 있었다.

아니, 감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눈앞에 첫 번째 피해자가 나타나니 질끈 감은 줄 알았던 눈이 저절로 떠진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닌 것 같은 거다.

"오늘 저와 밤을 보내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저 전하의 후궁으로 계속 그 자리에 있을 겁니다."

그리고 왕이 죽으면 신전에 들어가는 게 끝이라고 한다.

"신전에 들어가는 게 그렇게 싫으십니까? 다른 남자랑 잠자리를 하는 것보다 더?"

그녀에겐 꽤 상처가 될 수 있는 물음이라는 걸 알면서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도 크게 손해를 보며 하는 질문이었다.

이곳에 정을 붙일 생각이 없다는 건, 은혜를 베풀 생각도 없다는 뜻이었으니 말이다.

괜히 관계를 만들었다가 끊어내야 할 때 제대로 끊어내지 못하면 큰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한 질문이었다.

그녀가 어떻게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서 나는 도울 것인지 외면할 것 인지를 결정 할 생각이었다.

"예, 들어가고 싶지 않습니다."

후궁이 면목이 없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이미 숙여서 더 이상 숙일 곳도 없는데 말이다.

"신전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데요?"

"평생 그곳에 갇혀 신과 하늘로 올라가신 왕을 위해 기도하며 살아야 합니다."

얼핏 듣기만 해도 지루한 삶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 시대에서 왕이 죽으면 순장을 당하는 정도는 아니어도,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되어 절에서 평생 살아간다는 느낌으로 보면 될 것 같았다.

'22살 젊은 여자를 후궁으로 삼았으면 적어도 책임은 지고 죽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내가 본 왕은 자신이 죽은 이후, 후궁들의 삶을 걱정 할 만큼 자비로워 보이지는 않았다.

22살의 젊은 후궁을 새삼 안쓰럽게 여겨서 내게 붙여 줄 사람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이 여자를 내게 보낼 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이 된다.

"아마 귀족일 듯 싶은데, 어디 가문 출신입니까?"

"신첩, 아스트라 백작 가문의 삼녀입니다."

백작 가문의 삼녀.

거기다 자료 조사에서 아스트라 백작 가문은 언급이 몇 번 된 가문이기도 했다.

자료 조사에서 나온 가문이라면 적어도 이 세계에서 나름 큰 영향력을 가진 가문이라 볼 수 있었다.

'왕은 후궁을 준 게 아니라 귀족과 연결하는 선을 건네 준 거다.'

곧 죽을 사람이라고 생각해 왕은 크게 문제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하는 행동을 보면 사람의 간을 여러 번 서늘하게 만든다.

"가문과의 사이는 어떻습니까?"

가문과 사이가 좋다면 자신의 딸을 왕의 후궁으로 보냈을까?

"작년에 백작님께서 돌아가시고, 제 오라버니가 백작위를 물려 받았습니다. 그리고 제 오라버니와 저는 꾸준히 편지를 주고 받을 만큼 교류를 하고 있습니다. 불경한 말이지만, 오라버니가 백작이셨다면 저를 왕께 보내지 않으셨을 겁니다."

"그렇군요."

후궁은 썩 머리가 나쁘지 않은 모양이었다.

내가 가문에 대해 물으니 자신의 가치를 가늠하고 있다 생각했는지 냉큼 대답을 했다.

'동정심으로 도와주는 게 아니라 내게 이익이 되는 명분이 있는 거니까...'

동정심으로 도와줬다가 마음까지 가버리면 곤란하다.

그렇기에 다른 명분을 찾을 수밖에 없었던 거다.

그리고 왕이 괜히 그녀를 고른 게 아닌 듯, 그녀를 취할 완벽한 명분이 존재했다.

"그럼 오늘 밤, 전하께서 내려주신 당신을 안겠습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후궁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드디어 진창에서 빠져나왔음을 안도하는 미소였다.

♧ ♧ ♧

아읏, 흐응! 왕, 왕자니임...아앙!! 거기, 거긴...너무 하악! 안 돼, 안 돼요오!! 아아아앙!!!

격렬한 신음 소리가 문틈을 비집고 나온다.

여자의 신음 소리를 무서울치 만큼 무덤덤한 표정으로 듣고 있던 궁인들이 시간을 확인했다.

왕이 내려 준 후궁과 방에 들어간 왕자는 대화를 나누는 듯 한동안 정적이었다가 어느 순간부터 문의 틈으로 신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지 벌써 한 시간이 지났거늘...'

왕자의 정력이 예사롭지 않았다.

궁인들은 이걸 기뻐하면서도 왕자의 몸이 걱정 됐다.

왕자의 정사가 끝나기를 왕께서 기다리고 계시는데 여간 난감한 게 아니었다.

'지금이라도 중간 보고를 드리는 것이 옳을까?'

왕을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순 없었다.

이대로 끝이 나지 않는다면 차라리 중간 보고를...

그때, 드디어 안에서 들려오는 신음 소리가 끊겼다.

"!!"

"!!"

귀를 쫑긋 세우고 기다리고 있던 궁인들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드디어 보고를 하러 갈 수 있다!

표정 관리를 하고 있던 궁인의 무표정이 무너질 정도였다.

한 궁인이 왕에게 보고를 하러 가고, 나머지 궁인들이 안으로 들어가 침소를 정리하려고 했다.

그러나.

하읏, 방금 가셨는데...아! 아흣! 흐응...아아아...!!

얼마나 쉬었다고, 또 다시 후궁의 신음이 흘러 나왔다.

'또 한다고?'

'분명 방금 전 갔다고 했거늘...?'

'왕자의 정력이 인간이 아니다!'

'경사로구나, 경사야.'

'전하께 중간 보고를 드리러 가겠습니다.'

'어서 다녀오게.'

궁인들은 다시 시작 된 색사에 왕에게 더 이상 보고를 미룰 수 없다 결정하고 중간 보고를 하기 위해 움직였다.

왕자의 정력이 매우 뛰어나다는 소식을 들으면 분명 왕께서도 기뻐하실 게 틀림없었다.

'당분간 왕자의 궁이 밤마다 시끄럽겠구나.'

저렇게 대단한 정력을 갖고 있다는 걸 왕이 알았으니 결코 그를 혼자서 재우지 않을 것이다.

왕께서 어떤 명을 내릴지 벌써부터 예상이 갔다.

귀족 가문의 미혼 여성들이 왕자의 궁에 밀어 넣어 질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런 궁인들의 예상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이 되었다.

"왕자의 궁이 밤새 불이 꺼지지 않는다지요."

"곧 금혼령이 내려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왕께서 미혼의 귀족 여성들은 전부 왕자의 궁에 집어 넣고 싶어 하신답니다."

"저는 왕자의 정치 기반을 튼튼하게 하기 위함이신가 했습니다."

"왕자의 정력이 예사롭지 않다는 소문이 쫙 퍼졌습니다."

"여자들이 왕자 궁에 들어갔다 나오면 얼굴이 확 핀답니다."

왕자의 심상치 않은 정력에 대한 사실은 금방 귀족들에게까지 퍼졌다.

왕이 왕자의 궁에 집어 넣을 여자를 구하느라 하루 종일 바쁘다는 소문도 귀족들에게 퍼졌다.

"전하께서 아주 기세등등하시겠습니다."

"뒤늦게 찾은 아들이 건강할 뿐만 아니라 정력까지 좋다 하니 어찌 기쁘지 않겠습니까. 솔직히 나도 좀 부럽더이다."

왕국은 소수의 남성이 권력을 쥐고 살아가는 세상이다.

남성이 잘 태어나지 않은 탓에 대를 잇는 것이 후계의 가장 큰 의무일 정도였다.

귀족들도 이러한데, 하물며 씨가 귀한 왕족은 오죽할까!

정력은 왕위를 이어 받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그런데 왕자가 무려 색사를 4시간 동안 했단다.

"솔직히 처음에 4시간 동안 그걸 했다는 말에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왕께서 왕자를 너무 과보호하신다고 생각했죠."

정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후계자로서 훌륭한 능력을 갖고 있다는 의미.

시간이 얼마 없는 왕이 왕자를 위해 무리수를 뒀구나!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어처구니없는 4시간 색사에 대한 소문.

귀족들이 쉬이 믿기 힘든 일임은 확실했다.

하지만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는 법.

4시간 내리 색사를 했으니 후궁이 버틸 리가 없었고, 당연히 기절한 후궁을 궁인이 안아서 후궁전으로 옮겼다.

그 광경을 본 수많은 목격자들에 의해 4시간 색사가 진실임이 드러난 것이다.

가히 전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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