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712 - #96. 진해솔 (16)
"지금의 왕자는...건드릴 수 없습니다. 건드렸다간 감당 할 수 없는 역풍이 불어올 겁니다."
"......"
"......"
금방이라도 승기를 거머 쥘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귀족들의 생각이 빗나갔다.
정력을 자랑하고 있지만, 저게 얼마나 가겠냐던 귀족들의 입이 다물렸다.
본격적으로 왕자의 기세를 꺾고, 다시 주도권을 빼앗아 오기 위해 준비를 다 해놨지만 정작 그것을 실천 할 수가 없었다.
아무 의미 없는 걸 왜 하겠는가?
'해봤자 지금의 왕자를 무너트릴 수 없다.'
왕자의 예상치 못한 정력이 권력이 되어가고 있었다.
한 번도 있어 본 적 없는 특별한 권력.
"미친 놈입니다. 하루에 세 명까지도 침실에 들인다고 합니다. 이건 우리한테 시위하는 겁니다.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고요."
"세 명을 실신시킨다니...그런 부러운 아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정력이 정상일 리 없습니다."
"마법사를 의심하시는 겁니까?"
"마법사 뿐만이 아닙니다. 연금술사도 의심해 봐야 합니다."
"그런 쪽의 도움을 받는 건 금기 되는 일이 아닙니까?"
마법이나 연금술사에 의해 정력을 높이는 것은 과거 많은 이들이 해왔던 일이다.
하지만 그 방법을 사용했을 때 오는 부작용이 심해 제국에서는 마법사나 연금술사의 도움을 받아 정력을 올리는 것을 금하고 있었다.
"맞습니다. 그걸 밝혀내야 합니다!"
"애초에 왕족의 씨가 맞는지도 의심이 됩니다. 그런 정력은 어떤 왕족도 누리지 못한 축복이지 않습니까? 뜬금없이 나타난 왕자에게 그런 축복이 갔다는 게 너무 의심 됩니다."
왕족의 부족한 후계 생산 능력은 오랫동안 이어져 온 제국의 골칫거리였다.
그런데 갑자기 튀어나온 왕자가 제국의 가장 큰 골칫거리를 해결해놨다.
태생부터 정력이 강했다고 하는데, 누군가의 도움을 받은 게 아닐지 궁금했다.
'왕자가 어떻게 그런 능력을 가졌는지 알 수만 있다면...'
귀족들은 본인이 느끼는 탐욕스러움을 감추기 위해 부지런히 눈알을 굴렸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언제까지 손을 놓고만 있으실 겁니까! 차라리 독이라도 써서 왕자를 죽여버리는 게 속은 시원하겠습니다!"
"에헤이! 말씀이 너무 심하지 않습니까. 조심하십시오."
"크흠! 그만큼 답답하니 하는 소립니다."
귀족들은 왕자의 죽음을 서슴없이 논하며 떠들어댔다.
왕자가 후계 생산에 적극적인 이상 어떤 죄를 가져와도 왕은 왕자에게 죗값을 물리지 않을 것이다.
왕족은 후계를 생산할 능력이 확실 할 수록 권력을 얻는다.
그런 점에서 왕자에게 흠을 만들어봤자 모두 상쇄 될 뿐인 것이다.
귀족들이 수작을 부리려던 걸 멈춘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기껏 준비한 것들인데...이대로 버리기에도 아깝고...'
뿐만 아니라 왕자는 한 번 안았던 영애들에게 다시 자기 방에 들어와도 된다는 허락을 했다고 한다.
왕족에게, 특히 후계자가 될 왕자나 왕에게 처녀를 바치는 것은 왕에 대한 충성이지만 그 이후의 잠자리에선 의무도 명예도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발언을 했다는 건...
'의무가 없어도 한 번 밤을 보낸 영애들이 자신을 찾아 올 거라는 엄청난 자신감을 갖고 있다는 의미이지.'
이 어처구니없는 자신감은, 황당하게도 귀족 영애들에게 통했다.
요즘 왕자의 궁에 영애들로부터 온 편지가 매일 가득 찬다고 한다.
그 편지에는 당연히도 밤에 왕자의 궁을 방문하고 싶다는 청이 담겨 있었고 말이다.
왕자 궁 궁인들은 매일 쏟아지는 편지와 청탁에 정신을 못 차린다고 한다.
"다들 왕자를 너무 무시하시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거 아십니까? 왕자가 궁인들에게 그랬답니다. 적당히 받아 먹으라고요."
"...청탁을 말입니까?"
"예. 왕자는 지금도 왕으로부터 많은 걸 배우고 있습니다. 벌써 제법 노련한 티를 내지 않습니까? 애석하지만 왕자는 꽤 많은 부분에서 왕을 닮았습니다."
맑은 물에선 물고기가 살 수 없다는 말은 왕궁을 설명하기 매우 적합한 얘기다.
왕자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청탁을 받는 궁인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청탁을 받은 것에 벌을 줘봤자 다음으로 일을 맡은 궁인이 또 다시 뇌물을 받을 테니 근절이 불가능한 것이다.
'애초에 들어오는 청탁을 받지 않는 것조차 그들에게 허락 되지 않으니까.'
왕자가 멍청했다면 청탁을 한 궁인을 혼냈을 것이다.
하지만 왕자는 청탁을 받은 궁인을 눈 감아주고, 적당히 해먹으라며 넌지시 경고를 남겼다고 한다.
그렇게 목숨을 구명 받은 궁인은 왕자의 경고대로 적당히 청탁을 받으며 왕자에게 충성을 바칠 것이다.
어찌 보면 귀족들보다 더 주의해야 할 존재가 바로 궁인이다.
그들은 왕족의 가장 최측근에 머무르며 일거수일투족을 함께한다.
그렇기에 궁인의 배신은 왕족에게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왕자가 점점 건드릴 수 없는 위치에 올라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역시 왕께서 옆에 끼고 도시니 금방 핏줄의 힘이 깨어난 겁니다."
"지금 이곳에서 왕자 칭찬을 해봤자 좋아 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끝까지 왕자에게 대응하려던 귀족파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본인 스스로도 흔들리고 있는데, 다른 귀족들이야 오죽하겠는가?
내 마음이 저들 마음일 것이고, 저들 마음이 내 마음일 것이다.
"아예 이렇게 된 거, 왕자를 연금술사랑 엮어보는 건 어떠십니까? 정력으로 우리를 흔들고 있는데, 그걸 역으로 이용하자는 겁니다."
왕족이 연금술사와 결탁하여 후계 생산 능력을 꾸며냈다! 라는 식으로 몰아가자는 거였다.
지금 왕자를 건드릴 수 있는 부분은 그것밖에 없었기에 귀족들 모두 마지못해 동의를 해왔다.
"헌데 왕도 이를 모를 리 없을 겁니다. 분명 수를 써놨을 텐데 어찌 누명을 씌운단 말입니까?"
"아직 왕자는 궁인을 모두 포섭하지 못했습니다. 왕자의 식사에 적당히 손을 쓰는 것 쯤 아무것도 아니지요."
그리고 왕자의 품에 안긴 궁인 몇 명을 섭외하여 왕자가 잠자리에서 이상한 행동을 했다고 몰아가면 됐다.
죄가 없으면 죄를 만들어 추궁하면 된다는.
귀족들에겐 문제 될 것 없는, 숨 쉬는 것처럼 당연한 모략이 만들어진 것이다.
왕자의 예상치 못한 정력에 당황해 어버버하던 것도 그저 왕자에게 주어진 찰나의 자비였을 뿐.
귀족들이 이내 왕자를 물어 뜯기 위해 본격적으로 힘을 쓰기 시작했다.
♧ ♧ ♧
"오늘은 누가 들어오지?"
"아오트 영애께서 약속을 잡으셨습니다."
간단하게 이름만 말한 것으로 보아 나와 한 번 이상 잠자리를 한 영애인 게 분명한데, 솔직히 이름만으로는 얼굴이 기억나질 않는다.
여자를 이렇게까지 무지성으로 안아 본 게 처음이어서 적응하기가 힘들었고, 이젠 저 영애가 이 영애 같아 보이고 이 영애가 저 영애 같아 보이는 등의 착각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냥 레이스 달린 옷을 입고 나타나면 여자겠거니 하는 거다.
그리고 내가 할 일은 하나였다.
아래를 도킹하는 것!
레이스 달린 치마를 훌떡훌떡 벗겨버리고, 은근히 다양한 여자의 음부 안에 내 성기를 쑤셔 넣는 거다.
초반에는 이래도 되나 싶었는데, 이것도 하다 보니 익숙해져서 이젠 처음 보는 여자와 아래를 합치는 게 별스럽지 않게 느껴졌다.
내가 그동안 왜 이렇게 까탈스럽게 굴었다 싶기도 하다.
해보니까 정말 별 게 아니구나 싶었거든.
감정이 오가지 않는 섹스는 남기는 게 아무것도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현재를 즐기는데는 꽤 탁월했다.
그냥 무아지경으로 섹스를 하면서 기분 좋음을 즐기는 거다.
'나...지금 상태가 별로 안 좋은가?'
그나마 다행인 것은 분신체들에게서 전달 되어지는 기억들이 내 정신을 깨워주고 있다는 점이다.
만약 분신체들이 전달해주는 기억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곳의 삶에 금방 물들어버렸을 것이다.
손만 뻗으면 여자가 가랑이를 벌려준다.
궁인들은 나에게 안기지 못해 안달이 나 있었고, 주변에선 내가 여자를 취하는 것을 만류하기는커녕 오히려 밤마다 여자를 넣어주며 기뻐했다.
'이게 왕자인지 종마인지 모르겠단 말이지.'
초반에 뭣도 모르고 나와 잠자리를 하고 버려질 여자의 신변을 걱정했었는데, 그 여자들을 걱정 할 게 아니라 나 스스로를 걱정했어야 하는 게 맞았던 것 같다.
그들이야 하룻밤 즐거운 놀이를 했다로 넘길 수 있지만, 내 입장에선 그럴 수가 없으니 멘탈이 실시간으로 갈려버리는 것이다.
'지독하다. 지독해.'
언제까지 내 침소에 여자를 밀어 넣을지 궁금했는데, 아무래도 내가 먼저 항복 선언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왕은 세상의 모든 여자를 다 끌어다가 내 침대 위에 올려 놓을 작자다.
"혹 내 씨를 벤 여인은 없다던가? 시간이 꽤 흘렀는데 소식이 없군."
그동안 안은 여자들만 해도 수 십이 넘어간다.
코인을 벌러 이곳에 온 건 맞지만, 미션을 깨는 것 이외의 수입이 꽤 되는 것이다.
이 정도로 여인을 안았으면 누구 한 명은 임신을 했어야 하는 게 옳다.
"송구하옵니다."
궁인이 내 물음에 면목이 없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임신이 된 여인이 없다는 의미인 것 같다.
"뭐 어쩔 수 없지. 임신이 쉬운 일은 아니니까."
아니면 아직 기간이 오래 되지 않아 임신이 검증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곳 왕족들은 임신 자체가 굉장히 드물고 힘들다고 하다 보니, 단번에 임신이 되는 건 역으로 의심을 불러 올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임신에 대한 걸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는 없지.'
앞으로도 계속 여자를 안게 될 것이다.
어쩌면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 않을까?
그만큼 시도 횟수가 압도적으로 높을 테니 말이다.
그 중에 하나 쯤은 반드시 걸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처음으로 안고, 이후로도 몇 번이고 잠자리를 함께 했던 왕의 후궁이 내 아이를 임신했다는 소식을 전달 받을 수 있었다.
이 세계에서 내 피를 이은 첫 아이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귀족들이 나를 고발하는 상소문이 왕에게 올라갔다.
왕자가 불경한 힘의 도움을 받아 왕위를 물려 받고자 한다는 황당한 고발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