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713 - #96. 진해솔 (17)
"왕자는 왕위에 대한 탐욕으로 본인의 능력을 과대포장 하기 위해 사적으로 연금술사와 결탁하였사옵니다."
"왕족의 가장 큰 능력은 자손을 생산하는 능력입니다. 왕자는 자신의 부족한 능력을 메꾸기 위해 연금술사와 결탁한 것이옵니다."
귀족들이 왕의 앞에 시립하여 왕자가 저지른 가짜 죄를 자랑스레 늘어놓는 것이다.
"왕자가 연금술사와 결탁했다는 증거가 있는가."
왕은 귀족들이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 전부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무료하게 물었다.
말했다시피 연금술사나 마법사의 도움을 받아 정력을 보완하지 않는 이유는 그 부작용이 이미 심각하다는 것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일단 연금술사가 제조한 약을 복용해서 정력을 키웠을 때 알려진 부작용은 섭취자의 탈모다.
하지만 부작용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연금술사는 대가를 주고, 결과를 받아내는 학문.
정력을 얻기 위해서는 그만한 대가를 내어주어야만 했고, 그 대가는 복용자가 지는 게 아니었다.
"왕자님과 잠자리를 가졌던 여자 중 몇몇에게서 생명력을 대량으로 소실 당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귀족이 빼도 박도 못할 증거를 제시했다.
왕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큰둥하게 말했다.
"참으로 훌륭들 하구만. 왕자에게 안긴 여자들 꽁무니를 쫓아다니면서 말이야."
"전하, 연금술사가 제작한 약으로 얼마나 많은 여인들이 고통을 받아왔습니까? 금지 된 약을 복용한 자는 왕족이라 하여도 처벌을 받아야만 하옵니다."
이 약이 금지 되지 않았을 때, 수많은 여인들이 이 약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때문에 연금술사와 결탁해 정력을 높이는 게 금지가 된 것이다.
그 효용성이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래서 왕자를 꼭 조사해야겠다? 정력이 비정상적이니까."
"증거가 명명백백하옵니다. 왕자님께서 결백하다면, 그 결백을 증명하셔야 하옵니다."
왕위가 걸린 일이니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귀족들의 말은 일리가 있는 소리였다.
왕도 귀족들이 증거를 들이민다면 조사를 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왕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있는 거였다.
"짐은 그대들이 이번 일을 감당 할 자신이 있는지가 궁금하구나."
"...예?"
"만약 왕자에게 누명을 씌우는 자가 있다면, 짐은 결코 이 일을 좌시하지 않을 거라는 뜻일세."
"!!"
"이 일에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다면!!"
쾅!!
왕이 의자 손받이를 주먹으로 내려치며 지금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를 귀족들에게 알려주었다.
꿀꺽-
그제야 귀족들이 알게 된 것이다.
무덤덤하게 반응을 하고 있어도 왕은 지금 엄청나게 분노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잘못 건드렸다! 라고 후회를 해봤자 이미 늦은 상황이다.
"만약 왕자가 연금술사의 것을 사용했다 해도 그 아이에게 죄를 물을 수는 없다. 오히려 아직 모르는 바가 많은 왕자에게 접근한 연금술사를 벌하면 될 일이다."
"전하! 연금 술사와의 결탁은...!"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왕의 후계다! 왕위가 흔들린다면 수많은 백성들이 혼란하고 고통에 빠져든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왕자에게 수작을 부린 연금술사에게 죄를 묻는 것이 옳지 않은가!"
왕은 왕자가 죄를 지었어도 그를 벌하지 않겠노라 선언했다.
귀족들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반발을 해봤지만, 왕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애초에 연금술사의 약을 쓴 것이 맞기는 한 겐가?"
"전하, 그녀들은 처녀를 바친 충신들이옵니다!"
"짐의 앞에 있는 자들 중 충신이 아닌 자가 있던가?"
충신이라고 말하는 주제에 왕의 심기를 거스르고, 건방지게 왕자를 노리고 있는 귀족들을 꼬집는 말이었다.
왕에게 진심으로 충성했다면 왕자를 공격할 리가 없지 않은가?
이미 왕은 왕자에 대한 공격을 본인에 대한 불경으로 보고 있었다.
'젠장, 잃은 게 너무 많군. 이렇게 된 이상 끝까지 처벌을 주장해야 된다!'
시작부터 너무 많은 걸 잃었다.
이대로 그만둔다고 해도 귀족들에게 남는 건 없을 것이다.
그러니 끝까지 계획했던 대로 움직여야 했다.
"정말 왕자가 아무것도 모른 채 연금술사의 약을 쓴 건지, 아니면 무언가 다른 목적으로 그 약을 쓴 건지 확인을 해봐야 하옵니다!"
"왕자를 조사할 수 있도록 윤허 하여 주십시오!"
"전하께서 왕자의 과거를 조사하지 말라 하시어 하지 않았사옵니다. 하지만 연금술사의 약을 썼다는 증거가 나온 이상 더 이상 과거를 덮어 둘 수 만은 없사옵니다!"
"수상한 왕자를 조사해야 하옵니다!!! 전하!!!"
필사적으로 귀족들이 외쳤다.
살아남기 위해 하나같이 뜻을 모아 외치니 왕은 머리가 지끈거렸는지 이마를 짚었다.
"연금술사와 피해를 입었다는 귀족 영애를 짐의 앞에 데려오라. 직접 심문할 것이다."
"전하..!"
"다른 말은 받지 않겠다!"
고양이에게 쥐를 맡긴들 제대로 지켜지겠는가?
왕은 이를 잘 알았기에 직접 심문하겠다고 선언을 했다.
지금은 왕자의 편이 되어 줄 귀족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왕자를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은 왕인 자신 뿐.
귀족들은 왕의 병세가 걱정 된다며 억지로 생각해주는 척 직접 심문하는 것을 반대해왔다.
'짐이 죽는 걸 누구보다 기다리고 있는 것들이 말은 잘 하는군.'
물론 그들의 청을 끝까지 받아주지 않은 왕은 귀족들이 물러나고 왕자를 불러들였다.
자신이 가르쳐준 것을 빠르게 습득하고, 뛰어난 정력을 보여주는 기특한 아들이다.
그런 아들이 굳이 연금술사 약을 쓴다?
애초에 그 존재를 알고 있기는 한 건지 의심이 들었다.
"왕자."
"네."
"혹 연금술사를 만난 적 있느냐?"
"연금술사라면...근래에 제 궁에 방문을 한 연금술사 한 명이 있기는 합니다."
"그자에게 선물을 받았느냐?"
"예, 대부분 귀족 분들이 선물을 가져오셔서 받은 적 있습니다."
"뭘 받았는지는 기억 못 할 테고?"
"...워낙 주시는 게 많은지라."
연륜이라는 게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왕은 왕자가 결백하다는 것을 확신했다.
왕자에게 어딘가 의뭉스러운 곳이 있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묻어둘 만큼 왕자의 존재가 그에게 필요했다.
'신께서 이 아이를 짐에게 내려주신 것이다.'
사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왕은 왕자가 자신의 앞에 오기 전 꿈을 꾸었다.
그 꿈 속에서 왕은 신을 만났고, 후계를 제대로 잇지 못해 왕국이 무너지는 미래를 보게 됐다.
꿈 속에서 왕은 오열했다.
자신이 후계를 제대로 세우지 못해 왕국이 무너졌으니 그 죄가 크지 않겠는가?
구슬프게 우는 왕에게 신께서 마지막 기회를 내려주셨다.
그의 피를 이은 후계자를 보내주겠다 하신 것이다.
'이 아이는 짐의 아들이자, 신의 아들이다.'
귀족들이 온갖 협작질로 신의 아들을 모략하려 한들, 왕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왕국의 미래가 이 아이에게 달렸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남들에겐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정력도, 신의 아들이기에 가능한 일.'
귀족들은 자신들이 갖지 못한 능력을 왕자가 갖고 있다는 것에 시기 질투하고 있었다.
'이번 기회에 왕자를 인정하지 않은 귀족들을 싹 쓸어버려야겠군.'
지금의 귀족들은 왕의 은혜를 받아 편리함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충성보다 제 이득을 챙기고 있었다.
왕은 귀족들의 그런 방만한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귀족이라면 누구나 왕을 두려워 해야만 한다.
그것을 잊었다면, 다시 되새겨 주면 되는 것이고 말이다.
"왕자야."
"예."
"너는 짐의 아들이다."
"예."
새삼스러운 것을 말한다는 듯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왕자가 웃음을 보였다.
"그렇기에 귀족들은 너를 공격하고, 어떻게 해서든 네 얼굴에 오물을 끼얹으려 할 거다."
"좋은 분들도 많으십니다."
"네가 이리 자비로우니 걱정이 크구나. 내가 언제까지 널 지켜줄 수 있을지 모르거늘..."
왕은 왕자의 많은 것이 흡족했지만, 자비로운 부드러운 성정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왕은 왕자가 귀족들의 진실 된 모습을 보게 된다면 자비로움도 많이 줄어 들 것이라 생각했다.
"네 세력이 단단해지기 전까지, 귀족들은 어떻게 해서든 널 무너트리기 위해 네 멱살을 잡고, 머리채를 잡아 밑으로 끌어당길 거다."
"......"
"백성들에게 자비를 보일지언정, 귀족에게 자비롭지 말거라. 그들은 짓밟아야 너에게 존중을 보일 거다."
"짓밟...으라고요?"
왕의 말에서 무언가를 느꼈는지 의문을 보이던 왕자가 제법 예리하게 왕에게 질문을 해왔다.
"혹시 귀족들이 저한테 무슨 짓을 한 건가요?"
"그래, 슬슬 너에게도 귀족들을 어떻게 다루면 되는지 가르칠 때가 되었구나."
왕은 당황하는 왕자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어주면서도 서늘하게 냉기를 담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사람들이 저한테 어떤 짓을 한 건지 알고 싶습니다. 혹시 방금 물으셨던 연금술사에 관련 된 일인 가요?"
"그래, 네 짐작이 맞다."
"그 사람한테 받은 선물이 문제가 됐습니까? 따로 선물을 풀어 본 적이 없어서 창고에 모아뒀으니 지금 당장 가져오라 하면 가져 올 겁니다."
"아니다. 아마 그 선물은 이미 사라졌을 거다."
"사라져요?"
궁인들이 관리를 하고 있는 곳이니 그들을 이용한다면 얼마든지 선물 하나는 빼돌릴 수 있었을 것이다.
"연금술사 약에 대해 아는 게 있느냐?"
"연금술사 약이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럴 수 있다. 과거 귀족들이나 쓸 수 있는 귀한 약이었으니. 연금술사 약은 과거에 귀족들이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해 사용하던 약이다. 하지만 지금은 금지 된 약이기도 하지."
"...제가 그 약을 복용했다는 누명을 쓴 거군요."
"그래. 네 비정상적인 정력이 연금술사 약 덕분이라고 주장하더구나. 그리고 네가 그때 만났던 연금술사의 선물은 누명의 증거로 쓰이겠지."
왕자가 곰곰이 생각에 잠기더니 물었다.
"그 약이 왜 금지 된 건가요? 그리고 진짜 제가 복용을 한 건가요? 저도 모르는 사이에."
"맞다. 한 번쯤 복용을 했을 거다. 네 음식에 은밀하게 약을 넣으면 찾기 힘들 테니 말이다. 연금술사 약은 상대하는 여자의 생명력을 빼앗아 정력으로 대체하는 거다. 많은 희생이 있고서야 금지 된 약이기도 하지. 해서 이 약에 한해서 왕족도 처벌을 받을 수가 있다."
귀족들이 왕자를 압박하기 위해 꾀를 잘 냈다.
왕자의 예상치 못한 정력에 기뻐하느라 미처 왕이 신경 쓰지 못한 부분을 공략한 것이기도 하다.
"그럼 저는 처벌을 받아야 하는 건가요?"
왕자 입장에서는 억울하기 그지없는 상황일 것이다.
"귀족들은 네게 죄가 없음을 증명해 내라고 말하고 있다."
"......"
"하지만 증명해야 하는 건 네가 아니라 귀족들이 될 거다."
그렇게 말해오고 있는 왕은 군주 그 자체였다.
왕자가 자신의 얼굴을 홀린 듯이 우러러보고 있음을 느낀 왕이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왕자에게 귀족들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알려줄 생각에 벌써 마음이 설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