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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729화 (717/849)

Chapter 729 - #96. 진해솔 (33)

"오랜만에 뵙네요."

"흑...! 정말 많이 뵙고 싶었어요."

영애가 찰랑찰랑 고운 머리를 흔들며 단숨에 달려와 품에 안긴다.

기꺼이 품에 그녀를 안아주고, 반겨주었다.

드디어 나와 밤을 보냈던 영애가 다시 내 궁을 찾은 것이다.

그것은 귀족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었다.

"잘 지냈어요?"

"아니요. 어떻게 잘 지낼 수 있겠어요. 왕자님을 못 만나는데..."

훌쩍거리고 있는 그녀의 눈빛에 진심이 가득하다.

내 예상대로 가문에 의해 나를 만나러 오지 못한 그녀들이 마음 고생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잘 지냈어야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었을 텐데."

"죄송해요. 만나러 오고 싶었는데..."

"이해해요. 걱정하지 말아요."

"왕자님이 없는 시간이 지옥에 떨어진 것만 같았어요. 괴롭고 그립고...영영 왕자님을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너무 힘들었어요."

한참 동안 그녀는 내 품에 안겨 눈물을 쏟아냈다.

"어쩐지 그래서 얼굴이 반쪽이 된 거였군요. 차라리 잘 지내지 그랬어요. 내 걱정 하지 말지."

그녀는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훨씬 초췌해진 상태였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그녀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매만졌다.

"어떻게 걱정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왕자님은 제가 밉지 않으세요?"

"내가 영애를요? 왜 그런 말을 해요?"

"왕자님이 어려울 땐 발 길을 뚝 끊었다가, 혼자서 일을 해결하시고 나서 또 슬그머니 다시 나타난 거잖아요. 누가 봐도 절 나쁜 년이라고 욕할 거에요."

"가문에서 그렇게 하라고 강요하는데, 힘없는 영애께서 뭘 어떻게 하겠습니까? 제가 그 정도도 모르는 멍청한 사람 인 줄 알아요?"

나도 깨끗한 사람은 아니다.

그녀만 날 이용하는 게 아니라 나도 그녀를 이용하고 있었다.

피차 다를 바 없는 상황이라는 거다.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는 거니까 그나마 양심의 가책을 덜 느끼고 있는 거였다.

"가문에서 절 이용하라고 하면 마음껏 이용해요. 상관없습니다. 그 정도도 견디지 못 해서야 나라를 어떻게 다스리겠습니까?"

"왕자님..."

영애가 내 말에 감동을 했는지 눈가를 촉촉하게 적신다.

"미안해 하지 말아요. 그리고 오랜만에 만난 건데 적어도 지금은 우리 두 사람이 어떻게 이 시간을 행복하게 보낼지만 생각합시다."

영애는 내 말에 크게 감동을 받았는지 몽롱해진 표정으로 나를 향해 마음을 고백해왔다.

"사랑해요, 왕자님."

"고마워요."

사랑한다는 말에 보답을 해줄 수는 없었다.

그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그녀들이 아니다.

마음을 보답할 수 없으니 그 대신으로 몸을 내어주기로 했다.

금방이라도 나를 덮치고 싶어 하는 그녀를 기꺼이 안아 들었다.

우리가 향하는 곳은 당연하지만 침대였다.

잔뜩 몸이 달아 있는 영애의 옷은 가볍게 손만 가져다 대도 훌렁 벗겨질 만큼 얇은 옷이었다.

그만큼 작정하고 온 거다.

나는 그녀의 바램을 이뤄 줄 생각이었다.

나를 만나지 못하는 시간 동안 많이 괴로웠을 텐데, 그 괴로움을 오늘 밤에 완벽하게 해소 시켜줄 생각이었다.

♧ ♧ ♧

한 명이 스타트를 끊자마자 다시 영애들의 발길로 왕자 궁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왕자님~ 보고 싶었어요!"

"왕자님!!!"

나를 보며 보고 싶었다며 적극적으로 안겨오는 영애도 있고.

보자마자 눈물샘이 터져서 펑펑 울어버리는 여인도 있었다.

그들 모두 내게서 바라는 건 환상적인 밤이었다.

다시 내 궁에 문란한 밤이 찾아온 것이다.

헬리아의 말에 따르면 귀족 영애들이 발길을 끊었을 때 기회를 봐서 내게 승은을 입고 싶어 하던 궁인들의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한다.

아무리 그래도 당장 궁인들을 귀족 영애들처럼 안을 수는 없었다.

'궁인들은 나중에.'

지금은 내 명령을 들어 줄 궁인들이 한 명이라도 더 있어야 한다.

헬리아와 소피아가 궁인들 중에 가장 똑똑하고, 도움이 되는 아이들이었는데 내가 그녀들을 안는 바람에 더 이상 그녀들의 도움을 바랄 수가 없어졌다.

신분이 보통 궁인보다 높아진 그녀들은 다른 궁인들과 친하게 지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다른 쪽으로 내게 도움이 되고 있으니 상관이 없긴 하다만...

'그래도 정보를 물어왔을 때가 좋긴 했으니까.'

두 사람만 안았는데도 이 정도인데, 다른 궁인들에게 손을 대면 어떻게 되겠는가?

생각 없이 궁인들을 안았다가는 새로운 궁인들을 추가로 들여와 내 사람으로 만드는 과정을 또 다시 거쳐야 하는 귀찮은 일이 생길 수도 있었다.

새로 궁인이 들어올 때, 오드만 공의 첩자가 들어올 확률도 있었다.

'무조건 들어오겠지.'

그래서 궁인을 최대한 건드리지 않은 거다.

그들을 다시 건드리는 건 적어도 왕위를 이은 후가 되어야 했다.

그리고....

귀족들에게 경고했던 일주일이 훌쩍 지나면서 나는 본격적으로 내 편인 귀족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왕자님, 저는 스콜란 남작으로 왕자님과 뜻을 함께 하기 위해...!"

"푸에르토 백작입니다. 왕자님께서 뜻을 함께 할 이를 찾으신다 하시어..."

꽤 많은 숫자의 귀족들이 나에게 넘어왔다.

다만 의외였던 것은 오드만 공을 지지하는 귀족들이 생각보다 내게 넘어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부분 중립에서 상황을 지켜보다가 상황이 달라진 것을 확인하고 내 쪽으로 들어 온 귀족들이었다.

그들 모두 내가 특이한 걸 제작할 수 있다는 점에 흥미를 보이고 있었다.

"왕자님은 어떻게 그런 능력을 갖게 되신 겁니까?"

"계약을 무효화 시키는 것 외에 다른 종류의 것을 제작할 수 있지는 않으십니까?"

그런 이들에게는 이것만 가능하다고 한정 짓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른 걸 제작할 의향이 없다고 대답을 해놓기는 했다.

나는 진심으로 한 말이지만, 그들 입장에서는 내가 한 말을 그대로 듣진 않을 것이다.

지금은 의향이 없어도 나중에는 그러고 싶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겠지.

내 능력을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 하는 귀족들 모두 그것으로 본인들이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는 눈치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더 쓰는 건 코인 아깝지.'

다른 물건들이 계약 무효화가 가능한 '저주받이 인형'보다 더 큰 효과를 낼 상품이 있을 거란 생각이 안 든다.

물론 효과가 더 좋은 건 있을 거다.

다만 그만큼 코인이 비싸지 않겠는가?

최저의 가격으로 최대의 효율을 뽑아내겠다는 게 현재 내 결심이다.

"왕자님, 오드만 공을 지지하는 귀족들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리고 그렇게 모인 귀족들은 오드만 공을 지지한 귀족에게 어떤 보복을 가할지 굉장히 궁금해 했다.

"글쎄요. 아직 구체적인 생각은 해보지 않았는데, 여러분들의 도움이 있다면 좋을 것 같긴 하네요."

"하하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오드만 공을 지지하는 괘씸한 귀족들의 약점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저도 아는 게 있습니다! 제게 그 인형을 주신다면 일을 한 번 꾸며보겠습니다."

나한테 인형이라도 맡겨 놓은 것 마냥 귀족들 모두 내게서 저주받이 인형을 바랐다.

나를 위해 인형을 쓸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 본인 스스로에게 써먹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귀족들이 나를 지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았기에 지금은 쪼잔하게 굴지 않기로 했다.

이러기 위해 궁인들을 안았던 것이기도 하니 말이다.

"마침 잘 됐네요. 여러분들을 위해 선물을 준비해둔 게 있습니다."

"선물이요?"

지금 이 타이밍에 선물이라는 말을 했으니 눈치 없는 사람도 알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충 예측은 하셨죠?"

꿀꺽-!

"한 분 당 두 개씩 준비했어요."

"오오오!!!"

"이, 이렇게 귀한 것을..."

"이것들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각자의 선택에 맡기겠습니다. 다만 이걸 이용해서 제게 이익을 가져다 준다면, 그에 합당한 보상을 드릴 생각입니다."

이렇게 많은 인형을 단 번에 풀어버리면 오드만 공의 손에 인형이 들어갈 확률이 높다.

그걸 알면서도 이런 일을 하는 거였다.

그들이 인형을 확보한다 해도 그걸로 다른 무언가를 알아낼 순 없을 테니 말이다.

괜히 인형에 대해 파헤치려고 하다가 귀한 인형만 망가질 것이다.

'코인으로 구매한 물건을 함부로 훼손, 변형시켰을 때 저주를 받을 수 있으니까.'

내 사람들이라고 그런 짓을 하지 않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에게 경고를 해주기로 했다.

"다만 오드만 공께서 제 인형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같아서 인형에 손을 써뒀습니다. 여러분들은 혹시 실수를 해서 피해를 입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인형에 손을 써뒀다는 건...?"

"이 인형을 본래의 목적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건들면...많이 곤란해질 겁니다."

정확히 어떤 보복을 당할 거라는 건 알려주지 않았다.

그걸 알려줘도 건들 놈은 건들 게 분명하지 않은가?

몇 번 당하고 '이건 좀 아닌데...' 싶으면 그만둘 거다.

그리고 생각이 좀 있는 사람이라면 이 인형을 바로 본인이 사용하거나 비싼 값에 넘겨버리기 전에, 좀 더 많은 보상을 받기 위해 이용을 할 것이다.

그리고 내 말의 의미를 깨달은 몇몇의 귀족들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역시 적을 상대할 때 개를 푸는 것만큼 좋은 게 없지.'

여전히 오드만 공을 지지하는 귀족들은 다른 귀족들의 수작질에 당해 곤욕을 치르게 될 것이다.

지금 당장도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게 있다며 인형을 달라고 아우성이지 않았는가?

인형을 꽤 풀긴 했지만, 내가 아는 귀족들의 탐욕이라면 두 개 정도로는 부족해도 한참 부족할 것이다.

그리고 내 이런 예상은 기가 막히게 들어 맞았다.

'이놈들, 같은 귀족이라고 봐주는 게 전혀 없네.'

내가 인형을 귀족들에게 뿌린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귀족 한 명이 죽었다는 흉흉한 소식이 전해졌다.

사지가 잘리고, 혀와 눈이 파이고, 심장이 도려내지는 끔찍한 죽음이었다고 한다.

누가 봐도 원한에 의한 살인이었다.

범인은 마법사의 도움을 받아 잡혔는데, 죽은 귀족의 비서관이었다.

그녀는 잡히자마자 순순히 모든 범행을 시인하고 법적인 처분을 받겠다고 했다.

그리고 귀족을 왜 죽였는지를 물으니 언급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일'을 당하며 살았기 때문임을 알 수 있었다.

당연하지만 그 '끔찍한 일'은 강제로 서약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계약에 의해 항의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우연히 '인형'을 얻게 되고, 그 인형을 통해 계약을 해지해 복수를 성공시킨 것이다.

당연하지만 이 일로 귀족들 사이에서 난리가 났다

우려하던 일이 실제로 일어났으니 말이다.

그리고 다들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이번 일이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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