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730화 (718/849)

Chapter 730 - #96. 진해솔 (34)

"왕자의 인형이 기어코 일을 냈습니다!!"

"이번 일을 왕자에게 묻는 건 어떻겠습니까?"

"지금은 최대한 왕자를 건드리지 않는 게 최선입니다! 그러다가 인형을 무지성으로 뿌려버리면 어떡합니까!"

다음은 '내가' 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귀족들을 두려움에 빠지게 하고 있었다.

"오드만 공에게 물어봅시다."

"맞습니다. 지금 이 상황을 타개 할 대책이 있는지 물어볼 필요가 있어요."

"저는 위험을 무릅쓰고 오드만 공을 지지할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어허이! 그럼 새파랗게 어린 왕자의 밑으로 들어가자는 겁니까? 그자는 귀족에 대한 존중을 전혀 보여주지 않고 있지 않습니까?"

언제부터 왕족이 귀족에 대한 존중을 보였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귀족들은 힘겹게 쥔 권력을 놓치고 싶지 않아 했다.

원래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는 쉬운 법 아니겠는가?

이번에 선례를 만들어두면 후일에 이를 두고 요긴하게 써먹을 게 틀림없었다.

그렇기에 귀족들은 오드만 공을 지지하는 거였다.

"왕자가 너무 날뛰지 않게 해야 합니다."

"어떻게요?"

"제가 어렵게 어렵게 왕자 쪽에 선 귀족들 명단을 알아왔습니다."

"오오!!!"

"모두들 가문 쪽에 알려서 이들과 얽혀 있는 게 있다면 싹 정리하시고, 가할 수 있는 보복을 모두 하는 겁니다."

"그리고..."

쿵쿵쿵!!

"주인님! 주인님!"

귀족들끼리 긴밀하게 상의를 하고 있는 중인지라 웬만한 일이 아니고서는 들어오지 말라고 전해둔 상태였다.

그걸 무시하고서라도 저렇게 과하게 문을 두드리는 것은 상상도 못할 중요한 일이 생겼다는 걸 의미했다.

"무슨 일이냐!"

"송구합니다. 말씀 중에 방해를..."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어서 말해라.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귀족들 모두 안색이 창백했다.

왕자가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또 다시 귀족의 부고가 전달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됐다.

"그, 그것이...."

아니나 다를까, 시종이 전달해준 내용은 귀족들의 심장을 철렁 내려 앉게 만들기 충분한 소식이었다.

"저, 전하께서 깨어나셨다고 합니다!!"

왕이 깨어났다!

♧ ♧ ♧

"전하!!"

쿨럭쿨럭쿨럭!

"정신이 드시옵니까?"

"흐으음..."

"오랫동안 잠들어계셨습니다. 신관을 어서 부르라!"

서둘러 신관이 달려와 왕에게 신성력을 쏟아 부었다.

신성력으로 완벽하게 정신을 회복한 왕이 잔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짐이 잠들고 생긴 일을 빠짐없이 고하라."

감히 왕의 명령을 거부 할 수 있는 이가 어디 있으랴.

그동안 왕이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궁인이 지금까지 일어났던 일들을 빠짐없이 왕에게 고하였다.

오드만 공이 본격적으로 왕위에 욕심을 드러냈다는 것.

귀족들과 작당하여 왕자를 몰아 붙인 것.

백성들이 갑자기 일어난 흉흉한 사건들의 원인이 왕자라며 손가락질 하기 시작했다는 일까지 모두 빠짐없었다.

연신 못 마땅한, 혀 차는 소리를 내며 듣고 있던 왕은 마지막에 왕자가 귀족들을 몰아붙였다는 것을 듣고 나서야 기분을 풀었다.

"왕자가 혼자서 꽤 고생을 했구나."

"예. 그런 와중에도 하루에 몇 번이고 전하의 병세를 확인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찾아와 곁을 지키곤 하셨습니다."

"하하! 그래, 왕자가 수십 년을 함께 하며 믿고 있었던 동생보다 효심이 깊구나. 애초에 이런 일이 없게 깔끔하게 정리했다면 하지 않았을 고생을 했어."

오드만 공을 유일한 혈육으로 생각해 가까이에 두며 예뻐 했던 왕이다.

그렇기에 오드만 공의 배신이 뼈 아플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냉철한 왕은 쓰러졌다 일어난 이후 동생에 대한 어떠한 미련도 내보이지 않았다.

깔끔하게 아니, 냉정하게 동생과의 지난 시간들을 끊어 내버린 것이다.

이것이 귀족들이 왕을 두려워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부분이었다.

그동안 아무리 좋은 추억과 기억을 쌓아뒀다 해도 한 번 눈 밖에 나면 다음날 바로 목을 칠 수 있는 냉정함을 말이다.

"왕자를 불러오거라. 애비가 깨어났다는 건 알아야지."

"예, 전하."

왕이 깨어났다는 걸 들은 왕자는 할 일을 제쳐두고 왕에게 달려왔다.

그가 잠들었을 때, 홀로 고군분투했다는 걸 들은 왕에게 왕자는 어여쁘고 안쓰러운 아들이었기에 왕은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맞이했다.

"어서 오거라, 왕자."

"전하! 괜찮으십니까?"

왕은 깨어나자마자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자신의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젊었을 적 꾸준히 신성력을 받아 유지했던 몸 상태였다.

헌데 지금은 신성력을 받아도 태반을 몸이 흡수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는 더 이상 몸이 신성력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의미였다.

얼마 남지 않은 생애를 어떻게 보낼지는 왕의 선택이었고, 그는 이미 왕자를 위해 쓰겠노라 결심한지 오래였다.

"왕자야. 이리 가까이 오거라. 많이 야위었구나. 짐이 없어 고생 많았다."

"부끄럽지 않은 아들이 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다만 그게 전하의 마음에 드실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주 잘 해주었다. 너에게는 참 미안한 게 많구나. 좀 더 너를 일찍 만났다면 달랐을 거란 후회가 자꾸만 들어."

"전하..."

아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오라 말하고, 가까이 다가 온 얼굴을 손에 가져다 대고 매만져보았다.

아직 파릇파릇한 젊음이 느껴지는 피부였다.

주름지고, 퍼석해진 자신과는 다른 젊음과 생명력.

왕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이 파릇파릇한 젊은 생명력에게 넘겨주겠다 다짐했다.

죽기 직전까지 놓지 못했던 권력의 '이양'이었다.

"들여라."

왕자와의 해후를 즐긴 후, 왕이 갑자기 바깥을 향해 들어오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바깥에서 우르르 궁인들이 들어왔다.

왕자는 그들을 의아한 표정으로 지켜봤다.

저들을 갑자기 왜 불렀는지도 의아했고, 처음 보는 복장을 입고 있는 이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저들은 누구입니까?"

왕자가 물었다.

"왕궁에서 가장 보기 힘든 자들이니 왕자도 처음 보는 거겠구나. 저들은 왕국의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이고, 저치들은 왕의 내탕금을 관리하는 자들이지."

"내탕금이라면, 전하의 개인 재산을...?"

"그래, 짐에게 시간이 좀 더 있었다면 몰라도, 지금은 시간이 없어 촉박하구나. 왕자는 부지런히 짐의 모든 것을 넘겨 받아야 한다."

"말도 안 됩니다! 이제 막 깨어나셨는데 어찌 이런 일을..."

"왕자가 마음이 안 좋은 모양이구나. 그래도 어쩌겠느냐? 하늘이 내게 내린 시간이 부족하거늘."

사관들이 지켜보는 상황에서 왕은 왕자에게 자신의 재산을 넘겨주고, 왕의 기사들과 맺었던 각종 계약 그리고 귀족과도 얽혀 있는 계약들이 왕자의 손에 쥐어졌다.

다만 그 과정에서 상당수의 계약은 파기가 되어야만 했다.

다른 이에게 양도가 불가능한 계약들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이 계약들은 알고 있는 것 만으로도 큰 효과를 볼 것이다. 네가 이 계약 내용을 몰랐다면, 여기에 적혀 있는 기간이 끝나도 그치들은 뻔뻔하게 자리를 자치하고 자기의 것이라 우길 테니 말이다."

"귀족들이 어째서 전하께 꼼짝도 못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근데 신기하네요. 어떻게 귀족들이 이런 계약에 동의했는지..."

"하하, 탐욕스러운 것들을 다루는데 재물만큼 효과적인 게 없지. 이 계약들 모두 탐욕을 이용해서 얻어낸 것들이다. 이 계약서들을 잘 정리해서 머릿속에 기억해두거라. 그놈들은 가진 걸 빼앗기고 싶지 않아 너와 다시 이 계약서에 서명을 할 테니."

왕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왕자는 그가 한 말의 의미를 야물딱지게 잘 알아들은 상태로 보였다.

"잘 정리해서 머릿속에 잘 기억해두겠습니다."

"왕자야."

"예."

"네게 한 가지 부탁을 좀 해야겠구나."

"부탁이라니요. 당연한 말씀이십니다. 뭘 해올까요?"

"오드만, 그 녀석한테 달라 붙은 귀족 명단이 필요하구나. 어떤 놈들이 네게 그런 짓을 했는지 알아야겠다."

왕의 명령을 들은 왕자가 의외로 선뜻 그러겠다는 말을 하질 않았다.

"알아오는 게 힘든 게냐?"

왕은 왕자가 선뜻 대답하지 않는 것에 실망하지 않고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게 아닙니다. 전하께서 명단을 받길 바라시는 이유가 궁금했습을 뿐입니다."

"짐과 계약을 맺고 가문의 이익을 얻은 녀석이 감히 내 뜻에 반하는 행동을 했으니 벌을 받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명단이 필요한 것이고."

귀족들은 왕에게서 땅 사용권을 받아 각종 이득을 취했다.

귀족이 귀족일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늘의 선택 받은 왕족과 달리 귀족들의 본질도 결국 평민에서 시작했다.

왕이 보았을 때, 본인 스스로를 귀족이라 칭하며 평민들과 선을 긋는 것은 우스운 일이었다.

왕에게 귀족이나 평민이나 모두 똑같이 '백성'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자비로운 왕은 자신의 특별함을 따라하고 싶어 하는 귀족들을 자비롭게 다스려주었다.

일을 잘 하는 귀족을 총애하며 좀 더 많은 부를 얻을 수 있는 땅을 하사해주는 식으로 말이다.

'선을 넘은 놈들이다. 왕자가 얼마나 결단력 있을진 모르겠다만, 적어도 선을 넘은 자들을 다시 쓰는 일은 막아야겠지.'

오드만을 선택해서 왕의 총애를 잃었으니 마땅히 총애로 얻었던 이권들을 빼앗아 오는 것이 옳은 순서인 것이다.

"부탁이라고 하셔서 좀 더 어려운 걸 시키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명단은 이미 갖고 있으니까요."

"그래? 하하하! 왕자가 혼자서도 참 잘하고 있었구나. 기특하다. 기특해."

"다른 걸 시켜주세요. 그것도 잘 해낼 수 있습니다."

"짐이 잠들어 있을 때 잔뜩 고생을 했다 들었는데 무슨 고생을 더 하겠다고. 왕자는 이제 쉬거라. 나머지는 짐이 모두 정리할 거다. 이런 얘기는 이제 그만하고,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듣고 싶구나. 자세히 말해줄 수 있겠느냐?"

대충 얘기를 듣긴 했지만, 왕자에게 직접 지난 날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왕자는 기꺼이 왕이 지칠 때까지 곁을 지키며 대화를 나눴다.

귀족들이 어떻게 행동했는지, 오드만 공과 만나서 어떤 이야기들을 나눴는지, 자신의 능력을 어떻게 밝혔고, 손을 잡은 귀족들은 누구누구가 있는지도 모두 말이다.

왕은 조곤조곤 말하는 왕자를 다정한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결국 기력이 떨어져 신관을 다시 불러야 했다.

그렇게 왕자가 왕의 곁을 지키는 사이.

귀족들의 귀에 왕이 깨어났다는 소식이 들어갔다.

오드만과 그의 세력들이 난리가 날 만한 정보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