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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732화 (720/849)

Chapter 732 - #96. 진해솔 (36)

"형님...!"

"그래, 아우야."

오드만이 궁에 사병을 데리고 들어오고, 왕은 그 틈을 이용해 역으로 그를 덫에 몰아 넣는다.

이미 반역은 시작 되었고, 되돌아가는 건 불가능하다.

오드만 공은 자신과 사병이 기사들에게 포위 되었다는 것을 눈치챘지만, 앞을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포위를 풀기 위해 뒤로 돌아가는 것보다 앞으로 나아가서 왕을 죽이고 왕좌를 차지하는 것이 미래를 위해 더 나은 선택이긴 했다.

아우가 반역을 저질렀다는 말을 듣고 나온 왕과 재회를 한 것이다.

"기어코 여기까지 왔구나. 겁이 많았던 아이가 언제 이렇게 컸는지...하하."

"형님이 나약해지지 않으셨습니까? 지금까지 빈틈 한 번 내보이신 적 없으시다가 갑자기 모든 걸 포기하셨죠. 제가 평생을 갖고 싶어 하던 자리를 쓰레기처럼 버려버리지 않으셨습니까?!"

한 평생 안에 담아오던 열등감을 토해내는 오드만을 왕은 덤덤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우의 열등감을 모르고 있지 않은 터였다.

"네 저열한 열등감을 짐이 귀담아 들어 줄 이유가 있느냐?"

"형님은 언제나 그러셨지요. 위대하고, 완벽하고, 고귀하고! 저도 그럴 수 있었습니다. 형님만 없었다면!"

"나만 없었으면 네가 왕좌를 이었을 것이다? 하하하! 참 내 아우는 여전히 철이 없고 어리구나."

"형님, 지금 이 상황에서까지 날 무시하시는 겁니까? 제 손에 목숨을 잃으실 수도 있습니다."

"너는 여태 살려까지 내 자비로 살아남았으면서도 아는 게 없구나. 이해를 못하고 있어."

"도대체 내가 뭘 이해 못하고 있다는 겁니까!"

뜻 모를 왕의 웃음기 담긴 말에 화가 난 오드만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왕이 킥킥 웃으면서 답답해 하는 아우를 위해 진실을 말해주었다.

"네가 짐의 손에 죽지 않았다는 건 네놈이 그만큼 무능하기 때문이다."

"!!"

왕이 아우를 살려둘 수 있었던 이유.

그가 무슨 짓을 하든 책임을 질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짐이 없었어도 너는 왕이 되지 못했을 거다. 오히려 일찍이 다른 놈의 손에 죽었겠지."

그의 손에 죽은 형제들은 오드만, 저 아이처럼 겁이 많지가 않았다.

"짐이 괜히 직접 손에 피를 묻힌 줄 아느냐? 방해가 될 놈들을 미리 처리한 거다."

"그럼 날 살려둔 건..."

"네가 얼마나 겁이 많은 아이인지 알고 있으니 한 일이다. 지금도 보거라. 네 머리가 희게 세이지 않았느냐?"

겁이 많은 오드만을 봐라.

평생 그를 두려워하며 사병을 육성해 놓고 써먹어 본 적이 없다.

머리가 새하얗게 셀 정도의 시간이 흘렀는데 말이다.

왕이 하는 말에 한치 거짓말도 없음을 느낀 오드만은 치솟는 분노와 열등감을 숨기지 못했다.

새빨개진 얼굴로 오드만이 외쳤다.

"형님은 반드시 내 손으로 죽일 겁니다."

"이미 형제의 피를 수없이 묻혔던 짐이다. 한 명의 피가 더 추가 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건 없겠지."

이성을 잃은 듯 해 보이는 오드만은 왕좌보단 자신을 평생 우롱해 온 왕에 대한 분노만 생각하고 있었다.

"당신의 피로 내 손을 물들여, 평생을 괴롭게 했던 이 지긋지긋한 감정에서 벗어날 것이다. 형님의 일그러진 얼굴을 꼭 내 두 눈으로 봐야겠다! 모조리 참하라! 내가 선봉에 설 것이다!!"

오드만 공이 직접 칼을 들었다.

어느새 왕좌를 둔 싸움이 아닌 형제의 묵은 감정을 해소하는 싸움으로 변해버린 전쟁터.

다만 그 전쟁터에서도 피는 흐를 수밖에 없었다.

전쟁터가 늘 그랬듯, 승리자는 단 한 명뿐이었다.

♧ ♧ ♧

아우의 잘못이니 형인 자신이 끝까지 수습을 하고 가겠다는 의지를 표했던 왕.

그는 자신이 한 말을 지켰다.

그의 열등감을 자극해서 온전히 타겟을 자신으로 만든 왕은 자신의 아우와 피 튀기는 전쟁을 시작했다.

나는 한 발 뒤로 물러나 두 사람의 싸움을 구경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왕이 내게 이번 일에 끼어들지 말라고 말을 해뒀기 때문이다.

'저 노인네, 오늘 이후로 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는 걸.'

아우를 데리고 지옥에 함께 가겠다는 것 같았다.

오드만의 열등감을 자극해서 일부러 흥분하게 만든 왕의 노련한 행동은 본받을 만 한 일이긴 하다만, 저렇게 핏줄과 검을 겨누는 모습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내 자식들은 저러면 안 되는데.'

내 자식들이 욕심 때문에 서로 반목하고 다툰다고 생각하니,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속이 쓰리고 아팠다.

자식 키우는 게 어디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

아무리 좋은 걸 보여주고, 가르치고 해도 어느 순간 삐뚤어져 버리면 답이 없는 게 자식 교육이었다.

그나마 주변에서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지금은 괜찮지만, 나중에 자식이 더 많아진다면....그 중 한 명은 삐뚤어진 아이가 나올 법도 하잖아?'

앞으로 내가 낳을 자식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지금 내가 있는 이 세계를 제외하고서라도, 나는 내 여자들에게 자식을 한 명만 낳게 할 생각이 없었다.

이건 나 혼자만의 욕심이 아니다.

오히려 나보다 내 여자들 쪽에서 욕심을 더 내고 있었다.

특히 주아 누나는 요즘 둘째를 낳고 싶다며 부쩍 내게 잠자리를 요구해오고 있었다.

'분신이라서 임신 안 되는데...'

당장 본체로 그곳에 갈 수가 없는 지라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생길 때까지 기다려보자는 말로 수습을 하긴 했다만, 아마 오랫동안 생기지 않으면 의심이 생기긴 할 것이다.

그 전까지 최대한 이곳의 상황을 안정 시킬 필요가 있었다.

'적어도 왕위를 물려 받아 안정이 되어야 본체랑 분신이랑 교환해가며 움직일 수 있어.'

그리고 그렇게 부지런히 움직인 덕분에 왕위에 오르기까지 마지막 계단을 남겨두고 있는 상황이 되었다.

나는 두 형제의 비극적인 전쟁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나랑 안 맞는 세계인 건 확실해.'

적어도 나는 저 꼴을 안 보게 똘똘한 후계자가 태어나면 잘 키워야겠구나 생각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많은 왕족들이 왕좌를 위한 권력 투쟁을 위해 죽어나간 모양이었다.

아무리 내가 이 세계에 정을 주지 않겠다고 해도, 내 자식에게 만큼은 외면하기 힘든 법이었다.

'적어도 내가 살아 있을 때 만큼은 절대 못 보지.'

아무리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늙은 왕이라 해도, 오드만이 이기기에는 너무 큰 산이었던 모양이다.

더욱이 왕은 오드만이 사병을 키우고 있다는 것을 오랫동안 잘 알고 있던 사람이기도 하다.

그리고 드디어 서로 기싸움을 하던 것을 멈추고 본격적으로 전투에 돌입했다.

가장 먼저 선빵을 친 것은 아무래도 화가 잔뜩 나 있는 오드만 공 쪽이었다.

"히야..."

"왕자님, 위험하십니다.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여기서 지켜보는 것도 위험할까?"

"왕자님의 위치를 들켜선 안 됩니다. 저들에게 가장 손쉬운 승리는 왕자님을 사로 잡는 걸 테니까요."

전투가 시작 되려 하자 기사가 서둘러 나부터 챙겼다.

전쟁이라는 걸 가까이에서 본 적이 없는지라 호기심이 안 든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것도 아니고, 이건 사람이 죽어 나가는 진짜 전쟁이다.

'유티비 올리겠다고 위험한데 도망 안 치고 구경하는 놈이 될 순 없지. 그리고 사람 죽는 걸 아무렇지 않게 볼 수도 없을 것 같고.'

사람이 죽는 걸 직접 본다면, 그 충격을 감당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안전한 곳인 궁 안으로 들어와 삼엄한 기사들의 보호를 받으며 대기했다.

바깥에서는 어느덧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 그리고 가끔 퍼엉퍼엉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에 수류탄이 있는 것도 아닐 텐데, 뭐가 터지는 거지?'

귀가 먹먹하다.

그리고 사람의 비명 소리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크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처절한 비명소리.

그건 영화에서 보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하...무섭네.'

기사 말을 듣고 미리 안으로 들어와서 다행이었다.

괜히 궁금하다는 이유로 버텼으면 꼴사나운 모습을 기사들에게 보여줬을 뻔하지 않았나?

'이 사람들은 저런 걸 봐도 멀쩡한가...?'

멘탈 잘 잡고 있자 생각하며, 심호흡을 했다.

어느 정도 괜찮아졌다 싶어졌을 때, 기사에게 말했다.

"바깥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궁금해."

"확인하고 오겠습니다."

순순히 내 말을 따라 기사가 조심스럽게 바깥으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다행히 다치지 않고 다시 나타난 기사가 바깥 상황을 알려주었다.

"왕께서 미리 손을 쓰셨던 모양입니다. 지금 왕께서 오드만 공을 아니, 역적들을 몰아 붙이고 계십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해줘."

"오드만 사병 쪽에서 배신자가 나왔습니다."

"배신자???"

왕은 이미 동생이 사병을 육성할 때부터 이런 일을 예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진짜 대단한 사람이야. 나라면 당장 원인을 제거하려고 했을 텐데.'

왕은 오드만을 처리하는 대신 그가 숨 죽여 있을 때, 은밀하게 첩자를 넣어둔 모양이었다.

이렇게 정신없이 싸우는 와중에 아군 쪽에서 배신자가 나타난다면 혼란은 몇 배 이상으로 커질 것이다.

적보다 아군의 변심이 더 뼈 아픈 법.

바깥에서 오드만이 분노하는 목소리가 선연하게 들려왔다.

"감히...감히이!!!!"

그 꼴을 본 왕이 기분 좋다는 듯 껄껄 웃는 소리도 들렸다.

"하하하! 오드만, 요녀석아. 진작 이 정도는 눈치를 챘어야지. 그런 허술한 능력으로 나라를 다스리겠다 욕심을 부린단 말이냐? 나한테 이기려면 한참은 멀었다, 요놈아. 으하하하!!"

내 편이긴 하지만, 오드만 공이 약이 올라 죽으려고 드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얄미운 웃음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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