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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733화 (721/849)

Chapter 733 - #96. 진해솔 (37)

"허무하네."

배신자의 등장은 오드만 입장에선 뼈 아팠다.

어찌나 야무진지, 배신하는 사람들도 사병 쪽에서 제법 굵직한 존재감을 갖고 있던 인재들이었던 지라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렸다.

지휘를 따라야 하는데, 그 지휘하는 사람이 배신자다 보니까 명령을 들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것이다.

오랫동안 준비한 반역이었지만, 그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허무하게 오드만의 사병들은 왕의 기사들에게 쓸려 나갔다.

"조금 더 기다리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직 잔당을 다 붙잡은 상태가 아닙니다."

"그럼 언제까지 보호만 받고 있어야 하는데?"

"전하께서 부르실 겁니다."

죽기 일보 직전인 노인이 바깥에서 싸우고 있는데, 젊은 내가 안에서 보호 받고 있어도 괜찮은 건지 싶은데...

'내가 나가서 뭘 할 거야. 그냥 얌전히 시키는 대로 있자.'

나대다가 사고 치는 것보단 얌전히 있는 게 서로를 위해 좋을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왕이 기사의 부축을 받으며 궁 안으로 들어왔다.

상황이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지 전달을 받고 있었기에 재빨리 왕에게 다가가 그를 대신 부축했다.

"괜찮으십니까?"

"그래그래. 괜찮다. 고작 이 정도도 못 버틸까. 짐이 젊었을 때는 1년이 넘게 전쟁터를 돌아다녔었다. 하하."

그땐 젊었을 때고요!

당신 죽을 날 받아 놓은 할아버지라는 걸 고려해야지!

질책의 말이 절로 튀어나왔지만 애써 억눌렀다.

왕은 왕좌에 앉아 깊은 한숨을 쉬었다.

"다 끝났구나. 이제야 다 끝났어."

"...전하."

그동안 날 귀찮게 만들었던 오드만 공이 허무하게 패배했다.

사병을 이끌고 왔을 때 이미 그는 반역도로 규정 되었고, 역사 속에서 그의 이름은 깔끔하게 지워질 것이다.

이제 남은 건 오드만이 저지른 일에 대해 처벌을 내리는 것이었다.

"어흐...으음..."

"신관을 부를까요?"

"그래..."

왕의 얼굴에 식은땀이 가득하다.

죽을 날을 받아 둔 그가 움직일 수 있는 건 신관이 신성력으로 그의 몸을 보호하고 부족한 기력을 채워준 덕분이다.

침대에 누워서 몸을 사려도 부족할 판에, 전투가 오가는 곳에서 아우와 신경전을 벌였으니 기력이 금방 떨어지는 건 당연했다.

부름을 받은 신관이 서둘러 신성력으로 왕의 기력을 회복 시켰다.

그제야 거친 숨이 좀 편안해진 왕이 나를 바라봤다.

신성력을 받아도 여전히 안색은 창백했다.

"왕자야."

"예, 전하."

"이제 네가 이 나라를 잘 다스려야 한다."

"예."

"어깨가 무겁겠지만, 어쩌겠느냐? 짐에게 시간이 없는 것을...좀 더 네 곁에 남아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싶었지만...느껴지는 구나. 짐이 해야 할 일은 이제 끝났다고."

"......"

왕이 힘겹게 숨을 쉬면서 그렇게 자기가 했어야 할 일을 모두 끝냈다고 말해왔다.

그 말에서 왕의 생명력이 토해지고 있는 것 같았기에 쉽사리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목구멍에 무언가 걸린 듯 입 밖으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왕은 지금 이 순간에도 속내를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너그럽게 웃으며 내 손을 힘겹게 잡아주었다.

그의 노쇠한 손을 잡고서야, 나는 속에 있는 말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뱉어냈다.

"...제 아버지가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번도 아버지라는 존재를 가져 본 적이 없었기에 '아버지'라고 부르는 게 쉽지가 않았다.

더욱이 그와 나는 진짜 핏줄로 이어진 사이도 아니지 않은가?

해서 내가 그를 진짜 아버지로 대하는 건 기만이라고 생각했다.

은연중에 내가 선을 긋는 것을 그도 알았을 것이다.

눈치가 빠르고 똑똑한 사람이었으니까.

그럼에도 그는 끝까지 내게 서운하단 소리를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내 감정을 덤덤하게 받아들였을 뿐.

그런 무던한 태도가 결국 내 마음을 흔들었던 것 같다.

기만이라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한 번 쯤은 '아버지'라고 불러보고 싶었던 것이다.

내 말을 들은 왕이 처음 보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눈을 감았다.

"전하!"

"호들갑 떨 거 없다. 힘이 들어서 쉬는 것 뿐이야..."

갑자기 눈을 감기에 숨 넘어간 줄 알고 깜짝 놀랐다.

걱정하던 일은 벌어지지 않은 것 같아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반역이 끝난 후.

반역이 벌어진 건 시작에 불과했다는 듯 한동안 왕궁에 곡소리가 넘쳐흘렀다.

반역이라는 게 워낙 큰 죄인지라 여기에 연루가 되면 연좌제로 가족들까지 영향을 끼치지 않는가?

"오늘은 몇 명이나 죽으려나."

"하루 종일 사람 목을 치우고 있으려니 꿈자리가 뒤숭숭해."

죄인들의 숫자가 한 둘이 아니었다.

하루에도 수십 명이 궁 안으로 끌려왔고, 직접적으로 죄를 저지른 사병들의 목을 자르느라 병사들이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할 정도였다.

"피를 닦는 것도 일이야. 시체 처리하는 것도 힘들고."

"오랜만에 왕궁이 서늘하구만."

"역적 수괴는 어찌 되려나?"

"왕족이라도 반역죄는 무조건 사형이지. 사지가 찢겨질 거야."

"그래도 오랫동안 총애하던 아우인데..."

"전하를 그리도 모르나? 그분께선 절대 봐주시는 법이 없네."

그리고 이러한 병사들의 짐작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다만 오드만이 죽는 방법은 꽤 기발했다.

"싫다!! 차라리 사지를 찢어 죽이시오!!! 죽어서도 날 욕보일 셈이오!!!"

왕은, 오드만을 산 채로 묻어 죽이라는 끔찍한 처벌을 내렸다.

다만 그가 혼자서 묻히는 건 아니었다.

"저승에서도 데리고 놀아야겠다. 이 형에게 큰 실망을 안겨주었으니 아우로써 이 정도는 해야지."

평생 그에게 열등감을 안겨주었던 왕과 함께 순장 되는 것이었다.

맺고 끊음이 철저한 왕이라기엔 아우에 대한 집착이 꽤나 깊지 않은가?

그렇게 궁에 큰 파장을 일으켰던 반란이 어느 정도 수습이 되었을 무렵.

왕이 죽었다.

♧ ♧ ♧

새로운 왕이 즉위하고 난 후.

왕국은 오드만이 저지른 반역의 여파를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반역이라는 게 나라를 뒤흔들 만한 일이다 보니 그랬다.

단순히 역적 오드만을 처벌하는 것 뿐만 아니라 그와 얽혀 있는 귀족 가문들까지 모조리 잡아 들여서 처벌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수 백 명의 사람들이 전대 왕의 명령에 의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고, 새로운 왕이 즉위한 이후에는 죄를 짓고 죽은 귀족의 가족들을 처리하는 일이 남아 있었다.

삼족을 멸한다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정말 싹 다 잡아서 죽일 필요까지는 없었다.

여자, 아이 그리고 젊은 남자는 노예로 신분을 강등 당한 후 다양한 곳의 노역장으로 끌려갔다.

아마 평생 그곳에서 일을 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한편, 왕좌를 무사히 이어 받은 왕자.

그러니까 내가 왕이 되고 난 후.

나를 지지한 귀족들에게 반역에 가담한 귀족들이 누렸던 이권을 뿌려주며 왕으로서의 지휘를 견고하게 만들었다.

왕이 내게 물려 준 '계약'은 내 편이었던 귀족들을 다루는데도 도움이 되었다.

그들은 내가 제시한 당근 아니, 달디 단 설탕의 유혹을 버리지 못하고 충성을 맹세했다.

다만 그들과 다시 계약을 맺지는 않았다.

'어차피 귀족들한테 꾸준히 인형을 유통할 거니까.'

그러니 계약을 맺어도 소용이 없는 거다.

귀족들은 강제성을 갖는 '계약'이 아닌 법적인 처벌을 받을 수 있는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을 굉장히 어색해 했다.

그래도 이젠 익숙해져야 할 일이었다.

귀족들을 어느 정도 정리한 후, 그 다음으로 한 일은 기사단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었다.

내가 왕위에 올랐음에도 순순히 약속을 지키자 좋게 봤던 건지 의외로 기사단에 계속 남아서 일하겠다는 기사가 많았다.

애초에 기사단에서 빵빵하게 월급이 나오는데 그만두겠다고 하는 사람이 이상한 거긴 하다.

일단 기사단장이 사람이 믿음직해서 그녀에게 권력을 몰아주었다.

유일하게 기사단장 만이 계약을 해지하는 것에 우려를 표하며, 생길지도 모르는 부작용 같은 것들을 상의했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일 머리가 있는 사람이면 밀어줘야지.'

내가 매번 생각을 하려고 노력하는 게 있었다.

이곳에 온 이유는 나라를 다스리려고 하는 게 아니라 삼천 명의 후궁을 만드는 것임을.

'어떻게 삼천 명이나 되는 여자를 후궁으로 만들지?'

지금까지 내가 왕궁에서 안은 여자들만 해도 채 백 명이 되지 않는다.

왕이 된 이후 내가 안은 궁인들은 모두 후궁이 되었다.

다만 왕비의 자리는 신중하게 결정을 해야 했다.

귀족들이야 자기 가문의 여식을 왕비로 만들고 싶어 했고 나도 왕비를 결정하는데 신중을 기해야 했다.

'질투가 많은 여자는 안 돼.'

자기 남자가 후궁을 삼천 명이나 만들어야 하는데 질투가 많은 여자가 왕비가 되면 안 되지 않겠는가?

'그런 점에서...그 여자가 해주면 될 것 같은데.'

왕비는 차차 생각하기로 하고, 왕자 시절에 여자들을 안았던 것처럼 왕이 되어서도 여자는 계속해서 안고 다녔다.

왕자 시절보다 더 적극적으로.

"흐응, 아! 아흣!"

"전하아~아응~!"

오늘도 새로운 여자 +2명 추가.

갈 길이 너무 멀어서 부지런히 허리를 노리고 있다.

"흐아아앙!! 전하아...!!!"

"하아악!!! 나, 나 죽어...죽어요오!!"

왕자 시절부터 심상치 않았던 정력.

한 때는 너무 과해서 의심의 대상이 되었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왕이 되어서도 하루도 허리를 쉬지 않고 놀리니 단순히 보여주기 식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새 왕이 여자를 좋아하신다!

왕족이 귀한 왕국 상황에서 왕의 정력이 좋은 것은 축복이나 다름 없는 일이었다.

귀족들은 왕에게 가문의 여자들을 기꺼이 넘기며 이득을 보려고 했다.

왕이 귀중품은 거절해도, 여자는 거절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본디 왕족에게 정력은 후계자를 평가하는 중요 덕목이었기에 새로운 왕의 정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기뻐해야 할 일이었다.

...기뻐해야 할 일이긴 한데.

"너무...많지 않습니까?"

처음에는 신나서 자기 자식을 왕에게 받치던 귀족들도 왕이 도무지 거절을 모르자 당황하기 시작했다.

"귀족 영애란 영애는 싹 다 후궁에 들여 앉혔다던데요."

"왕비는 도대체 누굴 삼으실 생각이신 건지..."

"애초에 이 정도 여성 편력이면 왕비가 중요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아이가 중요하겠죠. 누구의 배에 아이가 들어설지..."

후궁이 너무 많다 보니 그 중 왕의 아이를 가진 여인이 왕비가 되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귀족이 많았다.

그 후궁들 중에 자기 가문 여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지금도 후궁전이 미어 터지고 있다는데, 여기서 더 여자를 추가 시키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더욱이 귀족들도 슬슬 왕에게 여자를 바치는 게 쓸모없는 짓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다.

10명 중 하나로 들어갔을 때 총애를 받을 확률과 100명 중 하나로 들어가 총애를 받을 확률은 다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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