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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734화 (722/849)

Chapter 734 - #96. 진해솔 (38)

왕으로 생활한다는 건 생각보다 깐깐했다.

내가 왕이 되자마자 가장 먼저 해야 했던 일은 사실 반란 뒷수습보단 왕궁의 법도를 따지는 늙은 궁인들에게 왕궁의 법도를 주구장창 듣는 것이었다.

왕족들은 어릴 적부터 이런 것들을 배웠는데, 나는 갑자기 툭 튀어나온 사람이다 보니 배울 시간이 없었다고 한다.

그동안 내가 이 사람들에게 왕궁의 법도를 배우지 않은 것도 왕이 손을 써뒀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본래라면 법도를 배우느라 쉬는 시간도 없이 하루 종일 수업을 받았어야 했단다.

하지만 본인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던 왕이 그걸 뒤로 미뤄뒀다.

'왕위에 오르셨으니 법도를 배우셔야 함이 옳사옵니다!'

누가 봐도 '나 깐깐하오'를 얼굴 표정에 달고 사는 늙은 궁인들이 나를 부여잡고 하루 종일 들들 볶아대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은 밤과 귀족들과 국무를 보는 시간 뿐.

가끔 휴식이라며 산책을 나갈 수 있긴 했지만, 수업을 받는 시간이 너무 긴 시간인지라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리고 솔직히...

'이걸 내가 왜 배워야 하지?'

내가 평생 여기서 살 것도 아닌데...굳이 배워야 하나 하는 삐딱선이 자꾸 타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도 귀족들에게 무식하고 천박한 놈이구나 하는 소리는 안 들어야 했기에 반발심을 꾹 눌러 참고 수업을 듣고 있는 중이었다.

자신이 배움에 있어서는 어디가서 꿀리는 사람은 아니지 않은가?

아니나 다를까, 수업 진도가 팍팍 나가니 깐깐하게 굴었던 늙은 궁인도 어느 순간부터는 나를 꽤 예뻐하며 수업을 했다.

"도대체 이 수업은 언제까지 받아야 하느냐? 배운 것이 이미 저렇게 많은데 끝이 없는 것 같다."

"한 번 가르쳐준 것을 잊어버리는 법이 없고, 하나를 가르쳐도 열을 아시니 이토록 영민한 왕께 가르침을 드릴 수 있어 한량 없이 기쁘고, 또 기쁘옵니다."

"그러니까 말 돌리지 말고. 도대체 얼마나 남은 거야?"

"송구하옵니다. 배움에는 나이가 없고, 끝도 없는 법이 아니겠사옵니까? 왕궁의 법도를 익히셨으니 이제부터는...."

병법과 역사 그리고 제국 법과...

줄줄줄 쏟아지는 수업 내용들에 학을 뗐다.

"그만그만! 그대들은 내 머리에 책이란 책은 전부 구겨 넣을 셈인가? 최소한의 지식들만 골라서 가르쳐 달라고 하지 않았나!"

"전하! 이 모든 것이 가장 왕이 가져야 할 가장 기초적인 지식들이옵니다!"

원래 공부라는 게 깊어지려고 들면 한 없이 깊어지는 법 아니겠는가?

내가 말한 건 겉 핥기 식으로 이런이런 게 있다는 걸 알고 싶었던 거다.

하지만 늙은 궁인이 내게 요구하는 건 몇 년도에 이런이런 일이 일어났고, 그때 누구는 이런 행동을 누구는 이런 행동을 했다! 라는 걸 전부 알려주려고 하고 있는 거다.

'내가 그런 걸 기억해봤자 어디에 쓰냔 말이다.'

물론 그런 지식들이 필요한 순간이 올 수도 있다.

하지만 왕의 주변에는 똑똑한 귀족들이 많지 않은가?

탐욕을 부린다고 해서 귀족들이 무능한 게 아니다.

오히려 탐욕을 부리는 만큼 유능하다.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서 말이다.

결국 늙은 궁인들의 애처로운 외침을 무시하고 최소한의 것들을 배우는 것으로 공부 시간을 대폭 줄여버렸다.

그렇게 하고서야 좀 사람답게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만들어졌다.

새롭게 생긴 시간에는 당연히 미션을 깨기 위해 부지런히 허리를 놀렸다.

"흐아앙! 아앙!"

푸쯕푸쯕푸쯕!

오늘은 귀족 영애가 아니라 궁인들을 데리고 온 터라 세 명을 동시에 안기로 한 상황이었다.

"우움, 쪼옥! 하으, 전하아...달콤하옵니다....우웅...쪽!"

삼천 명의 여자를 안아야 하는 나에게 오늘은 좀 특별한 날이기도 했다.

"하아...좋구나."

퍼억! 퍼억! 퍼억!

"하으으! 전하아...아흑!"

좀 널널해진 시간을 할애해서 열심히 여자들을 안아댔다.

궁에는 여자가 넘치도록 많아서 손을 뻗기만 해도 안을 수 있는 여자가 항상 대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열심히 허리를 놀린 보람이 있는 날이었다.

드디어 내가 이곳에서 안은 여자의 숫자가.

[100/3000]

세 자리 숫자를 넘어선 것이다!

'하아~ 현타 오네.'

물론 세 자리에 들어왔다는 게 들인 노력에 비해 썩 기쁜 것은 아니었다.

100이라는 단위 옆에 3000이라는 네 자릿수가 떡하니 있었으니까.

'티끌 모아 태산으로 생각 해야지, 뭐 어쩌겠어.'

이거 밸런스 맞는 거냐? 하는 억울함과 삐딱함이 몰려오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을 했다.

삼천 명을 향한 내 여정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승은을 입은 여자들이 많아지면서 점점 그녀들이 지낼 궁이 부족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뭐? 지낼 곳이 없다고?"

"예,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수용했지만...이 속도로 계속 여인을 들이신다면 지낼 곳이 부족해질 것 같습니다."

물론 왕궁에 정말 자리가 없어서 저렇게 말하는 건 아닐 것이다.

다만 후궁으로 임명 된 여인이 지낼 곳이 없어져서 그런 거다.

내 성은을 입은 여인을 아무 곳에나 지내도록 할 순 없지 않겠는가?

왕의 정력이 뛰어난 경우가 거의 없었던 왕국에서 나처럼 많은 후궁을 둔 왕이 없었기에 생긴 일이기도 했다.

'미리 하렘을 만들어둬야겠는 걸.'

지금 후궁들이 지내는 궁과 같은 방식으로는 삼천 명의 후궁을 감당할 수 없었다.

궁인 출신이느냐, 귀족 출신이느냐에 따라서 배정 받을 수 있는 궁의 규모가 달라지긴 한다.

하지만 앞으로 들어 올 후궁들의 숫자가 훨씬 많지 않은가?

미래를 생각해봤을 때, 지금 어설프게 수습을 하지 말고 아예 삼천 명을 수용 할 수 있을 대규모의 궁을 새로 신설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후궁전을 새로 만들어야겠습니다."

"후궁전을...말씀이십니까?"

"기왕 짓는 거 최대한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게 크게 지을 겁니다."

반역으로 나라에 환수 된 귀족들의 재물이 주머니에 두둑하게 챙겨져 있는 지금이 아니고서야 언제 이런 걸 사치를 하겠다고 말하겠는가?

귀족들은 내 선언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 그리고 요즘 주변 정세를 익히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우리 나라가 왜 왕국인가 하는 생각 말입니다. 이건 선대 왕께서 남기신 숙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

감을 못 잡는 귀족들을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이 왕국은 전대 왕의 정복 전쟁으로 이미 황제라 칭해도 될 정도로 세를 키워 놓은 상태다.

후계 문제 때문에 골치를 썩히지만 않았어도 왕은 이미 나라를 제국으로 바꿨을 것이다.

중간에 반역이라는 좋지 않은 일이 있긴 했지만, 무사히 후계를 받아낸 나는 그가 이룩한 모든 것을 고스란히 얻어냈다.

'왕이 사기기는 해. 유산을 상속 받았는데, 상속세가 없잖아.'

이렇게 많은 걸 상속세 없이 받았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썩힐 수는 없지 않겠는가?

이 나라는 다음 단계로 올라가야 할 때였다.

"제국 선포를 할 겁니다."

"!!!!"

"!!!!"

"저, 전하."

내 선언과 동시에 귀족들이 깜짝 놀란다.

"제국 선포 이후, 주변국들과의 친교를 위한 사절을 보내야겠습니다. 그리고 혼인 동맹을 맺을까 합니다."

나라와 나라간의 동맹을 위해 혼인 동맹은 그리 낯설지 않은 일이었다.

이미 검증 된 훌륭한 외교 수단인 것이다.

내 입장에선 일석이조의 일이기도 하기에 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제국 선포를 했을 때 가장 거슬리는 나라가 하나 있죠?"

우리 나라가 왕국에서 제국이 되는데 가장 방해가 되는 나라.

게오스 제국이다.

"그쪽에서 보내 온 여인은 황비로 삼을까 합니다."

"허어...황비를...끄응..."

내 제안에 귀족들이 고심하기 시작했다.

왕국에서 제국으로 나라가 발전하는 것은 귀족들 모두 긍정적으로 여기고 있는 듯했다.

유일하게 거슬리는 것은 전대 왕의 전쟁을 방해하던 제국이었다.

전대 왕의 업적으로 수많은 전쟁을 통해 주변 국들을 복속시켰고, 그때마다 제국은 왕국의 발목을 부여 잡고 쉽사리 전쟁에서 이기지 못하도록 훼방을 놓았다.

해서 우리가 제국을 선포하며 사절을 보내도 좋은 대접을 받을 확률은 낮은 것이다.

"우리 쪽에서 먼저 손을 내미는 상황이 되는 것이지만, 나쁜 계책은 아닌 듯 하옵니다. 선대 왕과 얽혀 있는 문제들을 깔끔하게 털어버리고 새로운 관계를 맺자는 의미가 될 것이옵니다."

"만약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확실히 알 수 있으니 이 또한 이득이 될 것이옵니다."

아니꼽기는 할 것이다.

왕국이 제국이 된다는 건 그만큼 나라의 힘이 부강해진다는 걸 의미하지 않는가.

물론 내가 제시한 혼인 동맹 외교를 찬성하는 귀족이 있다면, 반대하는 귀족도 분명 존재한다.

"게오스 제국에서 과연 좋게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원 채 우리 나라와는 사이가 좋지 않은 곳이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우리 쪽에서 손을 내밀어도 오히려 시비를 걸어 올 놈들입니다."

아직 내 후계자 확실하게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다른 제국의 출신 여인을 황비로 삼는 것을 떨떠름하게 여기는 귀족들이었다.

혹여 그 황비가 가장 먼저 후계자를 임신하기라도 하면 어쩌란 말인가?

귀족들이 뭘 걱정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는 나는 귀족들에게 말했다.

"후계에 관련 된 문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제국에서 온 여인을 황비로 삼기 전, 세모론 공작의 여식 루아벨 영애를 황후로 삼을 생각이니까요."

"루아벨 영애를 말씀이십니까?!"

"아직 여러분들에게 말하지 못한 게 있습니다. 루아벨 영애가 짐의 아이를 임신했습니다."

"!!!"

세모론 공작은 가장 먼저 내 편에 서겠다고 줄을 선 귀족 중 하나이다.

거기다가 나와 잠자리를 가진 영애들 중 가장 먼저 임신 소식을 알려온 여자이기도 했다.

신분에서도 밀리고, 가장 먼저 아이를 임신했다는 점에서도 밀리니 항의를 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어진 것이다.

"그, 그렇다면야..."

"아직 왕자 아니, 황자인지 황녀인지 모를 터인데 무작정 회임을 하셨다는 이유로 황후를 삼는 것은..."

"신분에서도 빠지지 않고, 저번 사건에서 든든하게 제 뒤를 믿고 지지해준 분이 세모론 공작이라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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