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737 - #96. 진해솔 (41)
게오스 제국에서 온 사절단은 전쟁 중에 사절단을 보낸 것이라서 그런지 웅장하기보단 비장한 기세를 내보이고 있었다.
휴전이 된 것도 아니고,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 적국의 심장부인 황궁에 황제를 만나러 온 상황이다.
만약 사절단이 온 이유가 틀어지기라도 한다면, 사절단의 목이 날아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다들 각오 단단히 하시게."
"물론입니다."
"폐하를 위해 이 목숨 얼마든지 던질 것입니다."
전쟁 중인 나라에 사절단이 온 것.
더욱이 게오스 제국은 여러 차례의 전쟁에서 패배를 한 상태였다.
'아마 저놈들은 우리가 휴전 제의를 하러 왔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게오스 제국은 고작 이 정도 패배로 물러 날 정도로 나약한 나라가 아니었다.
현재 게오스 제국이 이곳에 보낸 군대는 선발대에 불과했다.
1차 적으로 추가 지원을 받았으나 그 이상으로 많은 군사를 2차, 3차 이상으로 지원을 해줄 여력이 되는 나라인 것이다.
그러니 고작 몇 번의 패배로 휴전을 제시 할 게오스 제국이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절단이 파견 된 것은 게오스 황제의 명령이 있기 때문이었다.
[황제가 어떤 자인지 알아야겠다. 소문 만으로는 부족하다. 그자가 어떤 성향을 가졌는지, 능력은 있어 보이는지 확인하고 오거라. 그리고 놈에게 신기한 능력이 있다고 하니 인형이라는 것도 확보해오도록 하고.]
바로 이 나라 황제가 어떤 사람인지 가늠하기 위해서였다.
"먼저 선전포고하고 침략한 주제에 낯짝이 참 두껍습니까."
"허험...! 이 시기에 사절단이라니요? 속내가 훤히 보이지 않습니까."
"뜨거운 맛을 보고 깜짝 놀라서 휴전 제시라니..."
"설마 폐하께서 저 뻔뻔한 놈들의 제안을 받아들이진 않으시겠지요?"
수군수군ㅡ!
사절단을 향한 귀족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전쟁에는 항상 '희생'이 존재하기에 나라와 나라 사이에 원한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절단은 주변에서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보이는 귀족들의 속닥거림을 들으며 안색을 굳혔다.
'생각보다 분위기가 더 좋지 않군.'
'애초에 저희도 좋은 의도로 온 건 아니지 않습니까?'
'끄응...'
"황제폐하 납시오!!"
사절단이 문 앞에서 들어가지 못하고 서 있는 사이, 안 쪽에서 황제가 들어온다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잠시 후, 사절단을 가로 막고 있던 문이 열렸다.
'기사단이 깔려 있다는 건, 우리를 조금도 믿지 않겠다는 의미이군.'
'황제는 자기 안위에 철저한 편이구나.'
'겁이 많은 성격인 건가?'
사절단이 입장한 후, 새 황제를 면밀하게 살폈다.
그들이 알고 있던 정보처럼 태상 황제의 젊었을 적 얼굴과 매우 흡사하게 닮아서 굳이 핏줄을 알아보지 않아도 친 아들이라고 생각했다고 하더니 확실히 매우 닮은 얼굴이었다.
'기세는 태상황제보다는 부드러워 보이긴 하는군. 더 잘 생기기도 했고. 여자를 그렇게나 좋아한다고 했던가?'
사절단이 유심히 황제를 살피는 사이.
황제도 마찬가지로 사절단이 무슨 이유로 적국에 왔는지 속내를 꿰뚫어보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서로 피차 얼굴 보기 껄끄러운 사이인 걸로 아는데, 패배를 인정하기라도 하려고 사절단을 보내왔는가."
황제는 우선 사절단으로 온 자들을 도발해볼 셈이었는지 꽤나 자극적이고 거침없이 푹
"게오스 황제 폐하께서옵서 새 황제에게 친서를 내리셨습니다."
'친서를 내리셨다.'라는 말에 귀족들이 욱했는지 사절단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사절단 입장에서는 본국의 황제를 더 높이는 게 당연하겠지만, 듣는 쪽의 입장에선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황제는 이를 문제 삼지 않고 순순히 게오스 황제의 친서를 받아들였다.
"읽어보게."
꿀꺽-!
게오스 황제의 친서를 받아 든 귀족이 친서를 펼치고 글을 읽어나가기 시작한다.
그와 동시에 사절단은 주먹을 꽉 쥐었다.
'황제폐하를 위하여...죽음도 불사하겠노라 다짐하였다. 나약해지지 말자.'
사절단은 게오스 황제의 친서 내용을 미리 알지는 못했지만, 관계 개선을 위해 좋은 말을 적어뒀을 리는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친서를 읽어나가면서 귀족들의 얼굴이 빨개지기 시작했다.
게오스 황제의 친서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랬다.
[너 특이한 능력 있다며? 그거 조공하면 봐줄게. 어때?]
"이 무슨 무례란 말입니까! 조공이라니요! 우리가 언제부터 게오스 제국의 속국이었단 말입니까!"
결국 화가 난 귀족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사절단을 향해 왈칵 고함을 내질렀다.
사절단은 필사적으로 표정을 갈무리했다.
'살아 돌아가기 쉽지 않겠구나.'
'끄응...그 와중에 황제는 눈 하나 깜짝도 하지 않는군.'
어떻게 보면 버림패로 그들이 선택 받은 거나 다름없지만, 게오스 황제에 대한 충성심을 위해 당당함을 유지했다.
저들이 사절단을 도륙낸다 해도 비명 한 자락 내지 않을 각오를 갖고 온 자리였다.
"아무래도 게오스 황제가 짐의 능력이 궁금했나 보군."
"폐하, 더 이상 게오스 황제의 무례한 행동을 용인하실 생각이십니까? 저자들을 모두 도륙내어 제국의 위엄을 보이셔야 하옵니다!"
사절단이 있는 자리에서 죽여야 한다는 말을 꺼내는 건 대단한 무례였다.
그리고 그렇기에 그만큼 귀족들의 분노가 크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저걸 친서라고 가져온 사절단의 말도 들어봐야겠군. 짐이 옳게 해석한 게 맞는가? 전쟁이 더 커지고 싶지 않으면 짐의 능력으로 생산하고 있는 그 물건을 바치라는 거 말일세."
"옳게 해석하셨습니다."
"허! 게오스 황제는 신하의 목숨을 벌레처럼 여기나 보군. 이런 걸 잘도 전하라고 그대들을 짐에게 보낸 걸 보면 말이네."
"제국과 제국의 전쟁은 백성들의 많은 희생을 만들 것입니다. 이제 막 제국으로 선포 된 이곳이 600년 역사를 자랑하는 게오스 제국을 상대로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현명한 군주라면 나라를 위해 올바른 선택을 하셔야 할 것입니다."
"저, 저저!!!!"
귀족들은 얼굴이 새빨개져서 당장이라도 손에 검이 있었다면 사절단의 목을 뗐을 거라는 듯 씩씩댔다.
사절단은 그런 귀족들을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쳐보였다.
'특별히 눈에 띄는 놈은 없구나.'
애초에 제국 선포가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감히 허락도 없이 왕국에서 제국으로 나라를 칭제선언한 그들은 대가를 받게 될 것이다.
사절단은 멍청한 귀족들을 속으로 욕하다가 이내 황제에게 집중했다.
새 왕이 된 저 자가 과연 호랑이일지, 이리 새끼일지 확인해 봐야만 했다.
그리고 그 정보를 게오스 황제폐하에게 반드시 전달해야만 했고 말이다.
'이 정도 도발을 받았으면 뭐라도 반응을 보이겠지. 어디, 네놈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보거라.'
분노해서 자신을 찢어 죽일지, 아니면 겁을 먹고 순순히 자신들을 되돌려 보내줄지.
황제가 어떤 행동을 하든 정보를 빼낼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황제가 친서와 사절단의 도발에 반응을 보였다.
"하하하!"
가장 먼저 보인 반응은 황당하게도 웃음이었다.
'어린 나이 답지 않게 꽤 신중하구나. 쉽게 흥분하고 흔들리지는 않겠다는 건가.'
'차라리 저 귀족들처럼 화를 참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좋았을 것을.'
'감정적이기보단 이성적인 놈이구나.'
새 황제는 호탕하게 웃더니 자기 무릎을 손바닥으로 치면서 말했다.
"게오스 황제가 대단하긴 하구나. 적대국의 황제에게 거침없이 도발을 할 수 있는 신하가 있다는 건 부러워 할 만한 일이야."
적국 황제가 사절단이 어떤 각오로 이곳에 왔는지 파악했다!
그리고 사절단이 게오스 황제의 명예를 위해 목숨을 버리겠다는 각오로 온 것을 부러워 함으로써 단순히 심기를 건드리는 저급한 도발이 아니었음을 밝혀낸 것이다.
'머리가 비상하구나.'
'쉽지 않겠군.'
'아무래도 우리 목숨이 이대로 끝나진 않으려는 모양이야."
'살아남았으니 우리는 잘 된 일이겠지만 게오스 제국을 입장에선 비극이 될 거다.'
'이놈이 더 크기 전에 미리 밟아 놓아야 한다는 폐하의 말이 옳았다.'
사절단에게 도발의 책임을 묻고자 죽였다면 게오스 황제는 오히려 기꺼워 할 것이다.
자기 성질을 이기지 못한 놈이라는 증거니까.
하지만 사절단을 멀쩡히 보낸 것 뿐만 아니라, 저놈 하는 짓을 보니 꽤 영리한 도발을 해올 것 같았다.
'이번 전쟁은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사절단의 속이 얼마나 애 타는지 모르는 황제는 매우 기꺼운 태도로 그들에게 말했다.
"저들에게 섭섭하지 않을 대우를 해주고 보내거라. 우리 제국이 사절단을 형편 없이 대접하고 내쫓았다는 말은 듣지 말아야 할 것 아니겠느냐."
"폐하! 저 무례한 자들을 용인하실 셈이십니까?"
"허락만 하신다면 저 자들의 목을 제가 단숨에 베어버리겠습니다!"
"아니, 제국의 사절단을 융숭하게 대접하고 보내거라. 불쌍한 자들이다."
자기가 따르는 황제에게 버림 패로 보내졌으니 불쌍하지 않을 수가 없고, 제국에 융숭한 대접을 받고 돌아간다면 게오스 황제의 명령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의심을 살 것이다.
이는 결국 게오스 황제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
돌아가도 좋은 꼴은 보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는 걸 꿰뚫어본 것이다.
사절단도 이 사실을 모르는 바가 아닌 지라 융숭한 대접을 하라는 황제의 말에 안색이 창백해졌다.
"융, 융숭한 대접을 하겠다는 겁니까? 저희들에게요?"
사절단이 사색이 되자 상황 파악 못하고 분노를 내보이던 귀족들도 슬슬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몇몇의 귀족은 뒤늦게 상황을 눈치챘는지 열이 받아서 씩씩거렸던 표정을 서둘러 갈무리 하기도 했다.
"폐하의 친서에 대한 답서는 없으신 겁니까! 폐하께서 바치라 하셨던 조공물 말입니다."
황제는 그런 귀족들을 향해 쯧! 하고 혀 한 번을 차더니, 사절단을 향해 태연하게 말했다.
"아아~ 그건 짐이 신중하게 적어줄 테니, 그대들은 편히 쉬었다 가시게나. 사절단을 궁으로 모셔라!"
""예!""
사절단을 안내하는 이들은 궁인이 아니라 기사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