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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743화 (731/849)

Chapter 743 - #96. 진해솔 (47)

적대국이라 해도 정보를 얼마든지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돈을 많이 준다는데 누가 그걸 마다하겠는가?

'솔직히 반대로 저쪽이 사절단을 보내 같은 수작을 부린다면....'

'우린 이렇게까지 못 할 거야.'

'나라도 이 정도 재물이라면 탐이 났을 테니까.'

창피한 일이지만, 그들은 손쉽게 원하는 바를 얻었을 것이다.

나라가 귀족들에게 해준 일이라고는 세금 뜯어가는 것밖에 없다! 라고 생각하는 게 보통의 게오스 귀족들이었으니 말이다.

나라가 오랜 시간 부국한 채로 지내와서 그런 거다.

방만해진 귀족들 입장에선 해준 것 없는 나라를 위해 당장 눈 앞에 있는 이득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근데 이 미친 것들이 탐욕을 부리지 않고 자제를 하고 있단 말이지. 도대체 제국의 황제는 무슨 수를 써서 이토록 완벽하게 귀족들을 통제하고 있는 건가!'

‘제국이 언제 이렇게 커진 거지...?'

'분명 후계 없이 왕이 죽으면서 무너질 일만 남았던 곳이거늘...'

정보상인은 인형을 절대 판매 하지 않을 귀족들의 명단만 쏙쏙 가져와서 사절단에게 비싼 값을 주고 판 게 분명했다.

사절단 입장에선 인형을 반드시 얻어야 했기에 바가지를 쓰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구매를 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곳은 더 없는 겁니까?”

사절단이라고 마냥 당하고 있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다른 정보상인을 수소문해 인형을 갖고 있는 귀족 명단을 더 알아내려 노력했다.

“이미 정보를 거래할 만한 곳은 전부 찔러본 겁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모든 노력들이 물거품이 되었다.

현재 인형을 갖고 있는 모든 귀족 명단을 얻어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인형을 팔겠다는 놈이 없었으니까.

도대체 왜???

아무리 귀족이라 해도 눈이 돌아갈 만한 금은 보화인데!

“이걸 왜 거절하냔 말이다!”

사절단은 답답해서 퍽퍽 자기 가슴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인형을 구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답답한 게 아니라, 황제가 이 정도로 귀족을 꽉 잡고 있다는 게 무서웠다.

‘앞으로도 제국은 더 커지겠구나.'

'지금밖에 기회가 없다는 폐하의 주장이 옳았어.'

'이 사실을 전하면 황제폐하께선 제국을 전부 짓밟을 때까지 전쟁을 멈추지 않으실 게 분명하다.'

게오스 제국에서도 전쟁을 찬성하는 자와 반대하는 자로 갈리고 있는 상황이다.

굳이 게오스 제국에서 먼저 침략을 할 것까지는 없지 않으냐는 거다.

침략 전쟁은 압도적인 우위가 있을 때나 할 수 있는 거다.

전쟁 자체가 수성이 유리하다 보니, 게오스 제국 입장에선 손해가 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황제가 귀족들을 이토록 완벽하게 통제하는 건 그 이상한 인형 덕분이 아니겠습니까?"

"......"

"......"

사절단 중 한 명이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뼈 아픈 진실을 토해냈다.

그들이라고 몰라서 하지 않은 말이 아니지 않은가?

입 밖으로 내뱉어봤자 씁쓸하고 마음만 아플 뿐인 사실이었다.

"...황제에게 말해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미쳐도 곱게 미치세요."

"방법이 없으면 방법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귀족들이 팔지 않으면 직접 그걸 만들어내는 자에게 내놓으라고 해야 하는 겁니다. 거기다가 황제 폐하께서 친서로 그 요상한 인형을 조공으로 내놓으라 명령하신 바가 있습니다."

"그걸 다시 언급하는 건 우릴 찢어 죽여 달라는 의미나 다름 없습니다!"

"그러니 더 해야지요. 다들 폐하께 제국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고 왔다고 말 할 생각입니까? 우린 끝까지 폐하의 명령을 받들어야 합니다."

"......"

"......"

사절단들의 입이 점점 조용해진다.

그들이라고 자기 목숨이 소중하지 않은 건 아니지 않은가?

죽으러 왔으나 살아났고, 이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에 차 있다가 마지막에 또 다시 죽자는 말을 들으니 마음이 좋을 수가 없었다.

'이건 해야만 하는 일이다.'

사절단들은 질끈 눈을 감았다.

애초에 살아서 돌아가겠다는 마음으로 온 곳이 아니지 않은가?

"그렇게 하시지요. 아니, 그렇게들 하셔야 합니다."

"끄응..."

사절단들 모두가 찬성하는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대놓고 반대하는 말을 하는 이도 없었다.

여기서 반대의 의견을 내놓은 이는 게오스 황제를 배신한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서슬 퍼렇게 눈을 빛내고 있는 사절단 한 놈이 이미 여론을 이렇게 만들어버리지 않았는가?

나머지 사절단들은 흔들리는 대로 휘청거리다가 함께 쓸려 나갈 부나방들에 불과했다.

살아남을 수 있을 줄 알았던 사절단들의 앞에 다시 한 번 사신이 칼날을 겨누기 시작한 것이다.

♧ ♧ ♧

"사절단들은?"

"돌아갈 준비를 끝냈다고 합니다."

그래도 게오스 제국이 정도를 넘어서는 미친 놈은 아닌 모양이다.

사절단을 보낸 이후로 더 이상 제국을 침략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진지를 구축해두고 군사를 물리지 않았다.

휴전을 선언하기 위해 온 줄 알았던 사절단은 오히려 제국을 도발했고, 그들이 돌아간 순간 게오스 황제는 다시 전쟁을 선포할 게 분명했다.

"그래, 그럼 그동안 미뤄뒀던 일을 제대로 끝마쳐야겠군."

후궁전에 얌전하게 잠들어 있던 그녀들이 일선에서 움직이기 시작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사절단에게 어떤 정보를 내어줄 건지, 어떤 정보를 차단할 것인지 직접 고를 수가 있더라.

그리고 후궁들이 가문에 말을 어떻게 해놓은 건지, 귀족들이 사절단과 끝까지 거래에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거래를 성사시키지 못한 사절단은 아마 지금쯤 쩔쩔 매고 있을 거다.

"황제폐하 납시오!!"

사절단이 떠나기 전.

융숭한 대접을 받고 떠나가는 사절단을 배웅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사절단의 상황이 썩 좋지 않음을 알고 있었기에 나는 여유로운 기색을 감추지 않고 그들에게 말했다.

"다시 먼 길을 가야 할 텐데, 잘 쉬었는지 모르겠군."

"...폐하께서 신경을 써주신 덕분에 편히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의외로 사절단이 예의를 갖추고 말해왔다.

"게오스 황제에게 보내는 친서를 내리겠네."

사절단에게 내가 직접 작성한 친서가 전달 된다.

사절단 중 한 명이 친서를 품에 넣은 후 한 발짝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친서는 폐하에게 전해드리겠습니다. 다만, 게오스 황제 폐하께서 언급하셨던 조공물품은 어찌 되었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

귀족들이 사절단의 어처구니없는 소리에 다시 한 번 분노했다.

하지만 저번 일이 있어서 그런지 대놓고 욕을 하며 소란을 만드는 귀족은 없었다.

분노로 인한 소란 대신, 차분하게 침묵이 내려 앉자 사절단 쪽에서 동요가 일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물에 손을 넣었는데, 뜨거운 게 아니라 얼음장처럼 차가우니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는 거다.

차갑게 내려앉은 침묵을 뚫고, 내가 입을 열었다.

"조공이라는 단어가 제국과 제국 사이에 오갈 올바른 단어라고 생각하는가?"

"본디 게오스 제국에서는 주변 국가들과 여러 친교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게오스 제국을 부모처럼 모시는 국가도 있고, 형과 아우처럼 우애를 다지는 나라도 있으며, 역사 속에서 제국 또한 게오스 제국을 신하로 모셨던 바가 있지 않습니까?"

"오만하고 건방지구나."

목숨이 몇 개라도 된단 말인가?

건방진 말을 듣고 있으려니 저놈들을 그냥 살려서 보내는 게 아쉬워질 정도였다.

적어도 몇몇의 주둥이는 꿰매서 보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먼저 전쟁을 선포하고, 침략을 해온 게오스 제국의 사절단임에도 불구하고 예의를 다하여 대접을 해주었는데도 이토록 건방지고 무례한 행동을 하니, 더 이상 자비를 베풀어줄 필요가 없을 것 같구나. 방만하게 입을 놀렸으니 책임은 져야지."

"폐하, 건방지게 입을 놀린 놈의 목을 치셔야 하옵니다!"

귀족들이 내 말에 얼씨구나 하며 저놈들을 모조리 참하라고 아우성을 쳤다.

하지만 나는 사절단을 차갑게 노려보기만 했다.

저놈들의 건방진 행동은 도를 넘어섰다.

벌을 주지 않고 그냥 보내면 게오스 제국에 낮잡아 보일 테니 그럴 수는 없었다.

문제는 황제가 저들을 보낸 진짜 이유가 사절단 그 자체에 있다는 점이었다.

'게오스 제국 내부에선 전쟁을 반대하는 세력이 있다. 게오스 황제는 그들의 의견을 묵살하고 침략에 나서긴 했지만, 연달은 패배로 귀족들 사이에서 말이 많은 상황이라는 거지.'

정보를 다루는 후궁이 가져온 정보들은 내게 큰 도움이 되어주고 있었다.

그 정보에서 게오스 황제가 왜 사절단을 보냈는지 그 진짜 이유가 추측으로 담겨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 추측이 사실일 거라고 확신했다.

'사절단을 보내 그들이 제국에 의해 다 죽어서 돌아온다면, 제국 내에 전쟁을 반대하던 세력의 입을 다물 수가 있어진다.'

친서에 언급했던 인형도 사절단을 보낸 이유 중 하나이긴 할 것이다.

하지만 게오스 황제가 더 중요시 여긴 것은 명분을 쌓는 것이었을 거다.

사절단이 싸가지 없는 태도로 황제의 분노를 일부러 산 것은 고려 대상이 되지 못할 것이다.

사람의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이고, 그들이 어떤 무례한 짓을 했다 한들 적대국 황제가 '게오스 사절단'에게 손을 댄 것은 변하지 않을 진실이지 않은가?

'의도는 전부 읽었다. 그럼 나는 뭘 해야 하지?'

게오스 황제가 바라는 결과를 만들지 않도록 사절단에 손을 대지 않는 것이 정답인가?

기껏 보냈던 사절단이 제 몫을 하지 못하고 되돌아온 것을 보면 기분이 나쁘긴 할 거다.

하지만 기분 나쁜 게 뭐 어떻단 말인가?

'이런 수작질을 부려 놓고 정작 본인은 아무런 손해도 입지 않는다는 거잖아.'

물론 사절단이 할 일을 실패했으니 전쟁을 반대하는 세력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골머리를 쌓기는 할 거다.

하지만 자신이 고생한 것에 비하면 그 정도로는 부족해도 한참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쪽에서 먼저 나한테 엿을 먹여줬는데 나도 엿을 먹여주긴 해야 할 거 아냐.'

그래서 일단 황제를 위해 자기 목숨을 초개처럼 내던진 이들이 무사히 게오스 제국으로 돌아가는 꼴은 보지 않기로 했다.

저들은 충심으로 이곳까지 온 것인데, 너무 멀쩡하게 돌아가는 건 섭섭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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