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746 - #96. 진해솔 (50)
"산맥을 타고 쭉 돌아서 방심하고 있을 제국의 서쪽을 노려야겠다."
"폐하! 여기서 군대를 더 차출하겠단 말씀이시옵니까?"
"그럼 지금 이 상황을 가만히 두고 보고 있으란 말이냐!! 어떻게든 뚫어서 제국을 짓밟아야지!!"
"폐하!! 사절단이 돌아온 후 이성을 잃으셨습니다! 지금은 감정적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시끄럽다!! 네놈들이 무능해 그런 것 아니냐! 저쪽에서 갖은 모욕을 주는 동안 게오스 제국의 귀족이라는 놈들이 도대체 무얼 했느냔 말이다!!"
게오스 황제가 길길이 날뛰는 동안에도 전쟁을 반대하던 귀족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꼿꼿하게 얼굴을 세우며 말했다.
"애초에 저희 쪽에서 손해를 많이 보는 전쟁이었습니다."
"맞습니다. 게오스 제국은 굳이 전쟁이 필요 없는 나라입니다."
"비옥한 대지와 축복 받은 홀로스강이 마르지 않고 흐르는 땅이 아닙니까? 백성들의 피가 축복 받은 게오스의 땅이 아닌, 제국의 땅에 흐르는 건 지극히 비극적인 일이옵니다."
"제국은 이미 사절단을 보내 우리 제국과 친교를 다지길 바란 곳입니다."
"이번 일은 황제폐하의 치명적인 실수로 기록 될 것입니다."
귀족들의 서슴 없는 지적들에 게오스 황제는 주먹을 꽉 쥐며 죽일 듯이 그들을 노려봤다.
마음 같아서는 오늘 아침 애완동물의 먹이로 던져 주었던 귀족처럼 저들을 찢어 죽이고 싶었다.
전쟁을 반대하는 자들이 정말 '전쟁'을 싫어해서 반대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내가 하는 짓이 마음에 안 들어서 반대하는 거면서!'
만약 황제가 전쟁을 싫어하는 입장이었다면, 저들은 또 거품을 물고 전쟁을 해야 한다고 소리를 쳤을 것이다.
저것들은 원래부터 그런 놈들이었다.
'게오스 제국의 개국 공신 가문들이란 것들이...나라를 말아 먹으려고 작정했구나.'
정확히는 게오스 제국의 비옥한 땅을 두둑하게 챙겨 받는 것으로는 욕심을 채우기 어려워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각자 본인들의 영지에서 왕 노릇을 하면서 지낸다던데, 그걸 황제 앞에서도 하고 싶어진 거다.
'이번 전쟁으로 저자들의 힘을 빼야 한다.'
왕국에서 제국으로 갑자기 칭제 선언을 한 나라를 짓밟아야 한다는 대외적인 이유도 전쟁의 이유 중 하나이지만, 권한이 너무 커져버린 개국 공신 가문의 세를 줄이기 위해 전쟁을 선택한 것도 전쟁의 이유 중 하나였다.
전쟁이 벌어졌으니 그걸 빌미로 각 가문의 병사와 재물들을 강제로 징집 할 수가 있지 않겠는가?
'저놈들이 보내준 병사들을 모조리 전쟁터에서 갈아 넣을 것이다!'
게오스 황제에게 개국 공신의 영지에서 지내는 백성은 이미 자신의 백성이 아니었다.
개국 공신 가문을 따르는 변절자들일 뿐.
그러니 전쟁터에서 갈려나가는 것에도 눈 하나 깜짝 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저놈들이 보낸 병사들이 갈리는 건 아무 상관이 없었다.
문제는...
'성과가 없지 않은가!! 성과가!!!'
귀족들의 힘을 빼내면서 그 성과는 본인이 갈취하는 것이 게오스 황제가 바라던 일이었다.
그런데 고작 성 하나를 함락 시키는 것도 못하고 있었다.
이는 귀족들이 내놓은 병사들의 질이 너무 낮았기에 생긴 일이었다.
아마 제대로 된 인재들은 꽁꽁 품에 싸놓고 숨겨놨을 거다.
그들도 바보는 아닌지라 황제가 이번 전쟁으로 무얼 노리고 있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패배하고 있다. 게오스 제국이 형편 없이 지고 있단 말이다! 이는 역사 속에서 단 한 번도 일어난 적 없는 치욕이다!"
"하오나 폐하..!"
"닥쳐라! 게오스 제국의 귀족들이라는 작자가 이 치욕에 분노하지 않고 꼬리를 말려고 하는가!! 그러고도 그대들이 개국 공신으로 존경 받을 자격이 있단 말이다!!"
황제의 서슬 퍼런 분노에 반대파 귀족들이 입을 꾹 닫았다.
귀도 닫고 눈도 닫고 입도 다물며 자기의 것을 황제에게 빼앗기지 않겠다 선언한 것이다.
"제국을 그대로 내버려두면 나중에 큰 후환이 될 거다. 지금도 게오스 제국의 군대를 이토록 강하게 밀어붙이는데, 성장할 시간을 더 주면 어찌 되겠는가?!"
"게오스 제국이 패배했다고 해서 나라가 망하는 일은 없사옵니다."
저들은 잘못 생각하고 있다.
자신들이 품에 꽁꽁 싸매고 있는 인재들이 없는 오합지졸 군대이니 패배하는 것이 그리 큰 문제가 아니라 생각하는 거다.
하지만 게오스 황제는 사절단으로부터 제국의 황제를 결코 무시해선 안 된다고 했던 말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제국이 가장 나약한 지금, 짓밟아야 한단 말이다!"
"저들의 땅은 게오스 제국의 땅처럼 비옥하지 않사옵니다. 병충해의 피해가 많고, 매마른 사막 땅도 있으며, 주변에는 오랑캐들과 바다로는 해적이 존재하기도 하지요."
그들이 게오스 제국만큼 세력을 불리기 위해서는 수십 아니, 백 년이 넘는 세월이 더 걸릴 거라는 의미였다.
게오스 제국이 세워진 땅이 워낙 사기적이었기에 다른 나라는 게오스 제국을 감히 넘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천년의 제국이라 불리는 게오스 제국이옵니다. 황제 폐하께서는 제국을 너무 과대 평가 하고 계시옵니다."
뿌드득-
자기 이익을 위해 게오스 제국이 패배를 해도 상관이 없다는 식으로 나오는 개국 공신 귀족들을 보며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저자는 이미 게오스 제국에 마음이 떴다.
"해서, 이대로 항복 하자 이 말인가? 위대한 게오스 제국이 이제 막 왕국에서 제국이 된 신생 국가에게 패배했다는 기록을 남겨야 하겠냔 말이다!"
"게오스 제국은 이 치욕스러운 기록을 숨기지 않고 역사에 담아 후손들에게 경고를 남김이 옳사옵니다."
"짐의 나라는 저놈들을 짓밟을 힘이 충분히 있다! 아니, 넘친다! 그대들이 제대로 협조만 해준다면 가능하다고!! 그런데도 항복을 해야 한다는 것이냐??"
"흠흠흠."
"패배를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시옵소서. 제국을 위한 선택이옵니다. 게오스의 백성들이 폐하의 선택이 옳다며 박수를 보낼 것이옵니다."
"하..! 박수...박수라..."
내부에 이런 답 없는 도둑놈들을 두고 전쟁이라니.
게오스 황제는 자신이 판단을 잘못 내렸다는 걸 깨달았다.
전쟁으로 내부의 갈등을 해결하려 해선 안 되는 거였다.
살을 도려내는 느낌으로 직접 저들을 뜯어내야 했다.
괜히 편하게 가겠다고 제국을 자극했다가 이중으로 손해를 보고 있었다.
"답이 없구나. 답이 없어..."
귀족들이 말한 것처럼 패배를 선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게오스 황제는 질끈 입술을 깨물고 생각에 잠겼다.
'네놈들이 결국 독주를 마시겠다면.'
공신 가문이 남몰래 독립을 준비하고 있다는 첩보를 받은 게 몇 년 전이었던가.
게오스 황제는 어떻게든 개국 공신 가문을 계속 이끌고 제국을 다스리고 싶었다.
괘씸하고, 당장이라도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증오스러운 놈들이지만 제국의 기둥이라 부를 만큼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자들이었으니 말이다.
그런 자들이 갑자기 일거에 쓸려가면 제국은 오랜 평화를 깨고 혼란에 휩쓸리게 된다.
그래서 전쟁을 선택한 거였다.
물론 이제 모두 쓸모없는 일이 되었다.
"참으로 슬픈 일이구나."
생각을 끝낸 게오스 황제가 결정을 모두에게 알리고자 입을 열었다.
그녀가 무슨 결론을 내렸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던 귀족들은 황제의 말에 드디어 전쟁을 포기했나 싶어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그들의 발 아래, 그림자가 꿈틀거리며 이상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게오스 황제는 귀족들의 그림자를 확인하고 침통한 표정을 바꾸지 않으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게오스 제국의 개국 공신 가문이 언제부터 이렇게 겁쟁이가 되었단 말인가. 제국을 위한다기엔 자기 보신을 위한 형편없는 변명에 불과하구나. 짐에게 나약한 신하는 필요가 없다."
"폐하, 소신들이 나약한 것이 아니라 이 전쟁 자체가 잘못 된 것입니다. 부디 소신들의 간언을 통촉하여 주십시오!"
"아니!!"
쾅!
게오스 황제가 분노하며 지팡이로 바닥을 쿵! 하고 찍었다.
"게오스 제국은 과거에도, 미래에도 패배 없이 위대한 천년 국가로 나아갈 것이다! 짐의 제국은 패배하지 않는 제국이고, 그 제국에 반대하는 자들이 있다면 함께하지 못하는 것이 맞지 않겠는가!"
"폐하!! 기어코 전쟁을 계속 하시겠다는 겁니까? 저희들은 이 무의미한 전쟁에 어떠한 손도 보태지 않을 것이옵니다!"
"짐의 제국을 위해 손해를 보는 것이 싫어 벌벌 떠는 것들을 보는 것도 지겹구나! 이제 짐도 그대들을 놓아주겠다."
"예? 그게 도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독립을 준비하고 있던 공신 귀족들이 의미심장한 황제의 말에 말을 흐렸다.
알 수 없는 불길함이 귀족들의 뇌를 스치는 순간.
스ㅡ걱!
"컥!"
촤악!
"끄아아아악!!"
푹!
"아아악!!!"
"이, 이게 무슨?! 아악!!"
그들의 그림자에서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자객들이 튀어나왔다.
자객은 거침없이 검을 휘둘러 반대파 귀족들의 목숨을 취했다.
"!!!!!"
"자, 자객!"
"헉!"
황제의 편에 섰던 귀족들은 그림자에서 튀어나오는 자객들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자신들을 향한 칼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소름이 온 몸에 쫙 돋아나며 오줌이 마려워졌다.
게오스 황제는 죽어나가는 귀족들을 보며 속이 다 시원하다는 듯 개운한 미소를 지었다.
"폐, 폐하..."
개국 공신 가문의 가주들을 싹 다 도려냈다고 해서 문제가 깔끔하게 해결 되는 건 아니었다.
가주가 죽었다고 해도 가문의 혈족들이 황제에게 반항할 것이 분명했다.
"지금부터 전쟁을 위해 모집했던 병사들을 데리고 움직여라. 목적지는 반역을 저지른 개국 공신 가문들이다. 그자들의 모든 것들을 약탈하고 유린하거라. 그들이 가진 사병들은 포로로 잡아 전쟁터로 내보낼 것이다. 그리고."
꿀꺽-
황제의 명령에 귀족들이 바짝 몸을 굳혔다.
"이제부터 짐의 나라에 저자들의 혈족이 살아 숨 쉬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
"!!!"
싹 다 잡아 죽이라는 명령이다.
남녀노소.
어린아이 혹은 갓난아기라 할지라도.
"핏줄이 이어져 있는 것들은 싹 다 잡아 죽인다. 제국을 좀 먹고 있는 고름이다. 기왕 칼을 댔으니 시원하게 모두 짜내야 하지 않겠느냐?"
"폐, 폐하의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오랫동안 평화를 유지하던 게오스 제국의 수도에서 피비린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