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749 - #96. 진해솔 (53)
“게오스 제국에서 활동하는 혁명단이라는 단체를 알고 있습니까?”
“들어 본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더 많은 게오스 제국을 위한 프로젝트가 시작 되기 전.
나는 이용할 수 있는 많은 수단들을 귀족들에게 제시했다.
“혁명단, 그들이 게오스 제국의 내전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상황이라고 합니다. 짐은 그들을 이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그들에게도 적당한 땅을 하나 떼어주는 것도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땅덩어리를 최대한 잘게 쪼개는 것이었다.
그렇게 땅이 쪼개져야 나중을 기약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게오스 제국의 땅은 오래 전부터 갖는 것보단 지키는 게 더 어려웠습니다. 그 땅에 얽혀 있는 각종 이권이 인간의 탐욕을 자극하기 때문이었지요.”
귀족들 중, 나이가 지긋히 든 귀족이 주름 진 얼굴로 과거를 회상하는 듯 멍한 눈동자로 말했다.
“전대 왕 아니, 태상황제 께서는 오랫동안 게오스 제국의 땅을 탐내어 하셨습니다. 우리 제국의 땅은 매말랐고, 농사에 적합하지 않은 늪지대가 많아 게오스 제국의 비옥한 땅을 부러워 할 수밖에 없었지요.”
“제가 알고 있기로 제국은 게오스 제국과 직접적으로 전쟁한 적은 없는 걸로 압니다.”
“맞습니다. 전하께서는 게오스 제국과 전쟁을 바라셨으나 현실을 너무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해서 언제나 아쉬워 하셨지요. 제국이 어느 정도 준비가 되었다 싶었을 때는 늙고 노쇄하였으니 말입니다. 결국 태상황제께옵서는 게오스 제국과의 결전을 포기할 수밖에 없으셨습니다.”
태상 황제의 평생 숙원을 아들인 내가 들어주겠다고 하는 것이니 나쁠 것 없지 않겠나.
아련한 목소리로 말하던 귀족이 잠시 숨을 쉬었다가 이어서 말했다.
“헌데 다음을 이으신 황제 폐하께서 선뜻 태상황의 유지를 잇고자 게오스 제국과의 전쟁을 준비하시니, 이 늙은이는 아쉬움을 감출 수가 없어집니다. 소신이 5년 만이라도 젊었다면 제국을 위해 이 한 몸, 전쟁터에서 불 사르고자 하였을 겁니다.”
진심으로 안타까운 듯 자신의 떨리는 손을 마주 잡으며 깊게 한숨을 쉬었다.
“헬슨 경을 전쟁터에 보내면 하늘로 올라가신 태상황제께서 저를 찾아와 꾸짖을 겁니다. 제국에는 수많은 인재가 있습니다. 헬슨 경이 그들을 위해 가르침을 내려준다면 그게 제국을 위한 충정이 아니겠습니까?”
왕년에 태상 황제와 함께 전쟁터를 다니며 나라를 검 좀 휘둘러본 은퇴 기사가 바로 헬슨 경이다.
뛰어난 실력으로 태상 황제의 총애를 받아 고위 귀족의 자리에 올랐고, 태상 황제의 적합한 후계자인 나를 묵묵하게 지지해준 귀족 중에 하나이기도 했다.
머리는 희게 새었지만, 여전히 몸은 튼튼한 근육질을 유지하고 있었다.
검사로 높은 경지를 이뤘기에 평범한 사람보다 훨씬 많은 수명을 갖고 있기도 했고 말이다.
다만 나이 때문에 전쟁터에 나가게 했다간 그를 스승으로 모시고 있는 수많은 기사들에게 비난을 받게 될 거다.
“게오스가 제국을 침략했던 전쟁에서 뛰어난 실력을 뽐낸 기사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그들이 헬슨 경의 가르침을 받는다면 지금보다 훨씬 일취월장한 실력을 갖게 되지 않겠습니까.”
잠시 내 제안을 곰곰이 생각하던 헬슨 경이 이내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제국을 위한 일을 맡겨 주시니, 기꺼이 받들겠나이다.”
됐다!
“고맙습니다. 헬슨 경!”
“소신의 검술이 제국을 위해, 태상 황제님의 숙원을 이루기 위해 쓰인다면 편하게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늙은이를 믿고 활약 할 기회를 주시어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그의 절도 있는 인사에 나도 엄숙하게 감사 인사를 했다.
솔직히 헬슨 경은 황제가 불렀다고 쪼르르 달려 올 만한 위치가 아니었다.
그냥 눈 딱 감고 몸이 안 좋아서 오지 않았다고 해도 뭐라 할 수 없는 위치다.
‘몸이 안 좋았다는 말도 할 필요 없지. 저 사람은 약간 언터쳐블이니까.’
헬슨 경은 나의 신하가 아니라 태상 황제의 신하이다.
지금도 전쟁이 터진 특별한 상황이라서 참석을 해준 것이지, 전쟁이 아니었다면 코 빼기도 비추지 않았을 것이다.
헬슨 경이 기사단에 가르침을 내려주겠다고 하니, 내 근처에 있던 기사들의 무표정이 조금 깨졌다.
‘기대하네. 저 사람, 진짜 기사들한테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구나.’
저런 사람이 진짜 무서운 사람인 거다.
절대 건드릴 수 없는 존재인 것이고.
헬슨 경의 일이 일단락 되자 귀족들은 다시 회의를 시작했다.
계획을 짰으니 이젠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동할지를 결정할 때였다.
“가장 우선해서 해야 할 일은 혁명단과 공신 가문 쪽 모두에게 접근해서 연을 맺는 것으로 보이는군요.”
“제가 공신 가문 쪽 몇몇과 안면이 좀 있습니다. 제가 접근을 하면 그래도 내치지는 않을 겁니다.”
“오오~ 그럼 백작께서 맡아주시겠습니까?”
“그러지요.”
“문제는 혁명단이군요. 그런 자들과 연이 있는 분이 있을 리 없으니 말입니다.”
타국의 혁명단을 제국의 귀족이 어찌 알겠는가?
존재한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신기한 거다.
거기다 몰락 귀족과 평민이 소속 되어 있는 단체를 상대해야 한다는 건 귀족 입장에서 썩 불쾌한 일인 모양이다.
선뜻 나서서 자신이 하겠다고 말해오는 귀족이 없었다.
‘아무래도 내가 지정해줘야겠네.’
다행히도 나는 귀족들 중에 누가 혁명단과 연결이 가능한지 잘 알고 있었다.
그 귀족의 정체는 오늘 내게 게오스 제국의 내전 상황을 알려주었던 후궁이 속해 있는 가문의 가주이기도 했다.
“라오릭 백작.”
“예, 폐하.”
내 부름을 받은 라오릭 백작이 체념한 듯 앞으로 한 걸음나섰다.
“백작에게 혁명단과의 접촉을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폐하의 명령을 받들겠습니다.”
라오릭 백작은 크게 거부감 없이 내 명령을 받아들였다.
“라오릭 백작이라면 이번 일을 능숙하게 해낼 겁니다.”
“맞습니다. 선대 라오릭 백작께서 외교부에서 일하시어 게오스 제국에 선이 많지 않습니까.”
귀족들이 ‘나만 아니면 돼!’ 하는 느낌으로 허허 웃으며 라오릭 백작에게 짬처리 한 것을 흐뭇해 했다.
점점 똥 씹은 표정이 되어 가는 라오릭 백작에게 당근을 줄 필요가 있어 보였다.
“일이 잘 풀려서 우리의 계획대로 된다면, 짐이 그대들에게 후하게 포상을 내릴 것입니다. 제국이 위대한 역사를 시작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모두 사명감을 갖고 일해주길 바랍니다.“
여태까지 나는 포상을 내릴 때 쪼잔하게 굴어 본 적이 없었다.
원래 쉽게 얻은 돈은 쉽게 쓰이는 법이 아니겠는가.
여기 있는 재물을 들고 본래의 세계로 돌아갈 것도 아니었기에 귀족들에게 포상을 유난히 후하게 내리고 있었다.
‘거기다 반역자들한테 거둔 재물이 어마어마하기도 하고, 내가 팔고 있는 인형으로도 두둑하게 주머니가 채워지고 있으니까.’
경제를 조금이라도 배운 사람이라면 돈은 쌓아두기 보단 흐르게 둬야 한다는 걸 알 것이다.
나도 그를 위해 과하게 쌓은 부를 너무 쌓아만 두고 있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가져갈 수 없는 재물을 아껴봤자 뭐하겠어.’
포상을 통해 귀족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내 계획하고 있는 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후하게 포상을 내린다고 하니 귀족 놈들이 눈을 번뜩였다.
혁명단 같은 놈들과는 대화 하기도 싫어서 빼던 놈들이 뒤늦게 아쉬운 듯 라오릭 백작을 부럽게 바라 본 것이다.
욕망에 솔직해서 다루기 편하다는 장점이 있긴 한데, 보고 있으면 너무 노골적이라 불편할 때가 있다.
욕망에 휘둘리기 보단 수단으로 사용하는 편인 내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들의 탐욕이 이해 되지 않았다.
‘이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목숨까지 거는 사람도 있는데, 정작 바란 적 없는 내가 갖고 있다는 게 인생의 아이러니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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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스 제국, 혁명단 본거지]
“제국에서 우릴 왜 돕겠다는 건데? 누가 봐도 함정이잖아.”
“생각 좀 해봐, 멍청아! 그쪽에선 내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이득이 생기니까 그러는 거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적대국이 주는 돈을 받자고? 그건 나라 팔아 먹는 놈들이나 하는 거잖아.”
“돈에 나쁘고 좋은 거 어딨냐? 국적이 어딨냐고.”
“그럼 넌 그놈들이 주는 걸 넙죽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응. 안 받을 이유 없지. 걔네들은 그냥 우리한테 내전을 오래 끌 수 있게 해달라는 것밖엔 의도가 없어. 그리고 그놈들이 바라는 건 우리가 바라고 있는 목표와 같고.”
혁명단이 대단한 목표와 의식을 갖고 활동하는 단체는 아니다.
평민으로 귀족에게 짓밟히며 살고 싶지 않은 반항아들이 혁명단에 들어오고, 몰락한 귀족들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들어오는 곳이 바로 혁명단이었다.
몰락 귀족이 혁명단에 들어와서 하는 일은 돈을 모으는 것이었다.
정치적으로 축출을 당해 다시 복권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보니 욕망이 재화로 표출 되는 것이다.
‘쯧쯧, 멍청하기는! 누가 평민 아니랄까봐.’
그들이 바깥에서 존중을 받으려면 재화가 필요하다.
마침 혁명단에는 이용해 먹기 쉬운 평민들이 꽤 많았다.
그것도 나름 재능이라는 것이 타고 난 것들로 말이다.
그들의 재능은 혁명단에 들어 온 몰락 귀족에게 유용하게 써먹히고 이용 당했다.
정작 본인은 이용 당하는 줄도 모른 채 말이다.
‘나름 적응 했다고 생각했는데, 쉽지 않네. 머리를 써야 하는 일에서는 상종하기가 싫을 정도로 무식해서 정 떨어진단 말이지.’
평민을 친구로 두고 잘 이용해 먹고 있었던 몰락 귀족은 혁명단에 온 좋은 기회를 적대국이라 의심 된다는 이유로 거부하려는 것을 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어이가 없네.’
이건 그냥 공짜로 받아 먹으라고 제국 쪽에서 입 앞에까지 빵을 들이밀어 준 거나 다름없다.
의심할 이유도 없이 후원해주는 이유까지 깔끔하게 나와 있다.
그런데 이놈은 그렇게 내어준 것을 싫다며 거부하고 있었다.
“난 찝찝해서 싫어. 우리가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니잖아.”
“제발 생각이라는 걸 좀 해. 이건 받아도 되는 돈이야! 공짜로 주울 수 있는 눈 먼 돈을 왜 거부하냐고.”
혁명단이 두 개의 의견으로 갈렸다.
적대국이라 찝찝해서 싫다는 의견과 공짜로 주는 돈을 왜 거부하냐는 의견, 두 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