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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750화 (737/849)

Chapter 750 - #96. 진해솔 (54)

혁명단은 썩어 빠진 나라를 뒤집어 엎어서 평민들을 위한 나라를 만들겠다! 뭐 이런 대단한 목적을 갖고 있는 단체는 아니었다.

혁명단 단원들의 사연은 굉장히 다양하다.

몰락 귀족들이야 말해 뭐한 일이고.

귀족에게 원한을 갖고 있는 평민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복수를 하기 위해 혁명단에 들어온다거나, 가업을 잇고 싶지 않은 평민들이 가출해서 혁명 단원에게 주워진다거나 하는 식으로 인원을 불렸다.

다만 혁명단이 운영까지 주먹구구식으로 운영 되고 있는 건 아니었다.

몰락 귀족들이 혁명단에 들어와서 운영 방식을 효율적으로 싹 고쳐준 덕분이었다.

"이 돈이면 단순히 내전에 끼어드는 게 아니라 우리가 주도할 수도 있어! 그걸 왜 모르는 거야?"

"주도한다고요? 도대체 뭘 주도한다는 겁니까?"

"후우~ 자, 생각을 해보자. 내전이 길어지면 어떻게 될 것 같아?"

"어..."

평민 출신의 단원들이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내전이 길어지면?

그걸 본 몰락 귀족 단원이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너희들 설마 우리가 왜 귀족 쪽에 가담해서 싸우고 있는지도 모르냐? 그냥 시키니까 한 거야?"

"...예. 혁명단에 도움이 된다고 하셨으니까요."

"어휴..."

"야, 됐어. 그만해. 물어 볼 사람한테 물어봐야지. 그냥 그러려니 하자고."

"그럼 이 문제도 그냥 우리가 하라는 대로 하면 되잖아. 왜 적대국 후원은 못 받겠다고 바득바득 우기냐고!"

"아무리 우리가 게오스 제국이 싫어서 혁명단이 됐어도, 매국은 좀 아닙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야. 너 선 넘었어."

"후...씨발."

시키는 대로 하던 것들이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기 시작하니 쉽게 꺾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혁명단에서 귀족 출신 단원들이 평민들은 이용해서 이득을 취하고 있는 만큼, 그들을 대놓고 무시하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귀족들에게 무시 당하고, 짓밟히기 싫어서 혁명단에 들어온 이들이 아닌가?

너무 심하게 무시를 주면 평민 출신 혁명 단원은 참지 않고 부딪친다.

"그럼 어쩌자는 건데? 주는 걸 안 받자고?"

"준다고 해서 넙죽 받지는 말자는 겁니다. 좀 더 상황을 지켜보자는 거에요. 그놈들이 꿍꿍이를 숨기고 있을 수도 있는 거잖아요."

"...설명을 해줘도 이해를 못하고 자기 주장만 우기는구나."

"됐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우리가 백날 말해봐도 설득 못 할 테니까. 그냥 상황을 좀 더 지켜보는 걸로 하자."

"그러다가 안주겠다고 하면!"

"어차피 제국은 내전을 오래 끌려고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할 거야. 오히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우리의 힘이 더 필요해질걸?"

게오스 제국의 황제가 어디 호락호락한 사람인가?

귀족들이 그동안 많은 힘을 비축해뒀다 해도 황제의 권한을 이용해 본격적으로 날뛰기 시작하면 막아내기 힘든 법이었다.

다만 지금 해 볼만 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가주를 잃은 공신 가문들이 분노해서 날뛰고 있다는 점, 그리고 황제가 제국과 전쟁을 일으킨 상황이라는 점 덕분이었다.

'이렇게까지 몰려서야 겨우 황제한테 위기 의식을 줄 수 있는 수준이 된 건가.'

다행인 점은 그 뿐 만이 아니었다.

게오스 황제에게 공격 받은 제국 쪽에서 그들을 돕겠다고 은밀하게 접근해왔다.

귀족 출신 단원들은 이번 기회로 혁명단을 크게 키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혁명단이 게오스 제국 땅을 먹을 수만 있다면...?'

지금 귀족들에겐 무력이 필요한 상태다.

혁명단은 그 무력을 제공해줄 수 있었고, 귀족들은 도움을 받는 대가로 땅을 조금 떼어주는 것이다.

넘치는 재력을 가진 그들 입장에선 썩 손해 보는 거래는 아니지 않겠는가?

'그렇게 땅을 받고 나면...귀족들을 털어먹는 짓은 그만해도 되는 거잖아.'

돈을 벌기 위해, 혁명단을 운영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귀족들을 털어먹었지만, 솔직히 썩 마음에 드는 일은 아니었다.

몰락 귀족은 누구나 마음 한켠에 신분을 다시 회복하는 것을 꿈 꾸기 마련이지 않은가?

그런 점에 있어서 혁명단원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건 썩 좋지 못한 일이었다.

명예에 살고, 명예에 죽는 귀족이 아닌가?

그런 와중에 다스릴 수 있는 땅이 생긴다면 상황이 많이 달라질 수 있었다.

'땅은 끊임없이 솟아나는 금이다.'

굳이 귀족들의 재물을 탐내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곳의 지도자가 된다면....'

평민들이 귀족과 왕이라는 단어에 예민하게 군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는 머리를 굴려서 '지도자'라는 비슷한 단어를 생각해냈다.

못할 것도 없어 보인다는 게 그녀를 더 미치게 만들고 있었다.

평생 다시 가까이 가지 못할 줄 알았던 권력.

그 권력을 다시 손아귀에 쥘 수 있는 기회는 지금이 유일할 지도 몰랐다.

유일한 기회를 허무하게 놓칠 수는 없었기에, 그녀는 다시금 제국과 연락을 취해보기로 결심했다.

혁명단이 좀 더 상황을 지켜보기로 결론을 내렸던 것과는 다소 다른 행보임을 알았지만, 큰 문제가 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 ♧ ♧

"혁명단과 접촉하여 후원을 받겠다는 확답을 받았습니다."

"게오스 귀족들이 후원에 감사하다며 친서를 보내왔습니다."

귀족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머지 않아 좋은 소식이 전달이 되었다.

"내전 상황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아무래도 혁명단과 게오스 귀족들만으로는 황실을 당하긴 힘들어 보입니다."

"그래도 저희의 지원을 받으면 너무 밀리지는 않을 겁니다."

"지원 받고자 하는 물건들 확보는 되었습니까?"

우리도 게오스 제국과 전쟁을 하고 있는 건 마찬가지였기에 전쟁 물자를 그쪽에 과하게 배분을 해줄 수는 없었다.

"예, 확보하는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물자를 이동할 때 적군의 습격에 대비해야 합니다."

"습격..에요?"

"그쪽 황제가 우리의 행동을 정말 모를 거라고 생각합니까?"

"으음...."

내 말에 귀족들이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우리도 그쪽에 스파이를 심어뒀는데, 그쪽이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저쪽 황제가 상황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미리 대비를 해둬야 합니다."

게오스 황제는 멍청하지 않다.

우리 제국이 어떻게 했을 때 가장 이득이 되는 일인지 잘 알고 있다는 의미다.

"전쟁 물자를 황제에게 빼앗기면, 이 모든 일이 안 하느니만 못한 일이 되는 겁니다. 짐의 기사를 한 명씩 내어주지요. 그들과 함께 움직이면 적어도 쉽게 빼앗기진 않을 겁니다."

제국은 게오스 제국의 내전을 길게 유지시키지 위한 준비를 끝냈다.

이제 남은 것은 제국에 남아 있는 대규모의 게오스 군대를 치워내는 것이었다.

"아! 그리고 포로들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아무래도 게오스 제국은 포로들을 모두 포기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포로들이 대부분 귀족들이지요?"

"예. 게오스 황제는 지금 포로로 붙잡힌 귀족들까지 신경 쓸 만큼 자비롭지 못한 듯 싶습니다."

더욱이 우리가 붙잡고 있는 귀족들 중에는 내전을 일으킨 쪽 포로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은가?

그걸 일일이 따져서 구해내기엔 귀찮았던 거다.

"허면 포로들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습니까?"

"광산 노예로 보내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평민들이야 어떻게 처리하든 크게 상관이 없다.

문제가 되는 건 귀족이었다.

"귀족들도 광산 노예로 보내라는 겁니까? 말도 안 됩니다."

"맞습니다. 그런 곳에선 관리도 허술하여 도주를 할 수도 있습니다."

전쟁터에 나온 귀족이라면 모두 마나를 다루는 기사들일 것이다.

그러니 광산 같은 곳에 보냈다간 금방 도주해서 사라져 버릴 것이다.

"그럼 아예 처형 시키는 것은 어떻습니까? 보석금을 내지 못하는 자는 원래 그렇게 처분 되곤 하지 않았습니까?"

"게오스 제국 출신이지만, 인재들을 그렇게 허무하게 사용하는 건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포로 귀족의 처분에 대해 대화를 나누던 귀족들 사이로, 내가 끼어들어 입을 열었다.

"그렇게 피를 보게 할 바에야 차라리 모두 후궁전에 들이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

"....."

내가 말을 끝내자마자 귀족들이 입을 꾹 다문다.

이미 내 여성 편력은 귀족들 사이에서 두 번 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로 퍼져 있는 상황이었다.

"포로들을...모두 후궁전에 말씀이십니까?"

"그들은...폐하를 가까이에 모시게 두기엔 너무 위험한 자들입니다."

"맞습니다. 원한이 깊을 터인데, 폐하를 모시게 하다니요."

"계약이 있지 않습니까. 죽을 건지, 짐의 후궁이 될 것인지 선택하게 하고 계약을 맺으면 되죠."

기사라고 해서 대단한 충성심을 갖고 있고, 나라에 대한 애국심이 하늘을 찌른다거나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기사라는 특별한 직업 때문에 품위를 지키기 위해 그럴 듯하게 겉모습을 꾸밀 수는 있어도, 진심을 파고 들어보면 자기 안위가 가장 중요한 게 대부분인 것이다.

"죽을래, 아니면 황제 후궁 될래?"

라는 선택지를 줬을 때, 대부분의 기사들이 후자를 선택했다.

다만 후자를 선택 했을시 강제로 계약을 맺어야 한다는 점이 좀 찝찝하긴 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황제...폐하...?"

그건 황제의 얼굴을 본 순간,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버린다.

놀랍게도 게오스 제국에서도 황제의 뛰어난 정력과 방중술이 소문나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적대국가의 황제라지만, 잘생긴 얼굴에 여자들을 껌뻑 죽게 하는 정력과 방중술까지 갖고 있는 남자를 외면하기는 쉽지 않았다.

특히 기사라는 땀 내 나는 직업을 갖게 됐을 경우, 남자는 정말 만나기 쉽지 않은 환상 속의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짐의 후궁이 되겠다고 했다지."

"...그건 선택이 아니라 강요였습니다."

목숨이 아까워서 적대국 황제의 후궁이 되겠다고 선택했다는 게 조금은 부끄러웠던 모양인지 슬쩍 발뺌을 해온다.

대단한 치욕을 느끼고 있다는 듯 격한 표정을 짓는데, 솔직히 연기하고 있는 게 티가 났다.

"뭐 상관없다. 강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런 선택을 한 거라고 해도 바뀌는 건 없을 테니까."

지금부터 이 여자는 나의 후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게 되는 거다.

"흥!"

후궁이 된 포로는 나와 잠자리를 앞두고 있음에도 협조적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런다고 본인에게 좋을 게 없을 텐데 말이다.

솔직히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와주는 게 나한테도 좋은 일이었다.

'후궁 인원 채워 넣기 딱 좋은 상대거든.'

포로를 후궁으로 삼지 않는다면 삼천 명의 후궁을 어떻게 책임질 수 있겠는가?

아무리 신경을 써준다고 노력해도 방치 되는 후궁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런 와중에 적국 출신이라는 점 덕분에 한 번 먹고 버려도 크게 상관이 없는 후궁의 존재는 내 어깨에 얹어 있는 무거운 짐을 조금은 가볍게 만들어주는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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