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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754화 (842/849)

Chapter 754 - 96. 진해솔 (58)

“속이 다 시원하네.”

게오스 제국이 속된 말로 좆대고 있었다.

내전을 빠르게 끝내려고 귀족들에게 강제로 사병을 빼앗아 군대에 편입시킨 게오스 황제는 더 이상 시간 끌 것 없다는 듯 공신 가문 영지로 군대를 파견했다.

공신 가문 영지들도 그때만큼은 벌벌 떨었다고 한다.

황제에게 지금이라도 용서를 구해야 하는 게 맞다는 의견이 내부에 있었다고 하니 말이다.

하지만 가주를 잃고 분노에 찬 직계 가족들의 의견이 내부에서 더 많은 지지를 받았고, 결국 황제의 군대와 전쟁이 시작 되었다.

"황제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공신 가문 영지가 버티지 못하고 순식간에 쓸려 버릴 거라고 예측했었는데...어째서 예측이 빗나간 것인지 알 수가 없어 당황스럽습니다."

"이 모든 게 우리 제국이 힘 쓴 덕분이 아니겠습니까?"

"전쟁 물자 조금 지원해줬다고 대세가 바뀌는 건 아닙니다."

귀족들은 자신이 한 활약을 칭찬 받고 싶었는지 귀족 측에서 분발하는 것에 슬쩍 발을 얹으려 했으나, 우리가 한 일은 저 결과에 미미한 영향만 미쳤다는 것을 모를 수 없었다.

"더군다나 지금은 이기고 있다고 해도 결국 시간은 황제의 손을 들어주고 있습니다."

황제는 여러 영지에서 보내오는 끊이지 않을 전쟁 물자를 손에 쥐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군대가 죽으면 다시 백성들을 징집시켜서 인원을 뻥튀기 할 수도 있다.

반면 개국 공신 귀족 편의 군대의 인원은 한정적이었다.

"싸움이 계속 된다면 끊임없이 군대를 지원할 수 있는 황제가 이길 겁니다."

"그럼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우리는 내전을 일으킨 귀족들이 이겨야 하지 않습니까?"

귀족들이 하는 말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이제 내가 나설 때가 됐구나 싶어져 손을 살짝 들어올렸다.

시끌거리게 의견을 나누던 귀족들이 그 손짓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남의 내전 얘기는 이제 그만하고, 제국의 일을 얘기해봅시다. 포로들은 어떻습니까?"

게오스의 군대가 모두 격파 되고, 흩어진 패잔병들이 어떻게든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쥐새끼처럼 숨어서 국경을 넘어가고 있는 현재.

황궁의 감옥에는 적대국의 사령관이 붙잡혀 있었다.

"제국에선 그들을 완전히 버린 게 분명합니다. 그쪽도 포로로 누가 붙잡혀 있는지 모르는 바가 아닌데, 아무런 움직임이 없지 않습니까."

게오스 제국에서 먼저 배상금을 줄 테니 포로를 돌려 달라고 요청했어야 한다.

하지만 내전을 겪고 있는 게오스 제국 황제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는 듯 감감무소식이었다.

"사령관까지 잡혔는데도 무시로 일관하다니, 게오스 황제의 정신상태가 의심스럽습니다."

"요즘 폭군이라고 불리던데, 괜히 그런 소문이 났겠습니까."

"그렇다면 이번에도 포로들을 폐하의 후궁으로 삼아야 하는 겁니까?"

"크흠...."

어떤 한 귀족의 말에 다른 귀족들의 시선이 슬그머니 나에게로 향한다.

설마 이번에도 후궁전에 사람을 더 채워 넣을 생각이냐는 의문을 담은 채였다.

나는 기꺼이 씨익 웃으며 그들이 바라는 대답을 해주었다.

"그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괜히 포로를 홀대했다가 게오스 황제에게 명분을 줄 순 없지 않습니까."

솔직히 명분을 챙기는 건 저쪽이 아니라 나다.

후궁을 계속해서 늘리고 있는 내 모습에 슬슬 귀족들 사이에서 '너무 심한 거 아니냐' 라는 말이 나오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황궁에 자기 딸을 데려와서 소개 시키는 사람이 없더라.

그러니 귀족 출신 포로들은 매우 손쉽게 후궁 수를 채울 수 있는 수단이 되었다.

"그럼 귀족 출신 포로들은 후궁전에...?"

"폐하...."

"흠흠! 그 얘기는 그걸로 끝내고. 사령관은 입을 좀 열고 있습니까?"

귀족들이 이걸 한 마디 해, 말어? 갈등하고 있는 것을 보고 헛기침을 하며 대화의 화제를 바꿨다.

누가 봐도 노골적인 회피였지만, 귀족들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고 내가 돌린 화제에 대답을 해주었다.

"사령관은 붙잡혀 온 이후,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살겠다고 주는 밥은 먹던데 말입니다."

"사령관과 휘하 지휘관들에게 게오스 제국의 상황을 알려줘봅시다."

"가뜩이나 게오스 제국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궁금해 하고 있을 텐데, 그걸 공짜로 말입니까?"

정보를 제공 받고, 대가로 알려주는 식으로 알려줘도 되는 일이긴 하다.

"어떤 방식으로 알려 줄지는 그대들이 알아서 하세요. 게오스 제국이 본인들을 구명 할 정신이 없다는 걸 알게 하라는 의미였습니다."

"예, 폐하. 그리하겠습니다."

요즘 게오스 제국의 내전 때문에 하루가 멀다 하게 회의를 하고 있었다.

귀족들도 오랜 집무에 피곤을 호소하고 있었기에 오늘은 좀 빨리 퇴청하게 해주기 위해 다음 본론을 꺼냈다.

"짐이 명령했던 일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제국은 내전을 장기화 시키기 위해 다양한 공작들을 하고 있었다.

그 부분을 맡고 있었던 귀족들이 한 걸음 나와 성과를 털어놓았다.

"황제의 편에 섰던 귀족들 중 몇 정도는 변절 시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황제의 군대가 단숨에 쓸어버릴 줄 알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으니 그들 사이에서도 여간 당황스러운 게 아닌 모양입니다."

"하하! 그렇겠지. 이길 줄 알고 줄을 섰을 텐데 말이죠."

황제가 당연히 압도적으로 밀어 붙일 줄 알았는데, 현실은 영지 성을 함락 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인원으로 밀어붙이면 다 되는 줄 아는 황제의 안일함이 불러 온 참사였다.

황제가 내전을 정리하지 못한다면, 귀족들이 손해를 감수하고 붙어 있을 이유가 없었다.

이러다가 잘못해서 패배까지 한다면 어떡하란 말인가?

"귀족 가문 쪽에서 황제는 떨어진 별이며, 폭군의 상을 타고 났다는 소문을 내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게오스 황제, 본인이 저지른 일이 있지 않습니까? 아니라고 부정해봐도 개국 공신 귀족들을 살육한 증거가 명명백백한 이상 피할 수 없는 불명예일 것입니다."

내가 살던 곳이나 이곳이나 여론은 절대 쉽게 생각해선 안 되는 거다.

아무리 평민이 아니라 황족과 귀족들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나라라고 해도 말이다.

'평민들의 지지를 잃으면 귀족들이 반역을 저지를 명분이 되니까.'

지금은 태상 황제의 무덤에 함께 묻혀버린 오드만도 그것을 명분으로 나라를 집어 삼키려 들지 않았는가.

황제파 귀족을 변절시키는 일을 맡은 귀족이 보고를 끝내자 다음 귀족이 앞으로 나섰다.

“소신, 폐하의 명을 받고 게오스 황족을 알아보았습니다."

"어떻게 됐습니까? 말이 통하는 자가 있었습니까?"

“게오스 황제가 원채 잔혹한지라 쉽사리 해보겠다는 황족이 없었습니다. 다만 아예 여지가 없지는 않아 보였습니다.”

"설득할 가치가 있어 보였단 말이군요."

"예, 황족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며 생활하고 있었나이다. 아마 황제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당장은 거절을 해도 속으로는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게 분명합니다."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하며 생활하고 있다?

"자세히 말해보세요. 어떻게 생활하고 있기에 그럽니까?"

"어찌 혈육에게 그리 매정할 수 있는지..."

조사를 해온 귀족이 연신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게오스 황제의 잔인한 성정에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그들은 황족이라는 이유로 24시간 동안 황제의 감시를 받으며 지내고 있었사옵니다.”

"24시간 감시요??"

"예, 만약 황제가 보낸 기사의 눈에서 1시간 이상 벗어나면 반역으로 다스리고 있다고 하옵니다."

"그럼 우리가 황족에게 접근한 걸 황제도 알겠군요."

"그건 아닙니다. 저희 쪽에서 최대한 노력하여 문제 삼지 않을 찰나의 시간 서신을 통해 접촉하였습니다."

황족을 찾아내도 접근이 쉽지 않았으나, 반대로 오랫동안 감시를 당해오고 해왔기에 다소 허술한 부분이 많았다고 한다.

"조금 더 시간을 주신다면 뜻을 모아 볼 수 있을 듯 하옵니다."

지금의 게오스 황제는 제국에 대한 공격 의사가 너무도 뚜렷하다.

그러니 게오스 제국을 완전히 뒤엎어버릴 것이 아니라면 황제를 바꾸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었다.

물론 능력 있는 황족을 앉힐 생각은 없다.

적당히 제국의 눈치를 보며 황제 생활을 누릴 자.

그런 황족을 찾고 있는 중인 것이다.

게오스 제국을 향한 각종 방해 공작을 보고 받은 후.

나는 마지막 안건을 꺼내 놓았다.

"마지막으로, 슬슬 우리 제국도 움직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국에 군대를 보내려고 합니다."

"!!!!"

"폐, 폐하...!"

"으음...드디어...!"

전쟁 선포.

사실 저쪽에서 먼저 전쟁을 걸어왔으니,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제국이 보낸 군을 모두 격파 시켰다고 해서 전쟁이 끝났다고 볼 수는 없는 법이지 않은가?

본래 정상적인 절차였다면, 게오스 제국이 사절을 보내 포로를 송환 요청과 동시에 패배를 인정해 보상금을 얼마로 할지 얘기를 나눴어야 했다.

헌데 게오스 황제는 포로에 대한 문제도, 전쟁을 계속 이어갈지, 패배를 인정할 지에 대한 문제도 모두 무응답하는 태도를 취했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내전을 종결 시키고 다시 제국을 치러 오겠다는 거 아니겠냐고.'

가만히 있으면 호군 줄 알고 더 때리려고 들 게 뻔한 게오스 황제다.

당한 만큼 값아 줘야만 했다.

아니, 그 이상으로 값을 톡톡하게 받아낼 거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견을 듣고 싶어 물어보는 겁니다."

"소신은 게오스 제국을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게 옳은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내전을 지켜보면서 힘이 빠졌을 때 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제국이 힘이 좀 더 빠졌을 때를 노려 전쟁하자는 '어부지리'를 선택한 유형.

"내전으로 정신없는 지금만큼 게오스 제국을 치기 좋을 때가 어디 있습니까? 저는 당장 공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황제를 우습게 봐선 안 된다며 내전을 장기화 하기 위해서라도 지금 당장 게오스 제국을 공격해야 한다는 유형.

두 가지로 의견이 자연스럽게 갈렸다.

두 가지 모두 일리가 있는 의견들이다.

"게오스 제국이 내전이 터지면서 제국은 다소 넉넉하게 전쟁을 준비할 수 있는 상황이 됐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준비만 하고 있을 순 없지 않겠습니까?"

준비만 백날 해봤자 뭘 하겠나.

"이젠 우리도 움직여야 할 때입니다. 제국이 힘이 빠질 때까지 기다리자는 건 그저 두려움에 일을 뒤로 미뤄두려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보십시오."

"으음...."

침략을 반대했던 귀족들의 안색이 불편해진다.

"제국에는 단숨에 적군을 쓸어버린 용사들이 있습니다. 게오스 제국을 두려워 하지 마세요. 우리는 이길 겁니다."

오랜 세월 동안 최강자로 군림하던 게오스 제국을 친다는 게 쉽지 않은 결정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내전으로 흔들리고 있는 지금만큼 그들을 공략하기 좋은 때가 없었다.

"우리는 지금 바로 움직여야 합니다."

반대하는 귀족들도 더 이상 내 말에 반박을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못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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