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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755화 (741/849)

Chapter 755 - #96. 진해솔 (59)

이미 결정을 해놓고 왜 귀족들에게 의견을 구한 것인지 궁금한가?

그건 내가 귀족들을 온전히 믿지 않기 때문이었다.

내가 게오스 황제에 대한 정보를 꾸준히 접해오면서 한편으로는 우리 쪽 정보도 그쪽에게 넘어가고 있을 수 있다는 부분을 잘 알고 있었다.

'게오스 제국의 첩자...누굴까?'

첩자를 가려내는 것은 정보를 다루는 예샤 쪽 가문도 쉽게 알아내지 못하는 문제였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 쪽에 분명 첩자가 있다는 거다.

그게 귀족 본인일지, 아니면 귀족들의 측근일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게오스 제국이 우리가 하는 짓을 언젠가는 알게 될 거라는 점이다.

'알아도 할 수 있는 일은 없겠지만.'

소용이 있건 없건, 적어도 스파이로 의심이 되는 귀족과 그렇지 않은 귀족은 구분해 둬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게오스 제국과 천쟁을 치르는 것에 대한 생각을 귀족들에게 물어봤다.

본인이 첩자라면 은연중에라도 그 티가 날 것이라 예측했기 때문이었다.

꾸준히 정보를 쌓아가다 보면 유난히 '게오스 제국'에 유리한 주장을 펼치는 귀족이 나타날 것이다.

'점점 수사 범위를 좁혀두기만 해도 도움이 될 거야.'

적어도 그들에게 전쟁을 할 때 중요한 역할을 맡기지 않기만 해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해서 정보를 모으기 위해 이미 결정해둔 것을 마치 너희들의 의견을 듣고 결정하겠다는 듯 질문해 본 것이었다.

사각- 사각- 사각-

첩자로 의심 되는 귀족의 이름을 적어 놓은 양피지에 이름을 추가 시켰다.

지금은 아무런 근거 없이 작성 된 이름이지만, 시간이 흐르다 보면 점점 범인을 좁혀 갈 수 있을 것이다.

'확실히 나만을 위해 은밀하게 움직여 줄 수 있는 정보 단체가 필요하긴 하다. 이걸 내가 할 게 아니라 사람한테 시켰어야 했는데.'

전쟁이 무사히 끝나고 짬이 나면 꼭 비밀스런 정보 단체를 만들겠다 다짐했다.

♧ ♧ ♧

타닥ㅡ 타닥ㅡ 타닥ㅡ!

서늘한 냉기에 살이 떨어져 나갈 것만 같은 공간에 불이 타올랐다.

철제 의자에 사지가 묶인 채로 앉아 있는 인영은 오랜만에 느끼는 온기에 마른 침을 삼켰다.

끔찍한 추위에 얼어붙었던 몸이 조금씩 녹아가면서 새로운 통증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으으...으...읏....하아...!"

적대국의 사령관이라고 해서 감옥을 멀쩡하게 호위호강 하며 지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아직까지 직접적으로 고통을 주는 고문은 없었지만, 게오스 제국과의 얘기가 틀어진다면 언제든 자신의 목숨을 위협 받을 수 있는 게 현실이었다.

거기다 그녀는 사령관이었기에 보통의 귀족 출신 포로보다 더 고된 대우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 오늘은 회유를 하려는 건가?"

물을 푹 젖게 한 얇은 흰색 옷을 입히고 냉기가 도는 방 안에 사지를 묶인 채 있어야 했던 시간들이 결코 고문에 비해 부족하지 않은 고통을 줬다.

극심한 추위에 고통을 느끼는 감각이 마비가 될 지경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로 그 추위를 벗어날 수 있게 불을 피워준 것이다.

간수들은 그녀의 질문에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궁금증을 해결해준 건 다른 궁인의 목소리였다.

"황제폐하 납시오!"

"하! 이래서 갑자기 불을 피운 거군."

감옥에 무려 황제가 납시었는데 차갑도록 내버려 둘 리가 없지 않은가.

귀하신 몸 아닌가?

제국의 황제가 과연 자신에게 무슨 용건이 있어서 온 것인지 궁금해져 최대한 눈에 힘을 주고 안으로 들어오는 황제를 노려보았다.

'빌어먹을, 소문이 과소 평가 되어 있었잖아. 더럽게 잘 생겼어.'

그게 더 아니꼽다.

황제라는 자리에 앉아 어느 하나 부족함이 없는 자가 얼굴조차 완벽하니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이다.

"흠. 상태가 많이 안 좋아보이는데."

황제는 사령관의 상태를 확인하고 썩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간수들이 황제의 말에 화들짝 놀라며 변명했다.

"폐하, 사령관의 신체 능력을 고려하면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견딜 수 있습니다."

"아아~ 마나를 쓰는 사람은 몸이 일반인과 다르다고 했었지."

"예, 맞습니다."

황제가 간수의 말을 듣고 납득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시선을 옮겨 드디어 사령관과 시선을 마주했다.

"대화를 나눌 수 있겠는가?"

"...무엇이 궁금해서 왔는지 몰라도 바라는 것을 얻긴 힘들 것이오."

저 얼굴로 자신을 현혹 시키려 들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몰려왔다.

제국의 황제는 여자를 굉장히 밝힌다는 말을 들었다 보니 방심할 수 없었다.

남자 때문에 본국을 배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시발, 냄새도 좋네.'

맡지 않으려고 해도, 쿰쿰하고 칙칙한 공간에서 그가 나타나니 향기로운 냄새가 풀풀 풍기기 시작했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시각적으로도, 후각적으로도 자극을 주는 존재가 바로 황제였던 것이다.

"걱정하지 말게. 그리 대단한 걸 물으러 온 건 아니니까. 오히려 나는 그대가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온 거다."

"적국 황제에게 무슨 할 말이 있단 말이오? 나는 할 말 따위 없소이다."

"그대도 알겠지만, 게오스 제국은 그대를 구명 할 생각이 없다. 내전으로 바쁘다면서 대화를 하려 하지 않고 있으니까. 아마 제국과 전쟁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지."

"......."

사령관이 바보도 아니고 왜 모르겠는가?

가까이에서 모셨던 분이기에 더더욱 그 성정을 익히 잘 알고 있었다.

사령관은 황제가 자신을 조롱하는 것인가 싶어 그를 계속해서 노려봤다.

'시발.'

평범하게 만났다면 그녀는 그에게 당장 결혼하자고 구애를 했을 거다.

평생 한 번 만날까 말까한 이상형이 눈앞에 있었으니까.

하지만 저 남자는 적대국의 황제였고, 자신은 포로로 붙잡힌 사령관이었다.

두 사람이 좋은 관계로 맺어질 확률는 눈꼽만큼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왜 하필....'

제국의 황제는 성인이 되기 전까지 평민으로 살았다고 들었다.

자신이 조금만 운이 있었더라면 저 남자가 평민으로 살았을 때 만나서 좋은 관계를 다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정신 차려야지. 저 남자가 내 목을 칠 놈인데.'

그래도 미남에게 목이 잘려 나가니, 좀 덜 억울하려나?

사령관은 이미 이곳에 붙잡혀 시간을 보내는 동안 목숨에 대한 미련을 대부분 놓아 버린 상태였다.

누가 봐도 살아남기 힘든 상황이다.

주군이 그녀를 살리겠다고 무리하게 행동하려 했다면 스스로 자결을 했을 것이다.

'물론 이렇게 버려지길 바랬던 건 아니었지만.'

차라리 자결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면 참 좋았을 것이다.

그땐 적국의 황제에게 이렇게 미련하게 흔들리지도 않았을 테니 말이다.

충성을 다 하고 죽는다면 적어도 고국에 있는 그녀의 가문을 주군께서 잘 봐주지 않았을까?

하지만 버림 받은 상황에서 죽어봤자 개죽음에 불과하다.

버려진 개새끼가 죽었다고 해서 누가 알아주겠는가?

본인의 목숨이 개죽음 취급을 당하는 건 바라지 않는다.

죽는다 해도 가치 있는 죽음이길 원했다.

"포로를 잔뜩 잡긴 했는데, 정작 게오스 제국 황제가 자국민들을 버리려고 하니 어쩔 수가 있나. 우리가 버림 받은 자들까지 책임 질 이유는 없지겠는가."

"그래서 나한테 뭘 바라는 거요! 나보고 그들을 책임지란 말이오?"

"그럴 리가. 애초에 그럴 능력도 없지 않은가? 평민 병사들은 광산 노예나 염전 노예로 갈 것이고, 귀족 포로들은 동의하는 자들에 한해서 짐의 후궁이 될 것이다. 문제는 지휘관들과 그대다."

후궁?

미친놈.

"제국의 황제라는 작자가 미쳤는가? 포로를 후궁으로 삼는다고?"

"몰랐나 보군. 저번에 잡아 놓은 포로들도 짐의 후궁으로 삼았는데."

"제정신이 아니군. 침대 위에서 칼 맞아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

적국 출신의 귀족들이다.

그런 치욕을 태연하게 견딜 리가 없었다.

"걱정해줘서 고맙군. 그래도 여태까지 칼 맞은 적은 없다. 다들 후궁으로 잘 지내고 있고."

"거짓말 하지 마라! 적국 황제에게 치욕스러운 짓을 당하고도 잘 지낼 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게 말을 하곤 있으나 속으로는 부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 새끼들...고생하고 있는 줄 알았더니, 여기서 꿀 빨고 있었어?'

후궁이 됐다면 적어도 노동을 하며 지내지는 않고 있다는 의미이지 않은가?

거기다가 손길 한 번 닿기도 힘들었을 황제와 잠자리까지 가졌다는 것 아닌가?

'나도 사령관만 아니었으면 후궁이 될 수 있었던 거야?'

시발, 나 사령관 내려 놓는다?

물론 이 충동적인 생각을 겉으로 드러낼 수는 없었다.

황제는 자신이 지금 포로로 붙잡혀 후궁이 된 이들을 부러워 하고 있다는 걸 모른 채 애써 변명하고 있었다.

"애초에 강제로 후궁을 만든 게 아니다 보니 잘 지내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러니 사람을 그렇게 쓰레기 보듯 보지 말아줬으면 하는데."

"흥, 제국의 황제가 여자에 미쳐 있다는 소문은 들었다. 그런데 생각 이상으로 여자에게 미친 자이지 않은가?"

"이년이!"

퍽!"

"큭!"

가만히 듣고 있던 간수가 그녀의 비아냥에 무기로 등을 때렸다.

퍽! 퍼억, 퍽!!

"악! 크윽!!"

황제는 간수가 사령관을 때리는 것을 막지 않았다.

물론 계속 두고 보고 있지는 않고, 심각하게 몸에 문제가 생기기 전에 자제를 시키기는 했다.

"그만. 그쯤이면 됐다."

고통을 참아내느라 입술을 꽉 깨물었는데, 이빨이 입술을 찢었는지 피맛이 느껴졌다.

등 쪽에서 전해지는 욱신거리는 고통에 신음하던 사령관은 갑자기 훅 가까이로 다가 온 향기로운 냄새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번쩍 들어올렸다.

언제 다가왔는지 모르는 사이에, 눈 앞 가까이 황제가 다가와 서 있었다.

"무..슨...?"

"그대는 이미 죽을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군. 짐은 아직 그대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참...곤란하단 말이지. 귀찮지 않으려면 깔끔하게 죽여서 처리하는 게 맞는 것 같은데."

황제가 자신을 내려다보며 자신의 목숨줄을 가늠하고 있었다.

뒷덜미에 서늘한 소름이 쫙 돋았다.

아무리 죽음을 각오했다고 해도, 그 죽음이 성큼 다가온 이상 멀쩡하게 대응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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