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757 - #96. 진해솔 (61)
“어떤가? 그래도 서신을 보낼 것이냐?”
“…….”
사령관은 내 희롱 섞인 말이 치욕스러웠는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일부러 성적인 의미를 한껏 꾹꾹 눌러 담아 도발해본 것인데, 사령관은 훌륭하게 내 도발에 넘어갔다.
주먹을 꽉 쥔 손에서 분함이 느껴진다.
“…받아들이겠소.”
“대단한 충성심이군. 좋다. 간수장!”
“예, 예!”
“팬과 종이를 가져다주게.”
“예!!”
간수가 아주 빠른 속도로 명령한 것을 가져왔다.
사령관은 두 손과 발이 묶여 있는 불편한 상황 속에서도 바닥에 엎드려 서신을 작성했다.
나는 어떤 대단한 말을 적으려하기에 내 희롱도 꿋꿋하게 참아내려는 것인지 궁금해 유심히 서신을 살폈다.
하지만 서신의 내용은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먼저 세상을 떠나 더 이상 황제를 곁에서 모시지 못하게 된 신하의 구구절절한 슬픔을 적어내려갈 뿐이었으니 말이다.
뻔하디 뻔한, 신파 내용에 점점 관심이 시들해질 무렵.
'진짜 고작 저거 적겠다고 내가 한 희롱을 받아들였다고?'
솔직히 사령관이 대놓고 암호문을 작성한다 해도 내가 그런 행동들에 이상함을 느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뭔가 특이하게 손을 놀린 것도 아니었고, 반복 되는 단어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이 서신이 무사히 폐하께 전달 될 거라 믿고 있겠소."
"정말 평범한 서신이라면 그렇게 되겠지."
사령관이 다 작성해서 내민 서신을 바로 봉인하지 않았다.
암호 분석 쪽에 실력이 있는 자에게 보여주고, 한 글자 한 글자 모두 확인해서 확실하게 아무 문제 없는 서신이라는 게 증명 될 때까지 분석이 될 것이다.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다면, 그땐 사령관은 곱게 죽지 못하게 될 것이다.
치욕스러운 밤을 보내고 나의 후궁이 되어야 할 테니 말이다.
감옥 바깥으로 나온 나는 서신을 귀족에게 넘겼다.
"이 서신에 의심 되는 부분이 없는지 확인하라."
"예, 폐하."
"조금이라도 의심 되는 부분이 있다면 확신이 없어도 짐에게 말해야 할 것이다."
"예! 소신 반드시 의심 되는 부분을 찾아내겠습니다."
찰떡처럼 알아 들은 귀족이 명을 받아 사라지고, 나는 사령관을 다시 한 번 떠올리며 입맛을 다셨다.
자꾸 나쁜 짓을 하면 못된 버릇이 들어서 안 되는데....
황제라는 자리가 변하지 않기가 쉽지 않은 자리였다.
뭐든 할 수 있는 지라 '이것도 돼? 그럼 이건? 이것도 된다고? 그럼 이건 어때?' 라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삐끗하는 거다.
게오스 황제가 지금 그러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처음부터 저렇게 막 나간 건 아니었겠지.'
너무 잘난 인간은 스스로를 돌아볼 줄 모른다.
사령관과의 일이 있고 며칠 후.
서신을 받아갔던 귀족은 눈가에 퀭한 다크서클을 달고 나타났다.
"폐하, 소신 명을 받들어 암호문을 해석해왔나이다!"
"서신에 암호가 담겨 있었나?"
"예, 폐하! 게오스 제국의 제국의 첩자가 작성한 것이 분명하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이 귀족한테 서신을 작성한 사람이 누구인지 말을 안 했던 것 같다.
게오스 제국 출신이라고 말했으면 해석해내는데 시간이 훨씬 줄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운 생각을 뒤로 하고, 서신에 적힌 암호의 해석본을 받아 들었다.
"...이 정도면 사령관이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게 확실해졌구나. 약속을 지키라고 해야겠어."
대단히 명예를 따지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금방 밝혀질 수작질을 하다니.
'농락을 당해도 시도는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네.'
나는 그녀의 눈물 나는 충정을 동정하면서도 웃음을 감추지 못한 채 감옥으로 움직였다.
약속을 어겼으니 받아내야 할 것은 받아내야 하지 않겠는가?
"황제 폐하 납시오!!"
감옥으로 들어가니 예전보단 훨씬 나아진 얼굴이 된 사령관이 두 눈을 감고 있었다.
본인도 알고 있는 듯 하다.
자신이 보내려 했던 서신에 담긴 암호문이 들켰다는 것을 말이다.
서로 다 눈치를 챈 상황에서 시간을 끌어봤자 무엇하겠는가?
바로 본론을 꺼냈다.
"안타까워서 어떡하나 싶구나. 명예롭게 죽을 수 있는 기회를 이렇게 허무하게 날려버려서."
"......."
"본인도 어설픈 수작이었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그게 부끄러워 입을 다물어버린 것이냐?"
"나는 모르는 일이다."
"시치미도 참 잘 떼는구나. 게오스 황제에게 무슨 대단한 얘기를 전달하려 했나 했더니 크게 대단한 정보도 아니었던데."
제국이 전쟁을 준비하고 있으니 대비하라는 말을 게오스 황제에게 전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내전에 힘쓰고 있느라 방심하고 있는 게오스 제국을 우리가 기습한다면 초반부터 꽤 크게 먹고 들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 중이었으니 아예 가치 없는 수작은 아니었다.
다만 그 대가가 적국 황제에게 몸을 유린 당하는 것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부족해 보였을 뿐이지.
"사령관이 지금 마나 구속구를 채워 놓은 상태인가?"
"예, 폐하. 심장에 박아두었습니다."
이 세계에는 일정 수준의 마나 사용자가 마나를 쓸 수 없도록 만드는 구속구가 있다.
하지만 만능은 아니고, 한계가 있어서 실력이 뛰어난 사람의 마나는 구속하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가격도 매우 비싸고 말이다.
허나 그렇게 실력이 좋은 사람은 1만에 한 명 있을까 말까 하기 때문에 간수장들에겐 필수로 갖추고 있어야 하는 물건이었다.
당연히 사령관도 그 마나 구속구를 착용하고 있는 상태였는데, 실력이 꽤 좋은 탓에 심장 가까이에 착용을 시켜뒀다고 한다.
마나를 머금고 있는 심장 가까이에 착용을 시켜야 구속구의 효과가 좋아지기 때문이라고.
"잘 됐군. 궁인들은 사령관 아니, 이 여인을 데려가서 씻긴 후 짐의 처소에 들이거라. 오늘 밤에 이 여인을 안을 것이다."
"폐, 폐하. 위험하실 수 있습니다. 아무리 구속을 시켜뒀다고는 하나, 기본적으로 신체 능력이 뛰어난 자이옵니다."
나도 내 목숨이 제일 아깝다.
여자랑 섹스하려다가 암살 당해서 죽는 최악의 상황은 면해야 하지 않겠는가?
"손과 발을 묶은 것은 풀지 않을 것이다."
"아아~"
그런 거라면 괜찮겠다 싶었는지 간수장이 안도한다.
마나 사용자의 손 발을 묶는 것에 평범한 수갑을 사용할 리가 없지 않은가?
힘으로 부실 수 없는 특수 광석으로 만든 수갑은 두 손을 완벽하게 봉인 시켜 놓고 있었다.
솔직히 나는 저걸 손목에 달고서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할 거다.
그냥 들고 있는 것조차도 힘들 만큼 무게가 엄청났던 것이다.
양 발목에 달린 것도 두께부터가 장난이 아니었다.
사령관은 내 안전을 위해서라도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구속 된 채 침실로 옮겨졌다.
"반항하지는 않더냐? 도망치려고 든다거나."
"...얌전했습니다."
이미 마음의 준비를 끝내 놓은 건가?
사령관을 씻겼던 궁인에게 물어보니, 그녀가 딱히 반항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적어도 도망치려는 시도 한 번은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그래?"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궁인들이 눈치 챈 걸까?
"폐하의 승은을 입을 수 있는 기회인데, 어찌 그런 말도 안 되는 불경을 저지르겠습니까? 그자는 내내 기대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건 또 그거대로 찝찝한 일이구나."
아무래도 사령관, 이 여자가 나를 침대 위에서 죽이려고 계획을 짠 게 아닐까 싶다.
비록 내 신체 능력이 평범한 일반인보다 더 뛰어나다고 해도 마나를 사용할 줄 아는 이보다는 훨씬 약할 수밖에 없었다.
'기사 앞에서 포르노를 찍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째 독버섯을 깨끗하게 씻어서 먹기 좋게 진상하라고 말해버린 것 같다.
그렇게 뒤늦게 걱정을 하고 있으니 궁인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폐하께 안길 수 있는 기회가 여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정녕 모르시겠습니까?"
"네 말은, 그 여자가 지금 순수하게 짐과의 밤을 기대하고 있을 거라는 것이냐?"
"예, 그럴 것입니다."
"하하, 그래. 말이라도 고맙구나."
궁인들은 그 여자가 적국 사령관이라는 걸 알면서도 내 얼굴에 금칠을 한다.
하지만 궁인들의 생각은 틀렸다.
자기 황제에게 충성을 다 하는 여자가 나와의 잠자리를 기대할 리가 없지 않은가?
궁인은 눈치 없는 사람을 보는 것처럼 답답해 했지만, 치욕스러워 하던 사령관의 얼굴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기에 순진하게 생각할 수는 없었다.
모든 준비를 끝내고, 침소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사령관을 보기 위해 움직였다.
"흠흠."
괜히 헛기침을 하면서 안으로 들어가니 두 손과 발이 묶인 채로 얌전히 앉아 있는 사령관이 보였다.
'야하네.'
갈색 속살이 비치는 얇은 분홍색 네글리제를 입고 있는 사령관의 몸을 끈적하게 눈으로 훑었다.
"읏..!"
그런 내 시선을 느낀 사령관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예의 차리자고 보기 좋은 걸 안 볼 생각은 없었다.
S라인으로 잘 빠진 몸매는 탄탄했다.
건강한 갈색 피부와 꽤 뚜렷한 복근을 갖고 있는 사령관은 유난히 톡 튀어 나와 있는 유륜과 젖꼭지가 먹음직스러운 분홍빛이었기에 참지 못하고 가까이 다가가 가슴을 움켜쥐었다.
"약속을 어긴 벌을 받는 것이니 얌전한 것이냐?"
"......"
"그래도 명예를 죽음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서 그런지 약속은 제대로 지키는구나."
"......"
"이런다고 사정을 봐줄 생각은 없지만 말이다."
그녀의 가슴을 최대한 천박하게 만졌다.
마치 장난감을 다루듯이.
젖꼭지를 잡아당겼다가 빙글빙글 돌렸다가, 우악스럽게 가슴 전체를 두 손에 쥐고 주물거리기도 하면서 말이다.
"읏, 으읏...!"
"탱글탱글한 것이 만질 맛 나는 가슴이다. 맛은 어떤지 한 번 볼까?"
"크윽..!"
으드득-!
살벌하게 이를 가는 소리가 난다.
무언가를 참고 견뎌내고 있다는 듯 말이다.
"그러다가 이빨 상한다."
이를 간다고 상황이 달라지는 건 아니지 않은가?
"하..!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바라는 대로 몸을 주었으니 어서 할 거나 하고 가십시오."
사령관이 알아서 하라는 듯 몸에 힘을 풀고 가만히 앉아 있는다.
그냥 대주고 있을 테니까 할 거나 하고 가라?
나는 사령관과 섹스를 하려고 온 것이지 오나홀에 박으려고 온 게 아니다.
자고로 섹스는 양 쪽 모두 즐거워야 한다는 게 내 지론이었다.
그러니 이런 불량한 태도는 절대 봐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가뜩이나 벌 받을 게 쌓여 있는데...어떻게 감당하려고 이러는 건지 모르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