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762 - #96. 진해솔 (66)
"우리는 평민을 위한 나라를 만들 겁니다!"
"귀족이 더 이상 평민을 사사로이 처벌하지 못하는 법치국가를 만들겠습니다!!"
각자 세력을 이룬 단체들은 명분을 쌓기 위해 각종 공약들을 내걸었다.
특히 혁명단이 그 공략에서 대박을 쳤다.
평민들을 위한 나라.
황족과 귀족들의 세상에서 꽤나 큰 여파를 만들 슬로건을 내걸고 평민들을 모집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직 사회주의까지 발전하지는 않았고, 평민도 법에 의해 귀족을 처벌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든다는 게 그들이 내건 공약이었다.
평민들은 그들의 말을 긴가민가 하면서도 믿어보겠다며 혁명단에 가입하는 일이 잦아졌다.
귀족들 입장에서 그들은 눈에 가시 같은 존재였지만, 게오스 제국이라는 모두의 적이 존재했기에 눈을 딱 감고 받아주고 있는 중이었다.
"황제가 바뀌었다고 합니다!!"
"뭐?"
"황제가 바뀌었다고?"
"새 황제...새 황제?!"
그러던 중 황궁에서 반역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퍼졌다.
황제를 지지하던 귀족들이 모두 변심해서 게오스 황제를 폭군이라고 몰고 가 황제의 자리에서 내려버리고 새 황제를 만들어버린 것이다.
개국 공신 귀족들과 혁명단은 숨을 죽인 채 황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알아내기 위해 백방으로 손을 썼다.
'새 황제가 과연 어떻게 나올까.'
황제가 바뀌었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였다.
게오스 제국민들 입자에선 검은색이 하얀색으로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변화였다.
새 황제가 과연 내전을 일으킨 귀족과 요즘 평민들 사이에서 퍼지고 있는 골치 아픈 혁명단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귀추가 주목 되고 있었다.
"골치 아픈 일만 쌓였군요."
새 황제로 등극한 이는 오랫동안 폭군 황제의 핍박을 받아 살아 왔다.
그래서 나라를 다스리려고 해도 아는 바가 없어 골치가 아팠다.
하지만 귀족들은 걱정을 드러내는 새 황제에게 걱정하지 말라며 기꺼이 응원을 보냈다.
"아시다시피 제국의 황제도 평생 무지렁이로 살다가 뒤늦게 황제 앞에 나타나 후계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제국을 훌륭하게 다스리고 있지요."
제국의 황제가 했는데, 게오스의 황제가 하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허나 제국의 황제와 짐의 상황이 다르지 않습니까? 우리 나라는 지금 풍전등화에 놓여 있습니다. 제국은 우리 나라에 군대를 보내 백성을 죽이고 있고, 귀족들은 나라를 세울 것이라며 무단으로 땅을 점령하고 있습니다. 또한 혹세무민하고 있는 혁명단이라는 골치 아픈 놈들까지 설치고 있지요."
"폐하, 지금은 막막해 보일지라도 하나씩 해결해 나가다 보면 빛이 보일 것이옵니다. 포기하지 마시옵소서. 폐하만이 제국을 지켜낼 수 있사옵니다."
사실 귀족들도 막장 그 자체인 나라를 회복 시킬 뚜렷한 방법을 갖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황제에게 미루고, 어떻게든 자리 보존하기 위해 수를 쓰고 있을 뿐이었다.
새 황제가 어수룩할 때 황궁에 있는 것들을 최대한 뜯어 먹어야 했다.
'흠흠, 이건 다~ 폭군이 나에게서 빼앗아 간 것들을 다시 되찾는 것이니 정당한 일이지.'
나라의 곳간이 귀족들에 의해 쏙쏙 빼 먹히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새 황제는 가장 급한 문제부터 해결해보기로 했다.
"지금 가장 급한 일은 무어라 생각합니까?"
"그야 제국의 침략이지요. 그들은 영주의 땅을 짓밟고, 재물을 빼앗으며 백성들의 것을 약탈하고 있습니다. 당장 그들부터 해결해야 하옵니다."
개국 공신 가문들은 나라를 만드느라 정신이 없는 상태였다.
갑자기 황제가 바뀌어서 앞으로 전황이 어떻게 될지 지켜보고 있을 게 분명하다.
그 찰나의 시간을 요긴하게 써서 제국의 군대를 몰아내야했다.
"내전을 일으킨 반역도들을 가만히 내버려두는 것은 실로 비극적이고 안타까운 일이나, 그들보다 더 시급한 일이 침략을 막아서는 것이옵니다. 그들이 이대로 진군하여 게오스 제국의 수도까지 들이 닥친다면 나라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사옵니다!"
귀족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새 황제는 제국의 침략을 막아주어야 했다.
"나 아니, 짐의 생각도 그대들의 의견이 옳은 듯 하오. 영지에 주둔하고 있는 군대들을 물리고, 침략한 제국을 몰아내는데 총력을 가하겠소!"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새 황제의 올바른 판단에 귀족들이 고개를 조아렸다.
이제야 비로소 게오스 제국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음을 직감한 것이다.
귀족들은 진작 폭군 황제를 몰아내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 ♧ ♧
"새 황제가 우리의 일부터 해결하겠다며 군대를 돌렸다고 합니다. 아마 곧 우리 군을 치기 위해 집결할 것입니다."
"그동안 꿀을 잘 빨았는데 아쉽게 됐군."
물론 빈집털이를 했기에 큰 피해 없이 많은 양의 재물을 얻었으니 손해는 아니다.
"꼼꼼하게 싹 다 챙겼다고 했지?"
"예, 챙길 수 있는 건 싹 다 챙기라 하였습니다. 아마 황충이 다녀간 것처럼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것입니다."
침략하기 전, 나는 게오스 제국과 피가 흐르는 전쟁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잘만 하면 큰 피해 없이 이득만 취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고 말이다.
"우리가 피 흘려가며 전쟁을 해봤자 얻을 수 있는 게 재물 뿐인데, 여기서 슬슬 전쟁을 끝내는 게 낫겠군. 어차피 전쟁을 해봤자 게오스 제국의 땅을 얻지 못할 테지 않은가."
"맞사옵니다. 아직 게오스 제국의 땅을 빼앗는 것은 시기상조이옵니다. 게오스 제국은 좀 더 무너져야 합니다."
게오스 제국은 그냥 내버려둬도 알아서 무너지는 중이었다.
우리 쪽이 피해를 입어가면서 제국을 흔들어줄 이유가 없었다.
'지금 흔들어봤자 이득을 보는 건 혁명단과 공신 가문 쪽이니까.'
그래서 누군가를 죽이기 위한 전투가 아니라 털어먹기 위한 전투를 하도록 했다.
게오스 제국은 비옥한 영토를 갖고 있어서 '부'를 가진 사람이 굉장히 많았다.
그들이 가진 것을 무차별적으로 약탈해 빼앗으라고 했다.
보통 병사들에게 사사롭게 약탈을 하는 것을 금하는데, 이번에는 그것을 막지 않았다.
챙길 수 있는 건 싹 다 챙기라고 했다.
아마 우리 군이 물러나면 황충(메뚜기)의 피해를 입은 것 마냥 텅 비어버린 영지를 보게 될 것이다.
우리 병사들은 전쟁터에서 두둑하게 주머니를 챙길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헛되게 쓰지 않았다.
"아! 적들이 눈치채지 못하고 회군 준비를 하게. 절대 낌세를 알아차리게 둬선 안 되네. 제국이 더 이상 전쟁 할 의지가 없다는 걸 알게 되면 배상을 못 받을 테니 말이야."
뜯어낼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뜯어낼 생각이었다.
새 황제는 제국과 전쟁을 할 겨를이 없었다.
군대를 우리 쪽으로 집결시키고 있어도 직접적으로 칼을 들이대는 짓은 못할 것이다.
지금 새 황제가 하는 일은 폭군 황제가 저질러 놓은 일을 '수습'하는 시늉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예, 그리하겠사옵니다."
보고를 끝낸 신하들이 물러가고, 숨 쉴 틈도 없이 다른 신하들이 또 우르르 몰려왔다.
게오스 제국의 황제가 바뀌어서 그런지 내가 해야 할 일들이 미친 듯이 쌓이고 있었다.
"폐하, 새 황제의 서신이 도착했습니다."
"...마침 기다리고 있었는데 잘 됐군."
그렇지 않아도 게오스 황제의 서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군대를 집결시키는 시늉을 하고, 뒤로는 우리 제국과 협상에 나서려 할 것이라 예측했기 때문이다.
그 예측은 어김없이 들어맞았다.
나는 은밀하게 건네지는 서신을 직접 열어서 확인했다.
[은인께 감사 인사를 올립니다. 새로운 인생을 선물해 주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사실 믿지 못했습니다. 헌데 은인께서는 정말 약속을 지켜주셨어요.
아직 황제의 자리가 낯설고 힘들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 자리도 익숙해지겠지요. 적어도 그곳에서 홀로 외롭게 죽어갈 때보단 훨씬 낫습니다.
제 위치가 달라졌으니 다음에 은인을 만났을 때는 황제 대 황제로 대할 것입니다.]
구구절절 쓰여진 감사 인사의 서신.
서두는 감사 인사로 시작했을 지라도 본론에 들어가니, 지금 제국이 보내놓은 군대에 대한 얘기가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이 친구가 확실히 예의는 있군. 서두에는 감사 인사를 적어뒀어. 그리고 전쟁을 멈춰 달라는 말도 꽤나 정성스럽게 적어뒀구나."
나름 예의를 차리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그 흔한 책조차도 읽지 못하는 강제 되는 삶을 살았던 이의 어설픈 노력은 나름 어여뻐 보였다.
"새 황제는 전쟁을 싫어하고 있습니다. 나라에 수습할 것들이 많으니 전쟁까지 감당하고 싶지 않았겠지요."
새 황제와 나는 안면이 없는 사이다.
하지만 새 황제는 나에게 큰 은혜를 입었다.
폭군 황제에게서 벗어나게 해준 것으로도 부족해, 내가 부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녀를 황제에 올리도록 했으니 말이다.
게오스 제국 귀족들 대부분은 모르고 있으나 반역의 중심이 되는 귀족들은 알고 있는 진실이었다.
적대국 황제의 명령을 듣는 것이 굴욕적이었겠으나, 전쟁을 끝내주겠다는 매력적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잘 적응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 도와주려는 사람보다 훼방 놓을 놈들이 가득할 테니 말이야."
황제가 되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그 자리에서 버티는 것도 만만치 않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귀족들은 자기 손으로 황제를 만들었으니 그녀를 우습게 여길 것이고, 고생한 대가를 몇 배 이상으로 챙기려 들 것이다.
"어쨌든 황제가 되어도 마음이 바뀌지 않았으니 배상 문제는 손쉽게 해결 되겠어."
이제 남은 문제는 뜯어 먹을 곳 많은 게오스 제국에게 무얼 뜯어내는 거냐다.
뭘 뜯어 먹어야 잘 뜯어 먹었다고 소문이 날까?
일단 가장 1순위는 게오스 제국의 비옥한 땅일 것이다.
그렇다면 2순위는?
이때부터 귀족들은 한 마리의 아귀떼가 된다.
나는 그 아귀들을 다독여서 골고루 먹이가 돌아가도록 나눠줘야 하는 입장이고.
'그리고 나도 챙길 건 챙겨야지.'
3순위는 내가 전쟁에서 진심으로 노리고 있는 '그것'이 될 것이다.
'후궁전이 어느 정도 찼는지 미리미리 확인해둬야겠어.'
3천명.
처음에는 너무 까마득한 숫자라서 어떻게 채우지 싶었던 것이 조금씩 조금씩 채워지고 있었다.
아직 안지 못해서 카운트 되지 않은 후궁들도 많은 상황.
새로운 후궁이 들어오기 전, 기존에 있는 후궁들을 카운트 되도록 하기 위해서 부지런하게 허리를 놀려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