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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770화 (755/849)

Chapter 770 - #96. 진해솔 (74)

“후궁마마께서 회임을 한 상태이지 않사옵니까? 폐하, 처벌을 내리는 건 너무 가혹한 처사이옵니다.”

그들이 후궁을 살려달라고 주장 할 수 있었던 이유의 첫 번째는 회임을 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회임했다는 것 자체가 황실의 큰 경사이니, 그 공으로 죄를 사하여 달라는 것이었으며.

세 번째는 황후가 ‘저주’를 받았다는 증거에 대한 의혹이 있다는 주장이었다.

“후궁마마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억울함을 호소하고 계시옵니다. 이 사건이 누구의 수작인지 명명백백하게 밝혀질 때까지 시일을 미뤄주시옵소서!”

“…….”

결국 저들이 주장하는 건 하나 같이 설득력 없는 변명들이다.

내가 처벌을 미루고 있는 이유는 지들이 빽빽거려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들끼리 효과가 있다며 기세가 살아서는 입을 모아 후궁을 살려 달라 호소했다.

'루아벨 황후 가문이 너무 세가 강하긴 해.'

사실 그쪽 귀족들이 마냥 잘났다고 빽빽거리는 건 아니다.

공작 가문인데다 초반부터 줄을 잘 서서 나의 신임을 받고 있으며, 황후까지 세모론 공작의 가문 출신에서 나왔다.

외척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은 굳이 말하면 입이 아플 만한 일.

적당한 균형을 위해서라도 황후의 가문을 조금 눌러 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저놈들이 더 날뛰는 거지. 내가 마냥 공작 편만 들 수 없다는 걸 아니까.'

나머지 귀족들도 어느 정도 세모론 공작에게 대응 할 수 있도록 세를 키워 놔야 했다.

'그럼 애초에 후궁이 황후를 저주했다는 빌미를 만들면 안 되는 거 아닌가?'

그랬으면 나도 골이 아플 일이 없을 것 아닌가?

황후가 내어놓은 증거가 명명백백한데, 저들은 빽빽 우기고 있었다.

증거가 조작 됐다는 의심이 있다는 핑계로.

정작 구체적으로 무엇이 의심 되는지 말해보라고 하면 결국 할 수 있는 말은 정황증거밖에 없다.

'황후가 회임을 한 후궁을 투기해서 저주를 받았다고 뒤집어 씌웠다! 라는 거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녀가 나와의 약속을 어길 리가 없지 않은가?

허나 귀족들은 황후와 나 사이에 있었던 약속을 모르는 지라 내가 '설마?' 하면서 마음이 흔들리는 줄 안다.

"미안합니다. 이런 일은 빨리 처리해야 하는데."

나는 피해자인 황후에게 사과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만 공식적으로 사과를 전달 할 수는 없었기에 그녀에게 찾아가 은밀하게 귓가에 속닥거렸다.

"시간이 늦어지는 건 상관없습니다. 제대로 된 처벌을 받게 하기만 한다면요. 이번 일은 저도 양보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만 알아주십시오."

황후가 다소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나를 쳐다봐 주는 걸 보면 아직 마음이 돌아설 만큼 상한 건 아닌 듯 했다.

"짐도 처벌을 하지 않을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뱃속의 아이에겐 죄가 없지 않습니까?"

"어미의 죄를 아이가 받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지요."

"황후는 아이한테까지 죄를 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아이 문제는 나도 양보할 수 없는 일이다.

"폐하께서 망설이시는 이유가 뭔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황태자를 위협할 아이를 좋게만 볼 수 없음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황후의 입장에서는 후궁이나 그 아이나 모두 후환덩어리에 불과했기에 이해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좀 서운합니다. 짐의 아이이지 않습니까?"

"폐하께 진심을 말씀드린 겁니다. 그게 싫으시면 적당히 꾸며서 대답할까요?"

"짐이 잘못했습니다. 황후를 당해낼 수가 없네요."

가뜩이나 미안한 일이 있으니 세게 나갈 수가 없다.

이건…제대로 똥 밟은 상황이 된 것이다.

양쪽 모두에게 시달리는 상황이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그래서 얼마나 다행인가?

후궁이 아이를 낳을 때까지 처벌을 유예 하는 것까지는 황후가 동의를 해주었으니 말이다.

"부디 그들의 어처구니 없는 주장은 냉정하게 잘라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그게 그녀가 양보 할 수 있는 마지막이었다.

죄를 공으로 사함 받게 해달라는 얼토당토 않은 주장에는 절대 동의하지 못했다.

“후궁이 임신을 하는 것은 당연한 본분. 헌데 그것으로 죄를 사함 받는 게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역시 한 번 눈 밖에 난 사람은 칼 같이 잘라내는 사람이라더니,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후궁을 용서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궁에서 쫓아내심이 옳습니다.”

“허면 아이는요?”

“아이를 돌봐줄 수 있는 궁인들이 몇이나 되는지 잘 아시지 않습니까? 애초에 육아는 그들이 합니다. 폐하, 폐하께서 확실하게 중심을 잡아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이 황궁의 법도가 올바르게 서는 것입니다.”

황후는 결단코 물러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냈고, 나 또한 그녀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내가 망설이는 이유는 오로지 후궁의 배에 있는 핏줄이 밟힌다는 것 하나 뿐이었다.

“이라는 상황인데, 누나는 어떻게 생각해?”

혼자서 고민해봤자 답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곳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섞여 있는 상태였기에 선뜻 의견을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곳에서 완전히 빠져나와 완벽한 제 3자들에게 의견을 물어봤다.

적어도 내가 아는 누나들이라면 현명한 판단을 해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애들 엄마다 보니 내 상황에 좀 더 공감을 해줄 것 같기도 했고 말이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한테는 죄가 없는 게 맞지 않겠는가?

“사극 시나리오 들어왔니?”

"아니야."

가장 먼저 의견을 물어 본 사람은 정화씨와 주아 누나였다.

마침 두 사람이 같이 있었고, 아이를 키우는데는 정화씨만큼 믿음직한 이가 없으니 분명 내게 도움이 될 만한 얘기를 해줄 것이라 생각했다.

“진지하게 상담하는 거니까, 장난 없이 대답해줬으면 좋겠어.”

“되게 뜬금없네.”

“해솔이 표정 보니까 정말 진지한가본데?”

시큰둥한 주아 누나와 달리 정화씨는 나름 진지하게 내 상담을 들어주려 노력하고 있었다.

“후궁이 잘못을 저질렀는데, 엄마 없이 클 아이가 걱정이 된다?”

“믿고 맡길 만한 사람이 없으니까요.”

“정말 믿고 맡길 사람이 없어?”

“네.”

황후도 안 되고, 후궁에게 맡기는 것도 탐탁지가 않다.

“나라면 죄를 지은 후궁이 어떤 사람인지부터 확인을 했을 것 같아. 아무리 나쁜 죄를 지은 사람이라고 해도 자기 자식한테까지 못나게 굴 수 있는 엄마는 별로 없거든.”

정화씨의 말도 확실히 일 리가 있기는 하다.

내가 지켜 본 후궁은 질투심이 많고, 욕심이 많은 여자였지만 그 또한 내 편견일 수 있으니 말이다.

“난 자식 낳아 본 엄마 입장이라서 그런지 자식이랑 강제로 떼어 놓는 건 정말 최악이라고 생각해. 아마 그 사람은 남은 생애가 지옥일 걸?”

주아 누나도 의외로 후궁의 편을 들어주고 있었다.

나는 당연히 피해자인 황후의 편을 들어줄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다.

“그 애기를 후궁이 잘 키운다는 보장도 없는데?”

“못 키울 거라는 보장도 없지 않니?”

“맞아.”

여기 앉아서 예측만 주구장창 한들 달라지는 건 없을 것이다.

“근데 그럼 피해자 입장은?? 되게 싫어하지 않을까?”

“처벌을 하지 말라는 건 아니야.”

“주아 말대로 처벌을 하지 말라는 건 아니고, 아이를 떼어 놓지는 말자는 거란다.”

애를 떼어 놓지만 않는다면 된다?

황후는 분명 싫어할 거다.

후환을 만드는 일이니까.

"그럼 아이 때문에라도 궁에서 쫓아내지는 못할 거고, 냉궁에 가둬두라는 거네. 그런 곳에서 애를 키우는 건 정서상 안 좋을 것 같지 않아요?”

그런 곳에서 자랐다간 나에 대한 복수심을 바득바득 갈면서 자라지 않을까?

우리 엄마를 홀대했다면서 말이다.

그럼 또 비슷한 역사를 밟아가게 되는 거다.

반역자 오드만이 그랬던 것처럼.

"그건 그렇네...."

"애가 문제구나. 애가 문제야..."

아무래도 정화씨와 주아 누나는 엄마와 애를 떼어 놓는 것은 최악이라는 입장을 바꾸지 않을 듯 싶었다.

뚜렷한 해결 방법을 제시해주진 못했지만, 두 사람의 의견은 내가 바라는 쪽과 유사했기에 힘이 됐다.

“일단 알겠어요. 두 사람 의견 참고할게요.”

“혹시 너 이젠 뭐 작가 도전이라도 해보려는 거야? 별의 별 걸 다 잘하니까 의심 되네.”

“들어오는 대본이 마음에 안 들었니?”

“내가 무슨 작가야.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럼 역시 캐스팅인가? 아니면 새 여자친구가 이번엔 작가인 건가?”

그거 참 신박한 의심이네.

다양한 직업의 여자들과 만나왔지만, 아직까지 작가와는 인연이 생긴 적이 없었다.

“그런 거 아니거든?”

“해솔이가 아니라니까 믿어주렴.”

“엄마도 은근 의심했으면서 발을 쏙 빼네? 흥! 두고 볼 거야. 요즘 잠잠해서 슬슬 발동 걸릴 때 됐다고 생각하거든.”

“난 결백해!”

요즘 미션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새로운 여자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이미 그곳에서 2천 명이 넘는 여자들을 만나서 잠자리를 갖고 있는데 새로운 여자가 눈에 들어 오겠는가?

그곳에 가면 없는 거 빼고 다 있다는 말 장난이 아닌, 진심으로 없는 게 없다 싶을 정도로 다양한 스타일의 여인들이 넘쳐났다.

그 여자들 모두 내 눈길 한 번 닿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어? 근데 그건 여기도 마찬가지 아닌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여기서는 여자들을 그쪽처럼 안아대면 큰일난다는 게 다르다.

거기서는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여자들을 안고 다니니 말이다.

다음으로 의견을 물어 볼 사람은 아현과 복순 누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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