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771 - #96. 진해솔 (75)
“그 여자 웃기네. 그런 짓을 저질렀으면서 뻔뻔하게 애를 갖고 협박을 하는 거 보면.”
“아이가 불쌍해!”
“그런 여자한테 애를 맡길 바에야 차라리 생전부지 낯선 사람한테 맡기는 게 나을 것 같은데? 황제라는 놈이 애한테 관심을 꾸준히 주기만 하면 적어도 애를 몰래 학대한다거나 이상한 짓을 하지는 않겠지.”
“자칫 잘못했으면 피해자가 죽을 뻔 했었다면서. 살인미수인 거잖아. 그것도 우발적이 아니라 계획적으로. 그런 사람한테 애를 어떻게 맡겨. 이건 무조건 아빠가 돌봐야지.”
두 사람은 아이를 그런 사람한테 맡기는 게 오히려 학대라며 반대표를 던졌다.
어쩌다 보니 의견이 2:2로 완벽하게 갈려버린 것이다.
더군다나 이쪽은 꽤 강력하게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냥 두면 후환이 될 여자라면서. 그걸 왜 그냥 내버려둬? 난 그런 고구마 전개 최악이라고 생각해.”
“맞아. 제대로 처벌을 안 하면 시청률도 뚝 떨어질 걸? 고구마라고.”
“처벌은 어느 정도로 하는 게 나을 것 같아? 만약 두 사람이 황제라면 어떻게 할래?”
“음…궁 밖으로 내쫓기?”
“에이, 넘 약하다. 확 유배지로 보내버려! 근데 혹시 이거 대본이야? 해솔이 너 연기해?”
“슬슬 복귀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근데 다음 활동은 그룹 활동으로 한다고 하지 않았니?”
두 사람도 역시나 내 다음 활동이 연기냐면서 오해를 해왔다.
나는 아니라고, 그냥 물어 본 거라면서 말을 얼버무리고 넘겼다.
다들 내가 물어 본 게 현실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 건 상상도 못하는 눈치였다.
“누님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세요?”
“내가 황제였으면 후궁을 아예 죽일 거다. 애초에 황후가 그 후궁이 무사히 애를 낳게 할 것 같지도 않구나.”
“…!!”
참고로 연주 누님은 너무 잔혹한 말을 해서 참고는 안 하기로 했다.
다음으로는 누구에게 물어볼까 생각하다가 눈에 들어 온 사람이 하필이면 메이드들이었다.
비앙카와 멜리사 그리고 칸나.
두 사람은 상관없지만 비앙카는 좀...걱정이 된다.
하지만 비앙카만 빼고 물어 볼 수는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세 사람을 앞에 두고 상황 설명을 시작했다.
"이런 상황인데, 어떻게 하면 좋을 것 같아?"
자세한 상황을 설명하자 비앙카는 단숨에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챘다.
"흐응...재밌는 걸 하고 계시네요. 섭섭해라. 왜 진작 말씀을 안 하신 거에요. 제가 도움이 되어드렸을 텐데."
아니, 그건 내가 싫은데.
“??”
“응?”
멜리사와 칸나는 비앙카의 의미심장한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나는 말하지 말라는 의미로 고개를 저었다.
”후후, 알겠어요. 별 거 아니니까 너희들은 잊어.”
“아까부터 자꾸 뭐라는 거야?”
"후후후, 우리 바보 동생은 몰라도 돼~"
멜리사가 비앙카의 알 수 없는 태도에 불쾌감을 드러냈다.
"재수없어."
"......."
두 자매는 여전히 사이가 썩 좋지 못했다.
좋아하니까 더 괴롭히는 못된 심보를 가진 비앙카이지 않은가?
"그래서 다들 어떻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뭔가 좋은 아이디어 없어?"
“음…아이가 불쌍하기는 하네요. 아이한테는 죄가 없는데, 태어나자마자 엄마랑 떨어지게 생겼잖아요.”
칸나는 육아에 진심이다 보니 후궁이나 황후에 집중하기 보단 죄 없는 아기에 대한 안쓰러움을 집중했다.
그리고 멜리사는 후궁의 가문에 집중했다.
“그 후궁의 가문에 불이익을 주는 건 어떨까요?”
“가문에?”
“예, 그럼 후궁의 기가 팍 죽을 겁니다. 자신의 행동으로 가문에 큰 피해를 입었으니 그쪽에서도 후궁을 곱게 보지 않을 테구요.”
신선한 관점이었고, 나쁘지 않은 해결책이기도 했다.
“그거 괜찮네.”
황후도 후궁의 가문에 불이익이 가는 것이라면 만족을 할 것이다.
후궁이 기세 좋게 날뛸 수 있는 이유도 가문이 뒤에 든든하게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지 않은가?
다만 이렇게 해결을 하면 세모론 공작의 세력이 더 굳건해질 게 분명하다는 점이 문제였다.
그래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긴 했기에 멜리사에게 칭찬을 해주었다.
"멜리사가 투자 천재라서 그런지, 확실히 똑똑하긴 하네."
"헤헤."
멜리사가 기분 좋았는지 배시시 웃는다.
나는 나중에 따로 상을 주겠다는 의미로 찡긋 윙크를 날려주고 그녀의 엉덩이를 한 번 움켜쥐었다가 뗐다.
"하읏...!"
"으으..!"
칸나가 그 모습을 보고 부러움에 질끈 주먹을 쥔다.
그런다고 기발한 생각이 갑자기 떠오르지는 않는 모양이었지만 말이다.
그때, 비앙카가 비아냥 대면서 대화에 끼어들었다.
“흐응, 시시해. 고작 그게 전부야?”
”시비 걸지 마. 주인님도 좋다고 하셨잖아.”
멜리사가 인상을 팍 찌푸린다.
비앙카는 그런 그녀를 잔뜩 괴롭혀주고 싶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은 채 말했다.
”나라면 그렇게 시시한 걸 대응책이라고 주인님께 말씀 못 드렸을 거야.”
“너는 뭐 대단한 방법이라도 있어?”
“후후, 궁금해? 알려줄까?”
"그건 내가 제일 궁금한데?"
솔직히 들으면 안 될 것 같긴 했다.
내가 아는 그녀라면, 매우 매력적인 방법을 제시해줄 것이다.
다만 후궁의 정신 건강은 결코 좋지 못할 테고 말이다.
“앗, 주인님께서 바라신다면 어쩔 수 없죠. 후후!”
비앙카가 여유롭게 웃는다.
저 웃음이 얼마나 무서운 웃음인지는 당해본 사람만 알 것이다.
그리고 피해자였던 멜리사가 소름이 돋는지 얼굴이 더 일그러졌다.
"웩-"
헛구역질까지 하면서 비앙카를 슬그머니 피해 내 곁으로 달라붙었다.
나도 그녀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르지 않기에 기꺼이 그녀를 내 등 뒤에 숨겨주었다.
"후후후후..."
물론 자길 무서워 하는 걸 즐기는 비앙카에겐 맛 좋은 행동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멜리사 괴롭히지 말라고 했지?"
"헤헤, 아직 안 괴롭혔는데."
"빨리 얘기나 해. 좋은 방법이 있는 거야?"
“그럼요~ 아주 쉬워요. 후궁의 목줄을 황후한테 넘기는 거에요.”
목줄을 넘긴다?
정확히 무슨 말인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목줄을 넘긴다는 게 정확히 무슨 말이야?”
“그 후궁을 황후의 시중을 드는 궁인으로 만들어버리는 거죠! 아하하! 생각만 해도 재밌을 것 같지 않아요? 멜리사가 말했던 의견을 합쳐보면 굉장히 재밌는 그림이 나올 것 같은데요? 황후도 아마 좋아할 걸요.”
“!!!”
비앙카는 항상 자기 취향에 맞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만들어 내곤 한다.
당하는 입장에서 서슴없이 최악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
비앙카가 어떤 그림을 바라는 것인지 그림을 그려보았다.
후궁이 받을 처벌을 가문이 대신 받을 것인지, 아니면 후궁을 황후의 시중 드는 궁인으로 만들 건지 선택하라고 하는 거다.
아마 곧장 가문은 후궁에게 등을 돌릴 것이다.
황제의 마음이 떠난 후궁의 가치는 절대 가문보다 높을 수가 없으니까.
'황후도 만족하지 않을까. 자길 저주한 후궁을 가만히 둘 리 없으니까. 가까이에 두고 종일 괴롭히겠지. 후궁한테 확실한 처벌이 될 거야.'
물론 후궁이 또 다시 못된 짓을 하지 못하도록 조치는 취해둬야 할 것이다.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황후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은 선택지였다.
'친구는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에 두라는 말이 있으니까.'
후궁도 나쁜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적어도 자기가 낳은 아이를 직접 키울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안 그러면 궁에서 쫓겨나 자기가 낳은 아이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살아야 할 거다.
'굴욕을 감수하면 아이를 볼 수 있다는데 마다 하지 않겠지.'
나도 냉궁에서 애를 키우게 하지 않아도 되고, 어미 아래에서 자라게 할 수 있으며 황후가 알아서 그 후궁을 감시할 테니 내가 계속 신경을 쓸 필요가 없어진다.
'내 아이를 낳은 여자를 그런 취급 한다는 게 좀 그렇긴 한데... 내 입장에선 이게 최선이야.'
차곡차곡 상황 정리를 하고 나니 이게 제일 솔깃하고 상황에 맞는 해결책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진짜 머리 좋네.'
그 좋은 머리를 나쁜데 쓴다는 게 안타까운 일이긴 하다.
"확실히 나쁘지 않네."
"괜찮은 방법이죠?"
"응."
그녀가 악마였다면, 수완이 아주 대단했을 것이다.
도저히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조건을 제시하니 말이다.
사람을 홀리는데 일가견이 있달까.
"네가 말해준 방법이 제일 좋은 것 같아. 물론 멜리사 네 의견도 도움이 됐어. 고마워. 칸나도 같이 고민해줘서 고맙고."
좋은 의견을 내준 멜리사와 내게 도움이 되는 아이디어를 말하지 못해 시무룩해진 칸나를 다독였다.
"저도 그럼 멜리사처럼 좋은 거 해주시는 건가용?"
비앙카는 몸 둘 바를 몰라 하는 두 사람을 아랑곳하지 않고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래, 뭐 바라는 거 있어?"
"제 소원은 주인님께만 몰래 알려드릴래요."
두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다는 말이었다.
"궁금하지도 않거든?!"
"두 분 말씀 나누세요. 저희는 먼저 나가볼게요."
두 사람이 미련 없이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리고 나는 두 사람이 나가자마자 설마하는 생각으로 말했다.
"데려가 달라는 것만 빼고 웬만한 건 들어줄게."
"앗."
먼저 선수를 치길 잘 했다.
불길했던 짐작이 사실이었던 것이다.
"거기가 어디라고 따라 올 생각을 해? 절대 안 돼."
"이잉~! 너무해요."
"너 데려가는데 드는 코인이 얼마인지도 짐작 안 간다. 그러니까 안 돼."
"저 얼마 안 들어요! 주인님 소유물이잖아요."
"??"
"저는 인형이니까 주인님의 '소유물'로 취급이 돼요. 물건이라구요. 물건."
본인을 아무렇지도 않게 물건 취급하는 것이 이질적이었지만, 정말 비앙카가 소유물 취급을 받는다면 이동시키는데 코인이 하나도 들지 않는다는 의미가 된다.
"그래서 코인이 별로 안 드니까 데려가 달라? 네가 거기 가서 뭐하게."
"여긴 심심해요! 재밌는 게 없다고요."
"재밌는 걸 찾겠다고 차원을 넘겠다고? 그럼 여기 생활은 어떻게 하고."
얘가 나처럼 분신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한 몇 달 휴식기를 갖기로 하고 다녀오면 되잖아요."
"거기도 딱히 재밌을 건 없어."
얘를 거기다 던져 놓으면 가뜩이나 개판인 그곳이 더 난리가 날 거다.
"아닐 걸요? 주인님은 거짓말 하실 때 특유의 습관이 있으세요. 그리고 방금 그 습관을 고스란히 보여주셨고요."
"내가 그런 게 있다고?"
말도 안 된다고 말하고 싶은데, 그러기엔 내 가족들이 거짓말에 유난히 눈치가 빨랐던 게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