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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772화 (757/849)

Chapter 772 - #96. 진해솔 (76)

"헤헤, 아니요. 장난이었어요. 그런 거 없으세요."

"뭐야?"

"근데 덕분에 하나는 알게 됐네요. 거짓말 하신 거."

"널 거기 데려가면 온갖 깽판을 다 칠 텐데, 내가 왜 들어주겠냐."

"얌전히 사고 안 치고 있을게요. 주인님도 거기서 믿고 일 맡길 만한 사람이 필요하시지 않아요?"

물론 필요하기는 하다.

그쪽에서 생활하다 보면 사람이 이렇게 없나 싶은 마음이 수시로 드니까.

'아무리 내가 급해도 비앙카는 아니지.'

가뜩이나 사람 괴롭히기 좋은 여자다.

후궁들 사이에 풀어내면 드라마 수십 개는 뚝딱 만들어 낼 것이 분명하다.

"주인님, 이번 일을 경험하고도 제가 필요하지 않다고 하시는 거에요? 후궁이 문제를 일으킨 거잖아요. 아휴, 세상에 황후를 저주하다니! 이번에는 실패했지만, 다음에도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네가 거기 가면 막을 수 있다는 거야? 내가 보기에 더 난리가 날 것 같은데."

"후후후! 제가 못할 것 같으세요? 물론 초반에야 진통이 조금 있겠죠. 원래 야생동물을 길들이려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거거든요."

후궁들을 관리하는 사람으로 비앙카를 둔다라...

"제가 거기 간다면, 황후님 곁에서 후궁 관리에 도움을 드릴 거에요. 아마 그분도 제 도움을 바라고 있을 걸요? 혼자서 많은 후궁들을 어떻게 감당하겠어요. 그러다가 과로사로 픽~ 하구 쓰러져버릴지도 몰라용?"

"......"

확실히 황후가 혼자서 많은 후궁들을 관리하는 건 힘들 것이다.

내가 후궁을 한 두 명만 데려온 게 아니지 않은가?

그 많은 후궁들을 모두 신경 쓰는 건 애초에 말도 안 되는 일이고, 그나마 범위 안에 드는 후궁들이라면 가문의 지위가 높은 이나 내 아이를 임신했던 후궁들일 것인데...

'그 숫자도 앞으로 꾸준히 늘어나게 될 거란 말이지. 아씨, 또 당하고 있네.'

비앙카의 속살거리는 뱀의 혀.

그것에 농락 당하고 있다는 자각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거롭지 않게 사정을 다 알고 있는 비앙카가 선뜻 도와주겠다고 손을 내미는 것을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그녀가 그곳에 와주면 내 입장만 생각했을 때 많이 편해질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저 비앙카라면 후궁들이 무슨 짓을 하기도 전에 알아내서 오히려 역으로 당하게 하겠지.'

나 때문에 궁에 갇혀 살게 된 후궁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그렇게 된다면 황후가 걱정할 일의 대부분이 사전에 걸러져 한결 편하게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황후가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고, 항상 몸가짐을 바르게 하려는 이유가 무엇이겠나?

후궁들에게 꼬투리 안 잡히려고 그러는 거다.

자신이 완벽한 모습을 보여야 후궁들이 감히 그 자리를 넘볼 생각을 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황후를 위해서 비앙카 한 대 정도는 마련해줘도 괜...찮지 않나?'

하지만 문제는 있었다.

"후궁들을 쥐어 잡는 게 고작 몇 달로 되겠어? 그리고 네가 없으면 했던 일이 소용 없게 되는 거잖아."

"어머, 제가 왜 후궁을 쥐어 잡아요. 후궁들을 쥐어 잡는 건 황후께서 하시는 거죠."

"황후를 얼굴 마담 시키겠다는 거구나."

"그리고 주인님께서 자주 데려가 주시면 되잖아요."

"흐음...생각 좀 해보고 결정할 게."

"네엡! 비앙카, 얌전히 기다리고 있을게용."

귀엽지도 않은데 귀여운 척을 한다.

문제는 워낙 외모가 받쳐주다 보니 귀여움을 떨어도 잘 어울린다는 거다.

도도하고 귀하게 자란 티가 나는 외형의 비앙카다.

그런 그녀가 나한테만 애교를 부리는데 좋지 않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성격이 너무 쓰레기라...'

진짜 성격만 어떻게 뜯어 고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어쩌겠는가?

저 상태로 만든 게 자신인 걸.

실비아(인형)와 비앙카(본체)의 인격이 섞이는 과정에서 비앙카(본체)의 성격에 영향을 많이 받아 좀 얌전히 지낼 때가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아무래도 성격이 훨씬 강하고 자기 주장이 뚜렷한 실비아(인형)가 비앙카(본체)의 성격을 오염 시켜 버린 듯 했다.

이젠 언제 얌전해졌냐는 듯이 비앙카는 내 앞에서 실비아의 성격을 드러냈다.

'내 앞에서만 저러는 거라서 뭐라 하지도 못해.'

안에서 세는 바가지, 밖에서도 셀까 걱정이 됐는데 다행이 그건 아닌 모양.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 잠시 대답을 뒤로 미루고, 나는 본체와 함께 있는 황후에게 말을 걸었다.

♧ ♧ ♧

"짐은 이번 일을 어떻게 처벌하든, 앞으로 다신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황후의 저조한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나는 정무를 끝내자 마자 쪼르르 황후의 궁으로 달려온 상태였다.

멜리사와 비앙카에게 좋은 의견을 들은 참이었던 지라 그녀의 기분을 풀어 줄 비장의 수도 마련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물어보는 건데, 이런 처벌은 어떠십니까?"

"...??"

황후에게 멜리사와 비앙카의 아이디어를 전달했다.

"황후만 좋다면 이 방식으로 처벌을 하려고 합니다."

"제 의견을 물어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황후가 피해 당사자이니 당연히 의견을 물어봐야죠."

"그 정도라면...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행이 황후도 이번 의견까지 싫다며 거부하지 않았다.

"다만 그러려면 황후께서 그 후궁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얼마든지요."

"제가 알기로 성격이 만만치 않다고 들었습니다."

"아뇨, 그 아이는 더 이상 날뛰지 못할 겁니다. 가문에 폐를 끼쳤는데 무슨 낯짝으로 고개를 들고 다니겠습니까."

이쪽 세계에서 귀족들은 가문에 대한 집착이 굉장히 강하다.

특히 여자들은 어릴 적부터 가문을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는 세뇌에 가까운 교육을 받고 자란다고 들었다.

그 교육 덕분에 계속 남성이 가주가 되는 것일 테고 말이다.

그러니 내가 후궁에게 직접적인 처벌을 내리는 것보다, 가문에 불이익을 주는 것이 더 심한 처벌이 되는 것이었다.

황후도 이번 제안에는 순순히 응했던 것도 그 때문이고 말이다.

"가문이 자신 때문에 불이익을 받을 뻔했다고 들으면 아마 정신이 번쩍 들 겁니다. 가문에 버림 받으면 어떻게 될지 모를 리가 없으니까요. 차라리 자기 몸으로 때울 수 있다고 하면 기뻐할 겁니다."

"그래도 그런 짓을 한 사람을 황후 가까이에 둔다는 게 찝찝하지는 않습니까?"

"제 시중을 든다고 해서 가까이에 둘 필요는 없습니다. 절 모시기 위해서는 다양한 일들을 해야 하니까요."

시중이라는 범위가 가까이에서 모시는 것이 전부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황후나 황제의 측근에서 직접적으로 시중을 드는 것은 경력도 많고, 지위도 높아야 가능한 호사였다.

대부분의 궁인들은 황제, 황후의 옷자락도 잘 보지 못하는 곳에서 그들을 위해 몸이 부셔져라 일을 했다.

그러니 후궁도 먼 거리에서 황후를 위해 몸을 쓰게 될 것이다.

"그리고...마지막으로 하나 물어볼 게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후궁들을 관리하는 게 앞으로 더 힘들어질 겁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짐의 아이를 임신한 후궁은 늘어날 거고, 그럼 황후도 신경 써야 할 게 많아지게 되겠지요. 그들 중 한 명이 예상하지 못한 수작을 부려 이번처럼 황후를 노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 말을 어떻게 오해했는지, 황후의 표정이 더 안 좋아졌다.

"...제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황급히 오해를 풀 수 있도록 자세하게 설명을 이었다.

"그게 아닙니다. 황후에 비해 후궁들의 숫자가 너무 많은 게 문제라는 거에요. 궁에 믿을 만한 황후의 사람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후궁들 중에 제 편을 만들라시는 거군요. 폐하께서 이런 것까지 신경 써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너무 과한 참견인가요?"

"이번 일로 폐하께서도 많이 놀라셨을 테니 이해합니다. 절 걱정해서 하는 말인 것도 알고 있습니다."

황후가 내 말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혹 저희 가문 사람들을 중 마음에 차는 영애가 있으셨습니까?"

"오햅니다. 그런 사람 없습니다. 애초에 만난 적도 없습니다."

이런 오해를 바라고 한 얘기가 아니었는데...

오해가 풀린 줄 알았는데, 황후가 더 이상한 오해를 만들었다.

하긴, 궁에 황후의 사람이 더 필요한 것 같다고 하면 자기 가문 사람을 더 들이는 게 좋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긴 할 것이다.

그녀는 비앙카의 존재를 모르지 않은가?

"허면 왜...?"

"짐은 황후가 누군가에 의해 상처 입거나, 다치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황후가 잘못 되면 황태자가 얼마나 힘들어질지 아시지 않습니까? 걱정 되는 마음에, 황후를 지키고 싶은 마음에 한 말입니다."

"...황후의 자리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이미 각오하고 있던 일이에요. 그래도 다음부터는 폐하께 걱정 끼치지 않게 더 조심하겠습니다."

내가 걱정해서 한 말이라는 걸 들었음에도 황후는 앞으로 더 잘 하겠다며 자존심 상해한다.

내 걱정을 샀다는 것 자체가 그녀에겐 자존심 상하는 일인 모양이다.

아무래도 좀 더 진지하게 그녀를 달래줘야 할 것 같았다.

우선 도망가지 못하도록 그녀의 손을 잡아서 깍지를 꼈다.

"...왜 이러십니까?"

한층 더 퉁명스러워진 목소리.

"황후가 걱정 돼서 한 말인데, 자존심 상해 하면 어떡합니까? 그리고 이런 말을 한 건, 황후에게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을 소개 시켜 주려고 했던 겁니다."

"...폐하의 사람을요?"

"후궁들을 황후의 사람으로 만든다고 해도 그들을 온전히 믿을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온전히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소개 시켜 주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후궁들은 언제든 황후의 자리를 넘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특히 남자 아이를 낳은 후궁들은 더더욱 조심 할 필요가 있다.

비앙카라면 아마 황후를 잘 모실 수 있을 것이다.

절대 무능한 여자가 아니니까.

"유능한 사람입니다. 황후에게 큰 도움이 될 거고요. 다만 성정이 좀 잔인한 편이라서 황후에게 소개를 시켜주는 게 맞을지 확신이 서지 않더군요."

"폐하와 어떤 관계입니까?"

"어떤 관계라...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노예라고 하는 게 맞겠죠."

본인은 나의 소유물이라고 표현했고, 나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내 것이라는 자각은 갖고 있었다.

"짐이 죽으라고 하면 죽는 시늉이 아니라 진짜 목숨을 거는 아이입니다. 짐에게 해가 되는 일은 할 수 없죠."

내 명령을 반드시 들어야만 하는 존재이니, 황후를 위해 움직이라고 명령해두면 기꺼이 자신의 재능을 그녀를 위해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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