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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773화 (758/849)

Chapter 773 - #96. 진해솔 (77)

"헌데 아까 폐하께서 그 사람의 성정이 잔인하다고 하셨지요?"

황후는 현명했다.

능력이 좋다는 말에 현혹 되지 않고, 아주 중요한 부분을 먼저 지적해왔으니 말이다.

"맞아요. 그 사람이 황후를 돕기 시작하면 아마 후궁들이 고생을 좀 할 겁니다. 사람을 괴롭혀서 굴복시키는 걸 즐기는 사람이에요. 그런 사람인데도 쓰지 않을 수가 없을 만큼 능력은 좋습니다."

"...성능은 좋은데, 파괴력이 너무 강한 무기 같은 거군요."

비앙카는 엄연히 사람이지만, 물건으로 비유를 하면 금방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마검 같은 사람인 거죠."

마검.

여기가 아무리 판타지 세계라지만, 마왕이 나타나서 갑자기 세계를 지배하겠다느니 하는 일은 없다.

다만 마검이나 마왕이라는 존재가 있기는 한데 약간 귀신 취급이랄까?

'너 자꾸 울면 마왕님한테 잡아 가라고 한다?' 라는 거 말이다.

마검은 마왕이 쓰는 무기로 동화 속에서 나오는데, 당연하지만 강한 힘을 갖고 있으나 주인이 아닌 자가 쓰면 사용자를 파괴 시킨다는 단점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비앙카를 그 동화 속 마검으로 비유한 것이다.

"성격도 드세서 자기에게 불이익을 받으면 그만큼 삐뚤어진 채로 보상을 받아내려 합니다. 저한테도 몇 번 건방을 떨다가 혼난 적이 있습니다."

주인에게 건방지게 굴기도 한다는 점에서 마검과 똑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동화 속 마검이 현실로 툭 튀어 나온다면 온갖 사람들이 그걸 얻어내겠다고 난리를 칠 것이다.

마검을 이용하면 분수에 넘치는 것들을 얻어낼 수 있으니 말이다.

"아마 황후의 후광을 등에 업으면 후궁들을 자기 멋대로 가지고 놀 겁니다."

"감히 폐하의 후궁을요?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 때문에 그런 건방진 자를 신하로 두고 계셨습니까?"

아차.

황후의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를 듣고 서야 뒤늦게 실수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세계가 다르다 보니 생긴 일이다.

신분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 비앙카의 무례한 행동은 기분 나쁘고 마는 일로 넘길 수 있지만, 이곳은 목숨이 오가는 일이었다.

"함께 일을 해왔던 시간이 길다 보니 그렇습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제가 성인이 되기 전엔 어떻게 살아왔는지 말입니다."

귀족들 사이에서 과거의 나는 산 속에서 홀로 지내온 사람이었다.

마을 사람들과 교류한 적이 거의 없었을 만큼 사람과의 관계가 단절 된 사람.

그때부터 알아왔던 사람이라고 하니 그제야 황후도 표정이 풀렸다.

"폐하께 소중하다는 걸 알고 있으니 그렇게 건방지게 구는 것이군요."

"황후에게 깍듯하게 대우하라고 하겠지만, 다소 건방지게 굴어도 봐주세요. 적어도 해가 될 아이는 아닙니다."

"소개 시켜 주겠다고 하셨지만, 호평보다 악평이 많으니 선뜻 받기가 꺼려지네요. 먼저 소개 시켜 주겠다고 말한 사람은 폐하가 아닙니까?"

소개 시켜 주겠다는 사람이 자꾸 안 좋은 소리만 해대니까, 소개 시켜주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솔직히 저도 소개 시키는 게 맞는 건지 긴가민가 합니다. 능력 하나는 정말 좋은데, 단점이 너무 뚜렷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 사람한테 후궁을 맡겨 놓으면 황후가 많이 편해지긴 하실 겁니다."

황후가 내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해주길 바란다.

물론 비앙카에게 도움을 받을 때마다 느끼는 이 찝찝함은 당사자가 아니면 공감하기 어렵긴 하다.

"오로지 저만 봤을 때 좋은 선택이 될 거라는 건 알겠네요. 다루기 어려운 신하지만, 잘 사용하면 제게 큰 이득이 될 거라는 말씀이신 거죠."

"맞습니다."

"다만 지금 부정적인 얘기를 자꾸 하시는 건 후궁들이 불쌍하신 걸 테고요."

"...아니라고는 못 할 것 같습니다."

정확하다.

황후도 내 여자이지만, 후궁들도 어쨌든 나와 살을 섞는 여자들이지 않은가?

고양이에게 물고기를 맡겨도 이만큼 불안하진 않을 것이다.

"폐하께서는 제가 거절해주길 바라고 계신 것 같네요. 다만 제게 미안하여 어쩔 수 없이 말씀을 하셨던 거고요. 아예 제안도 하지 않으면 될 일일 텐데. 폐하도 참 요령 없으십니다. 제가 이런 말을 들었는데 거절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황후 입장에서야 자신이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니 거절 할 이유가 없는 거다.

물론 비앙카를 잘 사용해야 하니 그 점은 좀 피곤할 거다.

하지만 관리해야 할 후궁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보니 비앙카 한 사람을 상대하는 게 더 편할 지도 모른다.

더욱이 내 명령을 들어야만 하는 비앙카이니 황후에게 감히 괜한 수작을 부리지도 않을 것이다.

결국 그녀가 이곳에 와서 힘들어지는 건 후궁들 뿐인 것이다.

"받아들여도 상관없습니다, 황후. 사실 이성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그 아이의 도움을 받는 게 맞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고요."

"흥, 됐습니다. 필요 없어요. 소개 시켜 주시지 않아도 됩니다."

"??"

금방이라도 비앙카를 만나보겠다 할 것 같았던 황후가 갑자기 거절을 해온다.

"혹시 저 때문에 거절한 겁니까?"

너무 부정적으로만 말했나?

"아뇨. 애초에 소개 받을 생각도 없었습니다. 제가 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만 내명부를 장악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저 루아벨, 그리 무능력한 사람 아닙니다."

가슴을 펴고, 동그란 가슴 위에 손을 얹은 후 무능력한 사람 아니라며 당당하게 선언하는 모습을 보니 아랫도리에 힘이 불쑥 들어갔다.

'이게 꼴리네.'

귀하게 생긴 여자를 엉망진창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그녀와의 섹스는 꽤 짜릿하다.

순진한 여자를 타락 시키는 것이지 않은가?

날을 세우며 했던 그날 밤 이후로도 그녀와는 꾸준히 잠자리를 갖고 있었다.

더불어 나날이 발전해가는 기술 덕분에 지루한 줄 모르고 빠져서 하는 중이기도 하다.

"황후의 능력을 무시해서 한 말은 아니었습니다. 도움을 주고 싶었을 뿐이에요."

지금 상황에서 껄떡대는 자지를 들이대는 건 욕을 먹을 수 있는 일이므로, 최대한 티를 내지 않게 애쓰며 말했다.

"내명부의 일을 다른 사람에게 대신 맡기고 편하게 지내라고요? 그게 어떻게 좋은 일이 될 수 있겠습니까? 애초에 고민 할 이유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황후는 내 제안이 고민해볼 가치도 없는 일이라고 말해왔다.

"폐하, 이번 일로 실망이 크시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 번만 더 제게 기회를 주세요. 황후의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해보이겠습니다."

"짐이 괜한 짓을 한 게 맞나 봅니다. 황후를 편하게 해주겠다는 생각으로 했던 일들이 오히려 그대를 불편하게 만든 것 같습니다."

"저를 생각해주시는 마음 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황후가 깔끔하게 내 도움을 거절해주니, 마음이 무척 편해졌다.

비앙카도 황후가 거절하면 얌전히 물러나겠다고 했던 지라 비앙카의 다른 차원 진출은 사전에 막아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다만 폐하, 소개 시켜주겠다고 했던 그 사람은 한 번 만나보고 싶네요. 자리를 마련해주실 수 있을까요?"

"...그 아이를요? 도움은 필요 없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폐하께서 그리 혹평하면서도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하니 한 번 만나서 대화를 나눠보고 싶어졌습니다."

"만나서 좋을 거 없습니다."

안 만나는 게 맞다.

"보고 싶습니다. 단순히 얼굴을 보여주는 것도 안 되는 건가요?"

"무례하게 행동해서 황후의 심기를 어지럽힐까 걱정이 돼서 말입니다."

"제 입장에선 폐하께서 그런 무례한 사람을 곁에 두고 계신다는 게 더 걱정이 됩니다."

이거 상황이 좀 묘하게 됐다.

끝까지 안 보여주겠다고 하는 것도 좀 이상할 것이고, 그렇다고 황후와 한 번 만나게 해주려고 걔를 여기까지 데려오는 것도 좀 그렇지 않은가?

고민하던 나는 비앙카가 내 명령을 듣고 다른 나라에 일을 하러 갔다고 둘러댔다.

"...그래요?"

"나중에 황궁에 들리면 그때 만나게 해드리겠습니다."

"......."

솔직히 공수표다.

비앙카의 도움을 거절한 황후의 자신감을 지지하기 위해서라도 두 사람의 만남은 성사 되지 않게 하는 게 맞았다.

'비앙카랑 만나면 황후가 설득 당할 확률이 높으니까.'

하지만 내가 두 사람을 만나게 할 생각이 없다는 걸 황후가 눈치 챈 모양이었다.

"아예 기약이 없는 일은 아니겠죠?"

"...일을 끝내면 돌아오겠지요."

"폐하께서 부르지 않으면 영영 돌아오지 않는 것 아닙니까?"

"...딱히 부를 일이 없기는 합니다. 황후의 일을 도우러 오는 게 아닌 이상 그 먼 길을 굳이 왔다 갔다 할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녀의 추궁에 어쩔 수 없이 사실을 털어놓았다.

"제가 보고 싶다는 걸로는 이유가 안 되나요?"

황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어온다.

"......"

서로 살을 비비고 살다 보면 정이 안 생길 수밖에 없는 법.

스쳐 지나가는 후궁들에겐 선을 그어도, 황후에게만은 그럴 수가 없었다.

"지금 미인계로 절 설득하시려고 하는 겁니까?"

"...미인계라뇨. 간지러운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시네요."

"방금 눈 동그랗게 뜨고 절 보셨잖아요."

"아닙니다. 그런 적 없습니다."

"제가 당했는데요?"

"말 돌리지 마세요. 그래서 언제 볼 수 있습니까?"

"꼭 만나봐야겠어요?"

"예. 폐하께서 싫어하시니 더 보고 싶습니다."

황후가 꼭 보겠다고 의지를 보이니 더 이상 만남을 대충 얼버무릴 수 없었다.

그저 두 사람이 만나기 전, 주의 사항을 잔뜩 알려줄 수밖에.

비앙카가 어떤 방법으로든 황후를 설득해서 이곳에서 지내려고 할 텐데, 그녀가 그 설득에 넘어가지 않도록 단단히 말을 해두기로 했다.

"그러니까 말을 굉장히 잘 하는 사람이니까 어떤 매력적인 조건을 내걸어도 받아들이지 말고, 조심하라는 거죠?"

"네."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점점 더 궁금해지네요."

주의 사항을 알려주는데 오히려 그게 역효과를 내서 황후의 호기심만 더 커지게 만들어버렸다.

불안함을 숨기지 못한 채, 나는 비앙카를 이곳으로 부르기 위한 절차를 걸쳤고, 비앙카는 정말 내 소유물 취급을 받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정말 세관 신고 금액...정도로 되네."

"그것 보세요. 저한테 얼마 안 든다니까요?"

...사람을 서슴없이 물건 취급 할 줄이야.

"말 했던 거 잊지 않았겠지?"

"아무렴요! 걱정하지 마세요. 헤헷."

"웃지 마...너는 웃을수록 걱정 되니까."

"히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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