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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774화 (844/849)

Chapter 774 - #96. 진해솔 (78)

"비앙카라고 불러주세요. 황후님."

"...얼마든지. 만나서 반갑네."

최대한 두 사람의 만남을 뒤로 미루고 싶었던 나한테는 매우 비극적인 상황이 펼쳐졌다.

비앙카에게 황후가 도움을 거절했다는 기쁜 소식을 전달함과 동시에 황후가 그녀를 한 번 만나보고 싶어 했더라는 말을 전달해야 했다.

황후의 거절에 시무룩해졌던 비앙카는, 잠깐이라도 그곳에 갈 수 있다는 것에 크게 기뻐했다.

그리고 굳이 뒤로 미룰 거 뭐 있냐면서 곧장 짐을 싸버린 것이다.

황후도 비앙카를 빨리 보고 싶어 했기에 두 사람의 등살을 버티지 못한 나는 그녀를 데리고 차원을 넘어야 했다.

"폐하께 충심을 다하는 믿음직스러운 신하를 두셨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보게 되어 기쁘구나."

"정말 주인님께서 제 칭찬을 해주셨나요? 그럴 분이 아니신데...? 뭐, 좋게 봐주셨다고 하니 감사합니다."

처음 만났을 때의 분위기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사실 폭풍전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긴 한데...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은 예리하기 그지없었다.

'탐색하는 건가.'

두 육식동물 사이에 낀 초식동물이 된 것처럼 가슴이 옹졸해졌다.

'도망치고 싶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비앙카를 황후에게 온전히 떠넘기고 도망갔다간 후폭풍이 어마어마할 것이다.

"우리 주인님은 칭찬을 잘 안 해주세요. 참 너무하시다니까요."

황후가 비앙카의 말에 나를 바라봤다.

비앙카도 덩달아 시선을 돌려서 나를 보니 한 것도 없는데 괜히 가슴이 묵직해졌다.

내가 칭찬을 안 하고 싶어서 하지 않은 게 아니지 않은가?

"칭찬을 해주고 싶어도, 그럴 수 없게 만드니까 그런 거지."

어떤 일을 시키든 자기가 즐길 수 있는 방식으로 바꿔서 해내는 사람이 아닌가?

결과를 보면 칭찬을 해줘도 되지만, 과정을 보면 칭찬이 나오질 않는다.

"흥흥~ 괜찮아요. 주인님 칭찬은 언제나 고프지만, 못 들었다고 해서 시무룩해질 만큼 나약하지 않으니까요."

"딱히 칭찬 받는 거에 관심 없다는 거 알고 있거든?"

비앙카가 자꾸 나를 걸고 넘어지니 환장하겠다.

"제가 왜 관심이 없어요. 저는 주인님 관심과 칭찬이 필요해요."

"진짜 신경 제대로 써줘?"

"호호."

"또 웃음으로 넘어가려고."

"...폐하를 주인님이라고 부르는군요. 폐하께서도 딱히 제제를 안 하시고 계시고요."

비앙카에게 주인님이라고 불리는 게 너무 익숙했던 지라 그걸 황후가 문제 삼을 거라고 생각을 못했다.

"그야...주인님이시니까요?"

지적을 받았으면 그냥 폐하라고 고쳐서 부르면 될 것을.

굳이 한 마디를 보태는 비앙카였다.

나는 눈빛으로 비앙카를 쏘아봤다.

무례하게 행동하지 말라는 의미를 담아서 말이다.

'아휴~ 알았어요. 자제한다니까요?'

쟤야 실수하면 다른 차원으로 튀면 되지만, 여기에 남아야 하는 나는 사정이 다르지 않은가?

내가 신분을 증명해서 황궁 안에 들인 것이니, 그녀의 실수는 온전히 내 책임이었다.

미리 말을 해둬서 자제를 하고 있긴 한 듯 한데, 비앙카의 못된 심보는 조절이 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 내가 여기 있는 것이다.

당장 도망치고 싶어도 말이다.

"네 주인이기 전에 폐하이시다. 제국을 다스리는 황제 폐하껜 주인님이라는 호칭보단 존중을 담아 폐하라고 부르는 게 낫지 않겠느냐? 네가 앞으로 황궁을 드나들게 된다면 말이다."

황후의 말은 명분도 있고, 일 리도 있었다.

정말 비앙카가 앞으로 황궁을 드나드는 일이 생긴다면 말이다.

"예전에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남들 보는 시선을 신경 써야 하는 법이다."

"주인님이라는 호칭만으로도 충분히 존중이 담겨 있다고 생각해서요."

"흐음...그대는 잘못 된 걸 지적해줘도 바꿀 생각이 없나 보군."

"애초에 주인님이 폐하가 되기 전부터 주인님으로 모셨거든요. 입에 붙기도 했고, 굳이 호칭을 바꿀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죠. 보셨다시피 주인님께서 불편해 하신 적도 없고요."

처음에는 그래도 공손하게 말을 하더니 슬슬 태도가 삐딱해져가고 있었다.

불만 있으면 네가 자세를 고쳐 앉으라는 식으로 대답을 하지 않는가?

나와의 약속을 지키라는 의미로 경고를 담아 말했다.

"비앙카, 황후에게 예의를 지켜야지? 미안합니다. 예의를 차리는 게 익숙하지 않다 보니 미숙합니다."

"폐하께서 사과를 하실 일은 아니시지요. 당사자에게 받지 못한 사과가 의미가 있겠습니까?"

"죄송해요. 불편하시다면 고쳐야죠. 제가 뭐라고 고집을 부리겠어요."

언제 반항했냐는 듯, 순식간에 태도를 바꿔서 비련의 여주인공이 된 것 마냥 시무룩해져 말했다.

그리고.

"그래, 잘 생각했다. 잘못 된 습관은 고쳐야지."

"......"

황후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비앙카의 말을 냉큼 받았다.

비앙카도 자신의 말을 이렇게 태평하게 받아낼 줄은 몰랐는지 살짝 당황하는 눈치였다.

'비앙카가 당하는 모습도 보고. 역시 사람은 오래 살고 볼 일이라니까. 확실히 황후가 만만한 사람이 아니긴 하지.'

황후는 비앙카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생각보다 중심을 잘 잡고 있었다.

'황후도 비앙카 못지 않은 권력가 출신의 가문이니까.'

태어났을 때부터 재벌 가문에서 태어나 귀한 대접을 받아왔던 비앙카.

하지만 신분제가 존재하는 세상에서 고귀한 공작 가문의 귀족 영애로 살아 온 황후에 비하면 부족함이 있을 것이다.

온전히 그녀를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는 궁인들이 몇 명인가?

또한 현재 신분 차이를 생각해도 재벌 가문 가주보단 황후가 더 높은 게 사실이었다.

'비앙카한테 꿀리는 게 단 하나도 없잖아.'

어쩌면 나는 비앙카를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을 찾아낸 걸지도 모른다.

한편, 황후가 자신의 예상과 다른 태도를 보이자 그녀를 간 보던 비앙카도 살짝 숨을 고르는 듯 다시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시작했다.

"폐하의 일을 도와서 다른 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예, 다양한 일을 하면서 폐하를 돕고 있습니다."

황후는 자세하게 어떤 일을 하는 지를 물어보지는 않았다.

비앙카가 하는 일까지 세세하게 알고 싶어 하지도 않은 눈치였다.

"그런데, 폐하를 위해 맡은 바 일을 다 하던 자네가 갑자기 나를 돕고 싶다고 한 이유는 뭔가?"

여유롭게 차를 마시면서 하는 질문이 꽤 날카롭고 살벌하다.

비앙카를 경계하고 있다는 게 확실하게 느껴져서 꽤 당황스러웠다.

'비앙카한테 흥미가 있는 줄 알았는데, 그 흥미가 안 좋은 쪽이었나 보네.'

비앙카는 황후의 날카로운 질문에 여유를 잃지 않고 대답했다.

"언제까지 바깥을 돌고 있을 수는 없지 않겠어요? 정확히는 폐하의 곁에서 생활을 하고 싶어져서 욕심을 좀 내본 겁니다. 제가 이곳에 있으면 잘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보이기도 했고요."

황후의 물음을 비앙카가 알아서 잘 꾸며내서 대답을 했다.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후궁들 관리하는 일 말하는 거겠지?"

"예, 맞습니다. 그런데 황후 폐하께서 거절을 하셨다고 들었어요. 많이 아쉬웠던 참인데 황후 폐하께서 절 보고 싶어 하신다는 말씀에 기뻐 한 걸음에 달려왔죠."

"그대를 만나면 내가 뜻을 바꿀 거라고 생각했나 보군."

"예, 그럴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제 일방적인 바램이었던 것 같네요."

"잘 봤네. 애초에 폐하께서는 자네를 나와 만나게 하는 걸 꺼리셨다."

"폐하께서 걱정이 많은 편이셔서요."

적어도 지금 상황을 살펴보니 쓸데없는 걱정은 아닌 것 같다.

"자네를 직접 만나고 보니 폐하께서 괜한 걱정을 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

"어머, 서운해라. 황후님은 제가 마음에 안 드셨나봐요. 저는 오늘 황후님께 잘 보이려고 예쁜 옷도 입고 신경 잔뜩 쓰고 온 건데."

"널 조심하라고 하시더구나. 과연 만나보니, 새치 혀로 사람을 휘두른다는 것도 알겠고."

비앙카를 본지 얼마나 됐다고, 그녀의 본질을 꿰뚫어 본다.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이때부터는 좀 마음을 놓은 채로 지켜보게 됐다.

적어도 황후가 비앙카에게 일방적으로 당할 사람이 아니라는 믿음이 생긴 것이다.

"이래서 제 도움은 필요 없다고 하신 거군요? 폐하께서 제 흉을 잔뜩 보셔서요."

"아니, 그것과는 상관 없는 일이다. 애초에 황후도 아닌 자에게 후궁 관리를 맡길 리가 없지 않느냐? 그건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일이라는 의미다."

황후가 비앙카를 따끔하게 혼내고 있었다.

감히 황후를 도와 자신이 후궁을 다스리겠다는 생각을 한 것 자체가 그녀 입장에서는 건방지게 보였던 모양이다.

황후를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만 했지, 그녀가 내 제안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깊게 생각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나도 반성해야겠는 걸.'

비앙카는 입술을 삐죽였다.

자신이 휘두를 수 있을 줄 알았던 사람이 만만치 않은 걸 확인해서 마음이 상했던 모양이다.

나는 그동안 비앙카 때문에 마음 고생했던 게 생각나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안 나서면 나중에 서운했다고 찡찡거릴 테니 이 정도만 하자.'

황후의 서슬 퍼런 분노를 비앙카 혼자서 감당하게 할 수는 없었기에 잠자코 지켜보던 것을 멈추고 앞으로 나섰다.

"아무래도 짐이 실수한 것 같습니다. 비앙카가 황후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진행한 일이었는데 결과가 영 안 좋네요. 비앙카는 짐이 따로 따끔하게 혼내겠습니다."

"...예, 폐하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저도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황후는 할 말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는지 아쉬워 했으나 내가 따로 혼을 내겠다는 말을 하니 더 나서지 못했다.

애초에 같은 세계에서 사는 게 아니다 보니, 두 사람이 어울리는 건 쉽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간극이 크다는 걸 알게 됐다.

오늘 황후에게 제대로 혼쭐이 났으니 비앙카도 더 이상 조르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 세 번은 쉬운 법이지 않은가?

자꾸 데려가 달라고 하면 어떡하나 했는데, 오늘 일로 그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비앙카는 제가 이만 데리고 가겠습니다."

사실 아까부터 비앙카가 입술을 오물 거리며 무언가를 열심히 인내하고 있었다.

아마 내가 신신당부 했던 명령 때문에 황후에게 까부는 걸 참고 있는 것일 거다.

저 인내심이 얼마나 오래 갈지 알 수 없었으므로, 황급히 얘를 데리고 나갈 생각이었다.

"폐하께서 굳이요? 저자는 혼자서 움직이지도 못한 답니까?"

황후는 끝까지 비앙카를 챙기는 나를 못 마땅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내게 섭섭해 한다는 걸 알았지만, 얘를 안 챙기면 누가 챙기겠나 싶어 황후에게 양해를 구했다.

"황궁이 낯선 아이이지 않습니까? 혼자 둘 수가 없어서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자네는 오늘 들었던 말을 유념하도록 하시게. 바깥을 도는 게 싫으면 폐하께 후궁으로 삼아 달라 청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테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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