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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778화 (762/849)

Chapter 778 - #96. 진해솔 (82)

비앙카가 게오스 제국으로 떠났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인데, 본래 자신의 자리에서 해야 할 일들은 멜리사에게 일방적으로 떠넘겨버렸다고 한다.

'가문 일은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봤을 때 유난히 자신 있어 했던 게 멜리사를 믿어서였구나.'

대뜸 가문의 일을 모두 맡아버린 멜리사는 황당해 했지만, 이미 모든 걸 떠넘기고 도망쳐 버린 비앙카를 잡는 건 불가능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내가 비앙카에게 시킬 일이 생겨서 당분간 비앙카의 일을 맡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다행이도 갑자기 맡게 된 언니의 일들을 멜리사는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비앙카도 그걸 아니까 일을 저지르고 튄 거겠지.'

한편, 능력 좋은 비앙카는 게오스 제국에서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커다란 배와 각종 금은보화를 지원 받아 바다로 떠난 그녀는 곧 게오스 제국에 도착해 좋은 물건들을 황제폐하께 진상하겠다며 게오스 황제를 만났다고 한다.

물론 아무나 황제를 만날 수 있는 건 아니었기에 내 도움을 받았다.

'그래도 거기까지가 딱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마지막이었는데...'

새 황제를 만나는데 성공한 비앙카는 놀랍게도 황제를 순식간에 꾀여냈다.

현재는 게오스 황제가 총애 하는 이국 상인이 되어 있었다.

'내가 꽤 진귀한 것들을 챙겨주긴 했는데...황제한테 총애 받는 게 어디 쉬운가. 더군다나 이국에서 온 상인 신분으로.'

게오스 제국의 풍요로움은 1~2년의 일이 아니기에 내가 챙겨 준 진귀한 물건들도 새 황제의 눈에 들어오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데 비앙카는 굳이 내 지원도 필요 없었다는 것 마냥 손쉽게 새 황제의 총애를 받아내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뽐내겠다는 듯 황제를 순식간에 쥐락 펴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가 게오스 제국으로 떠난 지 불과 두 달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말이다.

그녀에 대한 총애가 생각 이상으로 대단하여 귀족들 사이에서도 순식간에 유명해졌다고 한다.

물론 긍정적인 이미지로 유명해진 것은 아닐 것이다.

새 황제에게 딱 달라 붙은 간신을 귀족들이 좋아 할 리 없으니 말이다.

'역시 능력 하나는 기가 막히다니까.'

그래도 아직 몸을 사리는 것인지 그곳에서 나쁜 짓 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았다.

거기다가 나는 수시로 비앙카로부터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전달 받고 있었다.

그녀가 떠나기 전.

나는 비앙카와 바로바로 연락을 할 수 있도록 코인으로 구매한 핸드폰을 들려 보냈다.

이곳에는 전파가 존재하지 않기에 핸드폰이 무용지물이었는데, 상점에서 구매한 핸드폰은 전화가 가능했다.

다만 여러 기능이 엄청 많은 스마트폰과 달리 오로지 서로 연락을 주고 받을 수만 있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도 번호만 알면 거리가 얼마나 떨어져 있든 연락을 나눌 수 있으니 기능이 부족한 건 아니었다.

'솔직히 스마트폰이 너무 쓸데없는 기능이 많이 들어 있는 거지.'

원래 핸드폰은 통화 목적으로 갖고 다니는 것 아닌가?

'물론 여기도 먼 거리에서 연락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수단이 있긴 한데, 그걸로 주고 받기에는 너무 눈에 띄니까.'

이곳도 해킹이라거나 도청이라는 게 존재하는 지라 이 세계의 연락 수단으로 정보를 주고 받는 것이 걱정 됐다.

그녀가 게오스 황제의 곁에 붙어 있게 되면 아마 적이 많아질 것이다.

'감시하는 사람도 많아질 거고.'

가뜩이나 수상해서 지켜보고 있는데 꾸준히 누군가와 연락을 주고 받는다면?

당연히 궁금해질 거고, 캐내고 싶어 할 것이다.

그러니 그들이 감히 손도 대지 못할 물건을 준 것이다.

더불어 핸드폰이 있어야 그녀가 위기에 빠졌을 때 빠르게 도와주러 갈 수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런 걱정이 불필요 했다는 생각이 들 만큼 비앙카는 게오스 제국에서 잘 적응했다.

슬슬 우리 쪽에서도 새 황제를 치마 폭에 넣고 다루는 간신이 생겼다는 소식이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까지 퍼진 거면 게오스 제국 내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는 건데...'

분명 보고에는 아직 멀었다며 숨을 죽이고 있다고 들었는데 말이다.

우리 제국에 소문이 퍼진 것을 보니 얘가 엄살을 피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역사 속에서 나오는 나라를 말아 먹는 악녀라도 되려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됐다.

"게오스 황제의 곁에 비앙카라는 간신이 붙었다고 합니다. 우리 제국은 어떻게 대응하는 게 좋을까요?"

"굳이 대응을 해야 합니까? 어차피 전쟁이 끝난 상태이지 않습니까?"

"이대로 전쟁을 끝내고 아무런 이득도 보지 않을 순 없지 않습니까?"

"배상금을 그만큼이나 받았는데 이득이 없다니요?"

우리 제국은 게오스 제국으로부터 전쟁 보상으로 땅과 여자 그리고 각종 재물을 받은 바가 있었다.

새 황제는 전쟁을 바라지 않았고, 황제의 자리에 올라가는데 도움을 준 우리 제국에 갚아야 할 빚도 있었다.

우리 제국이 뒤에서 새 황제를 옹립하는데 손을 썼다는 게 알려지면 곤란하므로 입을 막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만큼 받은 게 아니라 고작 그만큼 밖에 안 받은 것이지요!"

예전부터 은근히 게오스 제국에게 유리한 말을 하던 귀족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그 귀족이 게오스 제국의 편을 들기 시작했다.

'저 정도면 첩자라고 숨기고 싶은 생각도 없는 거 아닌가?'

내가 저 귀족을 쳐내지 않은 이유는, 저걸 쳐낸다고 해서 완전히 첩자가 사라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괜히 쳐냈다가 게오스 제국이 또 다른 첩자를 심으면 골치 아파진다.

신분을 들킨 첩자는 무용한 존재가 아니겠는가?

괜히 새로운 첩자를 알아내겠다고 고생을 하느니, 뻔히 눈에 보이는 놈을 얼굴 마담 삼아 지가 일을 잘 하는 줄 알게 두는 것이 나았다.

"자자, 괜히 싸우지들 마시고. 그래서 그 여자를 어떻게 이용하면 좋겠다는 겁니까?"

"그 여자에게 선을 대는 겁니다. 상인이니 재물에 흔들릴 겁니다. 많은 재물을 주고 우리 사람으로 만들어서 게오스 제국을 흔들어준다면, 나쁠 것 없지 않겠습니까?"

"게오스 황제의 총애를 받고 있는데, 설마 재물 때문에 새 황제를 배신하겠습니까?"

더불어 우리가 지금 이런 연극을 하고 있는 이유도 첩자들 때문이다.

비앙카의 신분을 완벽하게 세탁하기 위해서 필요한 연극이었다.

게오스 제국의 신하들은 비앙카가 어디서 온 사람인지 정확하지 않다는 점을 들어서 첩자일 거라고 새 황제를 흔들고 있었다.

정말 비앙카는 제국에서 보낸 첩자이니, 최대한 연결 될 만한 끈을 끊어두는 게 좋았다.

'쪼르르 달려가서 오늘 있었던 일을 황제에게 보고하겠지. 그럼 비앙카는 완전히 우리와 상관없는 사람이 되는 거야.'

게오스 황제의 총애를 받은 그녀는 슬슬 자신의 영향력을 게오스 제국 곳곳에 퍼트리고 있었다.

앞으로 더 많은 일들을 해야 하는 그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이거라고 생각했다.

그녀와 우리가 아무 상관없는 사이라는 확신을 주게 만드는 것.

게오스 제국에 위협이 될 수 있는 곳이 바로 제국이니, 그 제국과 상관없는 사람이기만 하다면 새 황제는 거리낌 없이 비앙카를 가까이에 둘 것이다.

게오스 제국의 첩자가 회의 내용을 쪼르르 달려가서 알려주길 기다리며, 우리는 어떻게 비앙카를 우리 편으로 만들 지에 대한 방법을 의논해 나갔다.

"우리 쪽에서 은밀하게 접근할 거야. 넌 그때 적당히 간 보는 척 하면서 새 황제한테 이런 일이 있었다고 말하고."

-새 황제가 좋아하겠네요. 제가 재물 때문에 자길 배신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요.

아무리 적대국 사람이라지만, 이래도 되는 건가 양심이 살짝 아파오긴 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것이 황제가 견뎌내야 하는 무게인 것을.

"게오스 황제랑 사이는 좀 어때? 그쪽 귀족들이 널 떼어놓으려고 안달을 낸다면서."

-걱정하지 마세요. 오히려 귀족들이 그러면 그럴 수록 절 더 의지하려 드니까요. 일단 황제는 여기 귀족들이랑 말이 안 통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것들이 빼액빼액 자기 할 말만 해대고 있으니까 편을 들어주고 싶어도 그러기가 싫은 거죠.

새 황제는 게오스 제국의 귀족들을 혐오하고 있었다.

"귀족들을 상대하다 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지."

그리고 나도 황제 노릇을 좀 해봐서 그런가?

게오스 황제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저도 그 기분 잘 알아요. 머리가 좀 있으면 알 수 있는 건데, 얘네들은 아예 생각 자체를 안 하나 싶을 때가 많거든요.

회사를 운영하며 사람 다루는 경험이 많은 그녀도 게오스 황제의 고단함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 답답한 마음을 살살 긁어주기만 해도 게오스 황제는 그녀를 굉장히 좋아하며 옆에 끼고 다닌단다.

'공감이라는 게 참 위험하지.'

공감 받지 못하다가 공감해주는 사람이 나타나면 얼마나 좋겠는가?

자신을 이해해주는 유일한 사람의 등장에 홀딱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도 가족들이 없었으면 그랬을 테니까.'

황제라는 지위가 얼마나 외로운 곳인가.

인간 불신에 걸려도 할 말이 없는 곳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답답함을 호소하고 싶어도 황제의 근처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복잡한 권력 관계에 얽혀 있다.

'푸념은 약점이 되고, 언제 어디서 다른 권력자들에게 쓰일 지 모르는 상황이니까.'

오히려 비앙카가 아무 이해 관계가 없는 이국 상인 출신이기에 새 황제의 마음을 빠르게 녹일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여기 황제는 많이 나약하더라고요.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되게 불쌍해요.

"...그거 참 안 됐네."

비앙카가 게오스 황제를 동정하고 있었다.

그러자 나도 진심으로 게오스 황제가 불쌍해졌다.

차라리 비앙카의 마음에 안 드는 게 더 편했을 텐데...

애석하게도 비앙카는 게오스 황제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측은지심이라는 것도 결국 애정인 거잖아.'

비앙카의 애정을 얻어낸 게오스 제국 황제라...

이거 내가 그 사람한테 너무 심한 짓을 한 건 아닐까 반성하게 된다.

우리 제국에 못된 짓을 한 건 지금의 새 황제가 아니라 폭군이었던 전 황제이지 않은가?

새 황제에게는 아무런 원한도 없는데....

그녀가 감당해야 할 미래가 너무 잔인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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