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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779화 (763/849)

Chapter 779 - #96. 진해솔 (83)

게오스 새 황제를 마음에 들어 한 비앙카는 수시로 나와 연락을 주고 받으며 자기가 알게 된 황제에 대한 정보를 내게 알려주었다.

-그거 아세요? 여기 귀족들이 은근히 지들 황제를 주인님이랑 비교하는 거.

"비교?"

-주인님이랑 여기 황제랑 어릴 적에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서 그렇대요.

"아아~"

이곳에서 내 과거는 모두 거짓말이다.

존재하지 않은 것을 대충 꾸며낸 것인데, 그 과거가 새 황제에게는 압박이 되는 수단이 된 것이다.

"근데 난 그거 거짓말인데."

-여기 사람들은 그걸 모르잖아요. 여기 황제는 어릴 적에 폭군 때문에 제대로 대우 못 받고 감시 받으면서 자랐다면서요.

"차라리 내가 상황이 더 낫지 않나? 나는 갑자기 왕이 된 게 아니잖아. 오르기 전에 교육 받았어."

과거를 거짓으로 꾸민 터라 게오스 황제는 나와 비슷한 성장 과정을 경험했다고 알려져 있다.

나는 황족으로 인정 받지 못한 채 평민으로 살았고, 게오스의 새 황제는 전대 폭군 황제의 핍박에 의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

적어도 우리 두 사람 모두 '황제'가 되고자 정식적으로 교육을 받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진짜 나는 정규 교육을 받고 자랐고, '아버지'로부터 왕이 되기 위한 교육을 짧게라도 배운 적이 있었다.

-여긴 그렇게 세세한 것까진 따지지 않는 모양이에요. 그냥 비슷하다는 핑계로 제국 황제보다 자기네 황제가 더 잘하는 모습이 보고 싶은 거죠.

"설마 거기 황제가 그 말도 안 되는 소리에 신경을 쓰는 거야?"

-네에, 엄~청 신경 써요. 여기 귀족들도 어처구니가 없는 게, 가르쳐주지도 않았으면서 새 황제가 당연히 할 줄 알 거라고 생각한다는 거에요. 못하면 주인님은 잘 하는데 너는 왜? 라는 시선으로 보는 거죠.

상상만 해도 혈압 터지고 자존심 상하는 상황이다.

애초에 귀족들이 나와 게오스의 새 황제를 비교하기를 서슴없이 한다는 점부터가 잘못 됐다.

"그걸 황제가 가만히 내버려둬?"

-어쩌겠어요. 기반이 없어도 너무 없는 상태로 황제가 됐잖아요. 귀족들끼리 똘똘 뭉쳐서 황제랑 기 싸움을 하는데, 정작 그 사람은 할 줄 아는 게 없으니까요.

"너한테는 잘 된 일 아니야?"

-헤헷, 맞아용. 덕분에 전 좋았죠. 생각한 것보다 훨씬 쉽게 황제랑 친해질 수 있었거든요. 너무 쉬워서 김이 좀 빠진달까?

비앙카가 전해주는 얘기를 들으니 게오스 제국이 개판 났다는 건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무능한 황제와 제국을 수습 할 생각 없이 본인의 안위만 생각하는 귀족들.

그들이 만들어가는 개판 난 제국에게 비앙카라는 재앙이 떨어졌다.

'스트레이트 펀치를 명치에 날린 거나 다름 없네.'

그래도 게오스 제국은 이렇게 수시로 패줘야 한다.

워낙 오랫동안 풍요를 누려왔던 제국이다 보니 기본적으로 가진 것들이 굉장히 많았던 것이다.

패도패도 계속 나오는 게 있으니까 계속 패고 싶어지는 맛이 있달까?

오죽하면 내전이 생겨서 귀족들이 왕이 되겠다며 독립을 하겠는가?

'귀족들이 그런 생각을 할 만큼 풍요롭다는 거지.'

굳이 황궁의 도움을 받을 필요 없이 자기들이 운영하고 있는 영지 만으로도 먹고 사는 게 가능하니까 독립 욕심이 생기는 거다.

영지를 운영하는 게 힘들면 감히 독립 생각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니까 그 풍요로움이 다 닳아 없어지도록 패고 또 패야 하는 거지.'

상황은 굉장히 좋다.

무능한 황제와 책임지지 않기 위해 몸을 사리는 귀족들.

그 풍요로운 게오스 제국이 내부에서 곪아가기 시작할 것이다.

되돌리고 싶어도 그럴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 ♧ ♧

"뭔가 더 필요한 건 없느냐?"

황제가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고 재차 같은 질문을 했다.

이국 상인은 그런 황제를 고요하게 바라보다가 겸손하게 눈을 내리 깔며 대답했다.

"게오스 제국에 있는 모든 걸 다 주셨는데 뭐가 더 필요하겠습니까? 필요한 거 없습니다."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그녀가 한 대답은 황제의 마음에 차지 않았다.

제국 사람들 중에 자신의 것을 탐내지 않는 사람이 없는데, 왜 하필 가장 많은 걸 안겨주고 싶은 사람이 자신의 것을 제일 탐내지 않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이미 폐하께서 많은 걸 주시지 않았습니까? 제 배에는 더 이상 실을 수 없을 만큼의 온갖 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니 제가 여기서 뭐가 더 필요하겠다고 말하겠습니까."

황제의 초조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국 상인 비앙카가 매정한 말을 해왔다.

황제는 뒤늦게 자신이 이런 말을 하는 게 한 두 번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처음부터 비앙카가 바라는 게 없다고 한 것은 아니었다.

보석이 필요하다 하였고, 동물의 털가죽이 필요하다 하였으며, 어떨 때는 곡식이, 어떨 때는 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게오스 황제는 그녀가 바라는 것을 척척 구해다가 품에 안겨주었다.

그러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이 나라를 떠나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제 짐이 너에게 줄 것이 더 이상 없으니 떠나겠다는 것이냐?"

게오스 황제의 목소리가 뾰족해졌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게오스 제국을 다스리는 황제가 되니, 그녀의 성격도 변해가고 있었다.

"제가 떠날 것 같으세요?"

"너는 상인이니 다른 곳으로 가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

이국 상인이 게오스 제국에 머무른 지난 시간 동안.

그녀는 게오스 황제에게 특별한 사람이 되었다.

황제의 고된 마음을 이해해 주는 게 고작 이국에서 온 상인이라니.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황제는 그녀가 다른 곳으로 떠나버리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세상을 자유롭게 돌아다녀서 그런 것인지 아는 것이 많은 그녀는 황제 앞에서도 당당할 줄을 알았고, 고민에 휩싸인 그녀에게 적절한 조언을 해줄 수 있었다.

'따라가고 싶어.'

그녀가 부러웠다.

마음 같아서는 그녀를 게오스 제국에 붙잡고 있는 게 아니라 함께 떠나고 싶었다.

고귀한 황제의 자리를 포기할 방법이 있다면 고민하지 않고 버렸을 것이다.

여러 나라를 여행 다니며 있었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그만큼 게오스 황제는 자유를 갈망하고 있었다.

'황제만 아니었다면, 함께 갈 수 있지 않았을까?'

그 갈망은 이국 상인의 등장으로 점점 더 강렬해져 가고 있었다.

정작 그녀가 자신을 데리고 가줄 거라는 확신도 없었으면서 말이다.

"그렇죠. 나라를 떠돌아 다니며 거래를 하고 다니는 상인이니 떠나는 게 맞죠."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할 텐데, 정말 떠날 것이냐?"

황제는 따라가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감추고 이국 상인에게 물었다.

그녀의 고민을 들어주고, 공감해주며, 상담까지 해주면서 유일한 숨 쉴 구멍이 되어 준 이국 상인 비앙카.

이대로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다.

"평생 배 위에서 살았는데 고생이랄 게 있을 리가요. 오히려 저는 땅이 어색할 지경이랍니다."

"짐이 준 것들도 먹고 살면 되지 않으냐? 이곳에서 지내면 위험한 일도 없이 부귀 영화를 누리고 살 수 있을 거다."

"글쎄요, 지금 상황을 보면 제 목이 금방이라도 떨어져 나갈 것 같은데요?"

"...귀족들이 요즘 너에 대한 험담을 하고 다닌다는 걸 알고 있었구나."

뜬금없이 나타나서 황제의 총애를 받는 이국 상인의 등장을 귀족이 반길 리가 없었다.

어디서 왔는지 출신지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귀족들은 황제의 곁에 이국 상인을 가까이 두려 하지 않았다.

그걸 게오스 황제가 막무가내로 우겨서 곁에 둔 것이었다.

그리고 게오스 황제는 그랬던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지 않았다.

'비앙카가 떠나서 다시 예전처럼 혼자 남게 되면 어쩌지?'

지금도 그녀가 떠날까 전전긍긍하고 있지 않은가?

황제는 외로운 줄도 몰랐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했던 게오스 황제의 실수로, 귀족들이 그녀를 성가셔 하기 시작했다.

비앙카가 자신의 총애를 받는다고 해서 귀족들에게 해가 되는 일을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어떻게 그걸 모르겠어요? 저만 보면 눈에서 불이 화르륵 타오르시는데."

"그 자들은 무시하거라. 짐이 너를 믿고 있는데, 주제도 모르는 자들이 괜한 수작질을 부리고 있더구나. 짐이 멀쩡히 두 눈 뜨고 있는 한 그것들은 너를 위협할 수 없다."

"폐하께서 저를 깊게 믿고 계심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계속 이곳에 남아 있는 것 자체가 그들에겐 욕심으로 보일 겁니다. 그리고 그 욕심이라는 부분에서 저 또한 부정할 수가 없지요."

내가 네 곁에 남아 있는 이유는 욕심 때문이다! 라고 솔직하게 말을 해온다.

황제는 오히려 이것이 기꺼웠다.

"다른 것들이라고 다를 줄 아느냐? 내 옆에 있는 것들 모~두 짐의 것을 탐내고 가지려고 든다. 너는 차라리 솔직하기라도 하지 않으냐? 그놈들은 탐욕을 부리면서 끝까지 아닌 척 고상한 척 군다. 그게 더 역겹다는 것도 모르고 말이다."

차라리 솔직하게 자신을 통해 욕심을 채우고 있다고 말하는 비앙카가 좋았다.

"내 곁에 있어다오. 네가 바다로 나가도 결코 구하지 못할 것들을 모두 주겠다."

"상인에 불과한 제가 폐하의 곁에 있다가 제 더러움이 묻기라도 하면 어쩌시려고 그러십니까?"

"더럽기는! 넌 더럽지 않다. 더러운 것들은 따로 있다!"

게오스 황제의 입장에선 비앙카보다 귀족들이 더 더럽게 느껴졌다.

"허면 폐하께서 노비를 지켜주실 것입니까?"

"그래, 지켜주겠다. 너를 노리는 놈들의 목을 치고, 네게 되도 않은 누명을 씌우는 놈들의 사지를 찢어버리마."

"폐하의 곁에 남기 위해서는 많은 걸 포기해야 합니다. 그 대가를 폐하께 전부 받아낼 겁니다."

"말하지 않았느냐? 바라는 것이 있으면 말하라고."

"그러다가 폐하께서 제 욕심을 감당하지 못하면 어쩌시려고 그런 말씀을 시는 겁니까?"

"이 제국의 모든 것이 짐의 것이다. 고작 너 하나 바라는 걸 못 들어줄까!"

게오스 황제는 그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비앙카는 게오스 황제의 말에 예쁘게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황제를 손아귀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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