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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780화 (764/849)

Chapter 780 - #96. 진해솔 (84)

비앙카가 본격적으로 황제에게 탐욕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땅을 주세요. 이곳에서 머무르려면 근사한 정원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래, 그게 맞지. 가장 노른자 땅을 주마."

"저와 함께 상행을 하던 사람들이 먹고 살 방법이 필요해요. 제국에 상단을 운영해도 될까요?"

"네가 이 제국에서 못 할 게 뭐가 있겠느냐."

"가장 큰 상단을 짓고 싶어요! 그러려면 대규모의 노예가 필요할 것 같아요."

"황실에 소속 되어 있는 공노비들을 빌려주마."

그녀는 황실의 물건을 자신의 것처럼 사용했다.

그 물건의 주인인 황제가 허락을 했으니 문제가 없다면서 말이다.

"폐하께서 또 밤새 그 자와 술을 마셨다고 합니다. 아버지, 그 여자를 폐하의 곁에서 떨어트려 놔주세요."

"폐하의 총애가 심상치 않습니다. 쉽게 보고 건드릴 상대가 아닙니다."

"그 자가 날 보며 비웃었어요. 무슨 말을 했는지 이후로 폐하께서 절 찾지도 않습니다!"

비앙카는 자신의 영향력이 어디까지 미치는지 확인이라도 하려는 심산인지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녔다.

황제의 후궁들도 들쑤시고 다니는 사람의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으나 비앙카의 눈에 찍힌 후궁은 황제의 외면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그 여자가 정치에도 관여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쩐지! 요즘 폐하께서 우리 귀족들을 대하는 게 삐딱하다 싶었는데...!"

"그 여자가 정치에 관여한다는 증거는 있습니까?"

"어렵게 구한 소식입니다. 폐하께서 그 자와 술자리를 하며 나랏일을 상의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일개 상인이 정치에 대해 무얼 안다고!!"

가뜩이나 못 마땅한 여자가 간신들이나 할 법한 행동을 그대로 하기 시작하니, 귀족들은 분개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점점 눈에 가시가 되어 가는 여자를 치워내야만 했다.

"쳐 내야 합니다."

"하지만 어떻게요?"

"폐하의 총애가 그 여자를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괜히 섣불리 건드렸다가 역으로 귀족들이 당할 수가 있었다.

"아닙니다. 의외로 쳐내는 건 어렵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그 여자의 행실이 천박하기 그지 없더이다. 황금이란 황금은 모두 싹쓸이 할 생각인지 재물만 주면 하지 않는 일이 없다더군요."

"출신이 천박하니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요."

귀족들은 모이기만 하면 비앙카에 대한 흉을 봤다.

그 여자는 천박하고, 악하며, 폐하를 나쁜 길로 끌고 들어가려 하는 흑마녀였다.

"그 천박한 것에 놀아나는 것들이 있으니 문제인 겁니다. 그 여자한테 뇌물을 주면 폐하께 인재라며 소개를 시켜주고 있다면서요?"

"으음...황궁에 쓰레기들이 모여들고 있군요. 어찌해야 할꼬...."

"일단 그 여자를 치웁시다. 그 여자가 그동안 저지른 비리들이 한 둘이 아닙니다."

문제는 그 비리들이 모두 황제의 묵인 아래에 이뤄진 것들이라는 점이었다.

"흑마녀 재판을 여는 건 어떠십니까?"

"흐, 흑마녀요?!"

"...그거 나쁘지 않은 생각이군요."

"폐하께서도 흑마녀라 한다면, 깜짝 놀라긴 할 겁니다."

흑마녀.

흑마법사도 제국에서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최악의 존재이지만, 흑마녀는 그 취급이 흑마법사보다 더 악랄했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흑마녀는 반드시 불에 태워 죽여야 한다는 말이 전해져 내려왔고, 제국의 황실에서도 예전부터 흑마녀는 대대로 불에 태워 죽여왔다.

"헌데 그 여자가 진짜 흑마녀인 건 아니지 않습니까?"

"제가 평소 알고 지내는 사제가 있습니다. 그 친구라면 그 여자가 흑마녀인 것을 밝혀내줄 수 있을 것입니다."

흑마녀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사제가 흑마녀라고 하는데 누가 그럴 리 없다며 반박을 하겠는가?

일개 상인이지 않은가?

황제의 비호가 아니었다면 자신들과 눈도 마주치지 못했을 천한 자였다.

계획을 짠 귀족들이 사제와 함께 황제의 앞에 나섰다.

그들이 처음 나설 때는 기세가 등등했다.

비앙카를 사제 앞에 나서기만 해도 모든 일이 끝난다.

황제라 해도 사제가 인정한 흑마녀를 계속 총애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폐하, 그자는 흑마녀가 틀림없습니다."

"폐하!! 흑마녀는 본디 사람을 홀려 피를 탐한다 하였습니다!"

"흑마녀인지 아닌지 사제 앞에 내보여 증명해야 하옵니다!"

"흑마녀? 비앙카가 흑마녀다?"

황제는 어처구니 없는 소리를 들었다는 듯 황당해 했다.

"비앙카가 흑마녀였다면 그대들이 지금 멀쩡히 짐의 앞에 앉아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이미 예전에 싹 다 뒤졌겠지요."

"폐, 폐하!!"

황제는 비앙카를 적대시 하는 귀족들에게 신랄한 욕설을 퍼부었다.

"누명을 씌워도 가장 말도 안 될 누명을 씌우니 하는 소리입니다!"

"그 여인이 흑마녀가 아니라면 신실한 사제의 앞에 나서지 않을 이유가 없사옵니다!"

"저 사제의 주둥이가 어떤 거짓을 담을 지 알고!! 짐이 그것도 모를 정도로 바보로 보입니까? 뭣들 하고 있는 것이냐!! 짐의 귀를 더럽히는 저 자를 끌고 가라!!"

"폐하!!"

"짐의 명령을 무시하는 것이냐!! 어서 저 자를 끌고 가래도!!"

게오스 황제의 막무가내 행동에 귀족들은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전전 긍긍 했다.

흑마녀라고 하면 겁이 나서라도 자신들의 말을 들을 줄 알았는데, 황제가 역으로 화를 내고 있었다.

무려 직접 사제까지 불러서 함께 왔는데도 말이다!

'아아...게오스에 먹구름이 끼었구나. 도대체 어찌 되려고...'

폭군 황제의 잔재가 다 사라지지 않았기에 다음 대 황제는 최대한 온순한 사람으로 옹립했다.

온순한 성정의 황족을 데려와 황제로 만들었으니 이제 남은 건 폭군으로 인해 피해 받은 나라를 회복 시키고, 내전으로 독립을 한 국가에 보복을 가하는 것 뿐이라고 생각했다.

헌데 황제라는 자리에 뭐라도 있는 것일까?

'아니면 게오스 제국이 저주라도 받은 것인가.'

온순했던 황제의 성정이 점점 뒤틀렸고, 누가 봐도 문제가 있어 보이는 여인에게 집착을 하기 시작했다.

그 뿐만 아니라 그 여자를 건드리기만 하면 귀족들을 죽일 듯이 노려본다.

이건 결코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너무 오래 살았구나. 황궁에서 더 버텨봤자 못 볼 꼴이나 보겠지.'

게오스 제국의 영광은 고작 폭군이 나라를 다스린 몇 년 정도로 다 까먹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헌데 요즘에는 게오스 제국의 끝이 얼마 남지 않은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은퇴를...하는 게 옳을 지도 모른다.'

게오스 제국의 미래가 어두워도 너무 어둡다.

어쩌면 귀족들이 누명을 씌우려고 한 여자가 진짜 흑마녀일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황제의 저런 모습이 설명 되지 않지 않은가?

귀족은 어디 하나 의지할 곳 없다가 생긴 귀한 인연이 황제에게 얼마나 소중한 건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황제가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듯, 귀족도 황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그저 황제가 하는 일을 못 마땅하게 바라보며 혀만 찰 뿐이었다.

"폐하의 말씀이 옳습니다. 너무 막무가내로 증거도 내놓지 않고 우기고 계시지 않습니까?"

"지금 말 다하셨소?! 우리는 지금 폐하를 위해 충언을 드리고 있는 것이외다!!"

"언제부터 충언이 사람을 흑마녀로 매도하는 것이 되었는지 모르겠군요."

쯧쯧쯧.

'거기다가 뭐가 중요한지도 모르고 쓰레기들처럼 그 여자에게 선을 대는 귀족놈들도 문제구나.'

애석하게도 귀족이라고 모두가 비앙카를 적대시 하는 건 아니었다.

비앙카를 이용해서 황제의 눈에 띌 생각을 하는 귀족들도 있었다.

실제로 그렇게 기회를 받아 황제의 총애를 받으며 꽤 요직을 쟁취하는데 성공한 귀족이 있었다.

'저 여자는 너무 위험하다. 게오스 제국에 결코 도움이 될 여자가 아니야.'

머리가 좀 돌아가는 귀족의 눈에 비앙카는 너무도 위험하게 보였다.

애초에 출신도 불분명 하지 않은가?

믿을 수 있는 만한 부분이 조금도 없었다.

'차라리 저 여인이 남자라면 다른 방법이 더 있었을 터인데...'

황제보다 아름다운 여인을 붙여서 이간질을 시키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황제도 여인이며 그 자도 같은 성별의 여성이었다.

'설마 황제께서 동성애를 하시는 건....'

아니, 그건 아닐 거다.

귀족은 그렇게까지 황제가 타락하진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저 요사스러운 눈빛에서 황제에 대한 성적인 유혹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도대체 저 여자의 무엇이 그리도 마음에 드셨던 겁니까? 저 여자의 마음 하나 사는 것이 제국보다 중요하다는 말입니까!!!'

살을 섞는 황후나 후궁들에게도 마음 한 자락 주지 않던 황제가 왜 비앙카에게는 선뜻 마음을 열었을까?

귀족은 피를 토하는 느낌으로 황제에게 마지막 간언을 하기로 했다.

결국 황제의 명령으로 기사들에게 끌려 나가고 있는 귀족의 모습을 보며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폐하! 흑마녀 아니, 비앙카라는 이국의 상인이 제국에 머무르면서 하고 있는 짓들을 보십시오. 저 여자는 흑마녀로 의심을 살 만큼 끔찍한 짓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폐하의 권력을 빌려 제국민들을 고통에 빠지게 하고 있습니다!!!"

제국을 살려야 할 황제가 제국을 좀 먹는데 앞 장 서고 있는 이 끔찍한 상황을 끝내야만 한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간언해본 귀족은 절망했다.

비앙카에 대한 황제의 총애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음을 깨달은 것이다.

못 마땅함을 가득 담은 황제가 귀족들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외쳤다.

"그대들의 말을 들으면 그대들은 대단히 깨끗한 사람인 줄 알겠습니다. 비앙카가 제국민들을 고통에 빠지게 한다? 그대들은 뭐 제국민들을 위해 대단한 희생이라도 하고 있습니까? 그대들이 언제부터 그리 제국민들을 소중히 했는지 모르겠군요."

"!!!"

제국민들을 고통에 빠지게 하는 건 예로부터 귀족들이 가장 많이 하던 짓이었다.

제국민들의 것을 빼앗아서 자기 배를 채우고, 곳간을 채워 넣었으니 말이다.

비앙카가 한 짓보단 귀족들이 지금까지 해온 짓이 더 고통스럽고 추악했을 것이다.

"귀족들이 가장 잘 하는 짓인데, 자기들이 하는 것은 눈 감아줘도 비앙카가 하는 것은 절대 못 본다는 심보지 않습니까??"

"폐하!!"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까?? 여기에 떳떳하게 난 안 그랬다 말할 수 있는 귀족이 있느냔 말입니다!!"

귀족은 질끈 두 눈을 감았다.

당당하게 자신이라고 손을 들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황제가 이렇게 나오는 이상, 더 이상 귀족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폐하의 눈과 귀가 전부 막혔구나. 이제와 무슨 말을 한들 폐하의 귀에는 들리지 않을 것이다.'

괜히 미움만 살 뿐.

아무 소용 없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니 허탈함이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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