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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781화 (765/849)

Chapter 781 - #96. 진해솔 (85)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족은 다시 한 번 힘을 냈다.

이대로 포기하면 제국의 앞 날이 어떻게 될지 뻔하지 않은가?

"폐하...!"

"시끄럽고 지겹습니다! 언제까지 같은 말을 반복하실 생각입니까? 언제까지요!!"

그 여자가 제국민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고 하는데도 황제는 관심조차 주지 않고 있었다.

오로지 자신의 사람을 지키고자 하는 생각에 가득 찬 것이다.

"폐하께서 중심을 잡으셔야만 하옵니다. 게오스 제국의 귀족이었던 자가 감히 독립을 하여 국가를 만들었고, 치욕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전쟁에서 패배하여 배상을 해줘야만 했습니다. 제국으로 떠나보낸 공녀들의 울음소리를 벌써 잊으신 것이옵니까!!"

"비앙카의 이야기를 하다가 뜬금없는 소리를 하는 이유는 뭡니까? 말로는 설득이 되지 않으니 짐의 능력을 깎아내리려는 것입니까? 그렇게까지 해서 라도 짐의 우위에 서야겠어요?"

제국이 위험한 상태이니 정신을 차리라는 의미였는데, 황제는 제국이 이런 꼴이 된 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냐고 화를 낸다.

'이렇게까지 말이 안 통해서야!'

귀족은 답답함에 가슴을 쳤다.

황제랑 말이 통하질 않는다.

'제국의 황제랑 성장 환경이 비슷한데, 왜 게오스 황제는 무능한 모습만 보이는 건지...!'

혈통으로는 어디서 빠지지 않는 게 게오스의 새 황제다.

그렇다면 모후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제국의 황제보다 능력이 더 좋아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 제국의 황제는 잘 하고 있는 정치를, 왜 게오스의 새 황제는 적응하지 못하고 자꾸 삐뚤어지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황제를 잘못 고른 것인가...'

폭군 황제 때문에 인품을 너무 따졌다.

적어도 황제의 자리를 감당 할 수 있는 황족을 앉혔어야 했다.

황제에 대한 실망감이 가득해진 귀족은 의지가 완전히 꺾여버렸다.

귀족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황제는 오히려 귀족이 물러나자 이때다 싶어서 말했다.

"이제 비앙카에 대한 얘기는 듣지 않겠습니다. 짐의 곁에서 진귀한 보물이나 모으는 것이 취미인 아이입니다. 괜히 상관없는 아이를 정치에 끌어들이지 마세요."

잔뜩 기분이 상한 황제의 심기를 여기서 더 건드릴 수는 없었는지 귀족들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물러났다.

황제는 그제야 한숨을 쉬며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 잡았다.

피로를 대놓고 호소한다는 것은 이만 자리를 뜨고 싶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귀족들은 이대로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하고 돌아갈 순 없다고 생각했다.

한 귀족이 용기를 내어 발언했다.

"폐하, 요즘 황족들의 패악이 날로 기승을 부리고 있사옵니다."

"하아~ 이번엔 황족을 걸고 넘어지는 것입니까?"

"폐하, 그리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실 일이 아닙니다. 폐하께서 황족을 가엽게 생각하신다는 것을 알기에 도를 넘는 패악을 부리고 있사옵니다!"

"...황족이 비앙카를 건드리는 것보다 쉬워보이십니까? 귀족들은 황족을 도대체 뭐로 생각하고 있는 겁니까?! 심심하면 가져다가 패는 심심풀이?!"

"폐, 폐하! 어찌 그런 심한 말씀을..."

황제의 지지를 받고 부쩍 권력의 중심에 들어오고 있는 황족의 문제는 굉장히 심각했다.

폐하 이외에는 그들을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없는데, 정작 황제는 무슨 짓을 저질러도 황족들의 편에만 서니 무서울 것이 없는 것이다.

"부디 황족들이 저지르고 있는 문제에 제대로 된 처벌을 받게 해주시옵소서!"

"황족들이 요즘 귀족들이랑 어울린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헌데 정말 황족들이 잘못을 저지른 게 맞습니까? 짐이 보기에 귀족들이 황족을 방패로 세우고 본인들의 이익을 탐하는 것은 아니구요?"

황제는 황족들이 귀족들에게 이용 되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무런 교육도 받지 못하고 자란 황족들이 아닌가?

귀족들이라면 얼마든지 순진한 황족들을 꾀어내서 이용했을 것이다.

"폐하! 명명백백하게 황족이 지은 죄입니다! 어째서 그 죄마저 귀족들의 책임이라 하십니까?"

"순진한 황족들이 누굴 보고 패악을 부리겠습니까? 생전 몸을 사리는 방법밖에 배우지 못한 사람들인데요. 주변에 달라 붙어 있는 귀족들을 보고 배운 것 아니겠습니까!!"

보고 가르쳐준 행동들이 그런 것밖에 없으니 순진한 황족들이보고 배운 거다.

"그대들이 패악을 부리는 건 괜찮고 황족은 하면 안 되는 겁니까?"

"폐하! 귀족들이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짐이 사촌들에게 들은 바와는 다르군요."

가만히 귀족들에게 당해주기만 할 황제가 아니었다.

'비앙카가 조심하라고 했는데, 정말 그대로 상황이 벌어지는구나.'

귀족들이 비앙카 자신을 노릴 것임은 황제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귀족들이 황족들까지 걸고 넘어질 줄은 몰랐다.

그런데 비앙카가 대뜸 황제에게 황족들은 잘 관리 하고 있는지를 물어보더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겼으면 아무 말도 못하고 당했겠지. 또 황제가 멍청하게 군다면서 비웃었을 거야.'

비앙카는 게오스 제국에서 상단을 만드느라 자주 황궁 바깥을 들락거렸다.

황제도 그녀를 하루 종일 데리고 다니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비앙카가 바깥에서 황족과 귀족이 우르르 몰려 다니는 걸 우연히 본 모양이었다.

'귀족들이 황족들을 방패 삼아서 어찌나 거들먹거리는지. 누가 황족인지 구분이 안 되더군요. 그런데 황족분들은 이용 당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좋다고 순진하게 웃으시더라고요.'

'뭐, 뭐라? 귀족들이 황족을 방패 삼아?!'

그것만으로도 환장 할 정도로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데.

'그뿐이겠어요? 황족들이 귀족들이 하는 꼴을 보고 배우는 것 같더라고요. 아무리 순진하고 좋은 사람도 어울리고 노는 사람의 질이 나쁘면 보고 배우는 게 생길 수밖에 없는 법이랍니다.'

'너도 들어서 알겠지만, 우리 황족들은 폭군 때문에 핍박을 받으면서 자랐다. 바깥에 대해 아는 게 없어.'

'예, 폐하. 귀족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으니 얼마나 이용하기 좋앟겠습니까? 황족은 폐하께 날카로운 검이 될 수도, 든든한 방패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분들이 편하게 살게 해주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다르게 보면 방치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비앙카의 말을 듣고 정말 깜짝 놀랐다.

황족들이 몇 명의 귀족들과 어울려 다니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무리의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는 아는 바가 없었다.

'귀족들이 황족들의 귀에 어떤 말을 속닥거릴지 누가 알겠어요.'

'!!!!'

귀족들을 가장 많이 상대해본 황제는 잘 알았다.

황족에게 귀족의 새치 혀는 치명적일 터다.

'사람은 쉽게 변합니다. 폐하, 황족들이 귀족에게 홀려 그들의 편이 되도록 하지 마십시오.'

귀족들의 간언을 왜 그녀가 듣지 않는 줄 아는가?

'비앙카가 해주는 말은 하나 같이 짐에게 도움이 되는 말들인데, 정작 제국의 신하라는 작자들이 하는 말은 도움이 하나도 되질 않지 않은가!'

지금도 봐라.

황제를 보는 눈빛에서 불손함이 가득하다.

한심하다는 눈빛.

'또 내가 핏줄이라는 이유로 편을 들고 있는 거라 생각하겠지.'

귀족이 황족들의 평소 행실을 지적하려면 적어도 본인들의 모습을 한 번은 돌아보고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깨끗한 사람이 뭐라 하면 모르겠는데, 황족보다 더한 패악질을 부리면서 황족들이 조금 잘못했다고 거품을 무는 건 꼴불견이었다.

"사촌들이 요즘 참 즐겁다고 하더이다. 귀족 자재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보고 배운 바가 많다고요. 그런 황족들이 패악을 부린다면 누구에게 배운 것이겠습니까? 이래도 아니라고 발뺌을 하실 생각이십니까?!"

"질 나쁜 귀족들과 어울리는 것은 알겠으나 그렇다고 그게 귀족 전체의 잘못인 것은 아닌...!"

"허면 그런 귀족들에게 이용 당했을 뿐인 황족의 잘못입니까!!"

"......"

"황족의 잘못을 따지려거든,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을 방패 삼아 이용하고 다니는 귀족들부터 전부 죄를 물어야 할 것입니다!!!"

황족을 건드리면 귀족도 결코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경고였다.

황제의 서슬 퍼런 눈초리에 귀족은 더 이상 황제를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황제가 귀족을 걸고 넘어지자 결국 더 이상 황족들의 행실을 핑계로 황제를 압박할 수 없었던 귀족들이 물러갔다.

"비앙카는 지금 뭘 하고 있느냐?"

"황궁에 있는 것으로 아옵니다."

"당장 연락을 넣거라. 비앙카와 술 한 잔 해야겠다. 으하하! 오늘 짐이 기분이 좋구나."

드디어 귀족들에게 시원하게 한 방을 먹여줬다.

"그나저나 비앙카에게 흑마녀 누명을 씌우려 들다니...큰일 날 뻔했군."

그 수작이 통할 거라고 생각한 것도 정말 웃겼다.

자신이 그런 형편없는 거짓말에 속아서 비앙카를 정말 신전 사제에게 맡길 거라고 생각 했을까?

비앙카에게 어서 오늘의 일을 말해주고 싶었다.

자신이 그녀를 어떻게 보호해주었는지 말이다!

♧ ♧ ♧

-뜬금없이 흑마녀라고 해서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 들었잖아요.

"대단하네. 어떻게 사람을 그렇게 홀딱 빠지게 만들지?"

이쪽 사람들이 흑마법사라는 존재에 얼마나 기겁을 하는지 잘 알고 있다.

나도 예전에 흑마법사가 보낸 첩자일 수 있다면서 증명을 하라고 난리를 치지 않았는가?

선대 왕도 흑마법사와 연관이 되어 있는지 확인하는 절차는 별 말 없이 받아들였지 않은가?

헌데 게오스 황제는 그런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고 한다.

그건 정말 대단한 게 맞았다.

-여기 귀족들이 좀 멍청해요. 황제도 그렇고. 신분이라는 무적 방패가 있으니까요. 오히려 재벌들끼리 싸우는 게 훨씬 스릴 있을 정도에요.

"그래? 재밌을 것 같다고 간 건데, 생각한 것만큼 재미 없어서 어떻게 하냐. 그냥 돌아올래?"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오라고요? 됐어요. 그냥 투정 부린 건데.

"그럼 거기 더 있을 거야?"

-네. 하고 싶은 거 다 해주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제가 어딜 가겠어요. 어디까지 들어줄지 그 끝을 보고 싶어졌어요.

과연 게오스 황제의 마지노선이 어디까지일지.

사실 나도 그 부분은 궁금하긴 했다.

내가 아는 비앙카라면 정말 한계의 한계까지 사람을 몰아가려고 할 것이다.

'정말 나라의 뿌리를 뽑아서 비앙카의 손에 쥐어 주려나?'

지켜보는 재미가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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