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782화 (766/849)

Chapter 782 - #96. 진해솔 (86)

황궁이 존재하는 수도 지역에서도 노른자 땅이라는 곳이 존재한다.

그곳은 보통 대단한 위세를 자랑하는 귀족 가문이 대대로 땅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그동안 폐하의 은혜로 이 땅을 사용하고 있었지만, 이제 폐하의 은혜가 끝난 것 뿐이올시다. 감히 황제 폐하께 법으로 항의하실 생각이오?"

"그, 그건 아니지만...아무리 그래도 너무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이곳에 쌓아 올린 게 있는데!"

게오스 제국의 황제 폐하가 명령을 내렸다.

귀족들이 누리고 있던 땅을 강제로 빼앗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제국이 모두 황제의 땅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매달 사용료를 내고 있긴 하지만, 노른자 땅을 이용하며 얻는 이익에 비하면 별 거 아닌 수준이었다.

그러니 황제가 가져가겠다고 한다면 항의를 하지 못하고 순순히 내놓아야 하는 것이다.

물론 황제가 그럴 리는 없었다.

정계에서 가문의 사람들이 여전히 권력을 쥐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럴 수는...이럴 수는 없어...!!!"

귀족들의 근거 없는 믿음이 깨졌다.

'우리 오라버니가 지금의 폐하를 만드시는데 얼마나 많은 공을 세웠는데!!'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말이 입 안에 맴돌았다.

당장 가문으로 달려가 오늘 자신이 당했던 부당한 일을 알려야만 했다.

"도대체 누굽니까?"

"...누구라니요?"

"이 자리에서 내가 쫓겨난다는 건 누군가가 이 자리를 대신 차지한다는 뜻이죠. 누굽니까? 우리 가문을 밀어낸 곳이!"

황제의 명령을 이행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현재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건 아니었다.

이건 좀 아닌데...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차마 나서서 황제의 행동을 막을 용기가 없어 질끈 눈을 감은 것 뿐이었다.

귀족의 원한 가득한 질문에 고민하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짧지만, 이 상황이 누구로 인해 벌어진 것인지는 충분히 알 수밖에 없는 대답이었다.

"...지금 황제 폐하의 총애가 어디를 향해 있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설마?!"

"일이 이렇게 되어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폐하께서 따로 보상을 해주겠다고 하셨으니 참고 기다려보시지요."

"말도 안 됩니다. 그럴 수는 없어요!!!"

이곳에서 매달 벌어 들이는 돈의 액수만 생각하면 절대 다른 것으로는 보상이 될 수 없었다.

"거기다 저 장비들은 도대체 뭡니까?"

"건물들을 싹 다 밀고 새로운 건물을 지을 거랍니다."

"미친...! 이 건물들이 얼마나 비싸게 주고 건축한 건데!!"

"주인이 될 분께서 이곳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하시는데 어쩌겠습니까? 이곳에서 절 붙잡고 말씀하셔 봤자 아무 소용 없습니다. 어서 가문으로 달려가는 게 훨씬 나은 선택이실 겁니다."

빠드득 이를 간 귀족이 그녀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무, 물건을 빼낼 시간은 주시겠지요?"

"그동안 수차례 경고와 함께 시간을 드렸습니다. 철거하는 날짜까지 통보했음에도 물건을 빼지 않으셨으니 더 이상의 양보는 없습니다."

"바로!! 바로 물건을 빼겠습니다. 정말입니다! 딱 이틀의 시간만 주십시오!"

"하아~ 정말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예예!!"

귀족이 그제야 정신을 차렸는지 허겁지겁 사람들을 부려서 물건을 빼기 시작했다.

물건의 값을 생각하면 절대 밀어버릴 수 없다는 생각에 배짱을 부린 것인데, 황제 폐하의 총애를 받는 이가 이곳을 차지할 거란 말에 그냥 버티다간 재산이 다 날아가겠구나! 하는 위기감이 든 것이다.

'진작 이랬으면 피차 얼굴 붉힐 일이 없었을 것을...'

그녀는 속으로 귀족에게 혀를 차면서도 황제 폐하를 등에 업고 슬슬 귀족들의 것을 빼앗아 가기 시작한 악녀 비앙카의 행동에 걱정이 밀려왔다.

황제 폐하의 금은보화를 탐내던 여자가 이젠 귀족들의 곳간까지 탐을 내고 있었다.

'도대체 누가 그 여자를 말릴 수 있을까.'

흑마녀라는 고발에도 불구하고 황제는 비앙카를 감쌌다.

그건 비앙카에게 어떤 누명을 씌워도 황제가 그녀를 비호할 것이라는 의미가 된다.

'그 여자가 나한테까지 피해를 주진 않아야 할 텐데...'

나라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귀족은 없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비앙카가 자신에게 피해를 주지만 않는다면 두 눈을 감고, 모르는 척 외면하는 편이었다.

그들의 마음 속에는 '나만 아니면 돼.' 라는 것과 '누군가가 해주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 ♧ ♧

비앙카가 게오스 제국에서 치고 있는 깽판의 사이즈가 어마무시했다.

"수도에서 가장 유동 인구가 많은 곳에 있는 건물들을 허물고 백화점을 세운다라..."

백화점의 위력을 나는 충분히 잘 알고 있다.

"주변 상권이 전부 죽어버리겠네."

-그걸 바란 거에요. 적어도 제가 상인의 신분을 쓰고 있으니 누구도 쉽게 건드리지 못할 대상인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어요?

신분제 사회에서 상인은 좋은 취급을 받지 못한다.

그것이 비앙카 입장에서는 좀 기분 상하는 일이었던 모양이다.

-상인이 나라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제대로 보여줄 참이에요.

"귀족들이랑 사이가 너무 안 좋아질 것 같은데. 그 사람들, 사람 죽이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잖아."

-암살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에요. 근데 황제폐하께서 그걸 미리 아시고 제게 기사를 잔뜩 붙여주셨어요. 거기다가 저는 주인님께서 주신 아이템들로 보호 받고 있기까지 하잖아요?

"뭐야! 그런 일이 있었어?"

벌써 암살이 있었다고??

내가 생각한 것보다 비앙카의 신변이 굉장히 위험한 상태인 것 같았다.

그래 놓고 정작 나와 통화를 할 때는 그렇게 태연했다니.

"위험하면 말하라고 했잖아. 왜 말 하지 않은 거야?"

-이게 어떻게 위험이에요? 아무런 피해도 안 입었고, 누구보다 안전하게 보호 받고 있는데요.

"그래도 누군가가 네 목숨을 노린 거잖아. 범인을 찾아서 처벌을 받았어?"

-암살자들이 배후를 말 할 만큼 허술하진 않던데요?

"거봐!! 그럼 널 노리고 있는 사람이 아직도 근처에 존재한다는 뜻이잖아. 그게 위험이지 뭐가 위험이야!"

제대로 혼쭐을 내줄 생각이었다.

비앙카는 항상 이게 문제였다.

내가 명령을 내려도 자기 기준으로 바꿔 해석해서 명령을 시행한다.

-치잇, 정말 별 거 아닌데. 그리고 여기서 절 죽이고 싶어 하는 사람을 줄 세우면 수도를 한 바퀴 빙~ 돌릴 수도 있어요.

"그게 지금 자랑이냐? 자랑이야?!"

-헤헷, 나름 자랑거리인데...

다른 사람의 증오를 받는 것이 즐겁다는 비앙카의 삐뚤어진 취향은 정말 사람을 난감하게 만들었다.

"너 내가 걱정해주는 것도 싫은 건 아니지?"

-주인님한테 사랑 받고 있는 건데, 그게 왜 싫겠어요. 혹시 사람들이 절 싫어하는 거 보고 짜릿해 해서 오해하신 거에요?

"너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서."

취향이 워낙 기괴하지 않은가?

-주인님이 제 취향 걱정도 해주시고.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네요. 아무튼 저는 걱정하실 필요 없이 잘 지내고 있어요. 진귀한 보석에, 맛있는 음식으로 가득하고, 제 건강이 걱정 된다면서 보약도 챙겨주고 계세요.

"그렇게 큰 건물을 짓고 나면 뭐할 거야?"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은 엄청 많죠. 그 많은 것들 중에 뭘 선택할지 매일매일 고민하고 있어요.

땅이 많아서 할 수 있는 일도 많다며 비앙카는 의욕을 보였다.

-음...아니면 주인님이 골라주실래요?

"내가..?"

솔직히 비앙카의 취향에 맞는 선택을 할 자신이 없었다.

-주인님도 궁금하시잖아요. 게오스 황제가 절 위해 어디까지 내어줄지 말이에요. 살을 열심히 뜯어 먹고 있긴 한데, 게오스 제국이 진짜 대단한 나라이긴 한 것 같아요. 먹어도먹어도 황제는 여전히 통통하게 살이 올라 있더라고요.

뜯어 먹을 게 많아서 좋긴 하지만, 살짝 오기가 생기기도 하다고 한다.

어디까지 해줄 수 있을지.

그 끝을 보고 싶다고나 할까.

비앙카의 뒤틀린 심보가 제대로 발동 됐음을 직감한 나는 선택지를 알려 달라고 했다.

'템포가 너무 빨라. 벌써 귀족들을 건드리고 있잖아. 내가 조절을 좀 해줘야지.'

그런데 비앙카가 알려 준 내용들이 심상치가 않다.

"너...진짜 제국을 말아 먹으려는 거야?"

-그걸 목표로 온 거잖아요. 새삼 왜 놀라세요?

"그럼 이걸 진짜 하겠다고?"

-네! 이 중에 뭘 하면 좋을까요? 아니다, 이거 그냥 전부 다 해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긴 한데...

비앙카가 하려는 것을 보면 스케일이 어마어마했다.

"데마파크 놀이 동산에 최고급 아파트 단지까지는 알겠는데 성벽 건설에 도로 정비는 뭐야?"

-제가 세운 건물들이 전쟁 때문에 파괴 되면 안 되잖아요. 도로 정비하고, 안전하게 보호 받을 수 있도록 성벽을 건설해 달라고 할 생각이에요. 수도 성벽이 되게 낡았더라고요.

"거기 지금 내전 중이라서 그런 거 하기 힘들 텐데."

-제가 바라는데 해주지 않을까요? 못해준다고 하면 어쩔 수 없는 거고요.

"......"

황제에게 저런 태도를 보인다면 자존심이 많이 상할 것 같았다.

'잘 보이고 싶은 여자 앞에서 허세 부리는 남자가 될지도...'

문제는 성벽을 건설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거다.

만리장성을 만들 때 갈려 나갔던 사람이 어마어마하다는 소리를 들어봤을 것이다.

이 세계에도 노예가 존재하기에 이 계획을 시작하면 엄청난 인원이 달려 들어서 공사를 하기 시작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죽어 나가는 사람이 생길 거다.

"인공 호수는 또 뭐야?"

-관광 단지에 호수가 빠질 수 없죠. 원래 돈은 관광으로 버는 거 아니겠어요?

"스케일이 커도 너무 크다."

-못한다고 하면 깔끔하게 포기할 거에요.

"...그게 더 화날 것 같은데."

-후후, 제가 그걸 모를 거라고 생각하세요?

사실 비앙카가 바라는 것들을 완성해 낼 수만 있다면, 나라를 위해서 좋은 일이 되긴 할 것이다.

관광 오는 사람들로 나라에 새로운 돈이 유입 될 것이고, 최고급 아파트 단지로 많은 귀족들이 쌈지 돈을 열겠지.

'근데 이거 완성 할 수 있겠냐고.'

완성이 안 되면 흉물스러운 무언가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이걸 한 번에 다 일을 벌려버린다?

"힘들 것 같은데..."

-해보고 안 되면 알겠다고 할 거에요. 되는지 물어보는 건 어렵지 않잖아요.

악질이다. 악질이야...

고개가 절로 절레절레 저어진다.

'황제가 정상이면 알아서 조절하겠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