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783 - #96. 진해솔 (87)
그 외에도 비앙카는 아직 구체화 되지 않은 계획들이 아주 많아 보였다.
특히 마지막에 판타지형 카지노를 세운다고 했을 땐 절로 박수가 짝짝 나오더라.
제국의 뿌리 기둥을 뽑으려고 드는 게 마냥 헛된 소리는 아닌 걸로 보였다.
'정말 비앙카 얘가 나라 뿌리 뽑아서 가져 올 지도 모르겠는데?'
시간만 넉넉하게 주어진다면 그럴 수 있는 사람이었다.
"...황제는 정말 네가 하고 싶어 하는 건 다 들어주나 보네."
-여태까진 소소한 부탁만 했었는데, 이제부턴 스케일이 큰 것들이라 들어줄지는 잘 모르겠어요.
"말은 그렇게 해도 안 들어 줄 거라고 생각 안 하는 것 같은데?"
-헤헤, 이 정도도 못 들어줄 거면서 절 잡을 생각을 하면 안 되죠. 그런 안일한 마음으로 행동한 거면 많이 실망스러울 것 같거든요.
황제는 비앙카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자신의 살 이곳저곳을 뜯어내어 그녀에게 바칠 것이다.
'끔찍하네.'
게오스 황제의 앞날에 애도를 보내면서 한 가지 걱정 되는 부분을 지적해줬다.
"그러다가 전대 폭군 황제처럼 지금 황제도 귀족들에 의해서 쫓겨날 수도 있어. 귀족들을 너무 심하게 몰아가진 마."
비앙카의 몸도 조심해야 하지만, 귀족들을 너무 입박하면 황제를 또 다시 바꾸려고 들 수도 있었다.
-잘 조절해야죠. 제가 공사를 시작하면 평민들을 돈 주고 부릴 생각이거든요.
"나쁘지 않은 방법이기는 한데, 돈은 어떻게 감당하려고? 한 두 푼이 드는 게 아닐 거잖아."
평민들을 고용해서 건축을 한다.
적어도 그녀에 의해 고용 된 평민들은 비앙카와 황제를 지지해줄 것이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잘못 되면 본인에게 피해가 오지 않는가.
사람들은 자신에게 올 피해를 질색하기 마련이었다.
-부족하면 황제가 주겠죠. 설마 지불을 못해서 망하게 두겠어요? 황제도 투자한 게 있으니 멈추지 못할 거에요.
"......"
기가 막힌 생각이었다.
황제를 ATM기계 취급하고 있다는 악질적이기도 하다.
'좀 어처구니 없긴 한데, 세금은 계속 들어오니까 ATM 기계가 맞긴 해.'
다시 한 번 게오스 황제에게 미안함과 동정심을 느꼈다.
그리고 이런 투자사기(?)를 황제가 어떻게 감당할지 궁금해졌다.
"귀족한테도 투자를 받으면 좋을 것 같은데? 이권이 얽혀서 너를 어쩔 수 없이 지지해줄 귀족들이 생길 테니까."
-황제가 귀족들을 싫어해서 끼려고 하면 좋아하지 않을 거에요.
"네가 조언을 해줘야지. 귀족들을 적대시만 하면 안 된다고 말이야. 황제에게 귀족은 부리는 도구이지, 싸워서 이겨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는 걸 알 필요가 있어 보이네."
-아~ 그거 되게 좋은 말씀이시네요. 회사 임원들이랑 있다 보면 가끔 저것들을 싹 다 모가지 쳐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긴 하거든요. 그런데 진짜 그렇게 쳐버리면 회사가 돌아가질 않으니까 마음대로 행동할 수가 없는 거죠.
비앙카는 내 말에 격한 공감을 보이면서 신랄하게 자기 회사 임원들을 까댔다.
"아무튼 그렇게 말해주면 솔깃해 할 거다. 조금씩 정치에 관련 된 조언을 해주고 있다면서."
-네. 근데 그 말을 해주면 황제한테 너무 좋은 일 아닌가요? 이러다가 성군 되면 저희 계획이랑 달라지잖아요.
"황제가 버텨줘야 두고두고 옆에서 골수까지 뽑아 먹을 수 있는 거잔아. 더군다나 대규모 투자를 받아서 하는 공사들 말이야. 아주 위태로워 보이는 게 써먹기 좋을 것 같아."
고생고생해서 공사가 반 정도 지어졌을 무렵, 우리가 게오스 제국을 친다면 어떻게 될까?
전쟁으로 인해 자재 값이 뛰어오를 건 당연한 일.
이미 되돌릴 수 없을 만큼 돈을 쏟아부었기에 어떻게 해서든 완성을 시키긴 해야 할 것이다.
'빚을 지겠지. 그리고 그 빚으로 완공을 해놔도 전쟁이 완전히 끝나지 않는 이상 관광객들을 유치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 될 테고.'
전쟁하는 나라를 쫓아다니며 돈을 벌고 다니는 전쟁 용병 같은 사람도 있다지만, 보통 관광을 하러 다니는 사람은 귀족들이었다.
귀족은 신변의 위험이 될 수 있는 전쟁 지역에 굳이 돈 쓰러 방문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공사가 진행 되는 동안 게오스 제국이 다른 곳에 눈을 돌리지 못할 거라는 점도 마음에 들어.'
실패 했을 때의 리스크가 굉장히 크다는 점도 흐뭇하다.
자칫 잘못했다간 다 같이 끌어 안고 죽자는 식이 될 수 있지 않은가?
비앙카의 보고를 듣고, 조언도 해주는 시간이 흐르고.
다음으로 그녀와 얘기를 나눠봐야 할 부분이 있었다.
"그건 그렇고, 멜리사한테 맡겨 둔 일들은 어떻게 할 거야? 걔한테 계속 가문을 맡길 셈이야? 너랑 연락이 안 된다면서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어."
-일 잘 하고 있다면서요.
"얼굴은 못 보여줘도 목소리는 들려줘야 하지 않을까?
-흐응, 고작 몇 개월밖에 안 지났는데 어린애처럼 언니를 찾고...역시 아직도 어리다니까요.
비앙카는 멜리사가 자신을 찾는 걸 서슴없이 어리광으로 매도하고 내게 부탁을 했다.
나와 사용하고 있는 핸드폰을 멜리사에게 건네 달라고 말이다.
"아~ 그런 식이면 훨씬 편하긴 하겠구나."
-제가 여길 떠날 수가 없어요. 폐하께서 많이 불안해 하셔서요. 괜히 사이 좋았는데 멜리사 어리광 받아주겠다고 움직였다가 틈을 만들 필요는 없지 않겠어요? 제가 자리를 뜨면 얼씨구나 하면서 깨춤을 출 인간들이 한 둘이 아니기도 하고요.
황제를 꽉 잡고 있다고 호언장담하긴 했는데, 비앙카도 나름 황제의 눈에 들기 위해 무언가를 노력하고 있던 모양이다.
자리를 비울 수 없다는 걸 보면 말이다.
'황제가 아무리 쉽게 넘어왔다고 해도 그 총애가 계속 된다고 장담할 수는 없어. 더군다나 비앙카 성격상 계속 비앙카 편을 들어 줄 사람은 아니라는 거지.'
섣불리 방심 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보였기에 그녀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그럼 멜리사랑 통화하는 건 그렇게 처리하기로 하고...항상 몸 잘 챙겨.
오늘 들은 내용만 봐도 한동안 바깥에 함부로 혼자서 돌아다니면 안 될 게 분명했다.
비앙카도 자신의 상황을 모르지 않을 텐데, 해맑게 네엥~ 하고 대답을 하고 통화를 끊어버렸다.
절레절레-
"뭔가 불안한데..."
너무 자신만만해 하는 모습이 오히려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었다.
아무래도 가만히 있지 말고 비앙카를 위해 뭔가 따로 보호할 수단을 만들어두는 게 좋지 않을까?
♧ ♧ ♧
비앙카는 주인님과 상의하고 만들어 둔 계획을 불도저처럼 진행했다.
"하고 싶은 것 목록...?"
"폐하의 제국을 비하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렇게 풍요로운 땅을 가진 곳이 생각보다 더딘 발전을 이루고 있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요."
"...확실히 너는 여러 나라를 돌아다녀 봤으니 다양한 것을 봤겠구나."
"예, 폐하. 하지만 제가 다녀왔던 곳 중 게오스 제국의 풍요로움은 최고에 속합니다. 반면 발전 속도는 생각보다 더디구요."
"그래서 이것들이 게오스 제국을 위해 네가 생각해낸 것들이냐?"
"예, 폐하께서 답답해 하시는 것 같아 주제 넘게 이런저런 생각들을 했던 걸 적었죠."
"흐음...자세히 들어보고 싶구나."
황제는 비앙카의 말에 흥미를 보였다.
도대체 어떤 것들을 보았기에 게오스 제국의 발전이 더디다고 평가한 것인지 궁금했던 것이다.
비앙카는 적당히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들을 총 동원해 황제가 꿈에 잠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런 나라가 있다고?!"
황제는 이 대륙에 게오스 제국보다 더 뛰어난 나라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가 비앙카의 놀라운 말을 듣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다른 한 편으로는 그 나라보다 지리적으로 유리한 게오스 제국이라고 못할 것이 없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앞으로 우리 제국에 부족한 게 있는 것 같으면 언제든 말해주거라. 네 말대로 우리 제국이 그곳보다 못할 게 뭐가 있겠느냐! 그 나라는 이런 것들을 지어서 귀족과 백성들이 즐기고 논다 이거지?"
"예, 폐하. 놀이 문화가 굉장히 발달한 나라는 관광객들이 사용하는 돈으로 나라를 운영한답니다."
"카지노라는 것에 귀족들이 그토록 많은 돈을 쓴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구나."
"직접 경험하게 해드리겠습니다. 귀족들도 놀이 문화에 빠지면 폐하를 괴롭히는 일도 줄어들 겁니다."
할 짓이 없으니 황제를 괴롭히는 거다! 라는 비앙카의 신랄한 비난에 황제가 와하하! 시원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고지식한 귀족들에게 비앙카만큼 시원하게 욕을 박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 그럼 한 번 해보자꾸나. 못 할 이유가 없지! 하하, 다음으로 이건 또 뭘 하는 곳이냐?"
"이건 부유한 백성들을 위해 제작 될 새로운 형식의 집이랍니다. 건축물을 위로 높게 올려서 같은 면적의 공간으로 많은 이윤을 남길 수 있어요."
"귀족들은 모두 저택을 갖고 있어서 이런 곳에 살려고 하지 않을 거다."
"귀족들을 겨냥한 것처럼 지을 거지만, 진짜 노리는 구매자는 부유한 평민들이 될 거에요."
아무리 귀족들에게 핍박을 받는다고 해도 평민 중에서 부유한 이가 없는 건 아니었다.
대부분 귀족들에게 능력을 인정 받고 총애를 받아 부를 이룬 경우에 해당한다.
그런 이들은 귀족들과 엇비슷한 수준으로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형식의 주거 공간이 흥미롭게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비앙카가 계획하고 있는 것들을 들어보면서 황제는 그녀가 귀족들보다 훨씬 똑똑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우리 제국의 귀족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너라면 나라를 위해 일하는 충직한 신하가 되었을 거다."
비앙카와 함께라면 게오스 제국을 잘 이끌어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황제라고 해서 게오스 제국이 걱정이 되지 않는 건 아니다.
황제라면 한 번쯤은 그런 꿈은 꿀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나라를 잘 다스려서 성군으로 칭송을 받는 것말이다.
그녀라고 그런 욕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능력이 부족하기에 불가능하다 생각하고 꿈을 꾸지 않았을 뿐이다.
'비앙카가 앞으로도 계속 도와준다면...'
제국의 전쟁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고, 내전을 일으킨 귀족들에게 복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황제의 얼굴에 희망과 의지가 깃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비앙카는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황제가 의욕에 차서 제국을 위해 무언가를 하면 할수록, 게오스 제국은 수렁에 빠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