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788 - #96. 진해솔 (92)
"그냥 있었습니다."
"아침에도 좀비 보고 계셨으면서, 방에서도 그냥 계신 거에요? 심심하면 저 부르셔도 됐는데."
놀랐다.
"근데 여긴 왜 온 겁니까? 부른 적은 없었을 것 같은데요."
뜬금없이 문 앞에 여자가 서 있어서.
당연하지만 처음 보는 여자였다.
'이 몸 주인이랑은 아는 사이겠지만.'
사실 아포칼립스 세상이라기에 씻지도 못하고, 피투성이의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런데 뜬금없이 나타난 여자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멀쩡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거기다 예쁘네?'
여성들의 외모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애초에 다른 사람 몸이 되어서 상대해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그런 쪽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았고.
그래도 이제 막 몸에 빙의한 거라서 상황 파악을 먼저 하려고 했다.
'좀비를 구경해보고 싶기도 하고.'
누구에게는 이곳이 처절한 현실이기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게 무례일 수 있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궁금하지 않은가?
'아포칼립스라는데 좀비를 어떻게 참아?'
직접 상대해보고 싶다느니 하는 말도 안 되는 강짜를 부릴 생각은 없다.
여긴 진짜 사람이 다 죽어나간 세계이지 않은가?
몸 주인도 오늘 당장 여자와 섹스를 하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그랬는데...
"그게...그러니까...."
누가 봐도 '그것'을 바라고 온 것 같은 여자가 문 앞에 떡하니 있었다.
내가 최대한 몸 주인의 성격과 비슷하게 무심한 듯 말하니 여자는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처럼 움찔거리면서 고개를 푹 숙였다.
'우는 건 아니겠지?'
나 별 말 안 했는데...?
"천천히 말해요. 화내는 거 아닙니다."
"아니에요! 화내도 괜찮아요. 제가 잘못한 거니까. 오빠가 싫어하는 거 알면서 계속 찾아올 수밖에 없어서...사실 이런 식으로 밀어 붙인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거든요."
여자가 울먹이면서 사과를 한다.
몸 주인이 꽤 오랫동안 여자들을 마음 고생 시켰다고 듣긴 했는데, 언젠가 터질 거라고 했던 순간이 하필 내가 빙의한 순간이 될 줄은 몰랐다.
'아니지, 오히려 시기가 좋았다고 봐야 하나?'
내가 하루라도 늦게 빙의했다면, 몸 주인이 이 밤에 저 여자의 방문을 받았을 것이다.
그럼 결과는 최악이 됐을 터.
'여기서 단호하게 거절 당했는데, 며칠 후에 다른 여자랑 섹스를 했다는 얘기가 돌면 배신감 느끼지.'
차라리 잘 된 일이다.
나도 빙의한 첫 날에 성과를 보여줄 수 있게 된 것 아니겠나.
"아뇨, 이렇게라도 밀어 붙여야 하는 일이죠."
"!!!"
내가 이렇게 말을 할 거라고 생각 못했는지 여자가 깜짝 놀란다.
"지금까지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줘서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더 이상 해야 하는 일을 외면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저, 정말이세요?"
"다만, 저도 노력하는 만큼 당신도 배려를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배려라면...?"
"밤에 일어난 일은 밤으로 끝나는 겁니다."
"밤에...네?"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는지 여자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밤에 생기는 일로 다른 게 바뀌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아..."
여자는 나랑 섹스 했다고 친한 척 하지 마! 라는 의미로 받아들인 것 같다.
하지만 나도 그런 의미를 아예 담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기에 변명을 하지는 않았다.
"네, 네에. 그럴게요."
조금 울적한 표정으로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몸 주인이 그것을 바라는데 내가 뭐라 할 수있겠는가?
미안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그 감정을 내가 감당할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어 미안합니다."
"아니에요. 제가 오히려 죄송하죠. 오빠한테 부담을 줘선 안 되는데...사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 있을 수 있었던 건 전부 오빠가 저희를 보호해준 덕분이잖아요. 그런데 조금 살 만해지자마자 오빠한테 또 책임을 강요하고 있잖아요."
"서운하지 않습니까?"
"제가 한 짓이 있는데, 서운하다뇨. 그런 배은망덕한 생각 안 해요. 오히려 오빠가 저한테 너무 정 떨어지면 어쩌지 싶어서 걱정이 많은 걸요."
"그럴 일은...없을 겁니다."
애초에 몸 주인은 오늘 밤의 일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가자 여자의 얼굴에서 긴장감이 맴돈다.
초면에 몸부터 맞대는 건 좋아하지 않았지만, 경험이 많았기에 어느새 익숙해져서 능숙하게 여자를 달랠 줄 알게 된 상태였다.
몸 주인이 바라지 않았기에 후궁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다정하게 달래 줄 수는 없어도 대화를 나누며 분위기를 좀 풀어낼 필요는 있어보였다.
섹스라는 단어 자체 만으로도 거북함을 보이던 몸 주인이니, 성에 관련 된 질문을 해본 적은 없었을 것이다.
"처음이십니까?"
"...네네! 처, 처음이에요."
평소 몸 주인의 성격을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해서 그런지 여자가 흠칫! 놀라며 경악을 금치 못하다가 힘겹게 대답을 해주었다.
"최대한 아프지 않게 해보겠습니다."
"그러실 필요 없어요. 저는 괜찮아요! 편하게 해주세요. 아이만 가지면 되는 거니까."
평범한 여자라면 이런 식의 대화가 무척 자존심 상했을 텐데, 아무렇지 않은 척 눈물을 속으로 삼켜내며 말하는 게 안쓰러웠다.
"이쪽으로."
내가 침대를 가리켰다.
그러자 여자가 혀로 바짝 마른 본인의 입술을 핥더니 숨을 크게 쉬었다 내뱉었다.
"네...!"
스르륵-
그리고.
여자가 몸에 걸치고 있던 망토를 벗었다.
"......"
망토가 매끄럽게 바닥으로 떨어진다.
투욱 하는 작은 소리가 귓가에 퍼졌다.
그리고 그 안에 숨겨져 있던 옷이 드러난 순간.
숨이 턱! 하고 막혔다.
처음 본 여자인데 내가 이런 모습을 봐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그...오, 오빠가 좋아하실까 싶어서..."
저 옷을 입은 본인도 무척 창피했는지 얼굴이 빨개져 있었다.
고개를 올려서 나를 똑바로 쳐다 보지도 못한다.
처녀가 저런 옷을 입을 결심을 만든 몸 주인에게 저도 모르게 '대단한 새끼...'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꿀꺽-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입은 옷이 말도 안 될 정도로 야했다.
옷 자체는 면적이 그리 많지 않았다.
핑크색 탱크탑에 하트 모양의 구멍이 젖꼭지 부위에 뻥 뚫려 있는데, 그 사이로 고스란히 젖꼭지가 드러나 있었다.
수줍게 드러나고 있는 배꼽.
그리고 그 아래는 짧은 핫팬츠를 입고 있었는데, 그 핫팬츠의 가운데 부분에 지퍼가 달려 있었다.
아마 저 지퍼를 여는 순간, 무엇이 나올지는 뻔했다.
남자라면 환장할 여성의 음부가 수줍게 인사를 해올 것이다.
'너무 환장해 하면 안 된다. 컨셉 지켜!'
몸 주인은 섹스라는 행위를 혐오하는데, 갑자기 게걸스럽게 달려드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호, 혹시 불쾌하셨을까요?"
"불쾌하지 않습니다. 노력을 폄하하고 싶지 않고요."
내가 한 말이 정답이었는지 여자가 마음이 놓인다는 듯 배시시 웃었다.
"다행이다. 싫어하시면 어떡하나 싶었거든요. 오빠가 싫어하지만 않으시면 충분해요!"
계속 내버려두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다만 그 손길에서 머뭇거림을 잔뜩 담아냈다.
'나는 섹스를 혐오한다....나는 섹스를 혐오한다...'
연기력 스탯을 찍어둬서 얼마나 다행인가.
미션을 해결하는데 연기력의 도움을 항상 받고 있었다.
"흣!"
처음으로 닿은 것도 아닐 텐데, 몸 주인의 손길이 몸에 닿으니 여자가 달뜬 신음을 뱉어냈다.
자기가 내놓고도 깜짝 놀란 기색이다.
아마 아까부터 계속 됐던 야릇한 상황 때문에 몸이 잔뜩 긴장하고 있었으니 몸이 민감하게 반응했을 것이다.
처녀 특유의 긴장감에 근육이 뻣뻣하게 굳어 있을 텐데, 그걸 부드럽게 풀어줄 필요가 있었다.
"침대 위로 올라가요."
내 말에 그녀가 엉금엉금 기어서 침대 위에 앉는다.
삐걱- 삐걱-
침대는 상대적으로 무게가 가벼운 여자가 올라갔음에도 불구하고 삐걱 소리를 낼 만큼 상태가 좋지 못했다.
'이 세계에선 이 정도가 최선이었겠지.'
소리를 무시하고 침대에 올라가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읏..."
잔뜩 긴장해서 어깨와 허리가 굽어져 있었다.
이런 대담한 옷을 입고 온 사람 답지 않게 말이다.
어깨를 가볍게 주물러 주니, 굳어 있던 어깨 근육이 풀어졌다.
"하으...엄청 시원해요. 근데 갑자기 왜 주물러주시는 거에요?"
"긴장해서 그런지 어깨가 많이 굳었습니다."
"앗! 전 괜찮은데..."
말을 많이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대답하지 않고 어깨를 지나 그녀의 가슴으로 손을 옮겼다.
"히약!"
굽어졌던 등이 오뚝이처럼 세워진다.
젖꼭지에 구멍이 뚫려 있었기에 가슴에 손이 닿자마자 젖꼭지가 손에 잡혔다.
"흐우우...어뜨케에...학!"
바들바들-
젖꼭지를 손가락에 넣고 빙글빙글 돌리면서 가볍게 손장난을 친 것 뿐인데, 온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오, 오빠아..."
애처롭게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호응을 해주고 싶었지만, 충동을 꾹 눌렀다.
지금 나는 억지로 섹스를 하고 있는 거 아닌가?
이런 거에 호응을 해줄 만큼 여유가 있을 리 없다.
호응해주지 못하는 대신, 나는 조금 더 대담하게 그녀의 가슴을 만져주었다.
"읏, 하읏, 흑! 제 가슴...어떠세요? 부, 불쾌 하다거나...하지는 않은지...싶어서..."
참 쓸데없는 걱정을 다 한다.
그동안 몸 주인의 소극적인 태도에 익숙해져서 자존감이 많이 낮아졌나보다.
이럴 땐 예쁘다고 칭찬을 해줘야 하는데...
'이 정도는 괜찮겠지?'
살짝 걱정이 되긴 했는데, 이 정도는 예의에 속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쁩니다."
"!!!"
예상치 못한 대답에 깜짝 놀란다.
"부드럽고..."
"흣!"
가슴을 전체적으로 한 번 만졌다가.
"자극적입니다."
"으응..."
젖꼭지를 손가락으로 잡고 비비면서 말했다.
그리고 그녀의 등 쪽에 묵직하게 기세를 받고 선 성기를 문질렀다.
하지만 처녀라서 그런지 등에 뭐가 비벼지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나는 가슴을 맴돌던 손을 움직여 지퍼 달린 핫팬츠를 만졌다.
"힉!"
그녀의 등을 내 가슴에 디디게 하고 꿇고 있던 무릎을 피게 해서 양 다리를 벌렸다.
"지퍼, 내리겠습니다."
"네, 네에."
처녀의 대범한 핫팬츠.
용기 내서 입었을 텐데 이용해보지도 않고 벗겨버릴 수는 없었다.
드드득-
문도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고, 침대도 삐걱이는 소리를 냈는데, 이 지퍼는 생각보다 부드럽게 내려갔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거진 수풀과 함께 빨간 계곡이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