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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792화 (775/849)

Chapter 792 - #96. 진해솔 (96)

상황을 한 번 정리하자면 이렇다.

내가 빙의를 해서 섹스를 했던 날.

낡은 건물은 그 소리를 주변에 뻗어나가게 했다.

애초에 그들이 터를 잡은 것은 방금이 전혀 되지 않는 곳이었다.

평범한 상황이었다면 방음 안 되는 건물은 불편을 초례했겠으나, 이 사람들은 방음이 안 된다는 것을 역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좀비 바이러스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누군가가 바깥에 다녀온다는 것 자체가 좀비 바이러스에 노출이 된다는 의미였다.

그렇기에 사냥을 다녀 온 팀원은 건물 안에 준비 되어 있는 방 안에서 1인 1실로 이틀 정도를 머무르는 게 규칙이었다.

무사히 이틀을 버티면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 되지 않았다는 게 증명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방음이 되지 않는 건물은 안에 있는 사람이 좀비 바이러스에 걸렸는지 확인을 하기 위해 좋은 수단이 되어주었다.

"그래서 가뜩이나 방음이 안 좋은데, 방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고요?"

-저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제 방에 구멍이 있다는 걸요.

"언제 여자를 안을지 모르니 구멍을 뚫어 놓고 감시하겠다 이거네요?

-예...아마 그랬던 것 같습니다. 아무리 방음이 좋지 못하다고 해도 생각 이상으로 빠르게 퍼져서 조사를 해보니...

그 정도면 스토커 못지 않은 것 같은데...?

처음에는 한나래한테 원망이 갔다고 한다.

어떻게 섹스를 하자마자 온갖 곳에 소문을 낼 수 있냐고 말이다.

각오하긴 했지만, 무슨 말을 해서 여자들이 이런 식으로 구냐고 화를 냈단다.

그런데 한나래가 잔뜩 억울해 하는 얼굴로 자신은 어젯밤 일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고 말했단다.

'그래서 여자들에게 어떻게 알았는지 물었고, 방음이 안 돼서 다 들었다고 변명을 한 거지. 그래서 나한테 뭐라고 했다가 좀 이상해서 다시 조사를 해보니 구멍이 발견이 된 거고.'

열심히 사정을 설명하니 들어주고 있긴 하다만, 기분 상한 게 회복 되는 건 아니었다.

구멍이 발견 안 됐으면 계속 내 탓을 하고 있었을 거라는 의미가 아닌가?

'남탓 하는 인간이랑은 상종을 하면 안 되는 법인데.'

남한테 돈 벌어 먹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는 지라 딱 한 번만 넘어가주기로 했다.

"제가 분명 말씀 드렸던 걸로 기억합니다. 밤에 변화가 생기면 그 여파가 당신한테도 갈 수밖에 없다고요. 고작 이 정도 변화에 대처를 못하면 저로서는 입장이 난감합니다."

-...너무 당황스러워서 못난 모습을 보여드렸습니다. 죄송합니다.

물론 확실하게 경고는 하고서 말이다.

"그래서 저한테 상황 수습을 부탁하고 싶다는 거죠?"

-예, 제가 말 주변이 없어서 지금 난장판이 된 상황을 수습 할 수가 없습니다.

"구체적으로 상황이 어떻게 되고 있는 겁니까?"

-밤이 되었으나 방에 들어가지 못하고, 바깥에서 쪽잠을 자고 있습니다.

"...사람을 그 정도로 몰아 붙인다고요? 화도 안 납니까?"

아무리 인류를 위해 임신이 급하다고 해도 사람을 갈 곳이 없게 만드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걸 가만히 당해주고 있는 의뢰인도 황당했다.

"그걸 왜 당해주고 있어요?"

-당해주고 있는 건 아닙니다. 확실하게 거절하고 있으니까. 다만 상대하는 게 피곤한 겁니다. 한 명을 보내면 다른 한 명이 오고, 그 사람을 보내면 또 다른 사람이 와서 해달라고 하니까요.

그러니까 자신에게 달라 붙는 사람의 숫자가 많다 보니 거절을 해도 또 거절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는 뜻이다.

내가 보기에 의뢰인의 행동이 참 미련했다.

"그럼 사람들을 모두 모아서 이런 식의 접근은 거북하니 하지 말아 달라고 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왜 사서 고생을 하려고 합니까?"

한 명 한 명 상대하다가 지긋지긋해서 도망쳐 나왔다는 의뢰인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나도 하루에 인터뷰를 3~4개 씩 했을 때, 똑같은 질문에 똑같은 대답을 해야 하는 게 무척 지루하고 지긋지긋했을 때가 있으니까.

하지만 의뢰인이 지내는 곳은 아주 한정 되어 있는 좁은 공간이다.

순식간에 의뢰인이 섹스 했다는 사실이 모두에게 퍼질 만큼 폐쇄 되어 있는 공간.

"당신이 한 말도 아마 다들 알고 있을 겁니다. 당신을 찾아오는 여자들은 그냥 그걸 핑계로 눈 도장 한 번이라도 더 받으려고 하는 걸 거에요."

-그, 그런 거였습니까??

"섹스했다는 소문이 몇 시간 만에 다 퍼졌다면서요. 그렇게 폐쇄 된 공간이라면 모를 수가 없죠."

그가 누군가와 섹스하기를 기다리며 방에 은밀하게 구멍까지 뚫어 둔 여자들이다.

이용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이용하려 들고 있는 게 뻔했다.

"어차피 거절은 지금까지 잘 해왔잖아요. 계속 그렇게 밀고 가세요. 그렇다고 여자들한테 너희들끼리 순서를 정해서 와라! 라고 할 순 없잖아요. 그렇게 하면 거기 순식간에 개판 날 겁니다."

차라리 주먹 다짐으로 끝내는 남자들의 싸움이 낫지, 살벌하게 입으로 오가는 여자들의 감정 싸움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질색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개판이 난다고요?

"설마 여자들한테 순서 결정권을 넘기려고 했습니까?"

이 의뢰인이 여자 관련 된 부분에서는 한없이 자신이 없고 멍청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당연한 사실까지도 예상을 못하고 어수룩하게 굴 줄은 몰랐다.

-당신도 여기서 여자들한테 시달려보면 생각이 달라질 겁니다. 차라리 그녀들한테 넘겨버리는 게 편할 수도 있습니다.

"나야 상관없죠. 거기가 개판이 나든 나는 할 일만 하면 되는 거니까. 근데 기껏 노력해서 만들어둔 곳이 감정 싸움 때문에 엉망진창이 되는 걸 보고 싶어요?"

-우리는 그렇게 약하지 않습니다!

내 말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의뢰인이 반박을 해온다.

하지만 잠시 후, 시무룩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그리고 다른 좋은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다른 방법이 왜 없습니까? 그냥 편하게 가세요. 뭐 그리 복잡하게 생각해요. 앞으로 섹스를 바라고 접근하면 그 여자는 순서를 가장 뒤로 밀어버리겠다고 하면 깔끔하게 끝날 일인데."

-!!!!

그런 생각은 해보지 못했는지 내 간단하면서도 명쾌한 해답에 말을 잇지 못했다.

"물론 항의 하는 사람도 있겠죠. 어필도 못하게 하면 언제 눈에 띄어서 안길 수 있는 거냐고. 그럼 그땐 공을 세우라고 하시면 됩니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마을의 발전을 위해 공을 세우는 사람은 보상으로 섹스를 해주겠다고요."

-그, 그런 방법이...하지만 고작 그런 것으로 보상이 되겠습니까?

의뢰인은 섹스가 여자들에게 얼마나 큰 보상이 될 수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나는 자신만만하게 미소 지으며 호언장담했다.

"걱정하지 말아요. 누구도 보상이 부족하다고 하지 않을 겁니다."

비록 몸이 다르고, 내 능력을 온전하게 펼쳐 보일 수 없다고 하나 경험이라는 게 갑자기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그날은 나도 몸이 바뀌고 처음 하는 섹스여서 본래의 실력이 안 나온 거였다고.'

일단 오늘 밤이 의뢰인의 몸으로 다시 빙의하는 날이었다.

저번의 굴욕을 다시 만회 할 시간이 온 것이다.

-...알겠습니다. 조언해주신 내용은 조금 더 생각해보고 결정하겠습니다.

"네. 그리고 도와 달라고 한 걸 보면 빙의하는 시간을 바꾸고 싶은 것 같은데 맞습니까?

-예, 죄송하지만 오늘 밤에도 들어와서 여자를 안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한나래씨가 다른 사람들한테 견제를 받고 있거든요.

"한나래씨라면 제가 함께 밤을 보냈던 그 여성 분이죠?"

-예. 제가 한나래씨를 특별하게 생각해서 그..일을 했다는 소문이 났습니다.

환장하겠네.

뭐 그렇게 꼬인 생각을 한담?

거기다가 생각으로 끝내지 않고 사람을 견제까지 한다니.

세상 인심 참 팍팍했다.

"그래서 오늘 당장 다시 빙의해서 다른 여자랑 밤을 보내 달라는 거군요."

-네. 그렇게 되면 다들 오해를 풀 테니 저나 한나래씨나 조금은 편해지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는 중입니다.

"글쎄요..."

내가 빙의해서 여자를 안는 것은 상관이 없다.

다만 내가 보기에는 그렇게 해서 해결 될 일은 아닌 것 같았다.

그냥 편하게 내가 조언해준 대로 행동하면 될 텐데...

'뭐 알아서 잘 하겠지.'

나는 맡은 바 일만 하면 되는 거다.

복잡한 일에 끼어 들어봤자 좋은 꼴 못 볼 게 분명했기에 말을 줄이기로 했다.

"제가 해드릴 수 있는 일은 '섹스' 뿐이라는 건 알고 계시죠?"

-지금은 그동안 기다려왔던 일을 갑자기 할 수 있게 되니 조급한 마음에 다투는 겁니다. 언젠가 자기 차례가 온다는 걸 알게 되면 결국 차분해지겠죠.

자신의 사람을 믿는다는 의뢰인.

그 신뢰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두고 봐야 할 듯 싶었다.

'내가 보기엔 영...아닌 것 같지만, 당사자가 괜찮다는데 뭐 어쩌겠어.'

내가 빙의 했을 때, 감당하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지만 않으면 되는 거였다.

적어도 사람을 고용 했으면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긴 해야 하는 거 아니겠나?

'문제가 생기면 그땐 내가 조언해준 대로 하겠지.'

그나저나 갑자기 오늘 당장 빙의를 해서 한 명을 더 안아 달라고 했는데, 그 일을 치르려면 촬영이 빨리 끝내야 할 것 같았다.

"우리 촬영 얼마나 남았지?"

"이제 두 씬 정도요."

"빨리 끝났으면 좋겠는데..."

"무슨 급한 일 생기셨어요?"

"아니, 그건 아니고. 사극이 확실히 다른 촬영보단 힘들긴 하네."

일단 입고 있는 의상이 치렁치렁한데, 거기에 더해 머리와 화장도 쓸데없이 길고 화려하기까지 하다.

그걸 계속 입은 채로 대기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역할도 황태자라서...장신구가 너무 많아.'

거기다가 기능적으로는 아무 쓸데없는, 오로지 보여지기 위한 화려한 치장을 가미한 복장이다 보니 추울 때는 한없이 춥고 더울 때는 한없이 더워진다.

'내가 추위랑 더위를 잘 안 느끼는 몸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네. 진짜 사극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진짜 황태자는 이렇게 형편없는 옷은 안 입는데 말이지.'

그쪽에서 생활하고 있는 분신체에게 그곳의 의복을 이쪽으로 보내 달라고 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다만, 실용성을 완전히 배제하고 만들어진 옷은...

"하...오늘 해솔씨 미모 미쳤다. 의상 너무 잘 어울려."

의상이 만들어진 존재 이유를 100% 아니, 200% 해내 보이고 있었다.

미션으로 정신없는 와중에도 내 진짜 생활은 아무 문제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아포칼립스 세상에서 얼핏 엿볼 수 있었던 멸망한 세계에 비하면 내가 살고 있는 세계가 얼마나 안온하고 평온한 곳인지 절절하게 느낄 수 있다.

'이래서 사람이 반면교사를 잘 해야 돼.'

사실 이곳도 멸망하기 직전의 세계이기는 하다.

하지만 좀비 바이러스로 멸망하기 직전인 세계가 아니라는 것에 감사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해결 방법도 내가 아이를 많이 낳는 것으로 멸망을 막을 수 있다지 않은가?

내가 만약 의뢰인의 상황이었다면...건강한 멘탈을 유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뜬금없이 여기에 떨어트려 놓고, 아이돌이 되라는 강요를 받았을 때만 해도 어처구니가 없고 억울했는데...'

나는 새삼 평화로운 한 때를 보낼 수 있는 현재에 감사를 느꼈다.

그리고.

촬영이 끝난 그날 밤.

나는 다시 아포칼립스 세계로 이동해 의뢰인의 몸 속에 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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