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798 - #96. 진해솔 (102)
"일단 생존자들이 모여서 만든 터전이 있기는 합니다."
"아아아!! 그게 정말 진짜였다는 거죠?"
"당신 같은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쿵!! 쿵!! 드드득- 드드드드득!!
"힉!"
"?!"
내가 넘겨줄 수 있는 정보를 넘기고, 저쪽에게 정보를 받아내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건물 전체에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 마냥 말이다.
"지, 지진이잖아요!"
"진짜 지진이라고요?!"
"하씨...좀비 웨이브가 왜 생겼나 했더니!"
아무래도 여자는 지진을 꽤 경험해 본 것 같았다.
건물이 흔들리면서 더 이상 이곳이 안전한 곳이 아님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나가야 해요!!"
무너진 건물들이 왜 생겼나 했더니!
이게 다 지진 때문이었던 모양.
나도 여자의 말에 동의하고 있었기에 서둘러 문을 열기 위해 가구들을 치워냈다.
'이게 한 손에 들리네?'
생각보다 가구들이 휙휙 너무 쉽게 들려서 이상하다 싶었는데, 의뢰인의 신체가 내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뛰어났다.
꽉꽉 막아둬서 어떻게 치워야 할지 막막했던 물건들이 순식간에 치워지고.
드디어 문이 열렸다.
바깥에서 다급한 표정으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던 여자가 나를 발견하고 황급히 손짓했다.
"어서요! 어서!"
그녀의 손짓에 반응해서 우리는 함께 건물을 빠져나갔다.
건물 구조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던 나와 달리 여자는 계단으로 나를 안내해주었다.
"아이구!"
다만 지진은 계속 되고 있었던 지라 몸이 휘청거리며 균형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았다.
"손!"
설마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 해코지를 할까 싶어, 여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잡아주겠다는 의미였고, 그녀도 내 도움이 필요하다 생각했는지 바로 손을 잡았다.
"갑시다."
"네! 근데 건물 밖으로 나가면 좀비웨이브 때문에 몸을 숨길 곳이 없을 거에요."
"아! 좀비 웨이브. 끄응...건물 안에서 버티는 게 맞았을까요?"
"아뇨! 여기 건물이 너무 낡았어요. 금방 무너질 거에요."
무너지는 건물 안에서 버티는 것만큼 어리석은 게 없다.
빠르게 계단을 내려와 1층에 도착하자 이곳저곳에서 무너진 흔적을 확인 할 수 있었다.
1층이 이 정도로 무너졌다면 순식간에 건물이 폭싹 주저 앉는 것도 가능할 거다.
이제 문제는 좀비 웨이브를 피하는 방법이었다.
"젠장, 이놈의 지진은 언제 끝나는 거야?"
지진은 생각보다 길었다.
우리는 아직 무너지지 않은 건물 아래에서 차마 문을 열지 못한 채 좀비 웨이브를 바라봤다.
지진도 심각한 문제였지만, 눈앞에 펼쳐진 좀비 웨이브는 지진보다 더 무서운 광경이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지진을 이용해서 자리를 피하죠. 우리가 균형을 못 잡는 것보다 좀비들이 더 지진을 못 버티고 있잖아요. 이럴 때를 이용해서 피해보는 게 맞는 것 같네요."
"무너지지 않을 튼튼한 건물로 바꿔 들어가자는 거죠?"
"맞아요."
여자와 나는 빠르게 상황 판단을 내리고 다음 계획을 세웠다.
목표는 지진에 무너지지 않을 튼튼한 건물을 찾아 숨는 것.
좀비들이 갑자기 뭉쳐서 이동한 이유가 괜한 게 아니다.
좀비는 지진에 취약하다.
균형을 전혀 잡지 못하고 지들끼리 뭉쳐 쓰러져서 허둥지둥하고 있지 않은가?
'이 정도면 압사로 죽은 좀비도 좀 있겠어.'
문제는 저렇게 바닥에 넘어져서 허우적대고 있는 좀비들 사이로 지나가야 한다는 거다.
몸은 바닥에 쓰러져 있을지라도, 좀비들은 하나 같이 팔과 다리를 사방으로 버둥대고 있었다.
저 손에 붙잡히면 꼼짝 없이 넘어져서 좀비 떼에 빨려 들어갈 거다.
그럼 이승과 깔끔하게 작별하게 되겠지.
'아직도 땅이 떨리네.'
시간이 좀 지나자 지진의 세동이 크게 줄었다.
하지만 여전히 바닥은 득득 소리를 내며 위험하게 흔들렸고, 그 위에 있던 건물들이 하나 둘 무너지기 시작했다.
온갖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말이다.
"어우."
건물에 걸려 있던 간판이 떨어지며 좀비 뭉텅이가 찍 눌렸다.
아까부터 코를 마비 시킬 것 같이 나던 악취들이 한층 더 진해졌다.
"제가 보기에 동선은 이렇게 해서 쭈욱 직진하다가 이렇게 가면 좋을 것 같아요. 다행히 건물 잔해가 좀비를 깔아서 이렇게 가면 될 것 같거든요. 어떠세요?"
내가 악취에 시달리는 사이, 여자는 머릿속으로 동선을 짰는지 내게 의견을 물어왔다.
나야 이곳 생활에 대해 아는 바가 없으니 지금까지 생존해서 전문가가 된 여자의 말을 따르는 게 맞을 것 같았다.
"뒤에서 따르겠습니다."
"좋아요!"
선두에 서는 것도 좋지만, 내가 속도가 훨씬 빨라서 여자가 쫓아오지 못하는 불상사가 벌어질 것 같았다.
뒤에서 그녀를 따라가며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도움을 주는 게 맞을 듯 했다.
여자는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말하지 않았음에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냥 사람을 만난 것 자체 만으로도 다 좋은 모양이네.'
드드드드드득!!
끼우우우우우웅-!!!
다다다다다닥!!
후두둑!
"앗! 무너진다. 가요!"
건물이 괴이한 소리를 내면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이곳에서 시간을 지체 할 수 없었다.
우리가 건물 밖으로 나가서 좀비를 피해 달리기 시작하자 기다렸다는 듯 건물이 와르르~! 순식간에 무너져 버렸다.
뒤에서 돌 파편과 먼지가 휘날린다.
우리는 그 소란스러운 굉음에 묻어서 좀비 웨이브로부터 몸을 숨겼다.
후아! 하악! 헉! 훅! 헤엑, 헥! 헉!
계속 된 뜀박질에 여자의 폐가 한계가 왔는지 거친 숨소리를 뱉어낸다.
반면 여자의 뒤를 따르는 내 몸 상태는 공원을 산보하는 것 마냥 평온하기 그지없다.
여자는 좀비 세상 전문가라는 것을 증명하듯 능숙하게 좀비를 최대한 피해갈 수 있는 곳으로 나를 안내했다.
그리고 도저히 피하지 못하는 좀비와 맞닥뜨리자 길쭉한 검을 빼들었다.
스르릉ㅡ!
저런 칼 하나 갖고 있으면 아주 요긴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은 '일본도'였다.
칼날을 열심히 갈아서 관리를 했는지 제법 요사스러운 예기를 내뿜었다.
촤아악-!!
'어우씨.'
날카로운 예기를 갖고 있는 일본도는 좀비의 목을 그대로 베어버렸다.
단 번에 목이 잘려 나가는 말도 안 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목덜미가 반쯤 잘려진 좀비는 바닥에 쓰러진 채로 축 늘어졌다.
그녀는 칼의 각도를 비틀어서 턱 관절의 어딘가를 일본도로 푹! 쑤셨다.
목이 반쯤 잘려도 꿈틀거리며 아직 살아 있다는 듯 움직이던 좀비가 이내 축 늘어졌다.
그야말로 깔끔한 솜씨였다.
'역시 아포칼립스 생존 전문가는 남다르네.'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의뢰인의 근처에 놓여져 있던 쇠 봉을 야무지게 챙겨둔 것도 이럴 때 써먹기 위함이 아니었나?
나는 바닥을 기어오는 좀비를 확인하고 그 녀석의 뒤통수를 냅다 쇠 봉으로 갈겨버렸다.
퍼석-!
후두둑!
'씹.'
오물이 안 튀도록 깔끔하게 처리한 생존 전문가와 달리, 내가 만들어낸 광경은 허접하기 그지없었다.
'뒤통수가 완전히 파였잖아!!'
의뢰인의 괴물 같은 신체 능력을 고려하지 못한 대참사가 벌어진 것이다.
"와우!"
여자는 내 허접하기 그지없는 솜씨에도 감탄사를 내뱉었다.
사람 두개골을 단숨에 터트려 버렸는데 놀라지 않는 게 이상하긴 했다.
"든든하네요. 어서 가요! 이제 지진 멈춰서 다들 일어날 거에요!"
우리가 좀비를 잡는 사이에 어느새 지진은 움직임을 멈추고 잠잠해졌다.
건물 잔해에 깔려 있는 좀비들이 꽤 됐지만, 좀비 웨이브는 그 피해를 아무렇지 않게 넘겨버릴 정도로 압도적인 숫자를 갖고 있었다.
좀비들이 몸을 일으킨 순간부터 우리는 본격적으로 좀비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는 거였다.
"저 건물 어때요?"
주변에는 어떻게 된 게 멀쩡한 건물을 찾기가 힘들었다.
건물을 무너트릴 만큼의 지진 세기였고, 우리가 있던 건물은 그나마 지진의 중심에서 좀 벗어난 곳이었나 보다.
점점 건물로부터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무너진 건물들의 광경이 심상치가 않았다.
"이번 지진은 장난 아니네요. 와...남아 있던 건물이 싹 다 쓰러진 것 같은데요?"
이런 상황은 산정하지 않았는데...
마땅히 피할 곳이 없다.
지진에서 살아남은 좀비는 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이 몸을 움직이는 방향은 모두 한 곳이었다.
바로 여자와 나.
우리 두 사람 말이다.
'섬뜩하네.'
수십 아니, 수 백이 넘는 눈동자가 나를 향해 있다는 것.
아이돌이었던 나에게는 익숙한 일이긴 하다.
하지만 아이돌로 활동하며 경험했던 시선들은 대부분 호의로 가득 찼던 반면, 지금 나를 바라보고 있는 이들의 눈동자에는 나를 향한 악의와 살기로 가득 차 있었다.
너를 죽이고 싶다는 악의와 살기.
평범한 사람이라면 버티지 못하고 덜덜 떨었을 압박감을 주었다.
"어디로 가야 할까요? 엄청 막막하네."
"건물이 무너지면서 먼지 때문에 주변을 살피기가 어렵네요."
먼곳을 보고 싶어도 먼지 구름 때문에 잘 보이질 않는다.
더군다나 지금은 어둑한 밤이지 않은가?
다만 이 사기적인 신체 능력은 눈에도 영향을 미치는지 시간을 들여 주변을 탐색하자 먼지 구름 사이로 우뚝 서 있는 희미한 건물 형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저쪽으로 가보죠. 저기에 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쪽이요? 뭔가 보여요?"
"건물이 보입니다. 무너진 것 같진 않습니다."
"오! 그럼 딱이네요. 가보죠!"
여자에게서 금방 동의를 받고, 우리는 본격적으로 좀비들을 피해가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퍼컥-! 퍽!
"이야~ 남자라서 그런가? 역시 힘 하나는 기가 막히시네요."
초반에는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좀비에게서 튄 이물질이 몸에 덕지덕지 묻는 걸 피할 수가 없었다.
'웩- 비위 상해.'
하지만 워낙 좀비가 많다 보니 빠르게 적절한 힘 세기를 알아낼 수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힘을 주지 않아도 좀비는 쉽게 목이 달아났다.
다만...
'줄어 들지를 않잖아!!!'
이래서 의뢰인이 좀비 웨이브를 직접 해결하기보단 다른 곳으로 유인을 하려고 했나 싶다.
"저기 보이는 저거에요?!"
눈으로 봤던 거리감보다 실제 거리는 훨씬 더 많이 떨어져 있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좀비를 피해 움직이니 드디어 여자의 눈으로도 건물의 존재를 확인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