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799화 (781/849)

Chapter 799 - #96. 진해솔 (103)

내가 목격했던 건물을 시작으로 지진의 여파를 덜 받은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만 지진의 피해를 입지 않은 만큼.

끄어- 끄어...! 그어어!!!

좀비 웨이브의 최종 결착지가 이곳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고려했어야 한다.

"미친."

"와...우리 알아서 호랑이 굴로 들어와 버린 것 같은데요?"

"뒤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 합니다."

뒤로 돌아가 보려고 해도 이미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뒤편에는 우리를 죽이기 위해 따라 온 좀비들로 까마득했다.

빈 공간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앞으로 갈 수밖에 없는데, 정작 앞도 좀비들로 꽉 막혀 있는 상황.

"싸먹혀버렸네요."

이젠 좀비들을 처치하면서 길을 뚫으면서 가야 했다.

♧ ♧ ♧

이대로 의뢰인도 죽고, 내 미션도 끝나는 건가 싶어서 막막했다.

"미쳤다! 오빠, 장난 아니잖아!? 괴물이야? 뭐 먹고 그렇게 힘이 센 거야?"

퍼억! 퍼억! 퍼억!

숫자엔 장사가 없다고.

여기서 살아 나갈 방법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이게...되네?'

이 몸뚱이.

정말 엄청나다.

상상 이상으로.

그 많은 좀비를 뚫고 뛰어도 숨 하나 거칠어지지 않는 몸이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

하지만 이젠 좀 알 것 같다.

왜 이 남자가 멸망하는 세상에서 메시아로 불렸는지.

여자들이 그가 떠날까봐 전전긍긍 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건 사람 수준이 넘었는데? 이 정도면 전차 아닌가?'

퍼억! 퍽! 퍼억! 뻐억!!!

좀비들이 우수수 나가 떨어지고 있다.

얼떨결에 합류하게 된 여자는 완전히 지쳐서 내 등 뒤에 보호를 받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녀는 가만히 있기가 미안하다며 열심히 응원을 해주고, 또 내가 미처 보지 못하는 부분을 브리핑해서 좀비를 해치울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거의 다 왔어요!"

죽은 좀비들로 다른 좀비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길을 막아가면서 가다 보니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했다.

건물 안에 들어가기 전은 특히 오랫동안 시간을 들여서 좀비와 사투를 치러야 했다.

건물 안에 들어가 있었던 좀비들과 바깥에서 우릴 노리는 좀비를 양 쪽에서 상대해야 했기 때문이다.

좀비 수가 적은 안 쪽을 여자가 맡았고, 바깥 쪽에 좀비로 바리케이드를 만드는 건 내가 했다.

"후악, 하악! 쿨럭! 헥! 헥! 아이고...나 죽어...아이고..."

젖 먹던 힘까지 다 썼다는 듯.

여자는 온 몸을 오물과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오물이 묻지 않게 깔끔하게 좀비를 처리하던 그녀도 지금 상황에서 여유를 부릴 순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사정이 나은 것은 나였다.

점점 움직임이 몸에 익어서 시간이 지날수록 좀비를 상대하기가 편해졌고, 최대한 몸에 더러운 것이 묻지 않도록 조심해 가며 싸우는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바리케이드는 완벽하게 잘 쌓은 것 같으니까 안으로 들어갈까요?"

건물 안 쪽에서 나오는 좀비를 잡다가 결국 힘에 부쳐서 쓰러진 것을 내가 도와서 마무리를 했다.

나도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됐다 싶었을 때 그녀의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몇 시간 동안이나 이 짓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평소에 쉽게 느껴보지 못한 격렬한 시간이었음은 확실했다.

'콘서트 무대 다 뛰고 앉은 느낌이랄까.'

탄력감이 장난이 아니다.

문제는 상황이 이게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여전히 하늘 위에는 달이 떠 있었고, 날이 뜨려면 한참 남았지만, 의뢰인이 돌아 왔을 때의 상황을 고려해두어야 했다.

'뜬금없이 자다가 일어나서 누구세요? 하는 꼴은 보면 안 되니까.'

"피차 많이 지쳤으니까 쉴 곳부터 확보하죠. 여기서 좀 쉬고 계십시오. 안 쪽 정리하고 오겠습니다."

"내가 어디가서 체력 약하다는 소리는 안 들었거든요. 근데 그쪽은 진짜 대단하네요. 근데 좀 더 쉬고 같이 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

"저는 괜찮습니다. 바리게이드가 잘 버티는지, 보수할 곳은 없는지 확인만 부탁드립니다."

아직 문이 열리지 않은 곳에 갇혀서 밖으로 나오지 못한 좀비가 있을 것이다.

좀비가 가장 위험할 때는 무리가 뭉쳐 있을 때 혹은 보이지 않은 사각에서 기습을 당할 때였다.

이곳저곳 가려진 게 많은 건물 안에서 좀비가 숨어 있다면 그것 만큼 위험한 게 없는 법이었다.

미리미리 정말 클리어가 됐는지 확인 할 필요가 있다.

여자를 두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 휴식을 취할 만한 공간이 있는지 확인해봤다.

"물은 안 나오네."

화장실이 있어서 들어가 확인을 하니 애석하게도 물이 나오지는 않았다.

'찝찝한데.'

당장 씻고 싶은데 물이 없어서 못 씻는다니!!

몇 시간만 참으면 된다는 걸 알지만...1분 1초가 끔찍하다.

"여기가 괜찮은가."

건물을 싹 다 확인하는 건 너무 귀찮은 일이었고, 1층은 바리게이드를 뚫고 들어오는 좀비가 있을 수 있으므로 적당히 3층에 자리를 잡기로 했다.

1층, 2층, 3층까지는 모두 확인해서 좀비가 없음을 확인한 후 윗층에서 내려 올 수 있는 좀비를 대비해서 계단 문을 확실하게 단속했다.

"어? 먹을 거네요?!"

"네. 뒤져보니까 있었습니다."

"와아~ 이게 어떻게 아직까지 남아 있을 수가 있지?"

그녀는 유통기한이 지났는지도 확인하지 않고 무작정 초코바를 입에 넣는다.

우걱우걱-

"하씨, 환상적이야. 초콜릿 이거 얼마 만에 먹는 거지? 눈물 칼라 그러네."

말로만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여자는 초코바 하나에 진심으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오도독 오도독 씹히는 소리 들려요? 이게 씨바 감동이지. 미쳐따리. 초콜렛 왜 이렇게 부드럽지? 혀가 짜르르 한 게 하...미쳐써...행복해에~~내가 이 맛을 어떻게 잊고 살았나 모르겠네. 아...이렇게 좋은 거 막 먹으면 입이 까다로워져서 큰일 나는데...그래도 쪼꼬는 못 참지이~"

여자는 혼잣말 하는 게 습관이 된 것 같았다.

초코바 하나 줬을 뿐인데, 그걸 입 안에 넣고 살살 녹여 먹으면서 행복감에 부들부들 떨어 댄다.

'혼자서 잘 노네. 먹방하면 크게 되겠어.'

야무지게 초코바를 반 정도 먹은 여자는 나머지를 소중하게 주머니에 넣었다.

"다 먹지 왜 남겨요?"

"이걸로 배를 다 채우기엔 너무 아까운 것 같아서요. 나중에 기분 안 좋아지면 그때 먹으려고요."

"...그래요."

"덕분에 스트레스가 확! 풀렸어요. 고마워요! 제가 쪼꼬를 먹어 본 게 몇 년 만인지 기억도 안 나거든요. 옛날 생각나서 눈물이 다 나는 거 있죠?"

여자는 초코바 하나에 텐션이 저세상으로 넘어간 듯 싶었다.

"쉴 곳을 찾았으니 따라와요. 바리게이드는 어때요?"

"완전 튼튼하게 잘 만드셨어요. 좀비들이 아무리 밀어내려고 해도 안 무너지더라고요."

아무렴.

절대 무너지지 않게 좀비로 꽉꽉 채워 놨다.

"여기서 쉬어요."

"어? 저만요?"

"같이 있는 거 불편하니까요."

아무리 생사를 넘나드는 경험을 함께 했다고 해도, 믿음이라는 게 쉽게 생기는 게 아닌 거다.

더욱이 나한텐 저 여자의 시선을 피할 공간의 필요성이 있기도 했고 말이다.

"전 안 불편해요!"

"제가 불편합니다."

"아하! 그걸 생각 못했네요. 죄송해요."

내가 불편해서 싫다고 하니 여자가 순순히 내 뜻에 따르기로 한다.

그녀를 안전한 방으로 들여보내고, 나는 바로 옆방으로 이동했다.

좀비 바이러스가 벌레들한테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는지, 그들의 삶은 인류가 멸망하기 전보다 훨씬 윤택해진 것 같았다.

낡은 건물 위를 위풍당당하게 걸어 다니는 거미와 쥐 그리고 바퀴벌레 등등.

그들은 오랜 세월 인간에게 핍박 받았던 경험을 딛고, 인류의 멸망을 기뻐하고 있었다.

'인류도 분발해야지.'

나는 거미줄을 휙휙 쇠 봉으로 쳐내고 그나마 먼지가 적은 곳에 엉덩이를 댔다.

온기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은 바닥의 찬기에 몸에 소름이 돋았다.

'생각보다 좀비가 훨씬 흉측해서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안들었어.'

나는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좀비를 죽였던 전투의 과정을 다시 되새겼다.

처음 실전 전투를 치르고 나서 아드레날린이라고 해야 되나? 그런 게 막 붐비 되고 있는 건지 쉽사리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이 몸도 마찬가지였는지 성기가 우뚝 서서 자기 주장을 하고 있었다.

"비라도 왔으면 좋겠네."

바깥에서 들리는 좀비 울음소리.

차라리 비가 내려서 저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으면 좋겠다.

겸사겸사 몸도 씻을 수 있을 테고 말이다.

'이걸...해결하긴 해야겠지?'

시간이 지나면 가라 앉겠지...하는 생각으로 계속 내버려두고 있었는데, 어지간히 흥분을 했던 모양인지 쉽게 가라 앉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결국 바지를 내리고 속옷 안으로 손을 집어 넣었다.

"후우..."

얼마 만에 혼자서 하는 자위인가.

물론 몸이 다르니까 이걸 '내'가 했다고 쳐야 하는 건지 아니라고 봐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네 몸, 내 몸 따지는 것도 은근히 피곤하네.'

자위를 끝내고 나면 의뢰인에게 오늘 밤에 있었던 일을 적어둬야지.

굳이 야한 생각을 많이 할 필요도 없이.

"음."

절정은 빠르게 찾아왔고, 나는 금세 사정을 할 수 있었다.

전투로 인해 받은 자극이 그만큼 강렬했던 것이다.

똑똑똑-!

"실례합니다아..."

"!!"

그때, 바깥에서 노크 소리와 함께 말소리가 들렸다.

쉬고 있을 줄 알았던 여자가 언제인지 모르게 와서 노크를 한 것이었다.

"그...쉬시는데 방해해서 죄송한데...잠을 자기 전에 대화를 조금만 더 나누면 안 될까요? 제가 너무 오랜만에 사람을 만나서...그동안 되게 외로웠거든요. 근데 만나자마자 좀비 때려 잡느라고 대화를 못 나눠봤잖아요. 그러니까 자꾸 내가 꿈을 꾼 건지 현실인지 막 모르겠고, 불안하고 눈물나고 막 그런 상태에요."

문을 열지 못하고 바깥에서 주절대는 목소리를 들으니, 여자도 방금 전 있었던 전투 때문에 정신이 살짝 나간 것 같았다.

나도 그 불안정한 상태를 똑같이 경험하고 있었기에, 여자의 상태가 충분히 이해가 가기는 했다.

'남자인 나는 성욕으로 해소가 됐는데...저 여자는 혼자서 해결할 방법이 없었던 거겠지.'

잠깐 경험해 본 것에 불과하지만, 이런 아포칼립스 세계에서 멀쩡한 정신을 유지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어떤 수단이든 정신적인 피로를 해소 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 둘 필요성도 있어 보였다.

'다들 영화 몇 편씩 만들어가면서 살아남았겠지.'

오랜만에 만난 사람.

그 사람과 좀 더 대화를 나누면서 외로움을 달래고 싶어 하는 여자를 이해 못해 줄 만큼 속이 좁지는 않다.

문제는.

'이걸 수습 할 방법이 없는데...? 휴지도 없다고.'

방금 전까지 신나게 자위를 하던 중인지라 현재 내 꼴이 말이 아니라는 점이다.

저걸 거절하자니 여자 멘탈이 걱정 되고, 그렇다고 들어오라고 하기에는 현재 상태가 너무 흉하다.

"지금 제가 좀 곤란해서 말이죠. 5분 아니, 10분만 주시겠습니까?"

"어...10분이요? 네, 네!!! 10분...10분 기다릴 수 있어요. 저 잘 기다려요."

10분 안에 밤꽃 냄새를 없애야 한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