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804 - #96. 진해솔 (108)
사랑은 불과 같다.
순식간에 활활 타올라 버리고, 그 불길이 너무 거세면 그 무엇으로도 꺼질 수가 없는 것이다.
그의 사랑도 마찬가지였다.
수 많은 여자들의 호감은 거부해 놓고, 왜 그 여자만 마음에 담았느냐고 묻는다면 그도 알 수가 없었다.
이상한 말이라는 걸 알지만, 그냥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다.
'나한테 의지하지 않으려고 하는 여자는 처음이었으니까.'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가 필요하다.
그에게는 좀비를 해치우는 게 무척 쉬웠고, 다른 사람들은 좀비를 죽이기 위해서는 사투를 벌여야 했다.
이건 단순히 효율의 차이였다.
모두가 그렇게 말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쉘터의 규칙을 모르는 그녀는 좀비를 잡는 일을 혼자서 하겠다고 한 내 말이 말도 안 된다고 부정했다.
"나도 할 수 있어요. 오빠가 쉽게 할 수 있다고 일을 다 맡기는 게 어딨어요? 무슨 조별과제 지옥 편 찍어요?"
여태까지 혼자서 지내왔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듯.
그녀는 좀비를 척척 상대했다.
우리는 호흡이 잘 맞았다.
누군가와 호흡을 맞췄던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물론 쉘터의 사람들이 좀비를 아예 상대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한 때는 내가 바깥에 나가는 것을 막고 스스로 쉘터 근처 좀비들을 사냥하는 일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좀비 웨이브 같은 일반인들이 감히 맞설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지면 그들은 쉘터 안으로 숨고 나 혼자서 상황을 수습해야만 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혼자서 해도 충분히 잘 해내니까.'
'괜히 같이 갔다가 민폐나 끼치겠죠.'
'우리는 여기서 쉘터 지키고 있을게요!'
그도 어느 순간부터는 도움을 받는 게 귀찮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괜히 어설프게 도와주겠다고 나서다가 일만 더 만들면 힘들어지는 건 자신이지 않은가?
그런데 그녀와 좀비 웨이브를 함께 해쳐오면서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오빠한테 의지하는 건 좋은데, 그걸 핑계로 일을 다 떠넘기는 건 안 돼죠!"
그녀는 쉘터에서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 지를 듣고 크게 화를 냈다.
"오빠 완전 가스라이팅 당했는데요? 그 사람들 안 되겠네!!"
나를 위해 화를 내주는 사람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생존자들을 위해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는 것이 너무 익숙했던 나에게 그건 정상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사람 말이다.
그래서 그랬던 걸까?
그동안 그의 마음 속에 어떻게든 들어가려고 하던 이들과 달리 민진수씨에게는 너무 쉽게 마음이 열려버렸다.
그리고 그녀에게 충동적으로 사귀자는 고백을 해버렸고 말이다.
좀비 웨이브가 흩어지기 전까지.
둘이서 고군분투하며 지냈던 시간들은 행복했다.
좀비들을 함께 해치우면서, 이대로 쉘터를 떠나 둘 만의 공간을 만들어 생활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충동적인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물론 그 충동적인 생각을 그대로 실천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게 된 쉘터.
'그때부터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갔지.'
쉘터에 있는 주민들은 내가 유일하게 친근하게 대하는 민진주씨를 경계했고, 민진주씨는 내게 들은 말 때문인지 쉘터 주민들을 좋지 않게 봤다.
뿐만 아니라 그녀가 전혀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큰 기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일이 잘못 되어 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녀는 섹스를 좋아했다.
그리고 섹스는 그가 가장 자신이 없는 일 중 하나였다.
두 사람의 사랑은 추구하는 바가 달랐던 것이다!
'이대로 허무하게 끝낼 수는 없어...!'
평생 선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여자가 없을 거라 생각하고 있다가 만난 인연이었다.
쉽게 포기할 수 없었고, 어떻게든 애를 써보며 시도하기 위해 노력했다.
'약을...써볼까?'
억지로 약을 사용해서 그것을 세우고, 그녀가 바라는 대로 섹스를 해보는 거다.
비록 그 과정에서 힘겨운 싸움을 해야겠지만, 사랑하는 그녀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희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빠, 제가 어떻게든 세워볼게요! 세우기만 하면 섹스는 엄청 잘 하시니까요!"
민진주씨가 세우지 못하는 그의 기를 살리기 위해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내가 섹스를 잘 한다고? 그럴 리가!'
그는 깨달았다.
단순히 그것을 세우는 게 전부가 아님을.
이미 그녀는 '그 사람'과 밤을 보낸 이후였고, 그때의 기억에 사로잡혀 그의 능력을 과대평가 하고 있었다.
'실망할 거야. 갑자기 왜 그러는지 말하지도 못하는데...'
그가 가진 트라우마.
어릴 적 경험했던 좋지 못한 기억들이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그를 괴롭게 만들고 있었다.
'젠장! 젠장!!'
일이 더더욱 복잡해지자 그는 한숨을 쉬며 방법을 강구했다.
'방법이 없잖아...! 아무리 해도 안 된다고.'
하지만 몇 번의 트라우마 극복 시도는 오히려 그에게 진한 상처를 남겼다.
입술이 퉁퉁 부을 정도로 열심히 펠라를 받아도, 그의 성기는 설 생각을 하지 않았고, 이게 선다 해도 어설픈 허리 짓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거길 세워 놓고 겁나서 벌벌 떨고 굳어버리겠지. 그런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 줄 순 없는데...'
자꾸 쉬운 길을 두고 어렵게 갈 필요가 있냐는 의문이 들었다.
그에게는 가장 선택하기 싫으면서도 아주 쉽게 일을 해결 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했다.
'그래도 내가 사랑하는 여자인데...'
적어도 그 여자만큼은 스스로 밤을 함께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꺾여버린 자신감은 트라우마 극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초조함을 이겨내지 못하고, 원하지 않는 선택을 했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몸을 맡겨서 사랑하는 그녀와 섹스를 하도록 만드는 최악의 선택을 말이다.
'내 몸으로 하는 거니까. 기억만 하면 내가 하는 일이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잘못 된 선택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연인이 자신의 몸에 빙의한 다른 남자와 섹스하는 것을 몰래 촬영을 하는 범죄까지 저질렀다.
차라리 시작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당시의 그는 잘못 된 선택임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흐아아앙!! 오빠...! 아앙!! 이거야!! 더 해주세요!! 너무 좋아요!! 아아앙!!!
내 여자가 다른 남자의 몸 아래에 깔려 울부 짓고 있었다.
그는 눈을 뗄 수 없는 영상을 지켜보며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달았다.
어차피 자신의 몸으로 한 섹스이니, 기억만 갖고 있다면 자신과 섹스를 한 것이나 다름없지 않겠냐는 생각이 얼마나 얄팍한 착각이었는지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하필 카메라를 설치해뒀던 구도가 정확히 그와 그녀의 아래를 보여주고 있었다.
작아져 있는 것은 익숙해서 자주 봐왔지만, 저렇게 커져 있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쯔극- 쯔극, 쯔극, 쯔극-
그래서 그런지 더더욱 낯설게 느껴지는 커다란 성기가 연인의 안을 거침없이 탐하고 있었다.
이건...이건...말도 안 되는 짓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무자비하게 사람의 안을 쑤실 수 있단 말인가?
어째서...어째서 저런 끔찍한 짓을 당하고 있으면서 좋다며 울부 짖을 수 있는 건가!!
비틀-!
다리에 힘이 풀린 그는 간신히 바닥에 넘어지기 전 의자를 붙잡고 버틸 수 있었다.
황급히 의자에 엉덩이를 댄 그의 시선이 다시 영상 쪽으로 움직였다.
-오빠아아악! 아흑! 너무 깊어요. 깊어깊어. 안돼! 더 들어오면 안 돼에에!!!
-더 조여요. 혼자서 좋아 죽으려고 하지 말고.
찰싹! 찰싹! 찰싹!
햇볕에 살짝 탄 겉 피부와 달리 그녀의 속살은 하얗기 그지 없어서 달처럼 뽀얀 엉덩이에 붉은 손자국이 남는다.
그녀는 그 폭력조차도 기꺼운지 엉덩이를 흔들면서 열심히 성기를 잡아 먹고 있었다.
"하."
두 사람의 그거...아니, 섹스는 시간이 지나도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만해...이제 그만 할 때도 됐잖아!"
두 사람은 서로의 타액을 교환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서로에게 딱 달라붙어서 혀가 오가고, 민진주씨의 눈빛에는 애정이 가득했다.
-콘돔 더 없는 것 같은데요?
-흐으응...오랜만에 겨우 된 건데...아직 서 있죠?
-네.
-그럼, 그냥 없이 해줘요. 콘돔을 쓴 건 아이를 낳을 환경이 안 돼서 그런 건데 지금은...낳아도 되는 거잖아요.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던 그녀가 이내 허락하지 않았어야 할 최후의 마지노선을 허락해버렸다.
'그'는 기꺼이 사양하지 않고, 힘이 빠진 그녀의 몸을 번쩍 들어 올린다.
그녀의 다리가 벌어지고 또 다시 우뚝 서 있는 성기가 몸 안에 자리를 잡는다.
-흐우우...너무 조아요. 이거야...이거 때문에 진짜 영영 못 떠나...
-뭐에요? 제가 좋은 게 아니라 자지가 더 좋은 겁니까?
-자지...네에...자지 좋아요.
-나보다?
-자지가 당신이자나.
-서운합니다. 섹스 안 해주면 날 사랑하지도 않을 겁니까?
그것 만은 안 돼!
"안 돼...안 돼...!"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제발 아니라고 대답해주길 바랐다.
그녀가 호감을 느꼈던 건 '섹스를 잘 하는 그'가 아니라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추억을 쌓은 '내'가 되어야만 했다.
하지만.
-자주 못 세워도 괜찮아요오...이렇게 가끔 해주기만 해도 충분해에...!
-그런 대답을 바란 건 아니었는데요.
-흐이잉! 짓궂게 굴지 말아요. 어서 해주세요. 오랜만에 불 붙었는데 한 시도 허투루 쓸 수 없단 말이에요.
-이렇게 자지를 좋아해서야...이런 음란한 모습은 지금만 보여줘요. 섹스 못하면 헤어지자고 할까 걱정 되네.
-아흑! 이런 거 두고 어떻게 헤어져요. 안 그럴 거에요오...!
쿵!
"이런, 시발!!!"
누군가가 그들을 은밀하게 훔쳐보고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다시 정신없이 붙어 먹는다.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하면 내가 한 게 될 거라고?
어림도 없는 착각이다.
내 여자가 다른 남자의 배 아래에 깔려 흔들리고 있는 것은 엄청난 배덕감과 굴욕을 주는 일이었다.
'시발...시바알..이게 왜 갑자기...!!!'
그리고.
그의 손이 바지 안으로 집어 넣어진다.
이런 짓까지 해버리면 더 이상 갈 곳을 잃는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트라우마가 생기기 전, 어릴 적에나 몇 번 느껴봤었던 성욕에 휘감긴 상태가 됐다.
그의 손이 기어코 본인의 성기에 닿고.
손은 위 아래로 점점 속도를 높여나갔다.
"읏...윽...빌어먹을...!"
연인을 기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은 왜 자신이 될 수 없는 것인지.
자신의 몸을 한 남자에게 사랑이 가득 담긴 눈빛을 보내는 연인에 대한 원망과 슬픔이 교차한다.
열어봐선 안 되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린 남자는 더 이상 상자를 열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