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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806화 (788/849)

Chapter 806 - #96. 진해솔 (110)

오늘도 다른 때와 다르지 않게 카메라를 설치하고 침대에 누웠다.

이제 곧 약속 된 시간이 올 것이다.

낯선 남자가 내 몸을 차지하고 연인의 몸을 유린하는 시간.

그녀는 언제나 그랬 듯이 지금의 시간을 고대하고 있을 것이다.

몇 번 정도는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안기고 있다는 걸 고백해볼까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진주씨가 사랑하는 남자는 나일까, 그일까?'

섹스를 못하는 남자인 자신보다 섹스를 잘 하는 그 남자를 더 사랑한다고 말한다면 어떡하나.

자신이 없었다.

그녀의 선택을 받을 자신이...

"얌전하게 누워 있었네요?"

오늘 밤 함께 보내자는 우리끼리의 신호를 읽고, 그녀가 깨끗하게 몸을 씻은 후 내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곧 그 사람이 내 몸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촉촉하게 젖어서 기대감으로 두 볼이 상기 된 그녀의 몸을 자기 아래에 깔아 뭉갤 것이다.

"오늘도 저랑 밤을 보낸다고 해줘서 고마워요. 내 차례로 돌아오려면 한참 남았다고 생각했거든요."

"누가 또 뭐라고 했습니까?"

"아직 친하지 않으니까, 어쩔 수 없는 거죠. 오빠는 절대 참견하면 안 되는 거 알죠? 여기서 적응하려면 제가 맞추는 게 맞아요."

"여기에 맞추는 게 아니라 그 사람들이 쌓여 있던 불만을 진주씨한테 풀고 있는 겁니다. 화풀이 대상이 된 거라고요. 가만히 당해주고만 있으면 분명 해도 되는 줄 알고 점점 더 심해질 겁니다."

굴러 들어 온 돌인 민진주는 내 연인이 되었다는 이유로 쉘터의 사람들에게 차별과 노골적인 견제를 당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녀의 밝은 성격이라면 금방 쉘터 사람들과 정을 붙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자신의 연인이라는 이유로 뒤에서 차별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화를 내기 전, 진주씨와 먼저 상의를 해서 어떻게 대응을 할지 의견을 물었고 그녀는 자신이 나서면 영영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다.

'점점 두고 보고 있기가 힘든데...'

그녀가 어떻게든 친해져 보겠다고 애쓰는 모습을 볼 때마다 회의감이 밀려왔다.

인류의 미래고 뭐고, 둘이서 다른 곳으로 떠나버리고 싶었다.

'짐만 되는 사람들을 계속 이끌고 가야 하나?'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들수록, 새로운 것을 꿈꾸기 시작했다.

더 이상 살아 있는 사람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민진주씨와 새롭게 만났으니 다른 곳을 뒤지다 보면 또 다른 생존자를 만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꿈의 시작이었다.

'쉘터 사람들이 다 임신하고, 아이가 어느 정도 큰다면 내가 필요 없어지겠지. 그때라면 진주씨와 이곳을 떠나 생존자들을 찾으러 다니고 싶다.'

지금보다 훨씬 나이를 많이 먹겠지만, 상점을 통한다면 얼마든지 젊음과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다.

"나 민진주,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 아니에요. 그러니까 믿고 조금만 더 기다려줘요."

"그렇게 노력하지 않아도 쉬운 길이 있는데..."

진주씨를 괴롭히지 말라고.

딱 그 한 마디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감히 누가 그녀에게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 쉘터는 자신의 힘으로 돌아가는 곳이다.

"쉬운 길이 정답인 건 아니죠. 아구궁~ 피곤하다. 오늘 완전 꿀잠 잘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요."

그녀가 벌써부터 시작할 생각인지 침대에 들어와 자연스럽게 몸을 만져왔다.

근육이 바짝 긴장했다.

아직 시간이 되려면 5분 정도가 남아 있었다.

"키스할까요?"

몸 안에 들어와 근육을 만지는 그녀의 손을 잡아서 밖으로 빼냈다.

5분 동안은 아무리 몸을 애무해봤자 성기가 설 리 없었다.

'나는 왜...'

요즘 영상을 보며 자위를 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내 여자가 다른 남자의 아래에 깔려 신음을 흘리는 모습을 보며 성기를 세우는 답 없는 놈이 바로 자신이었다.

어떻게 자기 여자가 다른 남자와 섹스하는 걸 보면서 성기를 세울 수 있단 말인가?

정작 자신이 그녀에게 세워야 할 시기에는 전혀 힘을 쓰지 못하면서 말이다.

처음에는 믿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손에 묻어 있는 정액은 그의 정신을 또렷하게 만들 뿐이었다.

쪽, 쪼옥!

시간을 벌기 위해, 그녀와 계속해서 키스를 했다.

진주씨는 자신의 행동에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는지 순순히 혀를 내밀어 섹스하기 전의 애무를 즐겼다.

하지만 키스만으로는 그녀의 욕구를 만족시켜줄 수 없었던 걸까?

자꾸만 진주씨의 손이 그의 아랫도리를 노리고 들어왔다.

움찔-!

그녀의 손이 바지 쪽에 갈 때마다 몸이 저절로 굳어지고, 긴장에 의해 뻣뻣해졌다.

자신과 딱 달라붙어서 숨을 나누고 있는 지라 모를 수가 없는 변화였다.

"왜 그래요? 혹시 오늘 그날이에요?"

여기서 그날이란, 그녀와 섹스를 할 수 없는 날을 뜻하는 단어였다.

그의 특이한 성욕 컨디션을 결국 그녀도 알게 된 것이다.

정확히는 안에 있는 사람이 바뀌는 날이었지만 말이다.

'정기적으로 날짜를 정하지 말았어야 했나.'

'그'가 내 몸을 차지 할 시간이 가까워져 가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심장이 크게 뛰고, 아릿한 배덕감을 느꼈다.

자신의 몸을 이용해 그가 어떤 짓을 저지를지는 영상을 통해 충분히 엿보았기에 상상하기도 쉬웠다.

그리고 이 감정들이 내가 기다리고 있던 무언가임을 깨닫는다.

"아뇨, 그냥 좀 더 키스를 즐기고 싶었습니다."

"헤헷, 나랑 하는 키스가 그렇게 좋았어요?"

"두 말 할 것도 없이 당연하죠."

"와...제가 아무리 얼굴에 철판을 깐 것처럼 두꺼운 스타일이라지만,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씀하시면 부끄러운데요."

"부끄러워하는 것도 귀엽습니다."

"눈에 콩깍지가 제대로 쓰이셨어요."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 사랑스럽다.

그리고 나는 이보다 더 사랑스러운 얼굴이 언제인지 영상을 통해 본 적이 있었다.

자신이 직접 그 얼굴을 볼 수 없다는 게 비극적이었지만...

오히려 영상이라는 매체를 통해 한 번 걸러서 보았기에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도 내 몸은....'

침대에서 그녀와 가까이에 누워 있다는 사실 만으로 속이 울렁거리고, 숨이 가빠졌다.

키스가 가능해진 것도 아주 근래에 성공한 것이었다.

그 이상의 진도가 나간다면 몸은 바로 거부 반응을 보일 것이다.

"아..."

그때.

빙글ㅡ!

하늘이 돌았다.

정신이 까마득하게 사라져간다.

빙의를 당하는 것은 생각보다 별 것이 없었다.

잠이 몰려와서 속수무책으로 눈이 감기는 것.

그것 외에는 큰 고통이 없었다.

'눈을 뜨면...진주씨는 그 사람이랑 또 섹스를 하고 예쁜 얼굴로 나한테 미소를 짓고 있겠지.'

사라진 기억은 영상에 담겨질 테니, 아쉬워 할 것 없었다.

굳이 쏟아지는 잠을 거부하지 않았다.

♧ ♧ ♧

"으음..."

눈을 감기 전 보았던 어둑한 밤 하늘은 사라지고, 아침 해가 떴다.

'또...했겠구나.'

허무함, 허잔함 그리고 배덕감이 몰려온다.

그의 성기는 밤새 열심히 물을 뺏으니 힘이 들 만도 한데.

'왜 선 거야. 시바알...!'

몸도 어느새 익숙해져 버린 모양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영상을 확인하며 자위로 한 발 빼는 것을 말이다.

옆 자리를 확인하니 진주씨는 자리를 비웠는지 텅 비워져 있었다.

차라리 아무도 없는 게 심적으로 덜 아팠다.

자리에서 일어나 카메라를 둔 곳을 확인했다.

배터리를 다 했는지 카메라는 꺼져 있었다.

'배터리 충전을 안 해뒀었나?'

배터리 충전기를 꺼내 카메라를 충전시킨다.

"어?"

그런데 어째 카메라의 배터리가 생각보다 많이 차 있었다.

배터리가 나가서 카메라가 꺼진 게 아닌 것이다.

"이게 왜...? 이상하다. 분명 켰는데."

설마 어제 아예 영상 녹음이 안 됐던 걸까?

얼굴이 일그러진다.

다른 여자와 섹스를 하는 영상은 찍어봤지만, 성기에 자극이 오지 않았었다.

오로지 그의 연인인 진주씨와의 관계를 찍은 영상만이 자극을 받을 수 있었는데, 과거에 찍은 것으로는 지겨울 정도로 사용을 한 상태였다.

늦게 배운 도둑질 날 새는 줄 모른다고.

자위가 가능하게 되자 그것에 빠져서 하루에도 몇 번이고 영상을 돌려 본 것이 잘못이었다.

'새 영상이 꼭 필요했는데...!'

짜증이 왈칵 밀려왔다.

언제 또 영상을 촬영 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지 않은가?

이미 여러 번 진주씨와만 관계를 해서 쉘터 여자들 사이에서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자신의 행동 때문에 여자들이 진주씨를 더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다음에 또 진주씨로 해달라고 하면...'

분명 쉘터에 좋지 못한 영향이 미칠 것이다.

그건 안 된다.

"젠장, 일단 확인해봐야겠...어? 뭐야, 다 어디 갔어!"

영상이 없다.

지금까지 찍어둔 모든 영상이 깔끔하게 지워져 있었다.

정확히는 자신과 진주씨가 섹스하는 걸 찍은 영상들이 말이다.

인터넷이 가능한 세상도 아닌지라 따로 백업을 해둘 수가 없었기에 영상이 여기에 없으면 완전히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버그인가? 싶어서 다시 종료했다가 켜봤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뭐지? 갑자기 왜 이래?!"

상점 상품이었기에 버그가 날 리가 없는데...

"누가 지운 것도 아니고서야 이렇게 깔끔하게 지워질 리가 없는데...어?"

누가 지웠다고?

카메라를 발견해서?

'누가 이런 짓을 해? 설마 진주씨?'

아니, 아닐 거다.

그럴 리 없다.

그녀가 어떻게 카메라를 발견한단 말인가?

이 카메라는 상점에서 구매한 상품이다.

몰래카메라 전용이라 일반인은 존재 자체를 알아낼 수가 없었다.

"진주씨가 아니라면...이런 걸 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잖아?"

몰래 카메라의 주인인 나만이 영상을 지울 수 가 있다.

그런데 자신은 영상을 지운 기억이 없었다.

"서, 설마?"

끔찍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카메라에 담긴 영상을 지우는 건 자신 이외의 사람은 불가능하다는 점이 오히려 생각에 확신을 갖게 만들었다.

이건 정말 '자신'이 지운 게 맞다.

정확히는 내 몸에 빙의한 그 남자가 한 짓이겠지.

"어떻게 안 거지?"

까드득-!

초조함에 괜스레 손톱을 물어 뜯었다.

몰래 카메라의 존재는 쉽게 찾아낼 수 없는 곳에 꼼꼼하게 숨겨두었다.

애초에 몰래 카메라로 영상을 촬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테니 들킬 일은 절대 없다고 자신했었다.

들켜봤자 내 몸이 섹스하는 걸 찍겠다는데 뭐 어쩌겠나 하는 배짱을 부린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배짱을 부릴 때가 아니었다.

'그만둔다고 하면 어떡하지?'

곤란하다.

그가 없으면 누가 진주씨와 섹스를 해준단 말인가?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좀비 웨이브를 보았을 때보다 더 큰 초조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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