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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809화 (790/849)

Chapter 809 - #96. 진해솔 (113)

'아쉬운데...'

주인님께 이제 그만 돌아오라는 명령을 받았다.

하지만 비앙카는 이제 슬슬 결실을 보고 있는 상황에서 이대로 물러나는 게 너무 아쉬웠다.

"연회를 열어주세요. 아주 성대한 연회."

"연회를? 열어주는 건 문제 없다만...이미 매주 연회에 버금가게 놀고 있지 않니? 그런데 새삼 연회를 열어 달라니?"

해서 비앙카는 이곳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최고로 호화스러운 연회를 열기로 했다.

그동안 열심히 모아두었던 금은보화를 이곳에 그대로 두고 간다는 건 그녀의 성격상 봐줄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두 달 동안 싹 다 써야지.'

워낙 황제로부터 받은 게 많았고, 국책 사업의 투자금을 야금야금 빼먹은 게 엄청났기에 두 달 만에 그걸 다 쓰는 건 불가능한 일에 가까웠다.

"그런 평범한 연회 말고요! 정확히는 한 달 동안 이어지는 축제를 말한 거에요!"

"한 달 동안 이어지는 축제?"

"게오스 제국처럼 축복 받은 나라에서 축제가 고작 1년에 2번밖에 없다는 게 말이 되는 일이에요? 거기다가 축제도 겨우 일주일이 끝이잖아요."

"그래도 한 달은 너무 길지 않으냐? 관료들이 한 달이나 쉬면 행정에 문제가 생길 거다."

보통 축제를 하는 날은 귀족 관료들에게 휴가를 준다.

"관료들은 일하라고 하면 되죠."

"축제인데?"

"아침에는 일하게 하고, 밤에 놀라고 해요. 그럼 귀족들도 일하면서 축제를 즐길 수 있을 거에요."

야시장 같이 밤에도 축제를 하는 거다.

물론 아침에도 축제는 계속 되어야 한다.

비앙카의 간단한 해결 방법에 황제가 할 말을 잃은 듯 입을 꾹 다물었다.

24시간 계속 되는 축제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황제의 얼굴에 곤란함이 서린다.

"안 되는 거에요?"

"안 될 건 없지만...준비하는데 시간이 걸릴 거다."

"한 달이요. 한 달 동안 준비하고, 그 다음 달에 축제를 시작해요."

"한 달? 흐음..."

언제나 시원시원하게 대답을 해주던 황제답지 않게 자꾸 대답이 느려진다.

그녀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 말했다.

"됐어요. 폐하께서 싫으시면 안 해주셔도 돼요."

"내가 언제 싫다고 했느냐! 그런 거 아니다."

"아까부터 계속 곤란하단 얼굴이셨는 걸요?"

"너무 시간을 촉박하게 잡으니까 그랬던 거지, 축제를 여는 것 자체에 부정적이었던 건 아니다. 짐은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했다. 전쟁으로, 국책 사업으로 백성들의 피로감이 큰 지금, 마음 편하게 휴식 할 수 있는 축제가 열린다면 그들의 마음에 큰 위로가 될 거다."

"그쵸? 제가 바로 그 마음으로 축제를 열어 달라고 한 거였어요! 역시 폐하께선 말하지 않아도 제 마음을 알아주시는 군요!"

비앙카의 말에 게오스 황제가 활짝 미소를 지었다.

"짐도 너를 영혼의 반쪽으로 생각한다. 짐이 너에게 그랬듯이, 너도 짐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 알아주지 않느냐."

"제가 자유로운 항해를 그만두고 이곳에 정착한 이유가 오직 폐하라는 것을 아셔야 해요."

"그럼그럼. 알지. 알다마다. 해서 항상 네게 고마워 하고 있지 않느냐."

"맞아요."

비앙카는 게오스 황제가 더 이상 자신의 말에 조금의 반발심도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며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이제 슬슬 재미를 느끼고 있는 중인데, 돌아오라는 말을 한 주인님이 살짝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위험한 건 사실이지만,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넘길 수 있는데 말이야.'

주인님의 말대로 취미 생활에 목숨을 거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녀도 이 부분은 동감한다.

하지만 한 나라의 황제를 손아귀에 쥐고 흔들 수 있는 기회가 어디 흔한 일이냔 말이다.

이런 일은 아무나 느낄 수 없는 재미였다.

그러니 그 재미를 보기 위해 다소 신변에 위험이 있는 것은 감수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폐하께서 이리도 저를 위해 애써주시니, 제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죠. 제가 청한 축제이니, 비용은 모두 제 사비로 치를게요."

"말도 안 되는 소리! 그게 한 두 푼 드는 것도 아니거늘! 네가 돈이 어디 있다고 그걸 다 댄단 말이냐?"

"폐하께서 제게 주신 선물들, 하나도 쓰지 않고 모아뒀어요. 그 재물이 제국을 위해 쓰인다면 폐하도, 저도 기쁘지 않겠어요?"

황제가 비앙카의 말에 감동을 받은 듯 눈시울을 붉혔다.

"어찌 이리 마음씨가 곱단 말이냐? 어떻게든 하나라도 더 뜯어내 보겠다고 아귀처럼 구는 것들 사이에서 네가 내 곁에 있어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제가 재물에 관심이 없는 게 아니에요. 폐하께서 주신 선물은 저에 대한 마음이 담겨 있는 것들이니 뜻 깊게 쓰고 싶은 거죠."

"그런 기특한 생각을 아무나 다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게오스 황제가 이렇게 자신에게 홀딱 빠져 있다.

'이걸 놓고 가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아쉬운데...'

다시 한 번 안타까움을 느끼며, 그녀는 1달 동안 진행 되는 축제에서 미련을 탈탈 털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폐하, 그거 들으셨어요? 르잔티에 백작이 노예를 대여해주는 대가로 어마어마한 금액을 불렀대요. 근데 다른 귀족들도 서로 값을 공유하는 것인지 르잔티에 백작과 똑같이 금액을 올려버렸다는 거에요!"

"뭐라?! 평민들을 쓰면 돈이 많이 든다고 노예를 쓰라 한 주제에, 값을 올려?!"

"거기다가 값을 다 같이 올렸으니 이게 담합이 아니고 뭐겠어요?"

슬슬 거슬리던 귀족들도 쳐낼 때가 됐다.

그동안은 귀족들의 보복이 귀찮아서 내버려뒀지만, 이제 이곳을 떠야 하니 후환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황제에게 그동안 있었던 비리들을 미주알 고주알 털어놓으니 금세 얼굴이 붉어져서 분노에 타올랐다.

"왜 진작 말하지 않았느냐! 그런 일이 있었으면 진작 말을 했어야지!"

"폐하께서 저를 믿고 맡겨주신 일인데, 잘 해내고 싶었어요. 귀족들이 저를 못 마땅하게 여기고 있으시잖아요. 그렇게 편의를 봐주면 당연히 저를 긍정적으로 봐줄 거라고 생각했죠."

"그놈들이 그럴 리가 없다! 오히려 네가 납작 엎드렸다며 더 거들먹거리기나 할 것들이야!"

"맞아요. 제가 생각을 잘못한 거죠. 그분들은 애초에 저를 동등한 사람의 위치에서 봐주지 않았는데 말이에요."

"네가 이렇게 마음 고생을 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짐에게 서운했겠구나. 진작 신경을 써줬어야 했는데..."

순진한 황제 입장에선 투자금이 많이 들어왔으니 공사가 잘못 될 리 없다는 당연한 생각을 했을 뿐이다.

투자금이 다른 곳으로 솔솔 빠져나가고 있다는 비리들을 황제의 머릿속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었던 거다.

"짐이 모든 걸 바로 잡겠다."

"너무 귀족들과 척을 지시는 것 같아요. 담합을 한 귀족들을 처벌하는 건 괜찮지만, 그걸 이유로 다른 부분까지 건드리는 건 너무 위험해요."

"...미안하구나. 짐이 힘이 없어서 네가 말을 해줘도 처벌하는 것조차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니."

사실 전수 조사가 들어가면 비앙카도 걸릴 게 있었다.

그래서 황제가 깊게 조사에 들어가는 것을 막은 거다.

"저는 괜찮아요. 폐하께 상처를 드리려고 말씀드린 게 아닌데..."

"축제는 꼭 네가 바라는 대로 해주마. 노예 대여로 이득을 챙기는 귀족들을 더 이상 두고 보지 않을 거다. 더 이상 참지 말거라."

비앙카는 황제의 발언에 속으로 비웃음을 터트렸다.

'귀족들 앞에서는 이리저리 휘둘리다가 또 달려와서 찡찡거리기나 하겠지.'

증거가 명백한 귀족들의 담합을 제대로 처벌 할 수 있을지도 확신이 없다.

황제로 권위를 세워보겠다며, 국책 사업을 진행 중이긴 하나 귀족들의 횡포로 망하는 건 시간 문제인 상태.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됐냐며 화를 낸다고 해서 상황을 수습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워낙 황제의 권위가 바닥에 떨어져 있어서 그렇다.

'귀족들을 다룰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찡찡 대는 것밖에 없으니.'

과거 폭군의 영향으로 황제를 경계하고 두려워 하던 귀족들도 슬슬 현 황제가 만만한 자라는 걸 알아차리고 태도가 방만해지기 시작했다.

이번 대 황제는 피를 보는 것을 두려워하고, 귀족들의 눈치를 많이 본다.

비앙카라는 말도 안 되는 존재를 곁에 두면서 총애하고, 그 여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정치 조언을 받기까지 한다.

귀족들이 이런 황제를 존중한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거였다.

그리고 귀족들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걸 황제는 잘 알고 있었다.

"폐하만 믿고 있을게요."

비앙카는 진심이 전혀 담기지 않은 말을 했고, 황제는 보여주겠다면서 어깨에 힘을 주었다.

물론, 그런다고 갑자기 황제의 정치력이 성장해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일은 없었다.

♧ ♧ ♧

"폐하, 담합이라니요. 그런 일은 없었사옵니다!"

"허면 노예 대여 값을 일제히 올린 이유가 무엇인가!!"

"노예들의 관리 비용이 늘었기 때문이옵니다. 공사에 참여한 노예가 몸이 망가져 와서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옵니다. 물건을 빌려주었는데, 아껴 쓰지 않으니 어찌하겠습니까?"

"허면 노예를 대여해주는 값이 차라리 평민들을 고용하는 게 더 나은 수준이 된 것은 어찌하겠나! 투자금을 함부로 낭비할 수 없다고 한 건 그대들이 아닌가!"

"저희 가문의 노예들 중에는 건설에 전문 지식을 갖춘 인재가 많사옵니다. 그런 노예를 대여 해드리는 값이 어찌 무지렁이 평민들을 고용하는 것과 같을 수 있겠습니까."

황제는 귀족들의 매끄러운 혀놀림에 울컥 짜증이 치솟았다.

'비앙카에게 모두 해결해주겠다고 했는데, 이대로면 더 큰 값을 주고 노예를 강제로 대여 해야 하는 상황이지 않은가?'

분명 비리를 지적하면 귀족들이 겁을 먹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들은 뻔뻔하게 얼굴 색 하나 바꾸지 않으며 자신의 무결함을 주장했다.

"아무리 그래도 담합하여 값을 한 번에 올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

"폐하, 담합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생긴 비용 처리입니다."

"정 그러하면 차라리 평민을 고용하겠다. 짐은 노예를 고용하는 것에 그리 큰 돈을 쓸 수 없다!"

황제가 결국 땡깡을 부리듯이 자기 뜻을 밀고 나갔다.

귀족들은 또 저러는 구나 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평민들에게 일을 시킨들, 책임감 있게 하겠습니까? 그들은 노예에 비하면 고개가 뻣뻣하고 꾀를 부리기 좋아하는 이들입니다. 분명 건축 현장에서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그렇사옵니다, 폐하. 반면 노예들은 맡은 바의 일을 목숨처럼 여기며 최선을 다 해 일을 하옵니다. 어찌 시키는 일을 목숨처럼 여기는 자와 꾀를 부리며 몸을 사리는 자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애초에 그대들이 돈이 아깝다며 노예를 쓰라 했던 것 아닌가? 본래의 계획대로 돌아가는 것 뿐이다! 반론은 듣지 않겠다."

황제가 막무가내로 일을 밀어붙였다.

대놓고 황제의 말을 거부할 수 없었기에 귀족들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뜻에 따르기로 했다.

하지만 뜻에 따르겠다고 해서 뒤로 아무 짓도 안 하겠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귀족들은 황제가 자신의 가문 노예들을 대여 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 능력이 있었다.

황제가 고용한 평민들 몇 명을 매수하는 것쯤에야 식은 죽 먹는 것보다 쉬운 일이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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