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811 - #96. 진해솔 (115)
"돈을 왕창 써! 전부 아끼지 말고 싹 다~!"
"이, 이걸 전부 사용해서 말입니까?"
"응. 폐하께 받은 은혜를 백성들의 축제를 위해 쓴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니? 뭐라 하는 것이 있다면 내 앞에 데려와. 폐하의 앞에서도 그럴 수 있는지 보자고."
당연하다는 듯 황제의 권위를 끌고 오며 일꾼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비앙카를 본 관료들이 난색을 표했다.
저렇게 황제의 권위를 함부로 팔고 다니는 게 좋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가진 권위 자체는 사실이었기에 관료들은 그녀의 말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있습니까?"
일꾼들이 열심히 나르고 있는 금은보화들을 보며 괜스레 아까움을 느낀 관료가 물었다.
이건 축제가 아니라 돈지랄이었다.
"게오스 제국이 요즘 다른 나라들 사이에서 비웃음을 당하고 있는 걸 알고 있죠?"
"그런 무례한 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시면 안 됩니다!"
"저도 그러고 싶죠. 근데 무례한 자들이 한 둘이 아니니까 문제인 거에요. 이번 축제는 게오스 제국이 건재하다는 걸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단이에요. 그러니까 최대한 사치스럽고 웅장하게 꾸며야 한다는 거죠!"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너무 많은 재물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내 돈, 내가 쓰고 싶은데 쓰겠다는데 그쪽이 참견 할 자격은 없지 않을까요?"
비앙카의 서늘한 경고에 관료가 눈을 깔았다.
하지만 속으로는 여전히 납득하지 못한 채였다.
'네년 손에서 나온 돈이 다 우리 황실의 것이지 않나!!'
그러니 이렇게 아까운 것이다.
저 금은보화들이 다 황실의 재산이었으니까!!
그런데 뻔뻔하게 자기 것이니 너희들은 신경 쓰지 말라고 한다.
덕분에 관료들의 속이 말이 아니었다.
"황금 동상을 만들자. 황제 폐하의 늠름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그대로 담아내는 거야!"
화, 황금 동상?!
"설마 통째로 황금을 쓰겠다는 건 아니시겠죠?"
"당연히 그래야죠. 황금으로 만들어야지 우리 폐하의 위엄을 조금이라도 담을 수 있지 않겠어요? 금을 왕창 구매해야겠구나. 아주아주 많은 금을 구해!"
"미치겠군."
"단단히 돌은 게 틀림없네."
관료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 꽃이 황금보다 비싸다는 환상의 꽃이라는 거지?"
"예!"
"흐음, 못 생겼는데?"
"그래도 아주 귀한 꽃입니다. 마법사들에겐 특히 좋은 영약이라 없어서 못 구할 정도지요. 이렇게 생생하게 살아있기까지 하면 더더욱 값을 많이 받습니다."
"그래? 그럼 이걸 황궁 정원에 싹 심어라! 축제를 보러 온 귀족들에게 보여주면 딱이겠어."
관료들이 혀를 차건 말건.
비앙카는 축제에 돈칠을 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황제의 비호 아래에 있는 그녀는 이 제국에서 못할 것이 없었다.
♧ ♧ ♧
-황금 동상?
"네~ 명분이 참 좋죠? 동상을 만든다는 핑계로 금을 모으니 다른 사람들의 의심을 피할 수 있을 거에요. 진짜 동상은 대충 도금으로 떼울 거구요."
-적당히 정리하고 오라고 했잖아.
"2달 안에 정리하라고 하셨고, 그 시간 안에 챙길 수 있는 것들은 챙겨야죠! 축제는 좋은 핑계가 되어 줄 거에요."
그녀가 괜히 뜬금없이 축제를 열겠다고 한 게 아니었다.
이게 다 돈을 합법적으로 돌게 하기 위함이다.
돈이 움직여야 그 과정에서 쏙쏙 빼 먹고 다른 곳으로 이동 시킬 수 있지 않은가?
"후후, 페이퍼 컴퍼니라는 좋은 게 여긴 없더라고요."
-아...
"주인님은 가만히 기다리세요. 제가 다 알아서 챙겨 올 테니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주인님의 명령대로 하고 싶지가 않았다.
어차피 버려야 하는 재물이라는 걸 알긴 하지만, 버릴 장소를 고르는 건 '자신'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페이퍼 컴퍼니.
그러니까 서류상에만 존재하는 회사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곳과 거래를 해서 돈을 잔뜩 안겨주었고, 또 투자금 명목으로 돈을 넘기기도 했다.
이번 축제를 통해 비앙카는 그동안 모아둔 재물들을 모두 싹싹 긁어서 다른 곳으로 이동시킬 것이다.
'나가는 돈도 만만치 않긴 하지만...'
대를 위해 소를 희생 시킬 필요가 있었다.
황제에게서 빼앗은 것은 축제를 이용해서 이동을 시키는 계획이 모두 완성이 됐고, 이제 남은 것은 자신이 이 나라에서 새롭게 만든 상단 쪽 재산을 옮기는 것이었다.
'이건 어떻게 옮겨야 하나...'
상단 쪽 재산을 옮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대로 가기엔 서운하기에 마지막으로 귀족들의 뒤통수를 거하게 치고 싶었다.
'투자금...건드려봐?'
못 건들 건 없었다.
황제에게 받은 권한은 투자금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상태이니 말이다.
다만 그렇게까지 귀족을 도발하면 도망치는 게 쉽지 않을 수 있었다.
자기 돈을 도둑 맞았으니 오죽 화가 나겠는가?
'그래도 지들이 어쩔 거야? 배로 도망칠 텐데.'
그녀의 탈출 계획은 이미 다 짜여 있었다.
언제든 출항 시킬 수 있는 배가 그녀 만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으니 말이다.
아마 주인님이 알았으면 너무 위험하니 그만두라고 말렸을 일이었다.
그걸 비앙카도 알았기에 충동을 억지로 누르며 다시 한 번 상황을 살펴보기로 했다.
'이건 된다는 확신을 갖기 전까지 보류해두자.'
사실 비앙카가 제일 챙기고 싶은 게 있다면 그건 단연코 황제였다.
아직 황제를 마음껏 갖고 놀지 못한 그녀였기에, 황제라는 지위를 함께 데려갈 수 있다면 그녀도 함께 납치하고 싶었다.
하지만 납치 당한 황제는 아무런 가치도 없을 것이다.
귀족들은 다른 황제를 세울 것이고, 난리가 난 나라를 수습하겠다고 정신이 없겠지.
그렇기에 비앙카는 가장 탐나지만, 손 댈 수 없는 황제에게 마지막으로 어떤 선물을 남겨야 할지 고민했다.
♧ ♧ ♧
게오스 제국이 장작 한 달이나 되는 축제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빠르게 전세계로 퍼졌다.
그리고 준비 기간인 한 달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비앙카는 그동안 엄청나게 많은 금액을 우리 제국으로 보내는데 성공했다.
정말 악착 같이 챙겨오는 걸 보며 혀를 내둘렀다.
이렇게 많이 보내도 그쪽에서 아무런 의심도 안 한다는 게 이상했다.
그래서 비앙카를 근거리에서 지켜주고 있는 호위기사들에게 여러 차례 당부를 했다.
그녀가 위험에 처할 것 같으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주를 최우선으로 하라고.
그들이 비앙카가 도망치는 곳이 어디인지 추적하려 할 텐데, 아무 상관없으니 제국으로 데려오라고 말이다.
우리 제국은 게오스 제국과 전쟁이 나도 감당 할 자신이 있었다.
'애초애 게오스 제국 쪽에서 전쟁을 반기지 않겠지. 걔네들이 무슨 정신이 있어서 전쟁을 하자고 하겠어.'
나라의 곳간이 탈탈 털리지 않았는가?
전쟁에는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간다.
게오스 제국은 비앙카에 의해 곳간이 탈탈 털려서 전쟁을 감당 할 수 있는 돈이 없었다.
고작 1년에 가까운 시간에 만들어낸 엄청난 업적이다.
호위 기사도 처음이었다면 꼬리를 잡힐 바에야 죽는 게 더 낫다고 말했을 사람인데, 지금은 태도가 바뀌어 있었다.
그녀는 게오스 제국 때문에 죽기에는 너무 아까운 인재였다.
그걸 기사도 인정한 것이다!
"우리도 축제에 참석할 사람을 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전쟁이 끝난 이후, 아직까지 그 여파가 남아 있어 우호적인 관계가 되진 못했지만 보내는 것이 옳은 듯 하옵니다."
귀족들도 축제에 참석 시킬 사절을 보내는 것에 동의하고 있었다.
"누구를 보내는 게 좋을까..."
나는 될 수 있으면 비앙카의 진실을 알고 있는 귀족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
그가 그곳에 가서 비앙카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길 바란 것이다.
"데인 남작."
"예, 폐하."
"그대에게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옵니다, 폐하!"
데인 남작은 내가 비앙카의 안전을 걱정했을 때 자신의 기사를 기꺼이 내어준 충직한 신하였다.
그는 입이 무겁고, 진중한 성격을 가진 남자였다.
기사도를 그대로 가져다 놓은 사람이라 표현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였고 비앙카의 안전을 믿고 맡겨둘 실력자이기도 했다.
나는 그에게 은밀히 축제 참석이 아닌 또 다른 임무를 맡겼다.
"비앙카를 안전하게 제국으로 데려와 줬으면 합니다."
"명하신 바를 반드시 수행하겠사옵니다."
"그대를 믿지만, 걱정이 많은 사람이라 이걸 챙겨주겠습니다."
"이게 무엇이옵니까?"
"위험한 순간, 목숨을 구해줄 겁니다."
거기서 뭘 하고 있는지 제대로 보고를 안 하고 있다는 직감이 든다.
오랫동안 비앙카를 봤기에 짐작 할 수 있었다.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다.
그녀는 욕심을 부리는 걸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고, 제국을 위한다면 욕심 부리는 걸 막아선 안 됐다.
비앙카의 욕심이 게오스 제국을 위기로 몰고 갈 테니 말이다.
"나라를 위해 애써준 사람입니다. 다 쓰고 쓰레기처럼 버릴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제국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일했다면, 그만한 대우를 받아야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데인 남작이 내 말에 눈을 반짝였다.
신하가 황제에게 이런 말을 듣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황제는 한 사람이지만, 신하는 얼마든지 다른 사람으로 대체가 가능한 위치였다.
하지만 황제는 사람 한 명 한 명을 아껴주고 있으니 감동을 받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꼬리가 잡히면 게오스 제국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또 다시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당장 전쟁이 일어나는 건 짐도 원하지 않는 일입니다. 가만히 내버려두면 자연스럽게 게오스 제국이 무너지게 될 테니까요. 짐은 힘이 빠진 게오스 제국을 쳐서 큰 희생 없이 게오스 제국을 먹기를 바랍니다."
대외적으로 게오스 제국은 이례적인 큰 축제를 통해 건재함을 과시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모래 위에 쌓아 올린 위태로운 건축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비앙카가 우리 제국으로 들어온다 해도 게오스 제국은 전쟁을 걸 수 없습니다. 귀족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우리 제국과 다시 전쟁이 시작 되는 것을 아무도 바라지 않을 겁니다."
전쟁이 시작 되면 귀족들의 투자금이 들어간 국책 사업이 무한정 뒤로 밀리게 된다.
사업의 실패.
지금 게오스 제국의 귀족들 머릿속에는 들어가 있지도 않았고, 감히 떠올리고 싶지도 않은 일이었다.
"비앙카는 대외적으로 우리 제국에 망명한 것으로 처리가 될 겁니다. 명문은 게오스 제국의 귀족들이 제공해주겠죠. 목숨의 위협을 받은 비앙카가 우연히 데인 남작의 도움을 받고 우리 제국으로 도망친 겁니다."
"그것으로 게오스 제국은 납득하지 않을 겁니다."
"그들이 납득하지 않는다 해도 상관없습니다."
오히려 게오스 제국은 우리 제국이 먼저 전쟁을 걸지 않는 것에 감사 해야 한다.
내가 진짜 제국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는 황제였다면 지금 상황만큼 전쟁을 걸기 딱 좋은 때가 없었을 것이다.
'피를 보는 건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니야. 애초에 하기도 싫고.'
새로운 생명을 싹 트이게 하기 위해 온 곳이다.
전쟁은 다음 대 황제에게 맡겨둘 생각이었기에 적당히 양념만 쳐 놓으면 됐다.